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터키 · 이스탄불 6] 터키 히치하이킹 첫 도전, 엄지를 들었더니 트럭이 정반대로 데려갔다
이렇게 어려운 줄 몰랐다.
나도 엄지를 들어봤다.
이 도시에서 사흘을 보내고 이제 유럽 쪽으로 넘어가야 했다.
그날 나는 처음으로 히치하이킹을 했다. 손 하나 드는 게 그렇게 어려울 줄은 몰랐다.
같은 방 친구 둘이 두 달째 얻어 타는 중이었다
아침에 눈을 뜨니 같은 방 친구 둘이 짐을 챙기고 있었다.
어디 가느냐고 물었다.
두 달을 차만 얻어 타고 다닌 사람이 눈앞에 있었다.
어라, 히치하이킹? 이거 시도해볼까.
마침 유럽 쪽으로 넘어가야 할 참이었다. 방법으로 이만한 게 없어 보였다.
나도 짐을 쌌다. 호스텔을 나와 지하철 반, 버스 반으로 보스포러스 북쪽까지 갔다.
동그란 성 앞까지 가놓고 안 올라갔다

같이 있던 한국인 친구가 저 동그란 성에 간다고 해서 따라왔다.
가서 보니 성벽이 언덕을 타고 위로 계속 올라갔다.
나는 입장하지 않았다. 더워서 안 올라갔다. (이유의 전부다)
친구는 성으로 올라갔고 나는 해안 길을 따라 걸었다.
가는 길에 해협에서 수영하는 사람을 봤다. 배가 지나다니는 물인데 그냥 들어가 있었다.
이 성의 이름은 루멜리 히사르다. 메흐메트 2세가 콘스탄티노플을 치기 전해에 넉 달 만에 세웠다.
목적은 하나였다. 건너편 아나돌루 히사르와 짝을 이뤄 이 좁은 물목을 틀어막는 것.
흑해 쪽에서 들어오는 배를 끊어놓고, 이듬해에 도시가 함락됐다.
물목이 왜 하필 여기인지는 밖에서도 보였다. 성벽 위에서 봤으면 더 잘 보였을 텐데, 그건 조금 아쉽다.
스타벅스가 생각보다 멀었다
성을 지나 해안 길을 따라 스타벅스로 향했다.
베베크라는 동네에 있었다. 입구 포스터에 4층까지 쓴다고 적혀 있었다.

1리라가 400원쯤이던 때다. 계산해보니 제일 큰 사이즈를 시켜도 한국에서 제일 작은 것 값이었다.
그래서 제일 큰 걸로 시켰다. 후레쉬×후레쉬한 걸로.
난간에 배낭을 걸쳐놓고 자리를 잡았다. 앞으로 요트가 잔뜩 떠 있었다.
이 배낭 무게가 12kg이었다.
언제나 스타벅스는 한국인 천국이다.
친구가 성을 다 보고 돌아왔고, 우리는 오후 2시까지 이야기했다.
헤어질 때 친구가 물수건을 줬는데 남은 여행 내내 잘 썼다.
손가락 하나가 그렇게 안 올라갈 줄이야
구글맵이 알려주는 최단거리를 그대로 따라갔다.
성문을 지나고부터 경사가 시작됐다. 인도가 끊기는 구간이 계속 나왔다.
도착하기도 전에 땀이 비 오듯 흘렀다.

톨게이트 하나를 지나 왼쪽으로 꺾었다.
운전을 해본 적이 없어서 인터체인지가 어떻게 생긴 건지 감이 없었다. 그냥 지도가 가리키는 대로 걸었다.

발이 먼저 항의했다. 셋째 발가락이 자꾸 넷째 발가락을 괴롭혔고 물집이 잡혀 부르텄다.
그때 기록에 박지성 선수가 되고 싶어하는 발이라고 적어놨다.
아래로 내려가 다시 왼쪽으로 꺾으니 고속도로 너머로 풍경이 갑자기 열렸다.
눈이 휘둥그레졌다. 그 앞에서 처음으로 엄지를 들었다.
차가 길목으로 진입할 때를 노리면 되겠지, 하는 계산이었다. 지금 생각해도 무식한 방법이었다.
문제는 손이었다. 손가락이 안 올라갔다.
스쳐 가는 운전자들 눈빛이 재 뭐야, 하는 표정으로 읽혔다. 그 눈빛 하나에 손이 얼었다.
그래봐야 남의 눈빛이다. 나는 지금 유럽에 가야 하는데.
몇 번 들었다 내렸다 하니 오히려 대담해졌다.
엄지를 든 지 10분쯤 지나 트럭 한 대가 섰다.
기사가 창밖으로 에디르네, 에디르네 하고 외쳤다. 기쁜 마음으로 올라탔다.
에디르네는 유럽 쪽 국경으로 넘어가는 길목의 도시다. 수도를 이스탄불로 옮기기 전까지 오스만 제국의 수도였다.
트럭은 나를 정반대편 빌딩숲에 내려줬다
기쁨은 오래가지 않았다. 기사와 영어가 통하지 않았다.
한참 달리더니 트럭은 어느 지하철역 앞에 나를 내려놓았다. 에디르네가 어디냐고 되묻는 표정이었다.
일단 고맙다고 인사부터 하고 주변을 둘러봤다.

