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엔나 6] 중앙묘지 71번 트램, 공연장 대신 여기로 갔다

비엔나 여행기 · 6편
음악의 도시라는데
공연은 한 편도 못 봤다.
대신 트램 71번을 타고
종점까지 갔다.

오후 4시가 넘어서 나는 시내를 벗어나는 트램에 앉아 있었다. 링에서 한참 멀어졌다.

비엔나가 음악의 도시라는 말은 오기 전부터 들었다. 그런데 그날까지 내가 본 건 궁전과 박물관과, 공사 가림막에 덮인 오페라극장 외벽이었다.

공연을 볼 돈도 시간도 없었다. 그래서 다른 데로 갔다.

어쩌다 묘지로 갔느냐 하면

비엔나이 음악의 도시라는 말은 오기 전부터 들었다. 그런데 그날까지 내가 본 건 궁전과 박물관과 오페라극장 외벽이었다. 오페라극장은 공사 중이라 가림막에 덮여 있었고, 공연을 볼 돈도 시간도 없었다. 지도를 보다가 시내 바깥쪽에 커다란 초록색 구역이 있는 걸 봤다. 중앙묘지였다. 거기에 음악가들이 묻혀 있다고 적혀 있었다. 공연장 대신 묘지에 가는 게 이상한 선택 같기도 했지만, 그날의 나는 이미 실내에 들어갈 힘이 없었다. 앉아서 갈 수 있고 도착하면 걷기만 하면 되는 곳이 필요했다.

표지판이 하나 서 있었다

음악가의 묘를 가리키는 표지판
`GRÄBER DER MUSIKER`. 화살표를 따라가면 나무가 둘러싼 원형 구역이 나온다

묘지는 예상보다 훨씬 컸다. 정문에서 안쪽까지 도로가 나 있고 그 도로로 버스가 다닌다. 묘지 안에 버스 정류장이 있다. 한참 걸어 들어가니 표지판이 하나 서 있었다. `GRÄBER DER MUSIKER`. 음악가들의 묘.

명예묘역 배치도. `EHRENHAIN 32A`라고 적혀 있다
입구에 붙은 명예묘역 배치도. `EHRENHAIN 32A`라고 적혀 있다

화살표를 따라가자 나무가 둘러싼 원형 구역이 나왔다. 여기 무덤들이 둥글게 모여 있었다.

첫 번째가 베토벤이었다

베토벤의 묘
돌기둥에 금색 리라 하나, 그 아래 이름 하나. 생각보다 작았다

돌기둥 하나가 서 있고 그 위에 금색 리라가 새겨져 있었다. 아래에 이름 하나. 그게 전부였다.

생각보다 작았다. 무릎에서 어깨 정도 높이의 흰 비석이었고, 앞에 꽃이 심겨 있었다.

교과서에 실린 초상화로만 알던 사람이 여기 묻혀 있다는 게 이상했다. 그림 속 인물이 실제로 살았고 죽었고 어딘가에 묻혔다는 당연한 사실이, 비석 앞에 서니 새삼스러웠다.

모차르트는 없다

모차르트 기념비. 여기 묻혀 있지는 않다
슬퍼하는 여인상이 기대어 있다. 그런데 이건 무덤이 아니라 기념비다

그 옆에 모차르트의 이름이 새겨진 흰 조형물이 서 있다. 슬퍼하는 여인상이 기대어 있는 형태다. 그런데 이건 무덤이 아니라 기념비다. 모차르트는 여기 묻혀 있지 않다. 그는 다른 묘지의 공동묘혈에 묻혔고 정확한 위치를 아무도 모른다. 살아 있을 때 그만큼 유명했던 사람인데도 그렇다. 그래서 비엔나은 음악가들을 한자리에 모으면서 모차르트만은 이름만 세워두었다. 실물 없이 이름만 있는 자리다. 그 앞에 서서 한참 있었다. 유명하다는 것과 남는다는 것이 같은 말이 아니라는 게, 이 빈 자리에 그대로 놓여 있었다.

그 옆이 슈베르트였다

슈베르트의 묘
베토벤 맞은편에 있다. 서른한 살에 죽었고 비석에 흉상이 얹혀 있다

베토벤 반대편에 슈베르트가 있다. 슈베르트는 서른한 살에 죽었다. 비석에는 흉상이 얹혀 있다. 조금 더 걸으면 요한 슈트라우스가 있고, 브람스가 있다. 몇 걸음 간격으로 이름들이 이어진다.

