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레이시아 · 페낭 1] 하루 5천원 페낭 도미토리, 7월인데 에어컨이 없었다
웃통 벗은 남자 둘이 있었다.
하루 5천 원, 에어컨은 없었다
조지타운 벽화 골목을 오후 내내 걸었더니 해가 뉘엿뉘엿 넘어가고 있었다.
숙소를 찾아 좁은 골목으로 들어서니
초록 간판에 하얀 글씨로 "75 Travellers Lodge"라고 적혀 있었다.

도미토리 하루 RM18. 우리 돈으로 5천원 남짓이었다.
가격만 보고 골랐다. 에어컨이 있는지 없는지는 확인도 안 했다.
체크인을 하고 나서야 천장에서 돌아가는 선풍기를 보고 살짝 걱정이 됐다.
7월의 페낭에서, 선풍기 하나로 밤을 날 수 있을까.
방을 배정받고 짐을 내려놓는데 같은 도미토리에 묵던 뉴질랜드 친구 둘과 마주쳤다.
레이와 사트였다.
사트는 선글라스를 늘 정수리에 얹고 다녔고, 레이는 짧은 금발에 회색 민소매 차림이었다.
이 둘과는 다음 날 아침 같이 딤섬을 먹으러 가게 된다.
문을 열고 들어갔을 때 먼저 아는 척을 해준 쪽이 사트였다. 목소리가 걸걸했다.
더워서 셋 다 웃옷도 안 입은 채로 널브러져 인사를 나눴다.
그러다 저녁 무렵 레이와 같이 나가게 됐다.

둘 다 성격이 쿨했고 얼굴도 훤했다.
서양 친구들은 정말 잘생겼구나, 그 생각을 이날 처음 했다.
돌이켜보면 그때까지 외국인 친구라고 할 만한 사람이 거의 없었다.
영어도 말하기는 지금도 잘 못한다.
그나마 듣기가 되는 건 고등학교 때 《프렌즈》에 빠져서 몇 번씩 돌려본 덕이다.
그런데 막상 낯선 사람들 사이에 던져지니 먼저 말을 걸고 있는 나를 발견했다.
내 성격이 이 정도로 외향적인 줄은 이 여행 전까지 몰랐다.
모기는 많고 에어컨은 없고 덥긴 한데, 그게 오히려 낭만처럼 느껴졌다.
므운트리 스트리트의 벽화
숙소 근처 므운트리 스트리트부터 걸었다.

초입에 붉은 등이 걸린 사당이 있었다.
천후궁, 화교 이민자들이 모시던 바다의 여신을 기리는 곳이라고 했다.
지붕 위 용 조각이 조명을 받아 번쩍였다.

조금 더 걸으니 벽에 철사로 그린 벽화 두 개가 나왔다.
하나는 주석 상인 둘이 인사를 나누는 장면에 "Hello Orang Kaya!
Hello Tauke!"라는 말풍선이 달려 있었고,
다른 하나는 이 골목에서 유명 슈즈 디자이너 지미 추가 견습생으로 일을 배웠다는 이야기를 담고 있었다.
벽화 앞에서 셀카를 남겼다.


라마단 바자, 그리고 홍등 야시장
시청 쪽으로 걷다 보니 골목 위로 커다란 현수막이 걸려 있었다.
"Selamat Datang Bazar Ramadhan
Liga Muslim Pulau Pinang." 라마단 바자였다.
라마단이 막바지로 접어들던 시기라 해만 지면 이 일대가 살아났다.
큰 솥 여러 개가 나란히 걸리고, 로티 반죽을 굽는 철판에서 김이 올라왔다.
그래놓고도 정작 나는 라마단을 체감하지 못했다.
여행자 입장에선 먹는 데 아무 제한이 없었기 때문이다.
아무 때나 배고프면 사 먹을 수 있었고, 문 닫은 식당 때문에 곤란한 적도 없었다.
현수막과 노점 풍경이 아니었다면 그냥 밤에 활기찬 동네구나 하고 지나쳤을 것이다.


나시깐다르 식당 간판에는 "Ramadhan Special Set"이라고 적힌 메뉴판이 붙어 있었다.
하루 종일 금식하고 해 진 뒤 한 끼를 몰아 먹는 라마단 특유의 리듬이,
밤이 되면 오히려 거리를 북적이게 만드는 게 신기했다.

하얀 시계탑이 조명을 받으며 서 있는 곳을 지나 Red Garden Food Paradise로 들어갔다.

포도넝쿨 지붕 아래 홍등이 걸린 야외 푸드코트였는데, 라마단 바자와 달리 이쪽은 맥주를 마시는 관광객들로 붐볐다.
금식이 끝나기를 기다리는 사람들과, 맥주잔을 앞에 둔 사람들이 걸어서 오 분 거리에 나뉘어 있었다.

