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헝가리 · 에스테르곰 1] 다리를 건너니 슬로바키아였다, 근교 당일치기 전 코스
다른 나라로 넘어간다.
나는 절반만 보고 돌아왔다.

에스테르곰은 헝가리의 옛 첫 수도이자, 지금도 헝가리 가톨릭 교회의 총본산이 있는 도시다.
972년 게저 대공이 이 언덕에 자리를 잡았고,
1000년 아들 이슈트반 1세가 여기서 대관식을 치르며 헝가리 왕국이 시작됐다.
지금 언덕을 채우고 있는 에스테르곰 대성당은 헝가리에서 가장 큰 성당이자 유럽에서도 손꼽히는 규모의 바실리카다.
도나우강 건너편은 슬로바키아라, 강을 걸어서 건너면 다른 나라로 넘어간다.
부다페스트에서 당일치기로 다녀오기 좋은 거리인데, 정작 나는 절반만 보고 돌아왔다.
언덕과 성곽까지는 올라갔지만 돔 계단은 안 올랐고, 강 건너가 다른 나라라는 걸 알면서 다리는 안 건넜다.
대신 그 마을에서 예상 못 한 걸 하나 받아왔다.
부다페스트에서 에스테르곰 가는 법

가는 방법은 크게 셋이다. 기차, 버스, 그리고 여름철 도나우강 유람선.
기차는 부다페스트 뉘가티역(Nyugati)에서 에스테르곰까지 직통으로 다닌다.
30분 간격으로 자주 있고 한 시간 남짓 걸리며, 편도 요금은 1,120포린트 정도다.
노선이 도나우강을 끼고 달려서 창밖 풍경이 좋다.
버스는 아르파드 히드(Árpád híd) 터미널에서 800번을 타면 도로그를 거쳐 70~80분쯤 걸린다.
배차는 20분에서 1시간 간격이고, 아르파드 히드는 지하철 M3로 바로 닿는다.

광장을 지나 큰길로 들어서니 낮은 건물이 줄지어 있었다.

4월부터 9월까지는 마하르트(Mahart PassNave)에서 운영하는 유람선도 다닌다.
비셰그라드를 거쳐 에스테르곰까지 편도 두 시간 20분쯤 걸리는 완행이라 시간이 넉넉할 때나 어울리지만
다뉴브 벤드 전체를 물 위에서 보고 싶다면 고려할 만하다.
화~일요일에만 다니니 시간표부터 보고 움직인다.
나는 버스를 탔다. 대만에서 온 앤디와 쉐리가 간다고 해서 따라붙은 하루였다.
첫 버스를 놓치면서 알게 된 게 하나 있다.

강을 건너는 배를 잠깐 얻어 탔다.


정류장이 한 곳이 아니다.
놓치고 나서 다른 정류장으로 이동해 다음 버스를 탔다.
배차가 촘촘한 편이라 한 대 놓쳐도 크게 어긋나지는 않았다.
가는 길 풍경이 좋아서 창밖을 보다가 잠들었다.
내린 곳은 시내 코슈트 라요시 거리(Kossuth Lajos utca)였다.
정류장에 붙은 시간표를 그때 찍어뒀다.
800번이 에스테르곰에서 도로그·필리스체바·필리시뵈뢰시바르를 지나 부다페스트 아르파드 히드까지
가는 노선이라는 게 표에 그대로 적혀 있었다.
돌아갈 시간을 그 자리에서 확인해두면 하루 계획이 훨씬 편해진다.
나는 그걸 안 하고 대충 봤다가 뒤에서 고생했다.
자리를 잡을 수 있다면 강 쪽 창가가 낫다.
지금 다시 간다면 기차를 타겠다.
강을 따라가는 구간이 길어 이동 자체가 구경이 되기 때문이다.
에스테르곰에는 관광객이 거의 없다


