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르투갈 · 포르투 1] 침대가 없다고 해서 밤새 걸었다
도시를 통째로 걸었다.
다리 위까지.
포르투는 도우루강을 사이에 두고 양쪽 언덕에 집이 쌓여 올라간 도시다. 강 위에는 동 루이스 1세 다리가 이층으로 걸려 있고, 건너편 빌라 노바 드 가이아에는 포트와인 셀러 간판이 줄지어 있다. 강가 리베이라 지구는 좁은 골목과 발코니에 널린 빨래로 알려져 있다. 나는 이 도시에서 첫날 밤을 침대 없이 보냈다. 그리고 그게 이 여행에서 제일 잘된 일 중 하나가 됐다.
마드리드에서 잡은 카풀은 처음부터 조짐이 좋지 않았다. 약속 시간에 차가 안 왔다. 한 시간이 지나서야 나타났고, 내려서는 헤헤 웃었다. 늦게 온 사람들이 볼에 인사를 해주는 바람에 나도 같이 웃어버렸다. 화를 내려던 참이었는데 타이밍을 놓쳤다.
가는 길도 그 속도였다. 중간에 카페에 들렀고 휴게소에 설 때마다 예정보다 길게 섰다. 유럽 사람들 특유의 느긋함이라는 걸 그날 몸으로 배웠다. 뒷자리에는 프랑스인과 아르헨티나인 커플이 같이 탔고, 알아들을 수 없는 대화가 앞자리에서 계속됐다. 중간에 사이드미러 한쪽이 뭔가에 스쳐서 운전자가 갓길에 세워 테이프로 감았다. 톨게이트 비용으로 삼십 유로쯤이 나갔고, 끼니는 휴게소에서 산 또르띠야와 탄산음료로 때웠다.
결국 자정을 넘겨서 도착했다. 그런데 도착하고 보니 열한 시였다. 스페인과 포르투갈은 한 시간 차이가 난다. 국경을 넘으면서 한 시간을 돌려받은 것이다. 늦게 출발해서 늦게 도착했는데 시계는 앞당겨져 있었다.
국경을 넘은 건 알았는데 어디쯤인지는 몰랐다. 차에서 내렸을 때 포르투는 이미 밤이었다.
그리고 여기서부터가 내 잘못이다. 숙소를 예약해두지 않았다. 도착해서 찾아간 호스텔에는 자리가 없었고, 자정 가까운 시간에 배낭을 멘 채로 그 앞에 서 있게 됐다.
누구를 탓할 데가 없었다. 예약을 안 한 내 탓이다.
걷다 보니 이상한 게 하나 있었다. 동양인이 안 보였다.
여기는 유럽 사람들이 오는 휴양지였다. 스페인에서도 이탈리아에서도 한국 사람과 몇 번씩 마주쳤는데 이 도시에서는 그게 없었다.
물안개가 먼저 도착해 있었다

배낭을 다시 멨다. 잠깐 막막했는데 곧 생각이 바뀌었다. 어차피 잘 곳이 없으면 걸으면 된다. 그 뒤로는 이 도시에서 대중교통을 한 번도 타지 않았다.
리베르다드 광장을 지나 동 페드로 4세 기마상 앞에 섰다. 하늘이 낮게 내려앉아 온통 주황빛이었다. 도시 불빛이 구름 바닥에 반사돼서 그런 색이 된 것 같았다. 시청 종탑은 물안개에 반쯤 지워져 있었다. 세계에서 가장 아름답다는 맥도날드가 이 광장 한쪽에 있다는 건 한참 뒤에 알았다.
이때까지는 별 감흥이 없었다. 로마도 부다페스트도 빈도 프라하도 이미 지나온 뒤였다. 광장 하나, 동상 하나에 마음이 움직이기엔 눈이 너무 많은 걸 본 상태였다. 그때 나는 유럽에 무뎌져 있었다.
그런데 그 무딤이 오래가지 않았다.
그날 밤에 찍은 사진이 마흔두 장이다. 잘 데가 없어서 걷기 시작한 밤에 그만큼을 찍었고, 나중에 골라내려고 보니 뺄 게 없었다. 물안개가 하필 그날따라 자욱해서 새벽 거리가 꿈속 같았다.
강으로 가는 길은 전부 내리막이었다

포르투는 언덕 도시다. 강으로 가는 길은 예외 없이 내리막이고, 돌아올 때는 전부 오르막이 된다. 배낭을 멘 채로 그걸 몸으로 배웠다.
성벽 안쪽 건물들은 이 시간에도 발코니마다 빨래를 널어두고 있었다. 잘 시간에 널어놓고 자는 건지, 아니면 걷는 걸 잊은 건지 알 수 없었다. 어느 쪽이든 사람이 사는 티가 났다. 관광지의 밤은 대개 비어 있는데 여기는 그렇지 않았다.
골목마다 계단이 끼어 있었다. 계단 옆 벽에는 도시 지도를 흰 선으로 그려놓은 타일화가 붙어 있었다. 강과 다리와 집들이 몇 개의 선으로만 그려져 있는데, 그날 밤 내가 걸어 다닌 경로가 대충 그 안에 다 들어 있었다.

