[에필로그] 23개국 36개 도시, 715만 원 — 세계일주 정산서를 그대로 공개한다

세계일주 · 에필로그
90일간의 유럽여행을
정리하고 회고한다.
그때 적은 목록을
그대로 옮긴다.

돌아오고 일주일쯤 지나서 정리한 목록이다. 지금 달라진 건 뒤에 따로 적었다.

1년을 계획했지만 90일이 한계였다

출국 전 공항 유리창 너머로 보이는 활주로
여기서 시작했다. 여기로 돌아왔다.

그 90일이 이렇게 쓰였다.

  • 여행 일수 — 89박 90일
  • 방문 국가 — 23개국
  • 방문 도시 — 36개 도시

23개국 36개 도시

여행 경로를 표시한 세계지도
지나온 경로. 아시아에서 시작해 유럽을 돌고 러시아로 돌아왔다.
홍콩홍콩말레이시아말레이시아스리랑카스리랑카두바이두바이
불가리아불가리아이탈리아이탈리아헝가리헝가리오스트리아오스트리아
체코체코독일독일스위스스위스프랑스프랑스
스페인스페인포르투갈포르투갈영국영국핀란드핀란드
스웨덴스웨덴터키터키그리스그리스러시아러시아

사진이나 도시 이름을 누르면 그 이야기로 넘어간다.

세는 기준에 따라 21개국이 되기도 한다.

마카오를 중국에 묶고 웨일스를 잉글랜드에 묶으면 그렇다.

비용 없이 22박을 알뜰하게 잤다

90일 중 22박은 숙박비가 0원이었다. 절반 가까이가 친구들 덕분이었다.

공항 노숙 14박공항 노숙 14박핀란드 집 2박핀란드 집 2박웨일즈 집 3박웨일즈 집 3박발트해 밤배 1박발트해 밤배 1박

노숙 14박이 제일 크다.

쿠알라룸푸르 공항은 아예 노숙하기 좋기로 순위권에 오른다.

야간 기차를 숙소 삼은 구간도 있었다.

나머지 7박은 사람이다.

남의 집 거실과 남는 방에서 잤다.

이 줄을 쓸 때마다 그 집들의 현관 냄새가 따로따로 기억난다.

교통비도 얻어 탔다

히치하이킹 3회히치하이킹 3회현지인 차현지인 차카풀로 국경카풀로 국경야간열차 14시간야간열차 14시간

22끼 이상을 얻어먹었다

세어보니 22끼가 넘었다.

말레이시아말레이시아웨일즈웨일즈스톡홀름스톡홀름로마 한인민박로마 한인민박
  • 말레이시아 현지인 — 저녁·점심·아침 (팬 만나러 가는데 같이 갈래?)
  • 부다페스트에서 한국 친구가 준 고추장
  • 핀란드 현지인 — 저녁·아침·점심을 두 번씩
  • 핀란드 친구 — 마찬가지로 여섯 끼
  • 웨일즈 친구 — 점심·저녁·아침을 두 번씩 (그 집 주방에서 양파를 썰었다)
  • 이스탄불에서 한국 친구가 준 컵라면
  • 그 외 — 현지인들이 싸준 도시락·초콜릿·과일, 호스텔이 예고 없이 주는 저녁, 여행자들끼리의 푸드셰어, 로마프라하 한인민박 밥

뼈아픈 실수, 약 100만 원

돌아보면 이 돈은 안 써도 됐다.

놓친 두바이행 16만놓친 두바이행 16만놓친 한국행 40만놓친 한국행 40만죽은 폰 14만죽은 폰 14만트윈타워 전망대트윈타워 전망대

1. 놓친 두바이행 비행기 — 16만 원 (날짜를 착각한 날)

2. 놓쳤다고 항공사에 전화하다 깨진 국제전화비 — 13만 원

3. 놓친 한국행 비행기 — 40만 원 (시계가 네 시간 빨랐다)

4. 휴대폰이 죽어서 새로 산 갤럭시 J1 — 99유로(약 14만 원) (폰이 죽은 날)

5. 홍콩달러 20만 원어치 환전 — 2박 3일에 다 써버림

6. 쿠알라룸푸르 트윈타워 전망대 — 올라간 것 자체가 후회 (86층까지 올라가 보고)

7. 싸다고 산 미니 스케이트보드 — 결국 기부

8. 왕좌의 게임 영문판 책 — 무거워서 기부

비행기를 세 번 놓쳤고 그중 두 번이 목록에 있다.