에스테르곰에 도착하고 가장 먼저 느낀 건 조용함이었다.
한국인은커녕 유럽 관광객도 거의 보이지 않았다.
아기자기한 마을을 통째로 빌린 기분이었다.
차가 안 다녀서 도로 한복판에 서서 사진을 찍었는데 아무도 뭐라 하지 않았다.
지나가면 현지 사람들이 신기하다는 눈으로 쳐다볼 정도였으니, 동양인 방문객 자체가 드문 동네다.
해바라기씨를 받았다
그 드문 방문객이라는 게 실감된 순간이 있었다
그 드문 방문객이라는 게 실감된 순간이 있었다.
마을에서 어린애들 몇이 우리를 보고 다가왔다.
동양인이 신기했던 모양이다.
뭐라고 계속 말을 걸었는데 헝가리어라 한 마디도 못 알아들었다.
그러다 한 애가 손을 내밀어 자기가 들고 있던 해바라기씨를 내 손바닥에 부어줬다.
나는 그걸 먹으라는 뜻으로 이해했다.
정말 그 뜻이었는지는 지금도 모른다
정말 그 뜻이었는지는 지금도 모른다.
그냥 보여주려던 것이었을 수도 있고, 나눠주는 게 그 동네 애들 인사법이었을 수도 있다.
말이 하나도 안 통하는 채로 손바닥에 씨앗이 놓였고, 나는 웃으면서 받았다.
그 하루에서 제일 좋았던 장면을 하나 고르라면 이거다.
정작 대성당 돔은 못 올랐는데.
관광지가 아닌 마을에 가면 이런 걸 만난다.
반대로 말하면 아무것도 준비돼 있지 않다는 뜻이기도 하다.
둘은 같은 조건의 앞뒤다.
물가도 부다페스트보다 쌌다.
피자 한 조각이 800원 정도였다.
사람 많은 곳을 피하고 싶다면 이 조건이 꽤 매력적이다.
에스테르곰 대성당에서 놓치지 말아야 할 것들

집에 돌아와 찾아보고서야 이 도시의 진짜 볼거리를 알았다. 순서를 거꾸로 밟은 셈이다.
에스테르곰 대성당은 1822년부터 1856년까지 지어진, 헝가리에서 가장 큰 성당이다.
높이 100m, 돔 지름 33.5m로 유럽에서도 손꼽히는 규모라
완공 미사에는 프란츠 리스트가 직접 곡을 헌정했을 정도다.
보물관·전망대·지하 묘지
여기서 챙길 게 셋 있다.
- 돔 전망대. 본당 입장은 무료지만,
보물관·파노라마홀(약 2,400포린트)과 지하 묘지·종탑·전망대(약 1,800포린트)는 표가 따로다.
돔까지는 나선형 계단 400개를 올라야 하는데,
꼭대기에 서면 에스테르곰 시내와 도나우강,
강 건너 슬로바키아까지 한눈에 들어온다.
나는 언덕과 성곽까지는 올라갔다.
성벽 문에 걸린 종도 봤고 붉은 지붕 시내도 내려다봤는데, 정작 그 계단은 안 올랐다.
- 마리아 발레리아 다리. 1895년 개통한 이 다리(약 500m)를 건너면 슬로바키아의 슈투로보(Štúrovo)다.
헝가리도 슬로바키아도 솅겐 지역이라 여권도 검문소도 없이 걸어서 넘는다.
다리 위에서 언덕에 얹힌 대성당을 바라보는 각도가 이 도시 최고의 뷰로 꼽힌다.
나는 강 건너가 다른 나라라는 걸 알고 있었다. 강변에서 관광 지도를 한참 봤고,
거기에 슈투로보가 헝가리어 지명 파르카니(Párkány)와 나란히 적혀 있었다.
마리아 발레리아 다리, 건너면 슬로바키아다

알면서 안 건넜다. 왕복 30분이면 됐는데 "저기까지 다녀오겠다"는 말을 못 했다.
- 저녁 식사. 물가가 그렇게 싼데 제대로 된 한 끼를 안 먹고 돌아왔다.
우리가 그날 먹은 건 마트에서 산 또띠아 칩이 거의 전부였다.
가기 전에 돔 전망대와 보물관이 그날 문을 여는지부터 확인하면 된다.
계절마다 운영시간이 다르다. 도착 시각과 겹치는지 미리 본다.
마리아 발레리아 다리는 도보로는 언제든 건널 수 있다.
요금과 운영시간은 에스테르곰 대성당 홈페이지에 있다.
도나우강 일몰은 기대해도 된다


