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웨덴 · 스톡홀름 9] 북유럽 두 달, 아무도 말해주지 않는 한 가지
아무도 말해주지 않던 것.
다만 그리움도 그만큼 눈부셨다.
여행이 두 달을 넘기면 이상한 시기가 온다.
새로운 도시에 도착해도 심장이 뛰지 않는다.
성당을 봐도 광장을 봐도 '아, 여기도 이렇구나' 정도에서 끝난다.
스톡홀름에 도착한 이 무렵이 딱 그 상태였다.
집 생각이 나기 시작한 것도 이때다.
나 고향병인가?
이게 말로만 듣던 향수병?
여행자들 사이에서는 이런 걸 홈식(homesickness)이라고 부른다.
섬에서 나와 시내로 들어갔다

유르고르덴 섬을 한 바퀴 돌고 나서 시내 쪽으로 걸었다.
백화점과 상점이 늘어선 보행자 거리가 나왔고, 사람이 갑자기 많아졌다.
오전 내내 조용한 섬을 걷다가 나온 참이라 소음이 오히려 반가웠다.
광장 한가운데에 유리로 쌓아 올린 탑이 서 있었다.

세르겔 광장(Sergels torg) 한복판에 서 있는 유리 오벨리스크다.
낮에도 볼만하다. 유리 블록을 층층이 쌓아 올린 게 가까이서 보면 꽤 정교하다.
밤에는 더 좋다.
독일에서 만난 친구를 스웨덴에서 다시 만났다

이날 저녁 약속이 하나 있었다. 독일에서 만났던 폴란드 친구 토멕이 스톡홀름에 있었다.
이 친구와의 인연은 좀 길다. 뮌헨에서 만나 이야기를 나누다가, 그가 스페인과 포르투갈 코스를 추천해줬다.
나는 그 말대로 바르셀로나-마드리드-포르투-리스본을 돌았다. 그 구간이 이 여행에서 손꼽히게 좋았다.
오늘 아침 바사 박물관을 고른 것도 이 친구 추천이었다.
남이 짜준 동선으로 두 나라를 돌고, 그 사람을 세 번째 나라에서 다시 만난 셈이다.
두 사람은 카라반에서 사는 삶을 준비하고 있었다.

부부가 함께 세계를 돌아다니고 있었고, 다음 목표가 카라반 생활이라고 했다. 집을 정리하고 차에 살면서 이동하는 삶이다.
오래 꿈꾸던 일이 정해진 참이라 둘 다 신이 나 있었다.
내가 90일짜리 여행 하나에 퇴사까지 하고 나온 걸 생각하면, 이쪽은 아예 삶의 형태를 바꾸는 계획이었다.
태국 음식점에서 저녁을 샀다

스톡홀름 시내의 태국 음식점으로 데려갔다.
파란 무늬 접시에 볶음국수가 나오고, 해산물을 넣은 샐러드와 흰밥이 따로 깔렸다.
평일 늦은 저녁이었다. 하루 일과를 끝내고 나와줬다.
여행 두 달째에 누가 나를 위해 시간을 빼서 밥을 사준다는 게 어떤 건지는 겪어봐야 안다.
혼자 먹는 저녁은 아무리 잘 차려도 혼자 먹는 저녁이다.
포장지를 직접 그려서 왔다

헤어질 무렵 작은 포장 하나를 내밀었다.
포장지가 직접 그린 것이었다. 종이에 손으로 무늬를 그리고, 그 위를 꽃으로 묶어놨다.
같이 건넨 팔찌 두 개는 그 자리에서 양쪽 손목에 채웠다.

열어보니 투명한 크리스탈이 들어 있었다. 엄지손톱만 한 돌이다.
값을 매기면 얼마 안 되는 물건이다.
그런데 포장지를 그리고, 꽃을 묶고, 그걸 배낭 하나 메고 다니는 사람한테 주기로 정하는 데 시간이 걸린다. 받은 건 그쪽이다.
이 여행에서 산 기념품 중에 제대로 남은 게 뭐냐고 나중에 세어보니, 돈 주고 산 것보다 이렇게 받은 것들이 훨씬 많았다.
밤이 되자 광장 한가운데가 켜졌다