제일 크게 샌 돈은 전부 실수에서 나왔다.

반대로, 가장 잘 쓴 돈

1. 출발 전 미리 끊은 비행기 — 75만 원

2. 핀란드(투르쿠)-스웨덴 배 — 20유로, 숙박 포함 (발트해를 건넌 밤배)

3. 빈의 박물관과 미술관 — 돈이 전혀 아깝지 않았다

4. 그리스 아고라 입장료 — 그날 딱 4유로만 썼다 (돌덩이 사이 신전 하나)

5. 리옹 일주일 — 20만 원 (론강뷰 여드레), 자전거 대여가 6,600원 (빌리니 도시가 좁아졌다)

6. 프라하·로마 한인민박 — 30유로짜리 하루였지만 밥을 엄청 먹었다

관광하기 좋았던 도시 TOP 3

저녁 조명이 켜진 세체니 온천 건물 외관
부다페스트. 물가와 야경 둘 다 좋았다.

1. 부다페스트 — 물가가 저렴하고 야경이 최고

2. — 예술과 문화의 도시

3. 모스크바 — 유럽과는 완전히 다른 느낌

살고 싶었던 도시 TOP 3

1. 핀란드 포리 — 시민 의식, 복지, 자연환경, 조용함

2. 독일 뮌헨 — 시민 의식과 아름다운 동네

3. 오스트리아 빈 — 예술과 문화

여행하기 좋은 도시와 살고 싶은 도시가 완전히 다르게 나온 게 스스로도 재미있었다.

남에게 추천하고 싶은 도시 TOP 4

궁전처럼 장식된 모스크바 지하철역 내부
모스크바 지하철. 역 하나하나가 궁전이었다.

1. 포르투 — 동양인이 거의 없는 유럽의 휴양지

2. 모스크바 — 저렴하고 예쁘다. 사람들 표정만 불친절

3. 스리랑카 — 저렴하고 자연이 아름답다

4. 부다페스트 — 야경이 정말 예쁘다

제일 좋은 기념품은 공짜였다

여권 사증란에 찍힌 출국 도장
떠날 때 처음 찍힌 도장. 돌아올 땐 사증란이 꽉 차 있었다.
식탁 위에 놓인 당근 한 봉지, 과일주스, 초콜릿, 살미아크 사탕 상자
떠나는 날 핀란드 집에서 싸준 것들. 산 기념품보다 이쪽이 많다.

돈 주고 산 기념품은 약 22만 원어치였다.

그런데 제대로 남은 건 따로 있었다.

대회 기념 메달, 스웨덴 친구가 준 예쁜 돌멩이, 중국 친구가 준 코코넛 껍질 코끼리.

그리스에서 주운 열쇠고리, 여권 도장, 놓친 비행기 표, 나라별로 쓰고 남은 동전들.

은근히 다 공짜다.

잃어버리거나 망가진 것

  • USB 커넥터, 헤드셋 블루투스 모듈
  • 수건, 티셔츠 3종, 양말 5종 — 하도 걸어 다녀서 전부 구멍
  • 휴대폰 — 사망
  • 여행 가방 — 조금 찢어짐
  • 카메라 — 가끔 켜면 에러

양말 다섯 켤레에 전부 구멍이 났다는 게 이 여행의 성격을 제일 잘 보여주는 줄인 것 같다.

그래서 얼마가 들었나

마지막 경유지 공항의 도착 구역
마지막 경유지. 여기서 한국행 비행기를 탔다.
항목금액
준비해 간 환전120만 원
신용카드 A555만 원
신용카드 B40만 원
여행 경비 합계715만 원

기념품 값은 포함이고, 카메라 구입비 50만 원은 뺀 금액이다.

90일로 나누면 하루 8만 원 정도다.

여기에 통신비가 따로 붙는다.

전화 로밍 약 17만 원, 통화료 13만 원으로 30만 원이다.

지금이라면 유심이나 이심으로 거의 사라질 항목이라 경비 표에서는 뺐다.

유용했던 아이템 5가지

1. 손톱깎이 — 제일 많이 빌려준 물건

2. 멀티플러그 + 멀티콘센트 — 공항이나 카페마다 칭찬받았다

3. 셀카용 카메라 — 사람과 친해지는 데 유용

4. 바람막이 — 저녁 기온 방어

5. 슬리퍼 — 신발보다 자주 신었다

멀티콘센트는 특히 그렇다. 공항 콘센트 하나에 여럿이 몰릴 때 이걸 꺼내면 그 자리에서 대화가 시작된다.

