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 리옹 1] 숙소에 들어가기까지 열한 시간이 걸렸다
방에 들어간 건 저녁 여섯 시 사십오분이었다.
취리히 공항 의자에서 보냈다.
아침 일곱 시가 넘어서야 문을 연 카페에서 크루아상 하나와 에스프레소를 시켰다.

한 도시를 떠나는 날의 아침은 대개 이렇게 시작한다.
다음 도시에 도착하는 시각은 정해져 있지만, 그 도시의 방에 들어가는 시각은 아무도 정해주지 않는다.
그날 나는 오전 아홉 시 반에 리옹 땅을 밟았고, 숙소 문이 열린 건 저녁 여섯 시 사십오분이었다.
프로펠러가 도는 비행기를 처음 탔다
취리히에서 리옹까지는 한 시간이 채 안 걸린다.
창밖으로 알프스가 끝나고 프랑스 쪽 평야가 펼쳐지는 걸 보다 보면 벌써 하강이 시작된다.


그 짧은 구간에 배정된 기체는 프로펠러기였다.
착륙해서 계단을 내려올 때 날개 끝의 프로펠러가 아직 천천히 돌고 있었다.
제트기만 타다가 프로펠러가 눈앞에서 도는 걸 보니, 비행기가 기계라는 사실이 새삼스러웠다.

승객들이 활주로를 가로질러 터미널까지 걸어 들어갔다. 짐칸에서 캐리어를 꺼내주는 것도 그 자리에서였다.

기내에서 나눠준 초콜릿 한 조각을 주머니에 넣어뒀다가 터미널 복도에서 꺼내 먹었다.
포장지에 "Thank you for flying SWISS"라고 적혀 있었다.
전날 공항 바닥에서 잔 몸에 설탕이 들어가니 그제야 눈이 좀 떠졌다.

리옹 생텍쥐페리 공항은 건물부터 인상적이다.
특히 공항에 붙어 있는 고속철도역이 그런데, 흰 뼈대가 좌우로 뻗어 있어서 새가 날개를 편 것처럼 보인다.
주차장 쪽에서 보면 그 형태가 통째로 들어온다.

그런데 나는 그 건물을 세 시간 가까이 봤다. 공항을 못 떠나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만 오천원짜리 트램을 눈앞에 두고
리옹 공항에서 시내로 들어가는 가장 빠른 길은 론익스프레스라는 전용 트램이다.
삼십 분이면 중심가에 닿는다. 문제는 요금이었다.
당시 편도로 이만원이 넘었는데, 그 무렵 내 하루 숙박비가 이만 오천원이었다.
대신 버스를 타고 종점까지 가서 일반 트램으로 갈아타면 오천원이 안 됐다. 네 배 차이였다.
공항에서 그 경로를 알아내는 데만 한 시간이 걸렸다.
안내 데스크에서 받은 노선도를 펼쳐놓고 정류장 이름을 하나하나 짚었다.

지도를 코앞까지 당겨 환승역 이름을 확인하고, 거기서 몇 정거장을 더 가야 하는지 셌다.
표는 종이 한 장짜리였다.
리옹 시내 교통은 한 장으로 버스·트램·지하철을 다 탈 수 있다.
프랑스어로 적힌 안내를 더듬거리며 읽는 동안 창밖으로 론익스프레스가 몇 번이나 들어왔다 나갔다.


겨우 타야 할 버스를 찾았는데, 그 버스를 눈앞에서 놓쳤다. 다음 차까지 또 한 시간이었다.
버스에 오른 건 정오가 지나서였다. 좌석이 관광버스처럼 생긴 공항 노선이었고, 승객은 몇 명 없었다.

종점에서 내려 트램 승강장으로 올라갔다. 고압선 철탑이 지나가는 허허벌판에 승강장만 덩그러니 있었다.

그리고 거기서 론익스프레스를 다시 만났다.
같은 승강장에 나란히 서 있었다.
빨간 차체에 "LYON 시내 ↔ 공항"이라고 큼직하게 적힌 그 트램은,
내가 세 시간 걸려 온 거리를 삼십 분에 오는 차였다.

한 장 찍어뒀다. 아쉬워서였는지 기록하려던 건지는 지금도 잘 모르겠다.
내가 탄 건 그 옆에 서 있던 일반 트램이었다. 안내판에 종점 이름이 떠 있었고, 좌석은 텅 비어 있었다.

파르디외, 그리고 다시 버스
트램 종점은 파르디외 역이었다. 리옹의 중앙역이자 이 도시에서 사람이 제일 많이 지나다니는 곳이다.

트램에서 내리면 유리 지붕이 덮인 통로가 이어지고, 그걸 빠져나오면 바로 광장이다.
여기서 지하철 B선으로 갈아탈 수 있다.

역 광장에 서서 처음 본 건 원통형 고층 빌딩이었다.
리옹 사람들은 저 건물을 연필이라고 부른다.
꼭대기가 둥글게 깎여 있어서 정말 몽당연필처럼 보인다.
흐린 날이라 꼭대기가 구름에 반쯤 잠겨 있었다.

