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 · 알렉산드로폴리스 1] 그리스 국경을 넘어 바다에 풍덩, 등대가 전부인 도시
그 다리를 건넜다.
건너편이 그리스였다.
그리스와 튀르키예를 가르는 국경은 딱 하나다. 에브로스 강을 사이에 둔 큅시-입살라 검문소.
걸어서는 못 건너고 차량으로만 넘는다. 그래서 국경을 지나는 순간 그날 여행의 형태가 정해진다.
튀르키예 에디르네에서 며칠을 앓고 회복한 뒤, 나도 그 다리를 건넜다.
그해 여름의 그리스는 국가부도 위기와 자본통제 직후였다.
은행 앞에 줄이 늘어섰다는 뉴스를 유럽을 도는 내내 봤다. 국경을 지난다는 것만으로 마음이 괜히 무거웠다.
그날 올린 글의 제목은 이렇게 시작했다.
1. 알렉산드로폴리스까지 버스
2. 더위를 못참고 바다에 풍덩
3. 아테네까지 14시간 칙칙폭폭
국경, 도장 하나로 갈린 두 나라
에디르네에서 아침 버스를 탔다.

차창 밖으로 해가 떠오르며 강줄기가 들어왔다.
국경 자체가 그 강을 사이에 두고 갈린다는 걸 나중에 알았다. 아마 그 강이었다.

사진 촬영이 금지된 검문소를 지나며 여권에 도장을 하나 받았다.
정류장까지 가는 길은 강아지 한 마리가 앞장서서 안내해 줬다.
「멍멍아 고마웠어」라고 중얼거리며 뒤를 돌아보니 방금 지나온 튀르키예 쪽이 멀어지고 있었다.

읽을 수 없는 표, 알렉산드로폴리스 가는 길

버스 정류장에 붙은 표는 온통 그리스 문자였다. 표 하나 사는 데도 압박이 왔다.
아테네, 테살로니키, 알렉산드로폴리스 같은 지명만 겨우 알아봤다.
값도 만만치 않아서 잠깐 멈칫했다.
18시 30분 차를 기다리며 두 시간 남짓 동네를 둘러봤다.
처음엔 가볍게 거리를 걸었는데 걷다 보니 아테네까지 걸어갈 기세로 한참 나아가 있었다.
국경 마을에 LIDL이 하나 있었다. 유럽에 들어왔다는 게 그 간판에서 실감이 났다.

빵 한 봉지가 0.89유로였다. 터키에서 리라로 계산하다가 유로로 바뀌니 머릿속 환산이 한 번 엉켰다.
정작 표를 산 버스는 놓쳤다. 남쪽으로 조금 내려와 다른 방향에서 출발하는 버스에 올랐다.
가격은 오히려 더 쌌다. 옆에 있던 중국인 아주머니가 도와준 덕에 알렉산드로폴리스까지 무사히 닿았다.
더위를 못 참고 바다에 풍덩

버스를 갈아타고 도착한 알렉산드로폴리스는 아담한 항구 도시였다.

도시를 대표하는 게 등대 하나다. 그때 기록에 이게 도시의 전부라고 해도 된다고 적어놨다.
솔직히 볼 게 없었다. 그런데 그 등대 하나가 도시 분위기를 잡아주기는 했다.
너무 더웠다. 사람이 적은 바다를 찾아 구석에서 수영복으로 갈아입고 곧장 몸을 던졌다.

배낭을 자갈 위에 내려놓고 들어갔다. 짐이 저게 전부다.
물속에 들어가자 더위로 무거웠던 정신이 순식간에 개운해졌다.

항구 쪽으로 걸어 나오니 사모트라키섬을 오가는 배편이 눈에 들어왔다.
섬에 들어가면 다른 섬으로 넘어가는 배편이 마땅치 않았다. 그래서 이번 일정에는 넣지 못했다.
언젠가 다시 온다면 저 배를 타보고 싶다.

밤기차를 기다렸다
항구 옆 매표소에서 아테네행 표를 끊었다.
표에 찍힌 시각은 15시 11분이었는데 기차는 한참 뒤에야 왔다.
그 기차 이야기는 다음 편에 적는다. 하루로 안 끝나는 이동이었다.
터키-그리스 국경 넘는 법
큅시-입살라 검문소는 에브로스 강(튀르키예에서는 메리치강)을 사이에 둔 튀르키예-그리스 유일의 육로 통행로로, 24시간 운영된다.
다리는 1958년에 놓인 것을 지금도 쓴다. 더 넓은 신규 교량이 2027년 완공을 목표로 공사 중이다.
도보 통행은 금지다. 차량·오토바이·자전거로만 건넌다.
대기 시간은 평소 5~15분 안팎이다.
출퇴근 시간대에는 30분에서 한 시간까지 늘어난다. 오전 7~9시와 오후 4~6시다.
여름 성수기나 그리스 정교 부활절 즈음엔 최대 두 시간이다.
튀르키예 케샨에서 입살라까지는 미니버스로 약 5달러, 40분이면 닿는다. 여권은 필수다.
알렉산드로폴리스 등대와 사모트라키
알렉산드로폴리스의 등대는 1880년에 세워져 지금도 도시의 상징으로 남아 있고, 빛이 35km 밖에서도 보인다고 한다. 그날 밤기차를 기다리며 봤던 불빛도 아마 같은 등대였지 싶다. 사모트라키로 가는 배편도 여전히 다니고 있어서, 이번엔 못 갔던 그 섬도 언젠가 노선에 넣어볼 만하다.
그리스 여행 기본 정보
한국 여권으로는 셍겐 지역 무비자 90일 체류가 된다. 통화는 유로이고 큰 도시는 카드 결제가 대체로 된다.
육로로 국경을 지날 계획이면 여권과 차량 편을 미리 맞춰 둔다.
국경 하나에 하루를 썼다
돌아보면 그날은 국경 하나를 넘는 데 하루를 통째로 썼다.
버스를 갈아타고 바다에 몸을 던지고 나서야 다음 나라에 발을 디뎠다.
편하게 보자면 비행기 한 번이면 끝날 거리다. 그 느린 이동이 오히려 그리스를 몸으로 먼저 알게 해줬다.
지도에서 선으로만 보던 걸 그날 몸으로 지났다.
검문소 앞에서 여권을 꺼내고 도장 찍히는 소리를 듣고서야 실감이 났다.
그날 밤 아테네행 기차를 탔다.
표에 찍힌 시각보다 두 시간 늦게 왔고, 타고 나서야 열네 시간짜리인 걸 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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