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라하 1] 민박집 벽에 붙은 손그림 지도가 구글 지도보다 나았다

프라하 여행기 · 1편
숙소 벽에 지도가
손으로 그려져 있었다.
그날 나는 그 지도를 보고
하루를 다 돌았다.

빈에서 저녁 버스를 타고 넘어와 밤늦게 도착했다. 짐만 풀고 잤으니 프라하를 처음 본 건 다음 날 아침이었다.

발코니 문을 열었다. 붉은 기와지붕이 겹겹이 깔려 있고 그 너머로 첨탑 하나가 서 있었다. 전날까지 있던 도시와 지붕 색이 완전히 달랐다.

민박집 발코니에서 내려다본 프라하의 붉은 기와지붕
밤늦게 도착해서 잤으니, 프라하를 처음 본 게 이 각도였다

숙소는 한인민박이었다. 고른 이유는 단순했다 — 한식이 먹고 싶었다. 두 달 넘게 빵과 케밥으로 버티다 보면 밥 생각이 나는 시점이 온다. 후기가 좋길래 예약했고, 결과적으로 이 선택이 프라하에서 제일 잘한 결정이었다.

아침에 밥이 나왔다

옥상 쪽으로 난 마당에 빨간 플라스틱 의자와 탁자가 놓여 있었다. 다들 여기서 밥을 먹고 담배를 피우고 다음 행선지를 이야기했다.

민박집 옥상 마당에 놓인 빨간 플라스틱 의자와 탁자
다들 여기서 밥을 먹고 다음에 어디로 갈지를 이야기했다

아침상에 밥이 올라왔다. 나물 몇 가지, 김, 계란, 국. 특별할 것 없는 구성인데 두 달 만이면 이게 특별해진다. 그날 하루 컨디션이 여기서 정해졌다고 해도 과장이 아니다.

민박집 조식으로 나온 밥과 나물, 김, 계란, 국
두 달 만의 밥. 나물과 김과 국이 이렇게 반가울 일인가 싶었다

밥을 먹는 동안 주인아주머니가 체코 사람들 이야기를 해줬다. 표정이 어둡다는 말을 많이 듣는데 그건 역사 때문이고, 실제로는 '순딩이들'이라고 했다. 옆집에 누가 사는지 관심이 없고, 직장보다 가족이 먼저고, 사무실은 자주 비어 있고 문도 일찍 닫는다고. 남의 삶에 관심이 많은 우리와는 결이 다른 동네라는 뜻이었다.

벽 한 면이 지도였다

민박집 벽에 붙은 손그림 지도, 테스코와 트램길과 우리집이 그려져 있다
오른쪽 아래 빨간 점 옆에 「우리집」이라고 적혀 있다. 지도의 원점이 숙소다

밥을 먹고 일어서다가 벽을 봤다. 지도가 붙어 있었다. 인쇄물이 아니라 손으로 그린 것이었다.

한 장이 아니었다. 번호를 매겨 여러 장을 이어 붙였고, 각 장이 동네 하나씩을 맡고 있었다. 굵은 펜으로 길을 그리고, 건물은 입면을 대충 스케치하고, 중요한 곳은 빨간색으로 덧칠했다. 정성이 상당했다.

한 장에는 트램길과 테스코, 재즈클럽 레두타, 지하철역이 그려져 있었고 오른쪽 아래에 빨간 점이 하나 찍혀 있었다. 그 옆에 '우리집'이라고 적혀 있었다. 지도의 원점이 숙소였다.

식당 이름 옆에 말풍선이 달린 장도 있었다. 화약탑과 은행 건물, 빌라 슈퍼가 그려진 장인데, 식당 두 곳에 화살표를 그어놓고 뭘 시켜야 하는지까지 적어놨다. 한쪽에는 필스너 우르켈과 꼴레노, 치킨윙. 다른 쪽 — 히베르니아라는 곳에는 체코 전통요리와 스비치코바, 굴라쉬. 나는 그날 저녁 결국 이 히베르니아에서 굴라쉬를 먹게 되는데, 그건 우연이 아니라 이 벽 때문이었다.

화약탑과 히베르니아 식당이 그려진 손그림 지도, 메뉴 추천까지 적혀 있다
식당에 화살표를 긋고 뭘 시킬지까지 적어놨다. 나는 결국 이대로 먹었다

강 건너편을 그린 장에는 블타바강이 파란색으로 두껍게 칠해져 있고 다리와 비셰흐라드가 표시돼 있었다. 트램 번호도 몇 개 적혀 있었다.

