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 스완지 1] 웨일스 스완지 원정, 표를 먼저 사고 갔는데 경기가 끝나 있었다
거기에 일정을 맞췄다.
경기가 끝나 있었다.

포르투갈 남쪽 끝 파로에서 영국 웨일즈 스완지까지, 하루에 비행기 한 번과 버스와 기차를 갈아탔다.
그렇게까지 간 이유는 축구 경기 하나였다.
계획은 다섯 단계였다

여행을 시작하기도 전에 스완지시티 경기표를 샀다. 구석자리 37.5유로. 그러고 나서 영국으로 넘어갈 비행기를 찾았는데, 리스본에서 뜨는 것보다 파로에서 뜨는 게 훨씬 싸서 91유로짜리를 잡았다.
표를 먼저 사고 거기에 이동을 맞춘 것이다. 그래서 경로가 이렇게 됐다.
1. 파로 공항에서 밤을 보내고 아침 비행기로 브리스톨
2. 브리스톨에서 카디프행 버스
3. 카디프에서 스완지행 기차
4. 스완지에서 리버티 스타디움행 버스
5. 에어비앤비 체크인
다섯 단계 중 하나만 어긋나도 경기를 못 본다는 걸 알고 있었다. 표를 예매하면서 그걸 적어놓기까지 했다. 당일치기라 연착이나 버스 한 대만 놓쳐도 못 본다고.

붉은 의자가 줄지어 놓인 대합실에 자리를 잡았다. 매점에서 산 스낵 하나로 밤을 버텼다.
그 밤에 5번이 먼저 무너졌다. 예약해둔 에어비앤비 두 곳이 동시에 취소됐다. 스완지에 도착해도 잘 데가 없다는 뜻이었다.
그런데 이상하게 마음이 가벼워졌다. 파로에서도 공항 바닥에서 잤으니 하루 더 못 잘 것도 없다고 생각했다.
배낭이 일 점 오 킬로그램 초과였다

체크인 카운터에서 배낭 무게를 쟀다. 기내 반입 한도가 6킬로그램인데 저울은 7.5를 가리켰다.
두바이에서 소피아로 갈 때 항공권을 안 뽑아왔다고 추가 요금을 낸 적이 있다. 저가항공은 이런 걸로 돈을 받는다. 순간 긴장했다.
신입으로 보이는 직원이 옆의 고참에게 물었다. 고참이 잠깐 보더니 별말 없이 통과시켜줬다.
일 점 오 킬로그램은 물 한 병 반이다. 그날 그 사람이 안 봐줬으면 짐을 열어서 뭘 꺼내거나 돈을 냈어야 했고, 그만큼 시간이 밀렸을 것이다.

기내 모니터에 노선도가 떴다. 이베리아 반도 서쪽 끝에서 영국까지 선이 그어져 있었다. 두 달 넘게 육로로만 올라온 거리를 두 시간 만에 건너뛰는 셈이었다.
여름인데 서늘했다

브리스톨에 내리자 공기부터 달랐다. 구름이 크게 뭉쳐 있는데도 하늘은 맑았고, 바람이 서늘했다.
포르투갈에서 한낮에 이십 도 초반이라고 좋아했는데 여기는 그보다 더 낮았다. 팔월인데 겉옷을 다시 꺼내 입었다.
그게 반가웠다. 스페인에서 습한 더위에 시달렸고 리스본에서는 종일 걸어 땀에 절어 있었다. 서늘한 공기가 몸에 닿으니 그제야 좀 살 것 같았다.

터미널을 빠져나왔다.
처음 만져본 파운드

유럽을 두 달 넘게 다니면서 유로만 썼다. 나라가 바뀌어도 지갑은 그대로였다.
영국에 들어오니 돈이 바뀌었다. 손바닥에 동전 몇 개와 지폐를 올려놓고 한참 봤다. 동전이 무겁고 크기가 제각각이라 잔돈 계산이 바로 안 됐다.
값도 뛰었다. 유로존에서 익숙해진 물가로 계산하다가 파운드로 환산하니 같은 물건이 더 비싸졌다. 여기서부터 배낭여행 난이도가 한 단계 올라간다는 걸 그날 알았다.
버스는 카디프를 지나갔다

시간이 빠듯해서 요금을 비교할 겨를이 없었다. 주는 대로 8파운드를 내고 올라탔다.

창밖은 계속 초록이었다. 포르투갈 남쪽에서 본 마른 땅과 정반대다. 나라를 하나 건넜을 뿐인데 땅 색이 바뀌었다.
창밖으로 붉은 벽 하나가 지나갔다.

성벽이 도로 바로 옆까지 나와 있었다. 카디프였다.

성 정문 앞에 사람들이 서 있고 그 옆으로 차가 지나갔다. 도심 한복판에 성이 그대로 박혀 있었다.
버스는 카디프 성 앞까지 한 번에 왔다. 목표는 스완지였으니 창밖으로 스치는 걸 보면서 다음에 다시 오기로 마음에 적어뒀다.
기차표 한 장
기차역으로 걸었다. 가는 길에 경기장이 나왔다. 도심 건물들 사이에 지붕 기둥이 솟아 있었다.