레벤트역이었다. 에디르네와는 반대 방향, 이스탄불의 업무 지구 한복판이다.
초심자의 행운 같은 건 작용하지 않았다.
큰 빌딩이 늘어서 있고 쇼핑하기 좋아 보였다. 배도 고팠다.
밥도 먹고 쇼핑도 하고... 응?
떡 본 김에 제사 지낸다고 기념품 가게에 들어갔다. 크기는 큰데 물건은 적었다.
화장품 가게에서는 달란 돌리브 제품을 쓸어 담았다.
터키 기념품인 줄 알았는데 말레이시아 쪽 회사 것이었다. 속았다.

밥은 빌딩 안 되네르 가게에서 먹었다. 리라 값이 싸서 메뉴판에서 제일 비싼 소고기를 시켰다.

빵은 넓적한 게 나왔다. 돌돌 만 걸 시킬 걸 그랬나 싶었다.
계산대 직원 둘과 이야기도 했다.
엉뚱한 데 왔으니 다시 공부부터 했다
너무 엉뚱한 곳에 왔다는 걸 인정하고 앉아서 검색을 시작했다.
히치하이킹 위키라는 게 있었다. 이스탄불을 검색하니 E80 도로를 타는 경로가 세 가지 나왔다.
누가 이걸 다 만들어 놨구나 싶었다. 위키님 감사합니다.
hitchwiki.org는 지금도 돌아간다. 터키 페이지에 E80 접근법이 그대로 정리돼 있다.
내가 고른 건 이키텔리 사나이(İkitelli Sanayi)역이었다.
거기서 내려 1km쯤 걸어가라고 적혀 있었다.

한 가지는 그때 몰랐다.
터키의 오토욜(otoyol, 고속도로)은 보행자가 본선에 들어가는 게 원칙적으로 금지돼 있다.
카라욜라르 총국(KGM) 안내서에도 보행자 진입 금지 표지가 나온다.
그날 내가 본선을 피해 톨게이트 쪽에 선 건 우연히 맞은 선택이었다.
히치하이킹인데 택시를 얻어 탔다
역에서 내려 위키가 알려준 데까지 걸었다. 차가 서기 좋게 갓길이 넓었다.
5분쯤 지났을 때 택시 한 대가 섰다.
저 택시 안 탈 거예요, 하고 손사래를 쳤다.
기사님이 공짜로 태워줄 테니 얼른 타라고 했다.
히치하이킹인데 택시를 타다니. 기분이 묘했다.

기사님은 호텔에서 자고 내일 가라고 권했다. 나는 가시는 길에 내려달라고 부탁했다.
택시는 에디르네 표지판이 보이는 고속도로 한복판에 나를 내려줬다.

나중에 생각해보니 에디르네까지 너무 멀어서 자고 가라고 한 것이었다. 멍청한 히치하이커 ever.
무슨 여행이 이런가 싶으면서도, 나는 고속도로 한복판에서 다시 엄지를 들었다.
터키에서 히치하이킹 하는 법
서는 자리가 절반이다. 터키는 오토욜 본선에 보행자가 들어가는 게 금지돼 있다. 톨게이트 요금소 앞, 주유소 진출입로처럼 차가 이미 속도를 줄인 데에 선다. 달리는 차를 세우려는 자리보다 서행 중인 차를 잡는 자리가 훨씬 잘 먹힌다.
경로는 hitchwiki에서 먼저 뽑는다. 터키 페이지에서 출발 도시를 찾으면 어느 도로를 타야 하는지, 대중교통으로 어디까지 가서 서야 하는지가 정리돼 있다. 이스탄불에서 서쪽으로 나가려면 E80이다.
시내에서 걸어 나가지 않는다. 지하철로 외곽까지 이동한 뒤 서는 게 맞다. 걸어서 붙으려다 나는 발만 상했다.
팻말을 만들고, 타기 전에 목적지부터 확인한다. 목적지 도시 이름을 크게 적어 들면 훨씬 잘 세워진다. 차가 서면 도시 이름을 먼저 대보고 서로 같은 곳을 말하는지 본다. 이 한 가지만 했어도 나는 레벤트에 안 갔다.
밤보다 낮, 혼자보다 둘. 타는 중에 느낌이 이상하면 다음 톨게이트에서 내려달라고 하면 된다. 여권과 현금은 몸에 지니고 배낭은 트렁크보다 눈에 보이는 곳에 둔다(Nomadic Matt의 히치하이킹 안전 가이드 참고).
안 되면 버스가 있다. 오토가르(otogar, 시외버스 터미널)에서 에디르네행 버스를 타면 된다. 정규 노선이라 시간이 정해져 있고 국경까지 이어지는 편도 있다. 한국 여권으로는 무비자로 터키에 들어갈 수 있다.
손가락 하나 드는 게 제일 힘들었다
손가락 하나 드는 그 순간이 그날 제일 넘기 힘든 고비였다.
한 번 넘고 나니 그다음은 오히려 쉬웠다. 두 번째로 엄지를 들 때는 아무렇지도 않았다.
계획대로 흘러간 건 하나도 없었다. 첫 차는 정반대로 데려갔고 두 번째 차는 택시였다.
그런데 그날 하루에 낯선 사람 둘이 나를 태웠고 둘 다 돈을 받지 않았다.
이 방법이 통한다는 걸 알게 된 하루였다고 생각한다.
그다음은 그 고속도로 한복판에서 만난 인연 이야기였다.
이 여행에서 손꼽는 하루가 여기서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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