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 마카오 1] 손가락으로 짚어 시킨 아침, 배를 타고 다른 나라로 건너갔다
배를 타고 다른 나라로 건너갔다.
가짜 하늘이 있었다.
홍콩 둘째 날은 아침 일찍 페리를 타고 마카오로 넘어갔다. 당일치기 코스였다.
홍콩에서 마카오 가는 페리와 무비자·카지노 규정은 지금도 크게 안 변했는데,
언어가 통하지 않을 때 아침식사를 주문하는 방법


페리 터미널 안에 있던 'MX'라는 밥집에 들어갔다.
나중에 알고 보니 홍콩·마카오에 흔한 프랜차이즈 美心MX(맥심 MX)였다.
영어도 짧고 한자 메뉴판은 못 읽으니, 방법은 하나 — 그림을 보고 세트 하나를 손가락으로 짚는 거였다.

그렇게 나온 게 비닐에 포장된 샌드위치, 죽 한 그릇, 그리고 밀크티 한 잔이었다.
옆 사람 샌드위치는 노릇하게 구워졌는데 내 건 굽지도 않고 그냥 포장만 해서 줬다.
밀크티 종이컵 옆면에는 奶茶·咖啡·凍奶茶·其他 네 칸이 인쇄돼 있었다.
주문받을 때 여기에 표시해서 내주는 모양이었다.
빨간 빨대가 꽂혀 나왔고, 쟁반 깔개에는 흰동가리 같은 물고기 그림이 잔뜩 인쇄돼 있었다.

죽은 뽀얀 빛깔이라 삼계탕 같은 닭죽인 줄로만 알았다.
한술 뜨는데 웬 땅콩이 씹혀서 그땐 잘못 나온 줄 알았다.
그런데 영수증을 보니 花生眉豆豬骨粥, 그러니까 땅콩과 동부콩을 넣은 돼지뼈죽이었다.
땅콩이 원래 들어가는 재료였다. 돼지 뼈로 낸 죽은 그날 태어나서 처음 들어봤다.
낯선 곳에서 더듬더듬 시켜 먹는 것부터가 이미 여행 같았다.

영수증 두 장에는 직원이 볼펜으로 죽죽 그어 놓은 자국이 남아 있다.
나온 것부터 하나씩 지워 나간 흔적일 텐데, 나는 그게 무슨 표시인지도 모르고 받아 들었다.
찍힌 시각은 아침 8시 49분. 그러니까 나는 아홉 시도 안 된 시간에,
뭘 시켰는지도 모르는 채로 그 줄에 서 있었던 거다.
*페리터미널 맥심 MX 아침 세트*
먹고 난 자리 그대로 — 영수증과 접힌 냅킨까지 남아있는 트레이
지금 사진을 다시 보니 그 샌드위치, 나중에 한국에도 상륙해 유행한 대만 브랜드 홍루이젠이랑 닮았다.
두꺼운 식빵 사이에 햄을 끼운 모양이 똑같은데, 그때는 그런 브랜드가 있는 줄도 몰랐다.
홍콩인데 또 입국심사







페리는 한 시간쯤 걸렸다.
배 안은 천장이 조금 낮아 답답했고,
한여름 홍콩 더위에 이미 지쳐 있었는데 다행히 에어컨이 빵빵하게 나와 그나마 살 만했다.
창밖으로 낮의 홍콩섬 스카이라인이 멀어지는 걸 보다 보니 어느새 마카오였다.

물보라를 가르며 지나가는 파란 배 옆구리에는 金光飛航이라고 적혀 있었다.
코타이 워터젯의 한자 이름이다.
그 뒤로는 빌딩이 산 능선에 닿을 때까지 빼곡히 들어차 있었고, 그 위로 여름 뭉게구름이 잔뜩 부풀어 있었다.
떠나는 배에서 홍콩섬 물가를 따라 카메라를 한 번 훑었다.
부두 건물과 빨간 철골이 지나간다.
그 뒤로 빌딩이 줄줄이 밀려나고 산 능선까지 한 화면에 담긴다.
배가 속도를 올리기 시작해서 아래쪽으로는 하얀 물살이 계속 밀려났다.
*멀어지는 홍콩섬*
마카오로 떠나는 배에서 — 멀어지는 홍콩섬 물가를 훑었다
도착하니 입국심사를 또 해야 했다.
홍콩이랑 마카오가 같은 나라인 줄 알았던 나는 그게 좀 번거로웠다.
둘 다 중국의 특별행정구지만 출입경은 따로 한다는 걸 그때 처음 알았다.

창유리에는 소금기가 뿌옇게 말라붙어 있었다.
그 너머로 초록 방수천을 두른 공사 중인 건물과, 배까지 이어지는 공중 통로가 보였다.
사진에는 좌석 등받이까지 같이 찍혔다.
자리에 앉은 채로 창밖만 내다봤다.
홍콩 → 마카오 페리
홍콩에서 마카오는 페리로 약 1시간이다.
터보젯은 홍콩섬 셩완의 마카오 페리터미널에서, 코타이워터젯은 침사추이(차이나 페리터미널)와 홍콩공항 등에서 뜬다.
둘 다 지금도 자주 운항하고 심야편도 있어서 당일치기가 넉넉하다.
편도 요금은 시간대·등급에 따라 대략 HK$190 안팎인데,
주말이나 성수기에는 표가 일찍 마감되니 왕복을 미리 끊어두면 마음이 편하다.
배 안에는 작은 매점이 있어 컵라면과 음료를 판다.
위에서 먹은 신라면도 거기서 샀다.
페리터미널에는 카지노·리조트행 무료 셔틀이 상시 다녀서, 목적지가 정해져 있으면 셔틀로 바로 넘어가면 된다.
요즘은 강주아오 대교를 지나는 버스로도 오갈 수 있으니, 최신 시간표와 요금은 터보젯 공식 페이지에서 확인하자.
마카오 기본 정보
홍콩과 마카오는 같은 중국 특별행정구지만 출입경이 따로라, 넘어갈 때 여권과 입국심사가 필요하다.
한국 여권이면 마카오도 무비자로 최장 90일 머물 수 있다(조건은 마카오 정부 입국 안내).
카지노는 만 21세 이상만 들어갈 수 있고 내부 촬영은 금지,
입장할 때 여권으로 신분과 나이를 확인하기도 한다.
도박을 안 해도 볼 게 많다.
에그타르트를 제대로 맛보려면 콜로안 섬의 로드 스토스 베이커리(안드류)가 원조로 유명하고, 반도 쪽 마가렛 카페도 늘 줄이 길다.
포르투갈 색이 짙은 세나도 광장과 성 바울 성당 유적,
좁은 옛 골목은 베네시안 같은 초대형 리조트와는 전혀 다른 마카오다.
당일치기라면 아침 일찍 페리로 들어가 코타이의 리조트를 둘러보고,
오후에 반도 쪽 구시가를 걸은 뒤 저녁에 홍콩으로 돌아오는 동선이 무난하다.
다녀와서
당일치기로 다른 나라에 다녀오는 일정은 이 여행에서 처음이었다.
배로 한 시간이면 국경이 바뀐다. 입국 도장이 하나 더 찍히고 화폐도 달라진다.
그런데 그날 제일 오래 기억에 남은 건 아침 밥상이었다.
한자를 못 읽어 손가락으로 짚어 시킨 죽에 땅콩이 들어 있었고, 그게 원래 그런 음식이라는 걸 영수증을 보고서야 알았다.
다음 편은 마카오에 내려서다. 물 건너 카지노가 줄지어 서 있었고, 입구마다 금색 사자가 앉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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