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 · 노보시비르스크 1] 시계가 네 시간 빠른 걸 몰랐다, 40만 원짜리 환승 실수
비행기를 놓쳤다.
40만 원이 들었다.
모스크바에서 네 시간을 날아 환승지에 내렸다. 이제 갈아타기만 하면 서울이었다.
광장에 붉은 부스가 서 있고 868이라는 숫자가 걸려 있었다.
도시 생일이라 온 시내가 그랬다.

공항행 열차에 올라 자리에 앉았다. 여기까지는 시간이 남는 줄 알았다.

공항 카페에 앉아 노트북을 열었다. 그런데 인터넷이 잡히다 말다 했다.

자몽주스를 한 잔 시켜 놓고 새로고침만 반복했다.
톨마체보에 내려서 다섯 시간이 남은 줄 알았다
기내에서 주는 것을 다 받아먹고 잤다. 집에 간다는 생각에 기분이 좋았다.


노보시비르스크에 내려서 전광판을 봤다. 다음 비행기는 새벽 두 시 출발이었다.


"다섯 시간 남았네."
머릿속으로 그렇게 계산하고 소파에 앉았다.
주스를 마시고 크래커를 씹으며 노트북을 열었다.
여유가 넘쳤다. 이 여행에서 제일 마음 편한 시간이었다.

게이트는 이미 닫혀 있었다
시간에 맞춰 게이트로 걸어갔다. 비행기는 없었다.

러시아는 시간대가 여러 개인 나라다.
모스크바가 UTC+3이고 노보시비르스크는 그보다 네 시간이 빠르다.
나는 모스크바 시간으로 계산하고 있었다.
다섯 시간이 남은 게 아니라 한 시간이 남아 있었고, 소파에 앉아 그 한 시간을 다 썼다.
체크인까지 끝내 놓고 비행기를 놓쳤다. 25만 원짜리 표가 그렇게 사라졌다.
40만 원짜리 실수
게이트를 빠져나와 직원에게 갔다. 새 표를 사야 한다고 말했다.
여기서부터가 진짜 고생이었다.
창구 직원은 영어가 약했고, 나는 러시아어를 몰랐다.
서울에 가고 싶다고 겨우 전달했다. 직원이 내민 건 다음 주 비행기였다.
일주일을 더 있으라는 말이었다. 그래도 화를 내지는 않았다.
이미 스리랑카에서 한 번 놓쳐 봤다.
감정이 망가지면 남은 길이 더 험해진다고 그때 배웠다.
고객센터에 전화해 보라고 했지만 전화기는 빌려주지 않았다.
해외 통화료를 생각하면 그쪽이 더 비쌀 수도 있었다.
침착하게 다시 말했다. 가장 빠른 날짜에 서울로 가는 표가 필요하다고.
웃으면서 다시 물어보니 15만 원이 내려갔다
직원이 다음 날 베이징을 경유하는 편을 찾아 줬다.
3만 루블, 우리 돈으로 55만 원쯤이었다.
다음 주 비행기는 39만 원인데 하루 1만 원짜리 숙소 옵션이 붙어 있었다.
이 도시는 러시아에서 세 번째로 크니 구경할 게 있을 것 같았다.
그래도 집에 가고 싶은 마음이 더 컸다.
55만 원을 내겠다고 결정하고 나니 표정이 풀렸다.
다시 창구로 가서 이번에는 웃으면서 말을 걸었다.
직원도 태도가 달라졌다. 번역기를 켜 놓고 최대한 맞춰 주려고 했다.
그렇게 찾아 준 게 24시간 뒤 출발, 베이징 경유 편이었다.
23,156루블, 약 40만 원.

55만 원에서 15만 원이 내려갔다. 웃으면서 다시 물어본 값이었다.
한 번의 시차 착각에 40만 원.
여행이 끝난 줄 알았는데 아직 사흘이 남아 있었다.
러시아 국내선 시차 확인법
러시아는 시간대가 11개다. 국내선을 타면 도착지 시각이 출발지와 다른 경우가 흔하다.
모스크바(UTC+3)와 노보시비르스크(UTC+7)는 네 시간 차이다.
항공권에 적힌 시각은 전부 현지 시각이다. 출발 시각은 출발지 기준, 도착 시각은 도착지 기준이다.
여기서 계산을 한 번 더 해야 한다.
공항 전광판 시각을 기준으로 삼는다. 로밍이나 기내 모드 때문에 휴대폰 시계가 안 바뀌기도 한다.
나는 폰 시계를 믿었다가 네 시간을 통째로 잃었다.
환승 시간이 짧아 보이면 오히려 안전하다. 길어 보일 때가 위험하다.
나처럼 여유가 있다고 착각하면 그 여유를 다 쓴다.


비행기를 놓쳤을 때
창구 직원에게 화를 내지 않는다. 그 사람이 표를 놓치게 한 게 아니고, 대안을 찾아 줄 사람도 그 사람이다.
화를 내면 협상 여지가 줄어든다.
대안을 여러 개 받아 본다. 처음 제시받은 표가 유일한 선택지가 아니다.
나는 두 번째로 물었을 때 15만 원이 내려간 편을 받았다.
날짜와 값을 같이 저울질한다. 늦게 가는 대신 싼 표에 숙소 옵션이 붙는 경우가 있다.
남은 일정과 체력을 같이 계산한다.
번역기를 먼저 켠다. 영어가 안 통하는 공항이 생각보다 많다. 화면을 보여 주는 쪽이 말보다 빠르다.
다녀와서
여행 내내 조심했는데 마지막에 이런 실수를 했다.
그런데 그 자리에서 화를 안 낸 건 잘한 일이다.
웃으면서 다시 물어본 덕분에 15만 원을 아꼈다.
실수 자체는 못 되돌린다. 되돌릴 수 없는 다음에 무엇을 하느냐가 값을 정한다.
그리고 이 실수 덕분에 계획에 없던 도시에서 하루를 보내게 됐다.
그렇게 하루가 통째로 생겼다.
다음 날 새벽에는 반바지에 슬리퍼로 시내에 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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