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스트리아 · 비엔나 7] 비엔나 시청 앞 광장 야외상영, 낮에 봤을 땐 몰랐다
그냥 넓은 공터인 줄 알았다.
같은 자리가 아니었다.
중앙묘지에서 시내로 돌아오니 해가 지고 있었다. 숙소에 들어가 잠깐 누웠다가 다시 나왔다.
그날 비엔나 시청 앞을 세 번쯤 지나갔다.
박물관에서 국회의사당으로 갈 때, 반대로 갈 때, 트램을 갈아탈 때. 매번 벤치 몇 개만 눈에 들어왔다.
스크린이 서 있는 것도 봤는데 무대 설치 중인가 보다 하고 넘겼다.
낮에는 그냥 지나가는 자리였다
시청 앞 광장은 그날 하루에만 몇 번을 지나쳤는지 모른다.
박물관에서 국회의사당으로 갈 때 지났다. 반대로 갈 때 또 지났고, 트램을 갈아타면서 한 번 더 지났다.
낮의 그 광장은 그냥 넓은 공터였다.
벤치가 몇 개 있고 사람들이 앉아 있고 그게 전부였다.
스크린이 서 있는 건 봤지만 무대 설치 중인가 보다 하고 지나쳤다.

밤에 다시 나왔다

밤 9시가 넘어 링을 따라 걸었다.
박물관 건물들이 조명을 받아 낮과 완전히 달라 보였다.
국회의사당 앞에서는 맥주 한 캔을 들고 사진을 찍었다.
그날 처음으로 앉아서 뭔가를 마신 시간이었다.
그러다 시청 쪽으로 갔더니 광장이 사라져 있었다.

한가운데 대형 스크린이 켜져 있고 그 앞으로 사람들이 바닥에 앉아 있었다.
스크린 양옆으로는 천막을 친 음식 부스가 줄지어 서 있었고, 그 사이가 사람으로 꽉 차 있었다.
낮에 벤치 몇 개뿐이던 자리였다.
입장료를 받는 데가 없었다. 그냥 들어가서 앉으면 됐다.
가는 길에 오페라하우스를 지났다. 낮에는 그냥 큰 건물인데 조명이 들어오니 아치가 하나씩 살아났다.

박물관 두 채도 불이 들어와 있었다. 하늘이 아직 완전히 어둡지 않아서 벽 색이 노랗게 떴다.


국회의사당 앞에는 분수에도 조명이 들어와 있었다. 흰 대리석이라 밤에 더 밝게 보인다.
스크린에 사람이 혼자 춤을 추고 있었다

그날 걸린 건 영화가 아니었다.
화면 가득 한 사람이 서 있었다.
배경은 아무것도 없는 밝은 벽이었고, 그 앞에서 혼자 춤을 췄다.
무용 공연을 찍은 영상이었다.
음악에 맞춰 몸을 접었다 펴는 동작이 이어졌다.
짧은 영상 하나가 남아 있는데, 화면을 올려다보며 찍은 10초짜리다. 흔들리고 어둡다.
*시청앞 필름페스티벌 첫날*
무슨 작품인지는 지금도 모른다.
그런데 그날 광장에 앉은 사람들은 그걸 조용히 보고 있었다.
영화도 아니고 콘서트도 아니고, 무용 영상을 밤에 광장에서 여럿이 보는 자리였다.




나무 아래에서 하프 소리가 났다

돌아가려고 트램 정류장으로 걷는데 소리가 들렸다.
가로수 아래에 사람이 하나 앉아 하프를 켜고 있었다.
악기가 사람보다 컸다.
옆에 접이식 손수레가 놓여 있었는데, 저걸로 이 큰 걸 끌고 왔구나 싶었다.
방금 스크린으로 공연을 보고 나온 참이라 그 소리가 유난히 다르게 들렸다.
같은 밤에, 광장에서는 대형 스크린으로 공연을 틀고 그 밖에서는 누가 하프를 켜고 있었다.
이게 그 도시의 여유였다
그날 밤에 든 생각은 분명했다. 이 사람들은 문화를 즐길 여유가 있구나.
평일 밤인데 광장이 사람으로 가득 찼고, 다들 돗자리도 없이 그냥 바닥에 앉아 있었고, 끝나면 각자 흩어졌다.
특별한 행사에 온 얼굴이 아니었다. 평소에 하던 걸 하러 나온 얼굴이었다.
그게 부러웠다. 우리나라에는 저런 게 잘 없다고 생각했다.
지금 다시 생각하면 그 비교는 정확하지 않았다.
지금의 한국에도 이런 자리가 널려 있다.
여름이면 한강에서 영화를 튼다. 광장에서 공연을 하고 사람들이 바닥에 앉아서 본다.
무료였고 평일이었다. 끝나면 다들 흩어졌다.
그때 본 건 도시가 그 정도로 여유로워졌을 때 생기는 풍경이었다.
다만 그때는 그걸 몰랐고, 그래서 그 밤이 더 크게 남았다.
스크린 뒤쪽으로는 음식 부스가 줄지어 있었다. 영화를 보다가 배가 고프면 뒤로 가서 사 오면 된다.


