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엔나 11] 슈니첼 8유로, 정식 식당 안 가고 먹는 법
포장해 왔다.
예상 못 한 게 깔려 있었다.
강가에 앉아 있다가 숙소로 돌아왔다. 씻고 좀 눕다가 밤 9시가 다 돼서 다시 나왔다.
그날 제대로 먹은 게 점심 한 끼였다. 한인문화회관에서 먹은 한식이었고, 그게 오후 2시였다.
비엔나에 왔으니 슈니첼은 한 번 먹기로 마음먹고 있었는데, 정식 식당에 앉을 생각은 없었다.
저녁을 먹으러 나왔다

그날 제대로 먹은 게 점심 한 끼였다. 한인문화회관에서 먹은 한식이었고, 그게 오후 2시였다. 거리로 나오니 이미 어두웠다. 상점가 간판에 불이 들어와 있었고 유리 지붕이 덮인 통로가 이어졌다. 문을 닫은 가게가 많았다. 여행에서 이 시간대가 제일 애매하다. 배는 고픈데 식당은 정리에 들어가고, 대충 때우자니 아깝고.
사진 메뉴판 앞에서 골랐다

문이 열린 가게를 하나 찾았다. 카운터 위에 큰 판이 걸려 있고 거기 음식 사진이 스무 칸쯤 붙어 있었다. 이런 메뉴판이 반갑다. 말을 못 해도 손가락으로 가리키면 되기 때문이다. 이 여행에서 사진 메뉴판이 있는 집을 만나면 그것만으로 마음이 놓였다. 사진을 찍어뒀더니 지금 가격이 그대로 읽힌다. 비너 슈니첼 7.99유로, 닭고기 슈니첼도 7.99유로, 감자전 6.99유로, 치킨 윙 9.99유로. 아래쪽에는 3.49유로짜리 간단한 것들이 따로 있었다.
비엔나에 왔으니 슈니첼은 한 번 먹기로 마음먹고 있었다. 그런데 정작 그걸 정식 식당에서 먹지는 않았다. 8유로짜리를 골랐고 포장을 부탁했다.
밥이 같이 나왔다

받아 들고 뚜껑을 열어보니 예상과 달랐다.
밥이 깔려 있었다. 흰 쌀밥 위에 튀긴 커틀릿 두 장이 얹혀 있고 한쪽에 상추와 토마토가 놓여 있었다. 오스트리아에서 슈니첼 하면 감자 샐러드나 감자튀김이 같이 나오는 걸로 알고 있었다. 그런데 이 집은 밥을 줬다. 관광지 정식 레스토랑이 아니라 동네 사람들이 사 가는 가게라 그런 것 같았다. 나한테는 이게 더 좋았다. 한 달 넘게 빵을 먹던 참이었다. 그날 낮에 한식을 먹고 저녁에 또 밥이 나왔으니, 이날은 이 여행에서 드물게 밥을 두 번 먹은 날이 됐다.
어제 지쳐서 지나쳤던 자리

포장을 들고 링 쪽으로 걸었다. 국회의사당 앞을 지났다.
전날 낮에 여기서 셀카를 네 장 찍었다. 지금 그 사진들을 보면 표정이 점점 굳어간다. 아침부터 궁전과 미술관과 박물관을 돌고 온 다리로 서 있던 자리였다. 밤에 다시 보니 완전히 달랐다. 흰 기둥에 조명이 올라가 있고 앞의 분수도 밝았다. 차가 지나갔고 사람은 몇 없었다.
같은 건물인데, 지쳐서 볼 때와 밥 들고 지나갈 때가 이렇게 다르다.
어제와 다른 게 걸려 있었다

광장에 도착하니 어제처럼 스크린이 켜져 있고 사람들이 앉아 있었다.
그런데 걸린 게 달랐다. 어제는 흰 벽 앞에서 혼자 춤을 추는 무용 영상이었는데, 오늘은 공연장이었다. 조명이 번쩍이고 드럼이 있고 사람들이 꽉 찬 객석이 화면에 잡혔다.

앞줄 사람들이 하나둘 일어나 몸을 흔들기 시작했다. 나도 대충 박자를 맞췄다. 무슨 밴드인지도 모른 채였다. 숙소에 돌아와 찾아보고서야 디페쉬 모드의 실황이라는 걸 알았다. 매일 다른 걸 튼다는 걸 그때 알았다. 이건 하루짜리 행사가 아니라 여름 내내 이어지는 것이었고, 어제 본 게 우연히 무용이었고 오늘이 우연히 록 공연이었을 뿐이다. 그러니까 어제 내가 "이 사람들은 문화를 즐길 여유가 있구나" 하고 감탄했던 그 장면은, 여기서는 그냥 여름이면 늘 있는 것이었다.
자정까지 있었다

