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리랑카 · 콜롬보 3] 처음 비행기를 놓친 날, 날짜 착각과 전화비 폭탄
비행기를 놓쳤다.
그날 아침에야 알았다.
그날 아침까지도 나는 비행기를 놓쳐본 적이 없는 사람이었다.
아침은 평소와 다르지 않았다.
나흘째 머물던 행오버 호스텔 테라스에서, 늘 그랬듯 얼룩무늬 고양이를 무릎에 앉히고 있었다.

아침 햇살은 붉은 흙바닥 위로 느긋하게 퍼져 있었다.
이 고양이는 숙소에 그냥 사는 녀석이었다.
주인이 따로 있는 것 같지도 않았고, 손님들 사이를 어슬렁거리다 아무 무릎에나 올라와 잤다.
나흘 있는 동안 그게 아침의 정해진 순서처럼 됐다.

깊이 자고 있어서 깨우기가 미안했다.
그래서 한참을 그대로 앉아 있었다.

그러다 한 번 안아 올렸는데, 그렇게 들어도 눈을 반쯤 뜨다 말고 다시 감았다.
나는 그 하루도 어제와 비슷하게 흘러갈 거라 생각했다.

*게스트하우스 고양이가 곁에 왔다*
날짜를 잘못 세고 있었다
비행기 시간을 몇 번이고 확인하며 다니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나는 그러지 않았다.
그날도 하루쯤 더 있을 생각으로 누워 있었다.
그러다 자다 말고 봉창 두드리듯, 뭔가 잘못됐다는 감각이 불쑥 왔다.
누가 알려준 것도 아니고 뭘 확인하다 안 것도 아니다. 그냥 알아버렸다.
며칠째 머릿속으로 세고 있던 날짜와 항공권에 찍힌 날짜가 하루 이상 어긋나 있었다.
미리사가 좋아서 하루만 더, 하루만 더 하며 눌러앉다가 날짜 감각을 통째로 놓쳤다.
일정을 비워두고 아무데서나 자던 여행자에게도 지켜야 할 선은 있었다. 그게 날짜였다.
큰일났다
부리나케 짐을 챙겨 체크아웃을 했다.
프런트에 놓인 명함을 하나 챙겼다.
행오버 호스텔 — 미리사 해변점과 공항점 주소가 나란히 적힌 명함이었다.
짐을 다 싸고 나니 매니저 둘이 사진을 한 장 찍자고 했다.
직원이 아니라 이 숙소 주인들이었다. 이탈리아 남자와 여자 매니저, 둘이서 이런 외지까지 들어와 숙소를 열고 그 옆으로 이것저것 같이 벌여놓고 있었다.
수월해 보이지는 않았다. 나흘 묵는 동안 전기가 몇 번이나 나갔고, 그때마다 촛불을 켜놓고 앉아 이야기를 이어가던 사람들이다.
마음은 급했지만 사진만은 제대로 찍고 나왔다. 지금쯤 이 숙소가 잘 되고 있으면 좋겠다.

명함에 공항점 주소가 같이 적혀 있는 게 그때는 눈에 안 들어왔다.
나중에 보니 그날 밤 내가 공항에서 시간을 보내는 대신 잘 수도 있었던 곳이었다.

기차와 택시, 그래도 늦은 시간
가장 가까운 역까지 뛰다시피 걸어 기차를 탔다.
미리사에는 역이 없어 옆 동네까지 택시로 나가야 했는데, 그 사이 시간이 벌써 아까웠다.
창밖으로는 아침의 상가 거리가 지나갔다.
간판이 겹겹이 붙은 이층 건물, 길가에 세워둔 오토바이와 삼륜 툭툭,
전선이 어지럽게 걸린 하늘. 나흘 내내 해변에만 붙어 있느라 이런 동네가 바로 옆에 있다는 것도 몰랐다.
여유가 있었다면 내려서 걸었을 길인데, 그날은 창밖으로 몇 장 찍는 게 다였다.
며칠 전 같은 해안선을 따라 내려올 때는 문을 열어젖힌 채 바닷바람을 맞으며 여유를 부렸는데,
같은 창밖인데 마음이 달랐다
이번엔 같은 창밖 풍경이 그저 빨리 지나가주기만을 바라는 대상이 됐다.
콜롬보 포트역까지 가는 내내 창밖으로 스쳐가는 마을을 몇 번이고 찍었는데, 나중에 보니 죄다 흔들려 있었다.
사진에 담을 여유조차 없었다.
나흘 내내 해변에만 붙어 있느라, 이런 동네가 바로 옆에 있다는 것도 그날 처음 알았다.
여유가 있었다면 내려서 걸었을 길이었다.