돌아오는 길에 간판 하나를 봤다

숙소 근처에 다 왔을 때 노란 간판이 눈에 들어왔다.
`KORYO`. 그 아래에 태권도라고 적혀 있었고, 옆에는 세계태권도연맹 엠블럼이 붙어 있었다. 도장이었다.
한참 서서 봤다. 낯선 도시 밤거리에서 아는 단어를 만나면 이상하게 반갑다.
그것도 이런 시간에. 그날 하루가 궁전·미술관·박물관·묘지·광장으로 채워진 뒤에 마지막으로 본 게 이 간판이었다.
다음 날 오후에 나는 이것과 이어지는 다른 걸 보게 된다.
비엔나 필름 페스티벌
시청 앞 광장의 야외 상영은 매년 여름 열린다.
7월 초에 시작해 9월 초까지 이어지고, 벌써 30년 넘게 계속되고 있다.
입장은 무료다. 표도 없고 예약도 없다. 그냥 걸어 들어가서 앉으면 된다. 이게 이 행사의 핵심이다.
상영은 해가 완전히 진 뒤 시작한다. 빨라야 20시 15분이고, 한여름에는 21시가 넘어야 화면이 켜진다.
그전에 가면 빈 광장에 앉아 기다리게 된다.
프로그램은 영화보다 공연 실황이 많다.
오페라·클래식·재즈·팝·발레·뮤지컬 녹화본이 걸리고, 내가 갔을 때처럼 무용 영상이 걸리는 날도 있다.
매일 다른 걸 틀기 때문에 하루 보고 판단하면 안 된다. 그해 일정은 공식 사이트에서 미리 볼 수 있다.
금요일 18시에는 라트하우스파크에서 어린이 프로그램을 따로 한다.
저녁을 어디서 먹을까
광장을 둘러싼 푸드 부스는 11시부터 자정까지 연다.
상영이 시작하기 훨씬 전부터 열려 있어서,
이 행사는 낮부터 밤까지 이어지는 먹거리 장터에 야외 상영이 얹힌 형태다.
부스는 국가별로 나뉜다.
오스트리아식부터 아시아·중동·남미까지 있고,
값은 축제 물가라 시내 일반 식당보다 비싸지 않지만 슈퍼마켓보다는 확실히 비싸다.
음식을 밖에서 사 와도 된다. 반입을 막지 않는다.
나는 다음 날 밤에 근처 가게에서 슈니첼을 포장해 와서 앉아 먹었다.
예산을 아끼려면 이 방법이 낫다.
자리는 어떻게 잡나
의자가 있지만 부족하다. 스크린 앞쪽에 좌석이 깔려 있는데 일찍 차고, 늦게 가면 뒤쪽 바닥이나 계단에 앉게 된다.
다들 그렇게 앉아 있어서 이상하지 않다.
돗자리나 방석이 있으면 좋다. 바닥이 돌이라 오래 앉으면 배긴다. 현지 사람들은 그냥 앉는다.
여름밤이라도 겉옷 하나는 챙기는 게 좋다. 22시가 넘으면 서늘해진다.
나는 반팔로 갔다가 끝까지 못 앉아 있었던 날이 있다.
시청 건물 자체가 배경이다. 스크린 뒤로 네오고딕 첨탑이 조명을 받고 서 있는데, 이게 이 행사를 다른 야외 상영과 다르게 만든다.
사진을 찍는다면 스크린만 찍지 말고 건물까지 넣는 각도가 낫다.

의자는 있지만 부족하다. 앞쪽 좌석은 일찍 차니 늦게 가면 바닥에 앉게 된다.
여름밤이라도 늦으면 서늘하니 얇은 겉옷 하나는 챙기는 게 좋다.
광장을 둘러싼 음식 부스는 낮부터 밤 11시까지 연다.
상영만 보고 갈 게 아니라면 저녁을 여기서 해결해도 된다.
다만 축제 물가라 슈퍼마켓보다는 비싸다.
표를 안 낸 자리가 더 남았다
이날 하루에 여섯 군데를 갔다. 그런데 지금 비엔나를 떠올리면 이 광장이 먼저 나온다.
돈을 안 낸 곳이었다. 표를 끊고 들어간 궁전과 박물관보다, 그냥 앉으면 되는 광장이 더 오래 남았다.
표를 끊고 들어간 곳들보다 그냥 앉으면 되는 광장이 더 오래 남았다.
비엔나 일정에 이런 자리가 하루쯤 들어가면 좋다.
다음 날 아침에는 같은 방을 쓰던 사람들과 사진을 찍고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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