자정 넘은 강변에 사람이 앉아 있었다

*동 루이스 다리에 조명이 들어왔다*
강가에 내려서니 산책로에 사람들이 줄지어 앉아 있었다. 밤이 깊었는데도 그랬다. 강을 보고 앉아 이야기하거나 그냥 앉아 있었다. 나는 배낭을 멘 채로 그 사이를 지나갔다.
나중에 알았는데 포르투갈은 유럽 사람들 사이에서 휴양지로 통한다. 물가가 서유럽 기준으로 싸고 해가 길고 바다가 가깝다. 그날 밤 강변에 앉아 있던 사람들도 대부분 이 나라 사람은 아니었을 것이다. 다른 점이라면 그들에겐 돌아갈 방이 있었다는 것 정도.
강변 산책로를 따라 걸으면 다리와 강 건너 셀러 간판이 한 시야에 들어온다. 골목은 대부분 계단이라 캐리어를 끌고 다니기엔 좋지 않다. 숙소를 이 안에 잡을 생각이면 짐 무게부터 재본다. 나는 배낭을 메고 이 언덕을 올랐다.
다리 하나로 감각이 다시 켜졌다

그리고 다리가 나왔다.
동 루이스 1세 다리는 이층이다. 위쪽 상판은 지하철과 사람이 같이 쓴다. 아래쪽 하판은 차와 사람이 같이 쓴다. 상판으로 올라가면 강을 한참 내려다보게 되고, 하판으로 내려가면 강물이 바로 옆에서 흐른다.

상판을 건넜다가 내려와서 하판으로 한 번 더 건넜다. 같은 강인데 높이가 달라지니 다른 장면이 됐다. 위에서는 도시 전체가 강을 끼고 있는 게 보이고, 아래에서는 아치 철골이 머리 위를 지나간다. 강 건너 가이아 쪽 언덕은 통째로 조명을 받고 있었다. 셀러 간판들이 언덕에 층층이 박혀 있어서, 강 건너가 그대로 하나의 화면이 됐다.


그날 메모에 유럽불감증이 풀린다고 적어뒀다. 마흔 날 넘게 도시를 지나오면서 무뎌졌던 게 이 다리 하나에서 다시 켜졌다. 광장도 동상도 시청사도 어디서 본 듯했는데, 강과 다리가 같이 만드는 이 장면은 여기 것이었다. 같은 자리에서 각도만 바꿔가며 몇 번을 다시 찍었는지 모른다.
걸어 오르기가 부담스러우면 포르투 쪽에서는 긴다르 푸니쿨라를, 가이아 쪽에서는 케이블카를 쓰면 된다. 야경만 볼 생각이면 상판이 낫고, 강물 가까이서 보고 싶으면 하판이 낫다. 둘 다 걸어보는 데 삼십 분이면 충분하다.
상판 끝에서 조금 더 올라가면 세라 두 필라르 수도원 전망대가 나온다. 다리와 구시가가 한 화면에 들어오는 자리라 야경 사진은 대개 거기서 찍힌 것이다. 밤에 걸어 올라가려면 경사를 각오해야 한다.
밤을 새우기로 한 건 그다음이었다

다리를 두 번 건너고 나서도 잠이 오지 않았다. 정확히는, 잘 데가 없으니 졸릴 여유가 없었다.
밤을 통째로 새워본 적이 없었다. 여행을 시작하고 두 달 가까이 지났는데 그동안은 어떻게든 침대를 구했다. 그날 처음으로 그게 안 됐고, 그러니까 이건 해본 적 없는 일이었다.
그래서 결심이라기보다 그냥 시작이었다. 잘 데가 없으면 아침까지 걸으면 된다. 무모한 건 알았는데 한 번은 해볼 만하다고 생각했다.
강변 어딘가에 붙은 안내판 앞에 섰다. 도우루강 물줄기가 그려져 있고 강을 따라 서쪽으로 길이 이어져 있었다. 이 강이 어디로 흘러가는지는 알고 있었다. 대서양이다.
8월인데 강바람이 찼다. 이 도시는 한낮에도 이십 도 초반이었고 밤이 되면 반팔로는 버티기 어려웠다. 스페인에서 넘어온 지 반나절 만에 겪는 온도라 더 그랬다. 마드리드는 덥고 습했는데 여기는 저녁에 추웠다. 그것도 기분 좋게 추웠다.
후드를 뒤집어썼다. 물 한 병을 들고 강을 따라 서쪽으로 걷기 시작했다.

거기까지 걸어갈 생각은 처음엔 없었다. 그건 다음 편 이야기다.
포르투 기본 정보
화폐는 유로고 카드 결제가 대부분 된다. 시내는 지하철과 도보로 충분하다. 다만 언덕이 많아서 지도상 거리보다 체감 거리가 길다. 편한 신발이 다른 어느 도시보다 중요하다.
숙소는 미리 잡는다. 나는 예약을 안 하고 갔다가 밤새 걸었다. 여름 성수기의 포르투는 당일에 자리가 남아 있는 도시가 아니다. 두 번 할 일은 아닌데, 한 번은 해볼 만했다. 히베이라 쪽은 값이 뛰니 지하철 한 정거장 밖까지 같이 놓고 보는 편이 낫다.
잘 데가 없어 밤새 걸었다
자리가 없다는 말을 들었을 때는 난처했다. 예약을 안 한 건 나였다. 그런데 그 밤이 없었으면 이 도시가 이렇게까지 남지 않았을 것이다. 침대가 있었으면 나는 잠들었을 테고, 물안개도 다리도 강변에 앉은 사람들도 못 봤을 것이다.
계획이 무너져서 생긴 시간이 계획대로 된 시간보다 오래 남는 경우가 있다. 포르투가 나한테는 그랬다.
왕복 열여덟 킬로미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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