여기가 끝이 아니었다.
숙소는 여기서 남쪽으로 더 내려가야 했다. 다시 버스를 탔다.
차 안 노선도를 손가락으로 짚어가며 내릴 정류장을 셌다.

공항에 내린 게 아홉 시 반, 숙소 동네에 도착한 게 오후 세 시였다.
버거 하나, 그리고 세 시간 반
문제는 도착하고 나서였다.
호스트와 연락이 닿지 않았다.
휴대폰 배터리는 거의 바닥이었고, 인터넷도 잡히지 않았다.
유럽에서 유심을 따로 사지 않고 다니던 때라 와이파이가 없으면 연락 수단 자체가 없었다.
일단 뭘 먹기로 했다.
근처 버거집에 들어가 베이컨이 든 버거와 감자튀김을 시켰다.
트레이째 나온 걸 앉아서 천천히 먹었다.
서두를 이유가 없었다.
어차피 갈 데가 없었으니까.

그날 그 시간대의 사진이 한 장도 없다. 카메라를 안 꺼낸 게 아니라, 꺼낼 기분이 아니었을 것이다.
겨우 연락이 닿았을 때 호스트가 알려준 시각은 저녁 여섯 시였다. 그때가 세 시 조금 넘은 참이었다.
배낭을 멘 채로 세 시간 반을 보냈다.
강변에 앉아 있다가, 걸었다가, 다시 앉았다.
전날 공항 바닥에서 잔 몸이라 앉으면 졸음이 왔고 누울 데는 없었다.
문이 열렸다
여섯 시 사십오분에 문이 열렸다.
식탁 위에 A4 한 장이 놓여 있었다.
맨 위에 "WELCOME IN LYON"이라고 적혀 있고, 그 아래로 필요한 게 전부 정리돼 있었다.
지하철 몇 호선을 타면 어디로 가는지, 몇 번 버스가 어디까지 가는지,
자전거 대여소가 어느 슈퍼마켓 앞에 있는지, 하루권과 일주일권이 각각 얼마인지.
가스레인지 쓰는 법과 욕조 온수 나오는 법도 있었다.

마지막 줄에는 크레페나 라클렛, 퐁뒤를 같이 해 먹고 싶으면 말하라고,
메뉴에 따라 한 사람당 얼마씩이면 된다고 적혀 있었다.
세 시간 반을 밖에서 기다린 사람에게 그 종이는 좀 이상하게 다가왔다.
이렇게 자세히 적어둘 사람이 왜 연락은 안 됐을까 싶다가도,
어차피 연락이 안 된 건 내 쪽 사정이었다는 데 생각이 닿았다.
집 자체는 예상보다 훨씬 좋았다. 마루가 깔린 거실에 소파와 낮은 테이블이 있고, 한쪽 벽은 통째로 책장이었다.

발코니 문을 열면 가로수길 너머로 강이 보였다.
세 시간 반을 밖에서 보낸 사람에게 그 풍경은 좀 과분했다.
여드레를 여기서 지내게 되는데, 그건 다음 편에 적는다.

그날 하루를 시간으로 세어보면 이렇다.
취리히 공항에서 크루아상을 먹은 게 아침 일곱 시,
방에 배낭을 내려놓은 게 저녁 여섯 시 사십오분. 열한 시간 반이 걸렸다.
그중 비행기를 탄 시간은 한 시간이 안 됐다.
이만 오천원을 아꼈고, 그 대신 하루를 썼다. 그때는 그게 맞는 계산이었다.
리옹 공항에서 시내 가는 법
지금도 선택지는 그때와 같다.
론익스프레스(Rhônexpress) — 공항과 파르디외 역을 잇는 전용 트램이다.
삼십 분이 걸리고, 현재 편도 요금은 자동판매기 기준 17.10유로, 온라인 사전 구매는 16유로 선이다.
미리 예약할수록 왕복 요금이 내려간다.
짐이 많거나 도착이 늦은 날이라면 이쪽이 답이다.
47번 버스 + T3 트램 — 내가 탄 경로이고, 지금도 그대로 운행한다.

공항에서 47번 버스를 타고 메지외 ZI(Meyzieu ZI) 종점에서 내린 뒤,
T3 트램으로 갈아타면 파르디외 빌레트(Part-Dieu Villette)까지 간다.
여기서 지하철 B선으로 이어진다.
둘 다 리옹 시내 교통(TCL) 요금이 그대로 적용돼 공항 할증이 없다.
시내까지 한 시간쯤 잡으면 된다.
공항 셔틀 — 메지외 ZI까지만 데려다주는 사설 셔틀도 있다. 편도 8유로 안팎이고 트램 요금은 별도다.
정리하면 이렇다. 시간을 사려면 론익스프레스, 돈을 아끼려면 47번과 T3다.
다만 내가 그날 배운 건 조금 다른 것이었다.
환승 경로 자체는 한 시간이면 되는데, 그 경로를 처음 찾는 데 드는 시간이 따로 있다. 도착 전에 노선을 한 번만 확인해뒀어도 그날 오후는 통째로 남았을 것이다.
여드레를 보낸 그 집 이야기는 다음 편에 적는다. 강이 보이는 거실과, 같은 집에 살던 미국인 한 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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