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엔나 3] 제체시온, 클림트 벽화 앞에서 사진을 못 찍었다

비엔나 여행기 · 3편
금색 양배추가 얹힌 건물에
지나가다 들어갔다.
제일 오래 앉아 있던 방은
사진이 한 장도 없다.

쇤브룬에서 나와 지하철을 타고 비엔나 시내로 돌아오는 길이었다. 역에서 올라오자마자 금색 덩어리가 눈에 들어왔다. 계획에 없던 곳이었다. 전날 밤 벼락치기 목록에도 이 건물은 없었다. 그냥 저게 뭔가 싶어서 걸어갔고, 표를 끊고 들어갔다.

그 한 시간이 이 도시에서 제일 기억에 남는 시간이 됐다.

금색 덩어리가 얹혀 있었다

금색 잎으로 짠 돔. 비엔나 사람들은 이걸 양배추라고 부른다
잎사귀를 하나하나 짜서 만든 구(球). 처음 봤을 때는 그냥 금색 덩어리였다

흰 건물이 있고 그 위에 금색으로 된 둥근 것이 얹혀 있었다. 가까이 가서 보니 잎사귀를 하나하나 짜서 만든 구(球)였다. 비엔나 사람들이 이걸 금색 양배추라고 부른다는 건 나중에 알았다. 처음 봤을 때는 그냥 금색 덩어리였다. 건물 정면에는 독일어가 큼직하게 새겨져 있었고 무슨 뜻인지는 몰랐다. 시대마다 그 시대의 예술이 있고, 예술에는 자유가 있어야 한다는 뜻의 문장이었다. 이 건물이 왜 여기 있는지가 그 한 줄에 다 들어 있는데, 그때는 읽지 못했다.

표를 끊고 들어갔다

들어갈 생각으로 간 게 아니었다. 지나가다 봤고, 궁금해서 들어갔다.

표는 노란 종이였다. `secession`이라고 인쇄된 작은 티켓이었고, 그걸 시내 지도 위에 올려놓고 사진을 찍었다. 그때 나는 표를 자주 찍었다. 나중에 뭘 봤는지 정리하려고.

안은 완전히 비어 있었다

들어가서 처음 든 생각은 아무것도 없다는 것이었다.

흰 벽, 흰 천장, 나무 바닥. 방이 크고 텅 비어 있었다.

흰 방에 걸린 드로잉 연작
액자에 넣은 드로잉이 일정한 간격으로 걸려 있다. 하나같이 작고 흐릿했다

벽에 걸린 건 액자에 넣은 드로잉뿐이었다. 크기가 손바닥만 하고 선이 흐려서, 가까이 가야 뭔가 그려져 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그것도 일정한 간격으로 띄엄띄엄. 비어 있는 벽이 걸린 것보다 훨씬 넓었다. 방금 쇤브룬에서 나온 참이었다. 거기는 벽마다 금박이 붙어 있고 천장까지 그림이 차 있었다. 두 시간 만에 정반대 방에 들어와 있었다.

나무로 짠 기차 모형 설치작품
장난감 같기도 하고 설치작품 같기도 했다. 흰 방에 이것 하나만 놓여 있었다

다음 방에는 나무로 짠 기차 모형이 놓여 있었다. 레일이 깔려 있고 나무를 깎아 만든 나무와 신호등이 서 있었다. 어린이용 장난감과 구별이 안 갔다. 이게 작품인지 아닌지를 판단할 근거가 나한테 없었다. 미술관에 놓여 있으면 작품이고 거실에 있으면 장난감인 건데, 그 차이가 물건에 있는 게 아니라 놓인 자리에 있다는 게 좀 이상하게 느껴졌다. 스물몇 살의 나는 그걸 앞에 두고 한참 서 있었다.

어두운 방 벽에 돌아가던 흑백 영상
자작나무 숲이 흑백으로 흔들리던 화면. 방이 통째로 어두웠다

또 다른 방은 아예 어두웠다. 벽 하나에 영상이 돌아가고 있었고, 자작나무 숲이 흑백으로 흔들리는 화면이었다. 소리는 있었는지 없었는지 기억나지 않는다. 여기까지 오면서 든 생각은 하나였다. 이 건물은 뭘 보여주려는 게 아니라 비워두려는 것 같다. 같은 도시에서 걸어서 갈 수 있는 거리에 이렇게 다른 두 건물이 있다는 게 이상했는데, 이유는 조금 뒤에 알게 된다.

이 건물이 왜 지어졌는가

유리 상자 안의 건물 모형. 금색 돔이 그대로 얹혀 있다
이 건물 자체를 축소해 만든 모형. 금색 돔이 그대로 얹혀 있다

이 건물은 19세기 말에 젊은 예술가들이 기존 미술계에서 떨어져 나오면서 자기들 전시장으로 지은 곳이다. 제체시온이라는 이름 자체가 분리·탈퇴라는 뜻이다.

그 무리에 클림트가 있었다. 초대 회장이었다.

그러니까 이 건물은 작품을 보관하려고 지은 미술관이 아니라, 여기 걸 수 없으니 우리가 짓겠다는 선언으로 지어진 건물이다. 정면에 새겨진 그 문장이 그래서 거기 있는 것이다.

들어가서 아무것도 없다고 느낀 그 흰 방들이, 실은 그게 요점이었다.