다음엔 꼭 챙기겠다고 적어둔 것

1. 글로벌 명함 — 연락처를 주고받을 일이 생각보다 많다

2. 젓가락 — 구하기 어렵다

3. 지퍼백 — 남은 음식 보관

4. 고추장, 라면 스프

5. 한국을 알릴 무언가 — 종이접기 한복이나 책갈피 같은 것

지금 기준으로 달라진 것

시간이 꽤 지났으니 숫자는 당연히 달라졌다.

지금도 그대로인 것만 남기면 이렇다.

  • 환율 — 여행 당시 유로가 계속 오르는 중이었다. 노르웨이를 포기한 사람들도 그 이유였다.
  • 카풀 — 블라블라카는 지금도 유럽 장거리 이동의 대안이다. 다만 예약과 결제가 앱으로 정리됐다.
  • 공항 노숙 — 지금은 심야 폐쇄를 하거나 탑승권 확인을 하는 공항이 늘었다. 미리 확인하고 가는 편이 안전하다.
  • 현지인 집 — 당시엔 여행지에서 만나 초대받는 식이었다. 지금도 그 구조는 같지만, 안전 문제를 고려해 아는 사이를 거치는 편이 좋다.
  • 로밍 — 이 여행에서 로밍과 통화료로만 30만 원이 나갔다. 지금은 유심이나 이심으로 이 항목이 거의 사라진다. 제일 크게 줄일 수 있는 항목이 여기다.

다녀와서

목록을 다 옮기고 나니 제일 눈에 걸리는 게 실수 항목이다.

100만 원.

비행기를 세 번 놓치고, 안 써도 될 돈을 쓰고, 무거운 걸 사서 결국 기부했다.

그런데 다시 가라고 해도 그 실수는 아마 또 할 것 같다.

놓친 비행기 덕분에 공항에서 하룻밤을 더 보냈고, 그 밤에 만난 사람이 다음 도시를 정해줬다.

정산서에 손실로만 찍히는 항목이 실제로는 여행의 절반이었다.

반대로 아예 찍히지 않는 항목도 있다.

공짜로 잔 7박과 스물두 끼 넘는 밥, 여러 번 얻어 탄 차.

정산서에는 0원으로 잡혀 있지만 실제로는 누군가가 대신 낸 몫이다.

말레이시아에서 나를 데리고 다닌 친구들, 웨일스에서 버스 노선을 물어봤다가 자기 집으로 데려간 사람들.

리옹에서 길 잃은 밤에 태워다 준 가족, 핀란드에서 사흘 동안 거실을 비워준 두 사람.

이스탄불 근교에서 차를 세워준 사람들.

말레이시아말레이시아웨일즈웨일즈리옹 트랙리옹 트랙핀란드핀란드

이 줄은 지출 항목이 아니라 사람 목록이다.

715만 원으로 90일을 돌 수 있었던 이유의 절반이 거기 있다.

아낀 것보다 받은 게 컸다.

떠나기 전에 제일 많이 들은 말은 낯선 사람을 조심하라는 것이었다.

90일 동안 겪은 건 그 반대였다.

갚을 방법이 없는 여행자에게 이유 없이 내주는 사람이 나라마다 있었다.

그게 이 정산서에서 제일 큰 숫자다.

갚을 게 없을 때마다 같은 문장을 적었다.

식탁 앞에서 두 손을 들어 보이며 웃는 모습
말이 안 통해도 이건 통했다.
Thank you for everything.

90일 동안 스무 번 넘게 썼다.

집으로 가는 비행기 좌석에서 찍은 사진
집으로 가는 비행기. 여기서 이 목록을 머릿속으로 한 번 적어봤다.

90일 동안 23개국을 돌았고, 715만 원을 썼고, 양말 다섯 켤레에 구멍이 났다.

그게 전부다.

이 목록을 쓰고 한참 지나서야 그 여행을 한 편씩 글로 옮기기 시작했다.

여기까지 읽어주셔서 고맙습니다.

이 정산서에 이름이 올라간 사람들 모두 지금도 잘 지내고 있으면 좋겠다.

모두모두 행복하길. 그리고 모두에게 감사합니다.

다음에 어디로 갈지는 아직 안 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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