밀레니엄 스타디움이다. 웨일즈 럭비 대표팀 홈구장이고 축구 경기도 여기서 한다. 이 나라 경기장은 외곽이 아니라 도심 한가운데 있다.
허겁지겁 가는 길인데도 사진은 찍었다. 축구를 보러 가면서 경기장을 하나 더 지나친 셈이다.
표를 샀다. 카디프에서 스완지까지 한 장. 이게 그날의 세 번째 단계다. 여기까지는 계획대로였다.
기차에서 옆자리 사람과 친해졌다

기차는 한 시간이 채 안 걸렸다. 그런데 그 사이에 옆자리 사람과 말을 트게 됐다.
중국에서 온 유학생이었다. 영국에서 학교를 다니고 있었고 마침 스완지로 놀러 가는 길이라 목적지가 같았다.
내가 어디로 가야 하는지 설명하니까 노선을 알려줬다. 이 도시가 처음인 나보다 훨씬 나았다.
내릴 때 이메일 주소를 주고받았다. 나중에 사진을 몇 장 보내줬고 답장이 왔다.
거기까지였다. 중국에서는 위챗을 쓴다. 내가 안 쓰고 상대는 그것만 쓰니, 주소를 교환해도 대화가 이어질 통로가 없었다. 사진만 오가고 끝났다.
이 여행에서 이런 일이 여러 번 있었다. 길을 물어보면 답만 오는 게 아니라 사람이 같이 온다. 그날은 그게 하루 종일 반복되는 날이었다.
스완지에 내렸다

한 시간이 안 걸렸다. 승강장에 지역 열차가 서 있고 자전거 펌프가 놓여 있었다.
역을 나오니 언덕이 보였다. 스완지는 바다와 언덕 사이에 낀 도시다.
정류장을 잘못 봤다

여기서 4번이 무너졌다.

리버티 스타디움행 버스를 기다렸는데 버스가 오지 않았다. 한참 서 있다가 정류장을 잘못 봤다는 걸 알았다.
그다음 30분을 골목에서 보냈다. 지도를 보고 걷다가 방향을 잃고, 지나가는 사람에게 물어서 겨우 방향을 잡았다. 배낭을 멘 채였다.
걷는 동안 스완지 거리를 보긴 했다. 펍 간판이 걸린 좁은 거리, 벽화가 그려진 건물. 그런데 그때는 그게 눈에 안 들어왔다. 시계만 봤다.
도착했더니 경기가 끝나 있었다

경기장 벽에 백조가 있었다. 스완지시티의 문장이다. 스완지라는 이름 자체가 백조와 얽혀 있어서 구단 상징이 백조다.
그 벽 앞에 서서야 상황을 알았다. 경기는 이미 끝나 있었다.

경기장 앞은 이미 한산했다. 리셉션 앞에 몇 명이 남아 있고 한 사람이 텅 빈 도로를 건너가고 있었다.
37.5유로짜리 표는 쓰지 못했다. 91유로짜리 비행기를 타고 왔고 버스와 기차를 갈아탔는데, 다섯 단계 중 네 번째에서 걸려서 못 봤다.
그리고 보러 갔던 한국인 선수도 그날 경기에 안 나왔다고 했다. 늦지 않았어도 못 볼 뻔했다는 뜻이다.
선수들이 걸어 나왔다
돌아서려는데 경기장 옆 출입구에 사람들이 몰려 있었다. 뭔가 싶어 가봤더니 선수들이 나오는 자리였다.
경기가 끝나고 선수들이 걸어 나오면서 팬들과 사진을 찍어주고 사인을 해주고 있었다. 나도 그 줄에 섞였다.
그 자리에서 아홉 명과 사진을 찍었다. 누가 누군지는 하나도 몰랐다.
여기까지 오는 데 도움을 준 사람이 둘 있었고, 그 아홉 명이 누구였는지도 나중에야 알았다. 둘 다 뒤에 따로 적는다.
스완지 시내에서 걸어가면 삼십 분 넘게 걸린다. 버스가 여러 노선 지나가는데 정류장이 여러 군데라 헷갈린다. 나처럼 잘못 서 있으면 오지 않는 버스를 계속 기다리게 된다.
경기가 있는 날에는 시내에서 셔틀 성격의 버스가 늘어난다. 반대로 경기가 없는 날은 배차가 뜸하니 미리 시간표를 보는 게 낫다.
경기 끝나고 선수 출입구 쪽에 사람들이 모인다. 표가 없어도 그 자리에는 설 수 있다.
다섯 단계 중 셋만 지켜졌다
그날 계획한 다섯 단계 중 지켜진 건 세 개다. 숙소는 오기 전에 날아갔고, 버스는 정류장을 잘못 봐서 놓쳤다.
그런데 무너진 순서가 묘하다. 5번이 제일 먼저 무너졌고, 4번이 그다음이었다. 뒤에서부터 무너진 것이다. 앞의 세 개는 다 됐는데 정작 목적이었던 넷째와 다섯째가 안 됐다.
표를 먼저 사고 거기에 일정을 맞추는 방식이 이럴 때 약하다. 목적지 하나에 모든 걸 걸어두면 그 하나가 어긋났을 때 전부가 어긋난 것처럼 느껴진다.
다만 그날은 그렇게 되지 않았다. 잘 데가 없어진 것과 버스를 놓친 것이 그날 저녁에 예상 못 한 방향으로 풀렸기 때문이다.
버스 이용권 한 장을 받았다가 곧바로 잃어버린 데서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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