포장을 무릎에 놓고 앉아서 먹었다. 스크린을 보면서.
광장 가장자리에 푸드부스가 늘어서 있고 조명이 켜져 있었다. 거기서 사 먹어도 됐지만 나는 8유로짜리를 들고 왔다. 부스 음식은 축제 값이라 비싸다.
마지막 사진이 밤 11시 41분이다. 그때까지 앉아 있었다.
이틀이면 관광지가 아니게 된다
이날 밤이 이상하게 기억에 남아 있다. 특별한 게 없어서다.
전날 이 광장에 처음 왔을 때 나는 사진을 여러 장 찍었고, 이게 유럽이구나 싶었고, 한국과 비교했다. 그런데 하루 만에 다시 왔을 때는 그런 게 없었다. 저녁을 사서 앉을 데를 찾다가 여기로 온 것에 가까웠다. 여행지에서 같은 곳에 두 번 가면 이런 일이 생긴다. 첫 번째는 보러 가는 것이고 두 번째는 그냥 가는 것이다. 두 번째부터 그 자리가 내 생활 반경 안에 들어온다. 비엔나에 사흘 있었는데, 이 도시가 낯설지 않아진 건 궁전이나 미술관 때문이 아니라 같은 광장에 두 번 간 것 때문이었던 것 같다.
비엔나에서 싸게 저녁 해결하기
사진 메뉴판이 있는 가게를 찾는다. 관광지 한복판보다 한 블록 안쪽, 현지 사람들이 사 가는 그릴·케밥 계열 가게에 많다. 정식 레스토랑에서 슈니첼을 시키면 20유로를 훌쩍 넘지만, 이런 가게는 절반 이하다. 밥이나 감자를 곁들여 한 끼가 된다.
포장이 훨씬 싸다. 오스트리아는 자리에 앉으면 서비스 요금이 값에 반영된다. 같은 음식이라도 들고 나오면 눈에 띄게 저렴하고, 여름밤에는 어차피 밖에 앉는 게 낫다.
광장에 음식을 들고 들어가도 된다. 시청 앞 필름 페스티벌은 입장료가 없고 반입도 막지 않는다. 부스 음식은 축제 물가라 슈퍼마켓이나 동네 가게보다 비싸다. 마실 것만 부스에서 사도 된다.
슈퍼마켓은 저녁에 일찍 닫는다. 오스트리아는 평일 저녁 7~8시면 대부분 문을 닫고 일요일은 아예 안 연다. 늦게까지 여는 건 기차역 안 매장과 이런 그릴 가게 정도다. 일요일 저녁 식사는 토요일에 미리 생각해두는 편이 안전하다.
슈니첼은 어디서 먹어야 하나
비엔나에 오면 한 번은 먹게 되는데, 어디서 먹느냐로 값이 세 배까지 갈린다.
| 값 | 어떤 곳 | |
|---|---|---|
| 관광지 정식 레스토랑 | 25~30유로 | 접시에 담겨 나오고 자리값이 붙는다 |
| 동네 식당(Gasthaus) | 15~20유로 | 현지 사람들이 가는 곳. 양이 많다 |
| 그릴·테이크아웃 | 7~9유로 | 내가 먹은 방식. 사진 메뉴판이 있다 |
이름을 알고 시켜야 한다. 메뉴판에 그냥 `Schnitzel`이라고 적힌 것과 `Wiener Schnitzel`은 다르다.
- 비너 슈니첼(Wiener Schnitzel) — 송아지고기로만 만든 것. 법으로 이름이 보호돼 있다. 그래서 비싸다.
- 슈니첼 비엔나 방식(Schnitzel Wiener Art) — 돼지고기. 맛은 비슷하고 값은 절반이다. 대부분 이걸 먹는다.
- 푸텐슈니첼(Putenschnitzel) — 칠면조. 더 싸고 담백하다.
곁들여 나오는 게 다르다. 정식 식당은 감자 샐러드(Erdäpfelsalat)나 파슬리 감자를 준다. 내가 간 테이크아웃 가게는 밥을 줬다. 관광 안내서에는 안 나오는 조합인데, 배낭여행자한테는 이쪽이 더 반갑다.
레몬은 짜서 먹는 게 맞다. 튀김옷이 두껍고 단맛이 없어서 레몬 없이 먹으면 물린다.
유럽에서 밤 9시에 저녁 먹기
여행 다니면서 이 시간대에 자주 곤란해진다. 유럽 도시는 대개 식당 주방이 21시~22시에 닫는다.
비엔나에서 그 시간에 열려 있는 것들:
- 소시지 노점(Würstelstand) — 자정 넘게까지 하는 곳이 많다. 5유로 안팎.
- 케밥·그릴 가게 — 관광지 뒷골목에 있고 늦게까지 한다. 사진 메뉴판이 붙어 있는 집이 이쪽이다.
- 기차역 안 매장 — 비엔나 중앙역·서역 매장은 일요일에도 연다.
- 여름 축제장 — 시청 앞 푸드 부스는 자정까지 한다.
한 가지 요령: 낮에 지나가면서 늦게까지 여는 가게를 미리 봐둔다. 배가 고파진 다음에 찾기 시작하면 이미 늦다. 나는 그날 운이 좋았을 뿐이다.
다녀와서
비엔나에서 먹은 것 중에 제일 기억에 남는 건 자허토르테가 아니라 이 포장 슈니첼이다.
값도 8유로였고 가게 이름도 모르고 사진도 한 장뿐이다. 그런데 그날 밤 광장에 앉아 그걸 먹으면서 본 화면이 남았다.
여행에서 오래 남는 건 대개 이런 쪽이다. 유명해서 찾아간 것보다, 배가 고파서 아무 데나 들어갔던 것.
같은 곳에 두 번째로 가면 그때부터 그 자리가 내 생활 반경에 들어오는 것 같습니다. 비엔나가 낯설지 않아진 게 궁전 때문이 아니라 이 광장 때문이었어요.
다음 편은 마지막 날입니다. 도시를 떠나기 전에 궁전을 하나 더 갔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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