요한 슈트라우스의 묘. 악기를 든 조각이 붙어 있다
요한 슈트라우스의 묘. 악보와 악기를 든 조각이 비석에 붙어 있다

슈트라우스의 비석에는 조각이 붙어 있는데, 악기를 든 인물들이 돌 위에 새겨져 있다. 살아서 쓴 음악이 죽고 나서 무덤 장식이 된 것이다. 「아름답고 푸른 도나우」를 쓴 사람이고, 내가 그 이틀 뒤에 실제로 그 강가에 앉아 있게 된다. 한 사람씩 보면 그냥 무덤인데, 이렇게 모아놓으니 다른 게 보였다. 이 도시가 이 사람들을 붙잡아두고 싶어 했다는 것. 흩어져 있던 무덤을 옮겨와 한자리에 모았고, 못 옮긴 사람은 이름만이라도 세웠다.

꽃이 시들지 않았다

꽃이 놓여 있었다
7월 하순의 평일 오후, 시내에서 한참 떨어진 묘지. 그런데 꽃은 새것이었다

이날 본 무덤마다 꽃이 놓여 있었다. 심어놓은 것도 있고 누가 가져다 둔 것도 있었다.

시들지 않은 꽃이었다. 그러니까 최근에 누가 왔다는 뜻이다.

7월 하순의 평일 오후였고, 시내에서 한참 떨어진 묘지였고, 사람은 거의 없었다. 그런데도 꽃은 새것이었다. 그때 든 생각이 이 도시에 대한 인상을 바꿨다. 비엔나이 음악의 도시인 건 오페라극장이 크고 공연이 많아서가 아니라, 평일 오후에 여기까지 와서 꽃을 두고 가는 사람들이 있어서였다. 그건 관광이 아니라 생활에 가까웠다.

나는 그날 공연을 한 편도 보지 못했다. 그런데 이 도시가 왜 그렇게 불리는지는 여기서 알았다.

비엔나 중앙묘지 가는 법

시내에서 남동쪽으로 떨어져 있다. 트램 71번을 타고 `Zentralfriedhof 2.Tor`, 그러니까 중앙묘지 제2문에서 내리면 된다. 음악가 묘역은 이 2문에서 가장 가깝다. 비엔나 사람들이 죽음을 완곡하게 말할 때 "71번을 탄다"고 하는 표현이 여기서 나왔다.

지하철로도 갈 수 있지만 권하지 않는다. 가장 가까운 U3 짐머링(Simmering)역에서도 묘지까지 2킬로미터쯤 남는다. 그때 나도 이걸 미리 적어두고 갔다.

11번 트램도 같은 문에 선다. 71번이 유명해서 그것만 알려져 있는데, 노선이 두 개다. 시내 어디서 출발하느냐에 따라 편한 쪽이 다르다.

입장은 무료다. 문 여는 시간은 계절마다 다른데, 대략 11월~2월은 8시~17시, 3월부터 점점 늘어 여름에는 저녁까지 연다. 5월부터 8월까지는 목요일만 20시까지 열어서, 해 긴 여름 저녁에 사람 없는 묘지를 걷고 싶다면 목요일이 답이다. 정확한 시간은 비엔나 묘지관리소 안내에서 볼 수 있다.

2번 문 안쪽에 인포포인트가 있다. 여기서 명예묘역 안내도를 받을 수 있다(영어판 있음). 묘지가 워낙 넓어서 이거 없이 들어가면 헤맨다.

한 시간에서 한 시간 반이면 음악가 구역과 중앙 성당까지 볼 수 있다. 전체를 다 돌 생각은 하지 않는 게 좋다. 축구장 수백 개 넓이다.

여기가 목적지라면 신발을 편한 걸 신는 게 낫다. 대부분이 흙길과 자갈길이다.

누구의 묘가 어디 있나

2번 문으로 들어가 정면 길을 따라 걸으면 왼쪽에 32A 구역이 나온다. 음악가 명예묘역이다. 나무가 둘러싼 원형 구역 안에 묘가 모여 있어서, 한 번 찾으면 그 안에서는 몇 걸음 간격이다.