레이가 락사를 시켜보자고 했다.

생선 국물에 파인애플 조각과 처음 보는 잎이 들어 있었다.
참치 맛이 나다가 과일 맛이 오고, 그 위에 맡아본 적 없는 허브 향이 겹쳤다.
먹을 수는 있는데 좋아할 맛은 아니었다.
그래도 모르는 게 나오면 일단 시켜서 다 먹어보자는 게 그때 내 원칙이었다.
락사만으로는 심심해서 치킨윙도 하나 시켰다.
훈제 향이 강하게 나는데 그것도 딱히 내 입에는 안 맞았다.
레이는 그 와중에도 처음 보는 건 일단 집어 들었다. 낯선 걸 먼저 시켜보는 쪽은 늘 그쪽이었다.

야시장 좌판에서 로작이라는 걸 하나 샀다.
파인애플이며 오이며 썰어놓은 과일에 까만 소스를 끼얹고 갈색 가루를 뿌려준다.
인절미가루 뿌린 과일이라고 보면 얼추 맞다. 이건 입에 맞았다.

밤바다까지 걸었다
솔직히 심심하기도 했다.
전날 밤만 해도 처음 보는 사람들 차를 얻어 타고 왁자지껄하게 놀았다.
이날은 말이 잘 통하지도 않는 둘이었다. 그래서 그냥 계속 걸었다.
길에서 코코넛을 통째로 잘라 빨대를 꽂아주는 걸 사서 들고 다니며 마셨다.
배를 채우고도 발길이 바다 쪽으로 향했다.

밤바다를 따라 걸으면서 별생각을 다 했다.
다만 아주 살짝, 누가 말을 걸어오면 어쩌지 하는 마음도 있었다.
낮이었으면 반가웠을 텐데 밤이라 그랬다.
해안에 인접한 호커센터는 가로등이 늘어선 야외 좌석에 가족 단위 손님들로 붐볐다.

마지막으로 들른 곳은 Fort Cornwallis 정문이었다.
야간 조명 아래 "Fort Cornwallis"라는 네온 글씨가 떠 있었고,
그 옆 에스플러네이드 잔디밭엔 야자수 실루엣만 조용히 서 있었다.



숙소로 돌아와 선풍기 아래 누웠다.
에어컨도 없고 모기도 있었다. 그런데 한 번도 안 깨고 잘 잤다.
그러면서도 다음 숙소는 꼭 에어컨 있는 데로 잡아야겠다고 다짐은 했다.
그땐 몸이 진짜 건강했다. 어디에 눕든 잠이 들고, 뭘 먹든 탈이 안 났다.
여기서부터 아무 데서나 자도 되겠다 싶어졌다.
이틀 뒤 첫 노숙을 시작으로 남은 여정 동안 여섯 번을 더 그렇게 잤다. 지금의 나는 절대 못 할 일이다.
*다음 날 아침, 숙소 앞에서*
조지타운 저가 숙소 사정 2026
75 Travellers Lodge는 지금은 문을 닫았다.
므운트리 거리 특유의 낡은 상점집을 개조한 20실짜리 작은 곳이었는데,
팬 냉방 10인 도미토리를 60링깃 아래 가격에 운영하던 올드스쿨 배낭여행자 숙소로 기억하는 사람이 많다.
지금 조지타운에서 비슷한 자리를 찾는다면,
도미토리 침대 하나에 대략 15~35링깃(약 4~9달러) 선이 평균이고,
에어컨이 있느냐 없느냐에 따라 가격 차이가 꽤 난다.
출라 거리·러브 레인·므운트리 거리 일대에 이런 저가 숙소가 여전히 몰려 있어서,
예산이 빠듯하면 검색 필터에서 팬룸으로만 좁혀보면 선택지가 늘어난다.
라마단 시즌 페낭 여행 팁
라마단은 이슬람력을 따르기 때문에 해마다 시기가 달라진다.
2026년 라마단은 2월 17일에 시작해 3월 21일 하리라야로 끝난다.
이 기간 조지타운 곳곳에 바자 라마단이 서는데,
잘란 페낭이나 프랑인 몰 인근처럼 매년 조금씩 자리가 바뀌니
위치가 해마다 바뀐다. 현지 SNS나 관광안내소에서 확인하고 간다.
대체로 오후 3~4시께 열려 해가 진 뒤 절정을 이루고 밤 8시 전후로 정리되는 흐름이라,
늦은 오후에 도착하면 로티나 커랩(꼬치) 같은 노점 음식이 가장 다양하게 나와 있을 때를 만날 수 있다.
다녀와서
에어컨도 없고 모기도 있는 방에서 그렇게 편히 잔 밤은 그때가 처음이었다.
숙소를 미리 안 잡고 다니기 시작한 것도 이날부터였다.
여섯 명을 만났다.
나무 위에 매달려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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