지하에는 벽화가 있다

문에 붙은 촬영 금지 표지. 노란 표를 손에 들고 있다
뒤쪽 문에 카메라를 그은 표지가 붙어 있다. 지하에 사진이 없는 이유가 여기 있다

제체시온 지하에는 클림트가 그린 대형 벽화가 상설로 걸려 있다. 「베토벤 프리즈」라고 부른다. 베토벤 교향곡 9번을 그림으로 옮긴 것으로, 세 벽면에 길게 이어진다. 이날 그 앞에서 꽤 오래 앉아 있었다. 벽화를 마주 보고 놓인 긴 의자에 앉아서, 그림이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흘러가는 걸 따라갔다. 무엇을 그린 건지는 몰랐다. 그런데도 머릿속이 그림으로 꽉 차는 느낌이 들었다. 이 여행에서 그런 느낌을 받은 게 몇 번 없다.

나중에 찾아보고 알았는데, 그게 그렇게 느껴지도록 만들어진 그림이었다. 길이가 34미터이고 세 벽면을 돌아가며 하나의 이야기로 이어진다. 왼쪽에서 시작해 오른쪽 끝에서 끝나도록 읽는 순서가 정해져 있는 그림이다. 내용은 베토벤 교향곡 9번을 그림으로 옮긴 것이다. 약한 인간이 도움을 청하고, 갑옷 입은 기사가 나서고, 괴물과 유혹이 가로막고, 마지막 벽에서 껴안는 두 사람으로 끝난다. 「환희의 송가」의 그 대목이다.

그러니까 내가 "머릿속이 꽉 찬다"고 느낀 건 우연이 아니었다. 음악의 구조를 그대로 벽에 펴놓은 것이었고, 나는 그 위를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따라 읽고 있었던 것이다. 이 그림은 원래 1902년 전시 한 번을 위해 그린 것이었다. 전시가 끝나면 뜯어낼 계획이었는데 남았고, 지금은 이 건물의 유일한 상설 전시가 됐다. 나는 오랫동안 이 벽화를 클림트의 대표작과 헷갈리고 있었다. 그 유명한 금색 그림은 여기 있는 게 아니라 도시 반대편 다른 궁전에 있다. 그건 이틀 뒤에 보게 된다.

근처에 이상한 흉상이 하나 있다

건물을 나와 걷다가 공원 잔디에 놓인 흉상을 봤다. 받침돌에 낯선 글자가 새겨져 있었다.

에스페란토였다. 자멘호프라는 사람의 흉상이었고, 그는 이 언어를 만든 사람이었다. 세계 어디서나 통하는 공용어를 만들려던 시도였고, 결국 그렇게 되지는 않았다.

비엔나에는 에스페란토 박물관도 있다. 이날 나는 이미 다리가 무거워서 들어가지는 않았다.

비엔나에서 미술관을 고른다면

비엔나은 미술관이 많은 도시라 하루에 다 볼 수 없다. 성격이 아주 다르니 목적에 맞춰 고르는 편이 낫다.

제체시온은 규모가 작다. 상설은 지하의 「베토벤 프리즈」 하나이고, 지상은 현대미술 기획전으로 계속 바뀐다. 성인 13유로이고 이 한 장으로 기획전과 프리즈를 다 본다. 영어 오디오가이드는 3유로 별도. 화요일부터 일요일 10시~18시, 월요일 휴관이다.

매달 첫째 수요일은 무료다. 클림트 벽화를 공짜로 보는 방법이 이거 하나뿐이라 사람이 몰린다. 일정이 맞으면 아침에 가는 게 좋다.

한 시간이면 충분하다. 지상 기획전이 20~30분, 지하 프리즈가 20~30분이다. 다만 프리즈 앞에 긴 의자가 놓여 있어서, 앉으면 예정보다 오래 있게 된다. 내가 그랬다.

지하는 촬영 금지다. 문에 카메라를 그은 표지가 붙어 있다. 지상 기획전은 대개 촬영이 되지만 작품마다 다르니 입구 안내를 보는 편이 낫다. 최신 전시와 요금은 공식 사이트에서 확인할 수 있다.

미술사박물관은 옛 회화 중심으로 규모가 크다. 브뤼헐 컬렉션이 유명하고, 제대로 보려면 반나절이 필요하다.

벨베데레는 클림트의 그 금색 그림이 있는 곳이다. 궁전 건물이라 정원까지 묶어 도는 재미가 있다.

세 곳을 하루에 다 넣지는 않는 게 좋다. 나는 이날 제체시온 다음에 큰 박물관을 하나 더 갔고, 그 결과를 오후에 치렀다.

다녀와서

비엔나에서 본 것 중 가장 오래 앉아 있었던 게 이 건물 지하였다. 그런데 사진이 한 장도 없다.

이유는 사진 한 장에 남아 있다. 그날 안에서 찍은 셀카를 보면 뒤쪽 문에 카메라에 사선을 그은 표지가 붙어 있다. 찍지 않은 게 아니라 찍을 수 없었던 것이다.

그래서 이 편에 붙은 사진은 전부 금색 돔과 흰 방들뿐이다. 정작 오래 본 것은 남아 있지 않고, 지나가며 본 것만 남았다.

기록이란 게 자주 그런 식이다.

이 건물은 계획에 없었는데 제일 오래 기억에 남았습니다. 여행에서 이런 게 종종 있는 것 같아요.

다음 편은 길 건너 박물관입니다. 교과서에서만 보던 걸 실물로 만났는데 크기가 예상과 완전히 달랐어요.

SERIES
비엔나 여행기 · 전 13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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