그날은 창밖으로 몇 장 찍는 게 다였다.
그마저도 흔들렸다.
포트역에 내리자마자 택시를 잡아 공항으로 내달렸다.
기차만 거의 네 시간, 거기에 택시로 삼사십 분을 더하니 다섯 시간 가까이 걸리는 구간이었다.
처음부터 공항까지 직행 택시를 탔다면 두 시간 남짓이면 됐을 거리를, 기차를 고집하다 그만큼을 더 쓴 셈이다.
도착했을 때는 이미 탑승 수속이 끝나 있었다.
국제전화라는 실수
택시 안에서 마음이 급해지자 항공사에 전화부터 걸었다.
로밍 요금제를 따로 신청해둔 것도 아니었다.
데이터도 와이파이도 없이 무작정 국제전화 버튼을 눌렀다.
신호가 가는 동안에도 창밖으로는 차가 막혀 있었고, 연결음이 몇 번이나 끊겨서 다시 걸고 또 걸었다.
그렇게 십 분을 훌쩍 넘겼다.
한 통화면 어떻게든 될 줄 알았다.
통화가 길어질수록 요금이 얼마나 쌓이고 있는지는 생각도 못 했다.
통화료는 지금도 모른다
솔직히 그날 통화료가 정확히 얼마였는지는 지금도 모른다.
다만 요금제 없이 건 국제전화가 분 단위로 붙는다는 걸 그때는 몰랐고, 그 무지의 값은 따로 청구됐다.
비행기를 놓친 것도 모자라 전화비까지, 그날은 이중으로 청구서를 받은 셈이었다.
한국에서 나고 자란 사람에게 "늦는 교통수단"은 낯선 개념이었다.
여행하다 보면 뭐든 예상보다 늦어진다고들 하지만, 나는 그 말을 몸으로 겪어본 적이 없었다.
처음 비행기를 놓쳐본 날이었다.
이후로도 이런 일은 몇 번 더 있었지만, 그때마다 이 하루가 먼저 떠올랐다.
처음 겪을 때만 아는 당혹감이, 두 번째부터는 그냥 익숙함으로 바뀌어 있었다.
17시 43분, 새로 뜬 항공권
공항에 도착하고 나서는 휴대폰을 몇 번이나 들여다봤는지 모른다.
남은 좌석을 찾고, 값을 확인하고, 다시 새로고침했다.
그때 찍어둔 화면들은 죄다 초점이 나가 있다.
손도 마음도 가만있질 못했다.
같은 화면을 몇 번이나 다시 띄웠다.
값을 확인하고, 좌석을 보고, 새로고침하고, 또 값을 확인했다.
카운터 앞에 줄이 길게 서 있는 것도 봤지만, 거기 서 있는 동안 좌석이 사라질까 봐 그러지 못했다.
결국 줄 대신 폰을 골랐다. 카운터에 서지 않고 그 자리에서 바로 끊었다.
flydubai 새벽 편, 예약번호 688DCR. 오후 5시 43분, 손바닥만 한 화면에 결제 내역이 떴다.
총액 LKR 12,566.58 — 그중 세금만 3,433.42루피였다.
그때 환율로 어림잡아 10만 4천원쯤이었다.
비행기 값에 전화비까지 더하니 그날 하루 지출로는 꽤 묵직한 숫자였다.