  • 베토벤 — 흰 오벨리스크에 금색 리라. 1827년에 다른 묘지에 묻혔다가 1888년 여기로 옮겨졌다.
  • 모차르트기념비만 있다. 유해는 성 마르크스 묘지의 공동묘혈에 묻혔고 정확한 위치를 모른다.
  • 슈베르트 — 베토벤 맞은편. 서른한 살에 죽었고, 생전에 베토벤 곁에 묻히길 원했다는 이야기가 전한다.
  • 브람스 · 요한 슈트라우스 2세 · 주페 — 같은 원 안에 이어진다.

살리에리는 여기 없다. 영화 「아마데우스」로 유명해진 그 사람은 다른 구역(0구역)에 묻혀 있다. 찾아가려면 별도로 물어봐야 한다.

묘지 말고도 볼 게 있다

중앙 성당(카를 보로메우스 성당)은 묘지 한가운데 있는 유겐트슈틸 건축물이다. 2번 문에서 곧장 걸어 들어가면 정면에 보인다. 음악가 묘역에서 몇 분 거리라 같이 보게 된다.

장의 박물관(Bestattungsmuseum)이 2번 문 옆 지하에 있다. 비엔나 사람들이 죽음을 어떻게 다뤄왔는지를 모아둔 곳인데, 관·마차·재활용 관 같은 실물이 나온다. 이 도시에서 죽음이 왜 이렇게 큰 자리를 차지하는지가 여기서 좀 설명된다. 입장은 유료이고 규모는 작다.

사슴과 다람쥐가 산다. 묘지가 워낙 넓고 조용해서 야생동물이 그냥 돌아다닌다. 이건 안내판에도 적혀 있다.

다녀와서

관광지 목록에 잘 안 올라가는 곳이다. 실제로 그날 거기서 마주친 사람은 손에 꼽는다.

그런데 이 여행에서 비엔나을 떠올릴 때 제일 먼저 나오는 장면이 이 오후다. 지쳐서 실내를 포기하고, 대신 앉아서 갈 수 있는 곳을 찾다가 도착한 묘지.

계획해서 간 곳이 아니었다. 계획대로 갔으면 아마 미술사박물관에 들어갔을 것이고, 이 오후는 없었을 것이다.

공연 한 편 못 보고 묘지에 다녀와서 음악의 도시를 실감한 게 좀 이상하긴 합니다. 그런데 이 도시에서 제일 먼저 떠오르는 오후가 여기예요.

다음 편은 그날 밤입니다. 시내로 돌아왔더니 낮에 몇 번이고 지나쳤던 광장이 완전히 다른 곳이 되어 있었어요.

SERIES
비엔나 여행기 · 전 13편

1. [비엔나 1] 도착 첫날 밤, 지하철 표 한 장 때문에 걸었다

2. [비엔나 2] 쇤브룬 궁전, 오래 붙잡힌 건 궁전 안이 아니었다

3. [비엔나 3] 제체시온, 클림트 벽화 앞에서 사진을 못 찍었다

4. [비엔나 4] 자연사박물관 비너스, 실물은 생각보다 훨씬 작다

5. [비엔나 5] 링슈트라세 하루 완주, 점심이 오이 한 개였다

6. [비엔나 6] 중앙묘지 71번 트램, 공연장 대신 여기로 갔다 ← 이 글

7. [비엔나 7] 시청 앞 광장 야외상영, 낮에 봤을 땐 몰랐다

8. [비엔나 8] 구시가 반나절, 사진은 백 장인데 남는 게 없었다

9. [비엔나 9] 한인문화회관, 한식당인 줄 알고 들어갔다

10. [비엔나 10] 도나우타워 18유로, 결국 안 올라갔다

11. [비엔나 11] 슈니첼 8유로, 정식 식당 안 가고 먹는 법

12. [비엔나 12] 벨베데레 「키스」, 사진은 못 찍는다

13. [비엔나 13] 프라하행 버스가 고속도로에 멈췄다

시리즈 이어 읽기

댓글

이 블로그의 인기 게시물

90일간의 세계여행 - 배낭 메고 23개국

홍콩 여행 첫날, 피크트램 타고 빅토리아피크 야경까지

삼겹살을 못 찾아 베이컨을 구웠다, 부다페스트 호스텔 주방의 마지막 아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