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라하 4] 야경 보러 나가려는데 민박집 아주머니가 붙잡았다

프라하 여행기 · 4편
야경 보러 나가려는데
붙잡혔다.
그날 야경은
발코니에서 봤다.

동행했던 두 분과 헤어지고 혼자가 됐다. 시내를 걸어 화약탑 쪽으로 갔다.

사슴과 멧돼지가 서 있었다

화약탑 근처 장터의 그릴 노점, 사슴과 멧돼지 박제가 세워져 있다
뭘 파는지 굳이 설명할 필요가 없는 진열이다

광장에 장이 서 있었다. 그중 한 노점 앞에 박제가 세워져 있었는데 하나는 뿔 달린 사슴, 하나는 멧돼지였다. 옆에 GRILL이라고 크게 붙여놨다. 뭘 파는지 굳이 설명할 필요가 없는 진열이다.

중세풍 천막을 친 노점도 있었다. 방패랑 목검, 나무로 깎은 장난감을 늘어놓고 팔았다. 관광지 기념품인데 물건 자체는 손이 많이 간 것들이었다.

중세풍 천막에 방패와 목검, 나무 장난감을 늘어놓은 노점
방패랑 목검, 나무로 깎은 장난감을 늘어놓고 판다

슈퍼에 들어가 봤다

프라하 슈퍼마켓 채소 코너의 가격표
코루나 단위라 감이 안 잡히다가, 환산해 보고 나서야 싸다는 걸 알았다

장터 구경을 하다가 근처 슈퍼에 들렀다. 여행 중에 슈퍼는 그냥 지나치기 어려운 곳이다. 그 나라 물가가 제일 정직하게 붙어 있는 데가 여기다.

채소 코너에 가격표가 줄줄이 꽂혀 있었다. 무 한 단, 오이, 과일 상자마다 숫자가 붙어 있는데 코루나 단위라 감이 안 잡히다가, 몇 개 환산해 보고 나서야 "여기 싸구나" 소리가 나왔다.

소나기가 한 번 지나갔다

소나기가 지나간 뒤 젖은 광장과 천막을 덮은 노점들
비가 그치자 상점들이 하나둘 문을 닫기 시작했다

오후 늦게 비가 쏟아졌다. 광장 바닥이 젖고 노점들이 천막을 덮었다.

비가 그친 뒤 다시 걸었는데 상점들이 하나둘 문을 닫고 있었다. 아직 이른 시간인데도 그랬다. 아침에 민박집 아주머니가 한 말이 생각났다 — 여기 사람들은 직장보다 가족이 먼저고, 문을 일찍 닫는다고. 날씨까지 도우면 더 빨리 접는 모양이었다.

숙소로 돌아갔다. 씻고 나와서 야경을 보러 다시 나갈 생각이었다.

나가려는데 붙잡혔다

문을 나서려는데 주인아주머니가 붙잡았다. 일주일 넘게 묵던 사람들이 그날 떠난다며 송별 파티를 연다는 것이었다.

주방에서 뭔가를 만들고 있었다. 들여다보니 탕수육이었다.

민박집 주방에서 음식을 준비하는 모습
들여다보니 탕수육을 만들고 있었다

상이 차려져 있었다. 탕수육에 채소볶음, 접시마다 다른 것들이 올라왔다. 김치가 나왔다. 두 달 넘게 유럽을 돌아다닌 사람 앞에 김치 한 접시를 놓으면 그다음은 설명이 필요 없다.

파티 상에 놓인 김치 한 접시
두 달 넘게 유럽을 돈 사람 앞에 이걸 놓으면 그다음은 설명이 필요 없다
민박집 파티 상에 오른 탕수육과 채소볶음, 맥주
접시마다 다른 것들이 계속 올라왔다

하몽 비슷한 고기도 있었다. 얇게 저민 훈제 고기였는데 짭짤해서 맥주 안주로 딱이었다.