새 항공권을 손에 쥐고 나니 오히려 마음이 가라앉았다.
이미 벌어진 일을 되돌릴 수는 없었다.
아침부터 제대로 먹은 게 없다는 게 그제야 실감 났고, 새벽 비행기까지는 아직 한참 남아 있었다.
남은 시간 동안 무얼 할지 생각하는 편이 나았다.
다녀와서
돌아보면 이날은 자책할 하루가 아니라, 이후 여행을 버티게 해준 예방주사 같은 하루였다.
날짜를 두 번 세는 습관, 국제전화 대신 와이파이부터 찾는 습관은 전부 이날 이후에 생겼다.
계획을 놓아버리는 법은 말레이시아에서 이미 배웠지만, 그 대가를 실제로 치러본 건 이날이 처음이었다.
처음 겪을 때는 세상이 가혹하게 느껴졌던 실수가, 그다음부터는 그냥 여행의 일부가 됐다.
지금 같은 실수를 다시 하더라도 그때만큼 당황하지는 않을 것 같다.
미리사에서 콜롬보공항까지 실제 걸리는 시간
미리사에는 기차역이 없어서, 코스탈 라인을 타려면 일단 마타라나 웰리가마 쪽 역까지 나가야 한다.
그 역에서 콜롬보 포트역까지는 기차로 넉넉히 3시간 50분 정도 걸리고,
포트역에서 공항까지 다시 택시로 30~45분이 더 붙는다.
기차와 택시를 이어 타면 총 4시간 반 가까이 잡아야 하는 셈이다.
반대로 미리사에서 공항까지 곧장 택시나 프라이빗 카를 타면 2시간 안팎이면 충분하다.
남부고속도로가 뚫린 뒤로는 이 직행 구간이 훨씬 예측 가능해졌다고 한다.
그날 나처럼 당일 비행기가 있다면, 풍경 좋은 기차보다 직행 택시 쪽이 훨씬 안전하다.
새 표를 끊으면 실제로 얼마가 나가는가
놓친 표가 얼마였는지부터 적어둔다. 콜롬보에서 두바이로 가는 그 편은 15,450루피였다.
그리고 그날 다시 끊은 flydubai 새벽 편이 12,566.58루피, 그중 세금이 3,433.42루피였다.
당시 환율로 어림잡으면 앞의 표가 12만 8천원, 뒤의 표가 10만 4천원쯤이다.
여기서 중요한 건 뒤의 숫자가 아니라 앞의 숫자가 그대로 사라진다는 점이다.
저가 항공권은 탑승하지 않으면 운임이 돌아오지 않는다. 세금 부분만 따로 청구해 돌려받을 수 있는데, 그마저도 신청해야 주고 수수료를 뗀다.
그러니까 비행기를 놓치면 새 표 값을 내는 게 아니라, 표 값을 두 번 내는 것에 가깝다.
여기에 그날은 국제전화 요금까지 얹혔다. 새 표 한 장이 아니라 하루치 예산이 통째로 날아간 셈이었다.
비행기를 놓쳤을 때 순서대로 할 일
그날 나는 순서를 거의 반대로 밟았다. 전화부터 걸었고, 요금을 걱정했고, 좌석은 나중에 봤다.
다시 그 상황이 된다면 이 순서로 한다.
1. 아직 출발 전이라면 공항에 전화 말고 앱부터 연다. 온라인 체크인이 열려 있으면 늦게 도착해도 탑승이 가능한 경우가 있다. 수속 마감 시각은 항공사·공항마다 다르다.
2. 이미 놓쳤으면 좌석부터 확보한다. 카운터 줄은 길고, 그 사이에 남은 좌석이 팔린다. 같은 항공사 앱이나 웹에서 다음 편을 먼저 잡아두는 게 빠르다.
3. 카운터는 그다음이다. 같은 항공사 편이고 당일이면 재발권 요금만 받고 태워주는 경우가 있다. 다만 이건 항공사 정책이라 기대하고 기다릴 일은 아니다.
4. 통화는 와이파이가 잡히는 곳에서. 공항 와이파이나 유심을 먼저 확보한 뒤 앱 채팅이나 인터넷 전화를 쓴다.
5. 세금 환급은 나중에 신청한다. 못 탄 표의 유류할증료·공항세는 신청하면 일부가 돌아온다. 그 자리에서 할 일은 아니지만, 잊으면 그대로 없어진다.
6. 그리고 남은 시간을 어디서 보낼지 정한다. 새벽 편이면 공항에서 밤을 보내게 된다. 공항 근처 숙소가 있는지 먼저 확인하는 편이 낫다.
해외에서 항공사와 연락할 때, 국제전화 대신
로밍이나 유심 데이터가 없는 상태에서 국제전화를 걸면 분 단위로 요금이 무섭게 쌓인다.
요즘은 공항 와이파이나 현지 유심·이심만 있으면 항공사 앱이나 웹사이트 채팅으로 예약 변경이 대부분 해결된다.
음성 통화가 꼭 필요하면 와이파이가 잡히는 곳을 찾는다.
카카오톡 보이스톡 같은 앱이 국제전화보다 훨씬 싸다.
도착하자마자 유심부터 사두면, 나중에 이런 순간에 전화비 걱정 없이 발등에 불부터 끌 수 있다.
다음 편은 그 밤, 공항에서 커피빈 홍차와 조지 마틴 원서로 시간을 채우다 만난 낯선 친구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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