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가리아 · 소피아 1] 소피아에서 공짜 투어만 3개 돌았다
공기가 확 달라졌다.
전부 낄 수 있었다.
홍콩, 말레이시아, 스리랑카, 두바이. 여기까지 오는 동안 아시아와 중동을 쉬지 않고 건넜다.
그러다 불가리아 소피아에 내리자마자 공기가 확 달라진 걸 느꼈다.
건물은 유럽풍으로 바뀌었고, 사람들은 카페와 벤치에 늘어져 여유를 부리고 있었다.
물가도 가벼워서 뭘 먹어도 부담이 없었다.
시원한 저녁 바람 덕에 에어컨 생각도 안 났다.
그렇게 도착한 다음 날, 운 좋게 무료 투어 3개에 전부 낄 수 있었다.
도보투어: 사라진 레닌 광장
첫 순서는 무료 도보투어였다.
소피아 시청 앞, 사자 두 마리가 지키고 선 자리에서 대학생 가이드를 만났다.
역사 얘기를 들으며 걷다가 광장 하나에서 멈춰 섰다.
지금은 황금빛 여신상이 서 있는 자리에, 한때 레닌 동상이 서 있었다는 이야기였다.
냉전이 끝나고 동상이 철거된 뒤, 그 자리엔 '지혜'라는 뜻을 가진 소피아 여신상이 새로 세워졌다고 했다.
광장 이름도 그대로 인디펜던트(독립) 광장이 됐다.


같은 투어에서 지하철 공사장 옆도 지났다.
가이드 말로는 공사 중에 유적이 발견돼서 공정이 한참 밀렸다고 했다.
세르디카(Serdica)라는 고대 로마 도시의 흔적이었다.
유리벽 너머로 배낭을 멘 여행자 둘이 안내판을 들여다보고 있었다.
발밑에 통째로 로마 시대 도시가 깔려 있다는 게 신기해서 한참 서서 들여다봤다.

발칸 푸드투어: 수파 스타와 마늘 요거트

점심엔 발칸 푸드투어였다.
인기가 워낙 많아서 이날은 15명까지만 받는다고 했다.
자리 선점을 잘한 덕에 무사히 참가할 수 있었다.
첫 집은 수파 스타(Supa Star)라는 수프집이었다.
불가리아에서 수프는 한 끼다.
그날그날 끓이는 종류가 바뀌어서, 벽에 붙은 칠판을 보고 골랐다.

다음 집에선 새콤한 요거트에 마늘과 오이를 듬뿍 넣은 음식이 나왔다.
요거트를 이렇게 먹어본 적이 없어서, 그 신맛에 나만 얼굴이 일그러졌다.
타라토르라고 부르는 찬 수프였다.
요거트에 오이와 마늘, 딜과 호두를 넣고 물을 타서 차게 먹는다.
여름이면 거의 매일 식탁에 오른다고 했다.
왜 이 맛이 낯선지 옆 사람들에게 설명하느라 진땀을 뺐고, 다들 그 반응이 제일 재밌다며 웃었다.
바니짜라는 얇고 부드러운 빵도 먹었다.
종이처럼 얇은 반죽을 여러 겹 겹치고, 사이사이에 흰 치즈를 넣어 굽는다.
불가리아 사람들이 아침으로 가장 흔하게 먹는 빵이다.
마지막 집에서는 빵에 세 가지 소스를 발라 먹으며 와인도 한 모금 받았다. 페퍼·갈릭·토마토였다.

이 투어에서 프랑스에서 온 클레어를 만났다.
혼자 온 여행자끼리 자연스레 붙어 다녔다.
친절하게 이것저것 챙겨준 덕에 투어 내내 심심할 틈이 없었다.
여기서 친구가 한 명 더 늘었다.
덴마크에서 온 제이콥이 자기 친구들 틈에 나를 끼워줬다.

헤어질 때 제이콥이 한마디 했다.
"It's a good time. Thank you."
짧은 한마디였는데 그날 분위기가 딱 그랬다.