접시에 담긴 하몽 비슷한 훈제 고기
얇게 저민 훈제 고기. 짭짤해서 안주로 딱이었다

그리고 라면까지 나왔다. 김치를 얹은 라면. 이쯤 되면 야경은 물 건너간 것이다.

김치를 얹은 라면 한 그릇
라면까지 나왔다. 이쯤 되면 야경은 물 건너간 것이다

맥주는 2리터짜리 병으로 왔다

테이블에 놓인 체코 맥주 2리터 병과 코젤 캔
2리터짜리 페트병으로 온다. 오른쪽 캔이 코젤이다

맥주는 2리터짜리 페트병으로 왔고, 캔도 몇 개 섞여 있었다. 그중에 코젤이 있었다.

나는 술을 잘 못 마신다. 맥주 중에 그나마 넘어가는 게 칭따오 하나였는데, 이날 코젤을 마셔보고 생각이 바뀌었다. 깔끔하고 부드러워서 술 같지 않았다. 지금도 내가 마시는 맥주는 딱 둘이다 — 칭따오와 코젤.

술을 못 마신다고 맛을 모르는 건 아니다. 맛은 아는데 몸이 안 받을 뿐이다. 낮에 식당에서 맛만 봤던 필스너와 비교하면 코젤 쪽이 확실히 부드러웠다.

찾아보니 코젤은 1874년에 프라하 근교 벨케포포비체에서 시작된 브랜드였다. 로고에 박힌 염소가 상표인데, 코젤이 체코어로 숫염소라는 뜻이다.

알바생인 줄 알았던 두 사람

그 자리에 민박에서 일하는 사람이 둘 있었다. 남자 하나, 여자 하나. 처음엔 아르바이트생인 줄 알았다.

아니었다. 둘 다 손님으로 왔다가, 주인아주머니가 엄마처럼 느껴져서 눌러앉은 사람들이었다. 여기서 일하면서 여행을 계속하고 있다고 했다. 여행하다가 한 곳에 머무는 사람 이야기는 들어봤지만 실제로 보니 신기했다.

둘 다 친절했고, 특히 남자 쪽이 노래를 아주 잘했다. 그날 밤 누가 시작했는지도 모르게 노래판이 벌어졌는데 이 사람 차례에서 다들 조용해졌다.

*그날 밤 영상. 얼굴이 나오지 않도록 화면 하단만 잘랐다 — 테이블 위 초록 병이 즐라토프라멘, 그 옆 캔이 코젤이다*

각지에서 온 사람들이 한 상에 둘러앉아 노래하고 떠드는 분위기가 대학교 엠티랑 비슷했다. 나중에 노트에 "그중에서 앞자리가 다른 아저씨였다"고 적어놨는데, 다시 생각해보면 나보다 어린 친구들이 더 많았다.

야경은 발코니에서 봤다

파티가 늦게까지 이어졌고 야경 계획은 그대로 접혔다.

대신 발코니로 나갔다. 구름이 낮게 깔린 밤이었고 그 아래로 도시 불빛이 퍼져 있었다. 첨탑 두 개가 조명을 받아 하얗게 떠 있었다.

창문 너머로 조명을 받은 프라하의 첨탑
첨탑 두 개가 조명을 받아 하얗게 떠 있었다
민박집 발코니에서 본 프라하의 밤 풍경
나가지 못한 대신 여기서 봤다

카를교도 천문시계도 못 봤지만 딱히 아깝지는 않았다. 그건 다음 날 몫으로 넘기면 되는 것이었고, 이 자리는 그날 밤에만 있는 것이었다.

다녀와서

여행 계획이 어그러지는 방식에도 종류가 있다. 차가 끊기거나 비가 오거나 문을 닫아서 어그러지는 건 그냥 손해다. 그런데 이날처럼 다른 것에 붙잡혀서 어그러지는 건 계산이 다르다.

프라하의 첫날은 계획대로 흘러가지 않은 하루로 기억에 남았다. 야경 대신 남의 송별회에 끼어 앉아 있었다.

다음 편은 이튿날 아침이다. 프라하 물가를 슈퍼에서 확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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