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 · 이드라 1] 배에서 내렸는데 엔진 소리가 안 났다, 차가 금지된 섬
법으로 금지된 섬이다.
당나귀와 노새뿐이었다.
전날 밤 아테네 숙소 주인이 지도를 펴 놓고 섬 하나를 짚었다.
이드라. 그리스어로는 히드라라고 쓰는데 앞의 H를 발음하지 않아 이드라로 읽는다.
차가 없는 섬이라고 했다. 그 말이 무슨 뜻인지는 다음 날 배에서 내려서야 알았다.
아침 일곱 시, 아테네에서 항구까지
일곱 시가 조금 넘어 숙소를 나섰다. 아직 문을 연 가게가 없었다.
골목 벽에 요리사 그림이 크게 그려져 있었다.
케이크를 들고 생선을 들고 웃고 있는데, 정작 그 아래 셔터는 내려가 있었다.

지하철을 탔다. 승강장 표지판에 프로스 피레아, 피레우스 방면이라고 적혀 있었다.
아테네 지하철은 종점 이름만 알면 방향을 틀릴 일이 없다. 그리스 문자가 낯설어도 첫 두 글자만 맞춰 보면 된다.

항구에 내려 숙소 주인이 짚어 준 게이트로 갔다. E8이라고 했다.
표는 기계로 끊었다. 게이트 번호와 시간만 맞추면 나머지는 기계가 처리한다.

배를 타고 섬으로
피레우스는 여객선 항구다. 크레타나 산토리니로 가는 큰 배들이 부두마다 서 있었다.
내가 탈 배는 그중에서도 작은 축이었다. 섬까지 두 시간이 안 걸리는 고속선이다.

배 안은 비행기 좌석처럼 줄이 맞춰져 있었다. 창밖으로 육지가 멀어지는 걸 보다가 졸았다.
깨어 보니 창밖이 온통 바다였다.

항구에 들어서니 초록색 배 한 척이 먼저 눈에 들어왔다. 옆구리에 플라잉 돌핀이라고 쓰여 있었다.
수중익선이다. 속도를 내면 선체가 물 위로 뜬다. 이드라와 아테네를 오가는 배 중 제일 빠른 축이다.

배가 부두에 붙자 마을이 한눈에 들어왔다.
언덕을 따라 하얀 집들이 층층이 얹혀 있고 그 아래에 배들이 늘어서 있었다. 그림엽서에서 오려 낸 것 같았다.

엔진 소리가 없었다
배에서 내리자마자 이상했다. 뭔가 빠져 있는데 그게 뭔지 몰랐다.
한참 걷다가 알았다. 엔진 소리가 없었다.
경적이 없었다. 시동을 걸어 두는 소리도, 멀리서 오토바이가 지나가는 소리도 안 났다.
들리는 건 발소리와 사람 말소리뿐이었다.

골목으로 들어서니 그 이유가 보였다. 차가 다닐 자리 자체가 없었다.
계단이 길의 일부였다. 오르막 중간중간이 그냥 층계로 이어졌다.

어떤 골목은 어깨가 양쪽 벽에 닿을 만큼 좁았다.
바닥은 돌을 깔았고 벽은 하얗게 칠했다. 위를 보면 하늘이 띠처럼 가늘게 보였다.

길의 폭은 차가 정한다
살면서 길이 왜 그 폭인지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여기 와서 알았다. 차가 지나가야 해서 그만큼 넓은 거였다.
차가 없으니 담벼락에 가로등을 매달아도 되고, 그 위로 꽃이 늘어져도 아무도 치우라고 하지 않는다.

그런데 언덕을 오르다 인조잔디 축구장을 만났다. 선까지 그어진 정규 크기였다.
차가 못 들어오는 섬에 이만한 걸 어떻게 깔았을까 싶었다.
자재를 배로 들여와 당나귀로 날랐을 텐데 그 그림이 잘 그려지지 않았다.

당나귀가 유일한 교통수단이다
골목 모퉁이에서 처음 마주쳤다. 안장을 얹은 당나귀 한 마리가 계단 아래 서 있었다.
발치에는 고양이가 앉아 있었다. 둘 다 나를 잠깐 보고는 하던 자세로 돌아갔다.

조금 더 오르니 짐을 실은 무리가 내려왔다.
포대 자루를 등에 지고 줄지어 걷는데, 사람은 맨 앞에서 고삐만 잡고 있었다.

이 섬에서는 택배도 이삿짐도 식료품도 다 저렇게 나른다.
마당 한쪽에 매어 둔 놈들도 있었다. 등에 나무 안장과 파란 자루를 얹은 채 그늘에서 쉬고 있었다.

자동차가 없는 대신 매일 저 발굽 소리가 도로를 대신한다.
이드라 섬 가는 법
이드라는 아테네 피레우스 항에서 고속 페리로 갈 수 있다.
알파라인, 헬레닉씨웨이즈, 매직씨페리 같은 선사가 쌍동선과 수중익선을 운항하고, 하루 최대 12편이 오간다.
소요 시간은 배편에 따라 1시간 5분에서 2시간 20분까지 벌어진다. 예매 화면에서 이걸 먼저 본다.
편도 요금은 피레우스에서 이드라로 갈 때 1인 기준 28유로 안팎, 돌아오는 편은 그보다 저렴한 경우가 많다.
시간표와 요금은 페리호퍼 아테네-이드라 노선에서 실시간으로 확인하고 예매할 수 있다.
섬에 차가 없는 이유
이드라는 쓰레기 수거차를 뺀 모든 바퀴 달린 차량을 법으로 금지한 섬이다.
자동차도, 오토바이도, 자전거도 다닐 수 없다.
그 자리를 당나귀와 노새, 말이 대신한다. 항구에서 숙소까지 짐을 옮길 때도 이 동물들이 나선다.
조금 더 먼 해변이나 이웃 마을로는 수상 택시가 다닌다.
마을 안은 대부분 걸어서 다닐 수 있는 거리라 주민들도 웬만하면 걷는다.
골목이 온통 돌바닥과 계단이라 편한 신발은 필수다.
당나귀가 유일한 교통수단
당나귀가 유일한 교통수단이라는 말은 듣기만 해서는 잘 그려지지 않는다.
직접 그 골목에 서 보고 나서야 이해가 됐다. 길이 좁은 게 아니라, 넓힐 이유가 없었던 거다.
그 골목을 벗어나 언덕으로 올라갔다.
항구에서 20분만 오르면 관광객이 사라지고 그냥 사람 사는 섬이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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