블타바강과 비셰흐라드가 그려진 손그림 지도
강 건너편은 파란색으로 두껍게 칠해뒀다

종이 한 장이 따로 있었다

숙소에서 프라하성 가는 방법이 적힌 A4 안내문
편의점 간판이 빨간색이라는 것까지 적혀 있다

지도만 있는 게 아니었다. 바인더에 A4 용지가 한 장 끼워져 있었는데 제목이 '숙소에서 프라하 성 가는 방법'이었다.

내용은 이랬다. 숙소에서 나가 오른쪽, 왼쪽으로 가면 트램길이 나온다. 정면에 RELAY라는 빨간 간판의 작은 편의점이 있으니 거기서 24코루나짜리 30분권을 산다. 길을 다시 건너 왼쪽으로 올라가면 마켓 입구 앞에 트램역이 있고, 거기서 출발하는 22번 트램을 타고 일곱 번째 정거장에서 내리면 된다. 아래에는 지도를 붙이고 경로를 빨간 펜으로 그어놨다. 소요 17분, 배차 6분.

편의점 간판 색까지 적혀 있다. 이 정도로 쓰려면 그 길을 여러 번 걸어보고, 손님들이 어디서 헤매는지를 알아야 한다.

그때는 지도 앱을 다 믿을 수 없었다

지금 기준으로 보면 이상하게 들릴 수 있다. 휴대폰을 켜면 될 걸 왜 벽에 있는 그림을 보고 다니냐고.

그때는 사정이 달랐다. 지도 앱이 있긴 했지만 유럽 소도시에서는 자주 어긋났고, 무엇보다 데이터를 마음대로 못 썼다. 그래서 여행하는 내내 사람들이 알려주는 걸 받아 적고 사진으로 찍어두는 게 기본이었다. 숙소 주인이 지도를 그려주는 일도 그 여행에서 드물지 않았다.

그러니까 이 벽은 인테리어가 아니라 실무였다. 앱에 없는 것들이 여기 있었다 — 어느 편의점에서 표를 파는지, 어느 식당에서 뭘 시켜야 하는지, 몇 번째 정거장에서 내려야 하는지. 그건 그 동네에 오래 산 사람만 아는 정보다.

나는 벽을 사진으로 찍었다. 그리고 그날 하루 그 사진들을 보면서 다녔다.

성으로 가는 길

트램을 타고 시내를 지나는데 은색 덩어리가 천천히 돌아가고 있었다. 층층이 잘린 금속판이 각자 다른 속도로 회전하면서 얼굴이 됐다가 흐트러졌다가 했다. 나중에 알았는데 카프카의 두상이었고, 만든 사람은 프라하 곳곳에 이상한 조형물을 세워온 조각가였다.

프라하 시내에 있는 회전하는 카프카 두상 조형물
금속판이 각자 다른 속도로 돌면서 얼굴이 됐다가 흐트러졌다가 한다

안내문대로 일곱 번째에서 내려 언덕을 올랐다. 나무 사이로 첨탑이 보였다. 검은 고딕 지붕에 초록색 돔이 섞여 있었다.

나무 사이로 보이는 프라하성과 성 비투스 대성당의 첨탑
검은 고딕 지붕에 초록색 돔이 섞여 있다. 여기서부터가 프라하성이다

여기서부터가 프라하성이다. 그리고 이날 나는 표를 잘못 끊는다.

프라하 대중교통, 지금은 얼마인가

내가 산 30분권은 24코루나였다. 지금은 요금 체계가 바뀌어서 30분권 대신 90분권이 기본이고, 종이 기준 50코루나·리타치카(Lítačka) 앱으로 사면 46코루나다. 메트로·트램·버스 어디서든 개시 후 90분 동안 환승 제한 없이 쓸 수 있다. 최신 요금은 DPP 공식 요금표에서 확인하면 된다.

트램표는 지금도 편의점과 정류장 자판기에서 판다. 다만 개시 각인을 안 하면 무임승차로 잡히니, 타자마자 노란 각인기에 넣는 것만 기억하면 된다.

다녀와서

프라하에서 제일 먼저 배운 게 성도 다리도 아니고 벽에 붙은 종이였다는 게 지금도 재미있다.

여행 정보가 넘치는 지금은 오히려 이런 게 귀하다. 검색해서 나오는 건 다들 아는 것이고, 그 동네 사람이 손으로 적어준 건 그 사람 몫의 시간이 들어간 것이다. 나는 그날 그 시간을 공짜로 받아 썼다.

다음 편은 프라하성이다. 통합권을 끊었는데 그럴 필요가 없었던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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