유럽의 피자는 가성비가 제일 좋아
투어 사이사이 길거리 음식도 놓치지 않았다.
동네 베이커리 진열대에는 큼직한 원형 피자가 여러 판 놓여 있었다.
한 조각 가격이 놀라울 만큼 저렴했다.
비교할 대상이 없어서 사진으로는 크기가 잘 안 느껴진다.
한 조각만 먹어도 배가 찰 만큼 큼직했다.


두바이에서 쉑쉑버거 한 세트를 사 먹었던 게 불과 며칠 전이었다.
같은 돈이면 소피아에서는 이런 조각피자를 열 개도 넘게 살 수 있었다.

바 투어보다 조용한 자리가 좋았다

밤엔 호스텔 모스텔에서 시작하는 바투어였다.
소피아에서 가장 유명하다는 그 호스텔엔 사람이 잔뜩 모여 있었다.
바를 옮겨 다니며 새벽까지 이어지는 투어라고 했다.
워낙 많은 사람을 한꺼번에 만나서 이름을 다 기억하긴 어려웠지만, 그 와중에도 꽤 즐거웠다.
자정을 넘긴 시각, 나는 투어에서 살짝 빠져나와 샌드위치를 사 먹었다.
그러다 한국말을 하는 말레이시아 친구들을 만나 자연스레 그쪽 무리로 돌아갔다.
시끌벅적한 술자리보다는 조용히 이야기 나누는 쪽이 나에게 더 잘 맞는다는 걸 이날 알았다.
그날 만난 독일인 커플, 동갑내기 한국인 친구와 앉아서 한참 떠들었다.


프리투어 참여법

Free Sofia Tour는 예약 없이 그냥 가면 된다.
집결 장소는 소피아 시청(재판소) 앞 사자 동상 두 마리 앞이다.
놓쳤다면 초록 돔이 있는 스베타 네델랴 교회 쪽에서도 가이드를 찾을 수 있다.
시간표는 계절마다 조금씩 바뀐다.
최근 확인 기준으로는 오전 10시·11시와 오후 2시·6시에 매일 열린다.
투어는 약 2시간이고, 참가비는 따로 없이 끝나고 원하는 만큼 팁을 주는 방식이다.
발칸 푸드투어 참여법
발칸 푸드투어(Balkan Bites)는 매일 오후 2시에 출발한다.
집합 장소는 스테판 스탐볼로프 흉상이 있는 크리스탈 공원이다.
예약은 필수가 아니지만, 인원이 제한돼 있어서 시간 맞춰 가는 게 안전하다.
이 투어도 마지막에 팁을 주는 방식으로 운영된다.
소피아 기본 정보

불가리아는 2026년 1월부터 유로존에 정식 가입해 레프 대신 유로를 쓴다.
남은 레프 지폐는 은행에서 계속 무료로 환전해준다.
육로 국경 검문도 2025년 1월부터 사라졌다.
그리스나 세르비아, 루마니아 쪽에서 넘어와도 여권 검사 없이 통과하는 경우가 많다.
지하철 요금은 1회권 기준 약 0.8유로 수준이다.
24시간권과 72시간권도 있으니 소피아 지하철 안내에서 확인하면 된다.
시내에 하루 이틀 더 머문다면 알렉산더 넵스키 대성당도 들러볼 만하다.
본당 입장은 무료이고, 오전 7시부터 오후 7시까지 열려 있다.
하루 안에 소피아가 다 있었다

투어 3개를 몰아 들은 하루였는데, 돌아보면 그 하루 안에 소피아가 다 들어 있었다.
사라진 레닌 광장의 흔적, 발밑의 로마 유적, 마늘 요거트 앞에서 웃던 순간.
조각피자 하나로 배부르던 저녁, 그리고 조용한 대화가 더 좋았던 밤까지.
짧게 스쳐 간 도시인데도 다시 걷고 싶은 골목이 여럿 남았다.
소피아라는 도시 이름이 어디서 왔는지는 그날 걸으며 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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