놓친 게 많은 하루였지만 이건 확실히 좋았다.
언덕에 올라 성곽 쪽에서 마을과 강을 내려다본 영상이 하나 남아 있다.
*에스테르곰 언덕에서 — 붉은 지붕 마을과 도나우강*
강 위로 해가 떨어지는 걸 오래 봤다.
사진 기록을 보면 저녁 8시 12분부터 8시 26분까지 계속 셔터를 누르고 있었다.
열네 분 동안 서른 장 가까이 찍었다.
강 건너가 슬로바키아라 해가 다른 나라 쪽으로 넘어가는 셈이고,
붉은 지붕 마을과 대성당 흰 첨탑이 그 빛 앞에 실루엣으로 남는다.
여행 내내 이동만 하다가 해 지는 걸 끝까지 본 게 오랜만이었다.
이날 하루가 어긋났다는 건 그 시점에 이미 알고 있었다
이날 하루가 어긋났다는 건 그 시점에 이미 알고 있었다.
그런데도 기분 좋게 돌아왔고, 이유는 이 열네 분이었다.
계획대로 안 된 날에 무엇 하나를 붙잡을지가 그날의 기억을 정한다.
성당이 언덕 위에 앉아 있어 그 근처면 시야가 트인다.
7월이면 해가 8시 20분쯤 넘어가니,
일몰을 볼 생각이면 해 지기 30분 전에는 언덕으로 올라가 자리를 잡자.
계절마다 시각이 크게 달라지므로 출발 전에 그날 일몰 시각을 확인하는 게 낫다.
당일치기의 진짜 변수는 막차다

여기서 하루가 꼬였다.
내가 탄 막차는 밤 9시 30분이었다.
일몰이 끝나고 내려와 저녁을 먹으려니 시간이 빠듯했다.
결국 식사를 기다리다 출발 3분 전에 겨우 버스를 탔다. 셋이 같이 뛰었다.
혼자였으면 그 버스를 놓쳤을 것 같다.
당일치기에서 일몰과 저녁 식사는 같이 하기 어렵다.
둘 중 하나를 고르거나 저녁을 일찍 먹고 일몰을 마지막 일정으로 두면 된다.
나는 아무 계획 없이 갔다가 둘 다 어중간하게 했다.
도착해서 정류장 시간표를 봤을 때 막차 시각을 적어두고 거기서부터 거꾸로 짰어야 했다.
시간 배분보다 더 큰 문제는 따로 있었다
시간 배분보다 더 큰 문제는 따로 있었다.
나는 그날 일정을 내가 정하지 않았다.
앤디와 쉐리를 따라다녔고, 어디서 얼마나 머물지 한 번도 말하지 않았다.
기다리는 동안 속으로만 불편해했다.
돌아오는 버스에서 곰곰이 따져보니 혼자 움직이겠다는 말을 안 한 건 나였다.
말하지 않으면 상대는 내가 괜찮은 줄 안다.
그 시간은 그냥 사라진다.
그리고 그 버스에서 셋이 이야기를 했다.
부다페스트에 도착해서는 같이 밥을 먹었고, 그러는 사이 낮의 불편이 거의 다 빠졌다.
어긋난 하루를 그날 안에 회복할 기회는 대개 돌아오는 길뿐이다.
에스테르곰 기본 정보
한국 여권으로는 헝가리도 무비자 90일이 적용된다.
화폐는 포린트(HUF)를 쓰고, 카드 결제는 대부분 잘 된다.
에스테르곰은 부다페스트에서 북서쪽으로 약 46km 떨어져 있어, 이동 시간까지 합쳐도 하루 안에 충분히 다녀온다.
마을 언어는 헝가리어지만 성당과 관광안내소 쪽은 영어가 잘 통한다.
다음에 간다면 이렇게 가겠다
에스테르곰은 부다페스트 근교 당일치기로 충분히 갈 만하다.
조용하고 물가도 싸고, 무엇보다 강이 좋다.
다음에 간다면 돔 전망대까지 올라 400계단 끝에서 슬로바키아 쪽을 내려다보고,
마리아 발레리아 다리를 걸어서 슬로바키아 쪽까지 가보고 싶다.
막차 시간을 먼저 정해두고 거꾸로 일정을 짜면 저녁까지 챙길 수 있을 것 같다.
그날이 어긋난 이유는 따로 있었다.
동행이 나빴던 게 아니라, 내가 말을 안 한 거였다는 걸 나중에야 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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