저녁을 먹고 나오니 도시가 어두워져 있었다. 낮에 지나갔던 광장을 다시 지나는데, 그 회색 유리 덩어리에 불이 들어와 있었다.
유리 블록 하나하나가 안에서부터 빛나서, 탑 전체가 켜진 것처럼 보였다.
낮에 한 번 보고 밤에 다시 오는 게 이 광장을 제대로 쓰는 방법이다.
호스텔 방에 구원자가 셋 있었다
고향병이 제일 심했던 건 사실 이 도시에 들어온 첫날이었다. 그런데 호스텔 방에 들어가자 사람이 셋 있었다.
캐나다에서 온 고등학생 가나한이 먼저 손을 내밀며 악수를 청했다. 처음 여행을 시작했을 때의 내 모습이 그랬다.
이 친구를 따라 세계 물 주간 행사장에도 갔다. 고등학생들이 물 관련 기술을 발표하는 자리였는데, 참가 명단에 한국 민족사관고가 있었다.
스웨덴 사람인 마커스는 계속 뭘 물어봤다. 한국은 어떻고 여행은 어떻고 밥은 뭘 먹느냐고. 같이 밥을 먹는 내내 웃었다.
싱가포르에서 온 안젤라는 다섯 달째 여행 중이었다.

가방이 둘이었는데 큰 쪽이 내 배낭의 두 배가 넘었다. 그 가방에 본인이 붙인 이름이 「데드 바디」였다.
시체를 끌고 다닌다는 소리다. 나도 재미가 붙어서 검은 바람막이를 「마이 섀도」라고 불렀다.

떠나는 날 안젤라가 이스탄불 교통카드를 하나 줬다.
이 카드는 원래 안젤라도 누군가에게 받은 것이었다. 다 못 쓰고 떠나는 사람이 다음 사람에게 넘기는 식으로 여기까지 온 물건이다.
이번엔 내 차례였다. 받으면서 퀘스트를 하나 받은 기분이었다. 나도 다 쓰고 나면 다음 사람한테 넘겨야 한다.
며칠 뒤 이스탄불에서 지하철을 탈 때 그대로 꺼내 썼다.
방에 사람 셋이 있었다는 것만으로 고향병이 풀렸다. 그 무렵 이스탄불행 항공권이 10만 원대에 떴다. 나는 그걸 바로 샀다.
스톡홀름 하루 정리
이날 스톡홀름에서 쓴 시간은 아침 여섯 시 십팔 분부터 밤 열 시까지, 열다섯 시간 반이었다. 돈을 낸 곳은 박물관 하나뿐이었다.
- 06:18 배에서 하선, 배낭 멘 채 도보 시작
- 08:40 바사 박물관 입장
- 11:40 유르고르덴 섬 도보 일주
- 14:48 시내 진입, 세계 물 주간 행사 구경
- 저녁 친구 부부와 식사
- 밤 세르겔 광장 야경, 호스텔
하루짜리 도시 여행이라면 이 순서가 그대로 쓸 만하다. 아침에는 사람이 없어서 좋다. 낮에는 섬이 넓고 밤에는 광장이 켜진다.
기억나는 순서
스톡홀름에서 기억나는 건 배, 배 박물관, 붉은 풍차, 그리고 사람들이다.
그런데 이 중에서 여행을 계속하게 만든 건 마지막 하나였다.
여행 후반에 제일 위험한 것은 돈도 체력도 아니었다. 마음이 무뎌지는 쪽이 컸다.
새로운 걸 봐도 아무렇지 않아지는 시점이 오는데, 그걸 뚫어주는 건 결국 사람이다.
먼저 악수를 청한 가나한, 포장지를 그려서 온 토멕 부부, 가방을 「데드 바디」라고 부르던 안젤라. 사흘 사이에 이 셋을 다 만났다.
그다음 목적지는 이스탄불이었다. 유럽에서 두 달 반을 보내고 다시 아시아 쪽으로 넘어가는 길이었다.
주머니에는 안젤라가 준 교통카드가 들어 있었다.
이 카드는 결국 다음 사람에게 못 넘겼다. 이스탄불에서 잃어버렸기 때문이다.
어디서 흘렸는지도 모른다. 그래도 그 도시 어딘가에서 누군가 주웠을 테고, 잔액이 남아 있었으니 한 번쯤은 개찰구를 통과했겠지. 좋은 주인을 만났기를 바란다.
컨디션이 바닥이었는데 방에 있던 사람이 먼저 손을 내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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