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터키 · 이스탄불 7] 히치하이킹으로 만난 인연, 낯선 아저씨 집에서 받은 환대
나를 집으로 데려갔다.
고속도로 한복판에서 엄지를 들고 서 있었다.
차 한 대가 섰고, 그날 밤 나는 그 사람 집 소파에 앉아 시금치 부렉을 먹고 있었다.
차이를 권한 사람이 저녁도 권했다
차를 세워준 건 평범한 터키 아저씨였다. 이름은 아리프라고 했다.
퇴근 시간이라 도로가 꽉 막혀 있었다. 창밖으로는 노을이 내려앉고 있었다.

가는 길에 그가 차이를 권했다. 기쁘게 받아 마셨다.
몇 마디를 주고받다가 그가 물었다. 저녁을 먹고 가지 않겠냐고.
별생각 없이 좋다고 답했다.
그게 시작이었다.
신발을 벗고 실내화를 신었다
현관에 들어서는데 신발을 벗어야 할 것 같았다. 아리프도 그렇게 했다.

두 달 넘게 호스텔만 전전하면서 신발을 신은 채로 드나들었다.
남의 집 현관에서 신발을 벗는 그 짧은 순간이 유난히 낯설었다. 실내화까지 내주셨다.
집에는 아리프의 어머니와 아내, 그리고 아이 둘이 있었다.
차이 한 잔만 하고 가는 줄 알았는데

상이 차려졌다. 예상보다 한참 넓었다.

가운데 유리 팬에 담긴 게 시금치가 든 전통 음식이었다. 페이스트리를 겹겹이 쌓아 굽는다.
흰 치즈가 두 그릇, 검은 올리브 한 접시, 썬 토마토가 또 한 접시.
붉은 고추 절임도 길쭉한 접시에 담겨 나왔다.
처음 만난 외국인에게 이만큼 차려줄 줄은 몰랐다.
그날 느낀 걸 나중에 이렇게 적어뒀다.
그의 두 보물

밥을 먹고 소파에 앉아 있는데 아이 둘이 아빠한테 딱 붙었다.
딸은 무릎에 올라가 팔을 감았고 아들은 옆에 앉아 웃었다.
그때 기록에 이 둘을 그의 두 보물이라고 적어놨다.

처음 만난 한국인 배낭객을 선뜻 자기 집까지 데려간 사람이었다.
그날 이후로 터키 사람이라는 말을 들으면 이 집 소파부터 떠오른다.
시장 상인도 공항 직원도 아니고.
아들이 정류장까지 따라 나왔다
식사를 마치고 아리프가 나를 버스 정류장까지 태워다 줬다. 아들도 같이 나왔다.

도착하자마자 버스가 왔다. 작별 인사도 제대로 못 하고 올라탔다.
버스까지 인도해 주고 손을 흔들었다. 여러 번 생각해봐도 그건 커다란 선물이었다.
버스에서 자리를 양보받았다
버스에 사람이 많아 통로에 낑겨 서 있었다.
한참 그러고 있으니 한 분이 일어나면서 앉으라고 했다.
앉고 보니 그분은 세 정거장 뒤에 내렸다. 외국인이라고 미리 양보해 준 것이었다.
내 짐이 무거워 보여서였을지도 모르겠다. 어느 쪽이든 고마웠다.

그러는 내내 로밍을 켜고 지도를 들여다봤다. 어디서 내려야 하는지 몰라서였다.
이날 정보 찾느라 고생하던 기억이 아직 남아 있다.
터미널까지 갔지만 그날 차는 없었다
버스를 타고 도착한 터미널에는 정작 에디르네로 가는 차편이 없었다.
밤이 늦어 그날 배차가 다 끊긴 뒤였다.
거기서부터가 또 한 편이다. 터미널 직원들이 나를 어떻게 보냈는지는 다음 편에 적는다.
낯선 사람을 믿어본다는 것
이 하루에 나를 도운 사람은 한 명이 아니었다.
차를 태워준 아리프, 밥을 차려준 가족, 정류장까지 따라 나온 아들.
버스에서 자리를 내준 사람, 터미널 직원들, 지나가던 봉고차 기사까지 이어졌다.
그날의 호의는 아무 대가도 바라지 않았다.
신발을 벗고 들어간 집, 시금치 부렉 한 판, 자정 넘어 잡아준 봉고차까지.
낯선 차를 얻어 탄다는 건 결국 모르는 사람을 한 번 믿어 보는 일이다.
그날은 그 믿음이 기대보다 훨씬 크게 돌아왔다.
이 여행에서 이런 하루가 처음도 아니었다.
말레이시아에서 친구들이 공항까지 태워다 줬다. 웨일스에서는 처음 본 사람이 자기 집 방을 내줬다.
핀란드에서는 거실을 사흘 비워준 집에 묵었다.
그때마다 갚을 방법이 없어서 같은 문장만 적었다.
`Thank you for everything.` 이 집에도 그 말밖에 남길 게 없었다.
터키 환대 문화, 미사피르페르베를리크
터키인들이 스스로 꼽는 문화 코드가 셋 있다. 명예(Şeref), 환대(Misafirperverlik), 이웃(Komşu).
상업화된 관광지를 벗어나면 지금도 이 환대를 만난다. 많은 집이 손님 전용 방을 따로 두고 그 방을 거실보다 화려하게 꾸며 놓기도 한다.
선물이나 대접을 받을 때는 두어 번 사양하다가 세 번째에 못 이기는 척 받는 게 예의다.
아리프가 몇 번을 권하고서야 저녁 초대를 받아들인 것도 딱 그 패턴이었다.
차이는 왜 계속 나오나
터키에서 차이(Çay)는 빵과 함께 생활 그 자체다.
1인당 연간 6.87kg을 마셔 세계 1위다. 차를 많이 마시기로 알려진 영국(2.74kg)의 두 배가 넘는다.
차이 문화는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으로 등재됐다.
잔 하나에 설탕을 서너 스푼씩 넣는다. 설탕을 많이 탈수록 손님을 더 환대한다고 읽는다.
시장을 구경만 하는 관광객에게도 차이를 권하는 게 흔한 풍경이다. 고속도로에서 처음 받아 마신 그 한 잔도 그런 호의 중 하나였던 셈이다.
터키 여행 안전 정보
낯선 이의 호의를 받아들일지는 각자의 판단이다. 다만 최소한의 확인은 해두고 간다.
외교부 해외안전여행 튀르키예 페이지에는 지금도 소매치기·사기 주의 안내가 실려 있다. 주이스탄불 총영사관 페이지에도 체류·안전 공지가 수시로 올라온다.
시외버스에서 남녀가 나란히 앉지 않는 관습은 미리 알아두면 당황할 일이 줄어든다.
이 하루만은 유독 또렷하다
숱한 인연을 스쳐 지났지만 이 하루만은 지금도 유독 또렷하다.
얻어 탄 차 한 대가 저녁 식사로, 그 식사가 다시 한밤중 봉고차로 이어졌다.
낯선 사람을 한 번 믿어본 대가로는 과분한 하루였다.
이름도 다 못 물어본 그 집 식구들 모두 행복하게 지내고 있으면 좋겠다. 모두에게 감사합니다.
터미널 직원들이 지나가는 봉고차를 세워줬다.

댓글
댓글 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