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스트리아 · 비엔나 4] 비엔나 자연사박물관 비너스, 실물은 생각보다 훨씬 작다
실물로 봤다.
완전히 달랐다.
제체시온에서 나와 링 안쪽으로 걸었다.
마리아 테레지아 광장에 닿았을 때가 정오 무렵이었다.
여기 온 이유는 하나였다.
빌렌도르프의 비너스. 미술이었는지 세계사였는지는 기억나지 않지만 교과서 앞쪽에 실려 있던 조각이다.
한 점만 보고 나올 생각이었는데, 결국 이 박물관에서만 사진을 백 장 넘게 찍었다.
광장에 쌍둥이 건물이 마주 서 있다

광장 한가운데에 큰 동상이 앉아 있고, 그 좌우에 똑같이 생긴 건물이 마주 보고 서 있다.
가운데 앉은 사람은 마리아 테레지아다.
받침에 말 탄 장군들이 층층이 붙어 있어서 전체 높이가 건물 한 채만 하다.

하나는 자연사박물관이고 하나는 미술사박물관이다.

겉으로는 어느 쪽이 어느 쪽인지 알 수 없을 만큼 닮았다.
둘 중 하나를 골라야 했다. 나는 자연사 쪽으로 들어갔다.
미술사박물관은 정면 사진만 몇 장 남아 있다.

기둥에 큰 배너가 걸려 있었고 그 앞에서 셀카를 찍었다. 그리고 그게 전부다. 들어가지 않았다.
왜 안 들어갔는지 지금도 잘 모르겠다.
대단한 이유가 있었던 것 같지는 않다.
그냥 하나를 보고 나니 다른 하나에 들어갈 힘이 남아 있지 않았다.
유리장 앞에 사람이 몰려 있었다

자연사박물관은 광물부터 시작된다.
목재 진열장이 끝없이 늘어선 홀에 돌이 가득 들어 있다.
금덩어리가 있고, 보라색 결정이 동굴처럼 벌어진 것도 있고, 표면이 하늘색인 산호 같은 것도 있다.

초록색 광물을 구슬처럼 갈아 놓은 칸도 있었다. 그 옆에는 하얀 결정이 솜처럼 뭉쳐 있었다.

그 구역을 지나 위층으로 올라가니 어두운 방이 나왔다.
방 한가운데 유리 기둥이 서 있고 그 안에 조각 하나가 놓여 있었다.
사람들이 그 주위에 둥글게 모여 있었다.
가까이 가서 보고 나는 좀 놀랐다.
너무 작았다.
그래서 이렇게 찍었다

이 조각은 교과서에서 봤다.
미술이었는지 세계사였는지는 기억나지 않지만, 책의 첫 장 근처에 실려 있었다.
인류가 만든 가장 오래된 조각 가운데 하나라고 배웠다.
그런데 책에서는 크기를 알 수 없다.
사진이 종이 한 면을 다 채우고 있었으니 실물도 그만할 거라고 막연히 생각했다.
실물은 손바닥에 올려놓을 수 있는 크기였다. 열 손가락으로 감쌀 수 있을 만한.

그래서 사진을 여러 장 찍었다.
여섯 장인가 일곱 장을 찍었고,
그중 두 장은 유리 너머의 조각이 손바닥 위에 올라간 것처럼 각도를 맞춰 찍었다.
크기를 남겨두고 싶었다.
그렇게 찍지 않으면 나중에 이 사진을 봐도 또 크게 느껴질 테니까.
작다는 게 이 조각의 내용이었다
한참 지나서 생각해보니 작다는 게 우연이 아니었다.
이건 어디 놓고 보는 물건이 아니었다.
들고 다니라고 만든 물건이다.
만든 사람들은 한곳에 머물지 않았고, 그러니 물건도 손에 쥐어지는 크기여야 했다.
교과서는 그 조각을 확대해서 실었고, 나는 그 확대된 이미지를 실제 크기로 기억하고 있었다.
실물을 보러 간다는 건 결국 이런 걸 바로잡는 일인 것 같다.
무엇을 새로 아는 게 아니라, 잘못 알고 있던 크기를 고치는 것.
운석이 접시에 담겨 있었다

같은 층에 운석을 모아둔 방이 있었다.
하늘에서 떨어진 돌들이 붉은 천을 깐 받침 위에 놓여 있었다.
큰 것은 사람 상체만 했고 작은 것은 자갈 같았다.
화성에서 온 것이라는 설명이 붙은 조각도 있었다.
천백만 년 전에 화성에서 떨어져 나와 지구까지 왔다고 적혀 있었다.

유리 너머의 작은 돌이 화성에서 왔다니 실감이 안 났다.
이 박물관은 계속 이런 식이다. 설명을 읽어야 뭐가 대단한지 알 수 있는 것들이 늘어서 있다.
그런데 반대인 방도 있었다. 나비 표본만 벽 하나를 가득 채운 방이다.
여기는 설명이 필요 없었다.
유리장 안에 나비가 크기순으로, 색깔순으로 줄지어 꽂혀 있는데 그 배열 자체가 눈에 들어온다.
수백 마리가 같은 간격으로 같은 방향을 보고 있다.

새 표본만 모아 놓은 홀도 있었다. 유리장이 복도 양쪽으로 끝까지 이어져 있고 그 안이 전부 박제였다.

물고기 방에는 사람만 한 민물고기가 걸려 있었다. 피라루쿠라는 이름 옆에 무자비한 전사라고 독일어로 적혀 있었다.

이런 걸 모으고 정리한 사람들이 있었다는 게 이 박물관의 진짜 내용인 것 같다.
19세기에 누군가 이걸 하나씩 잡아서 이름을 붙이고 순서를 정했다.
그 작업이 백 년쯤 쌓여서 방이 됐다.
마지막은 공룡이었다

가는 길에 동물 표본실을 지났다. 낙타와 라마가 유리 없이 서 있어서 손을 뻗으면 닿을 거리였다.

인류 진화를 다룬 방에는 유인원 복원 모형이 걸어가는 자세로 서 있었다.
털까지 심어 놔서 멀리서 보면 사람처럼 보인다.

바다 전시실은 아예 어두웠다. 파란 화면에 상어와 고래가 떠다니고 그 아래 표본이 놓여 있었다.

위층 끝에 공룡 골격이 늘어선 홀이 있었다.
목이 긴 공룡이 천장까지 닿아 있었고, 육식공룡 두개골은 사람 머리가 들어갈 만큼 벌어져 있었다.
뿔 달린 초식공룡 두개골도 있었다.

여기서 찍은 사진에는 유독 장난스러운 게 많다.
두개골 안에 손을 넣는 시늉을 하거나 입을 벌리고 놀란 표정을 짓거나.
아침부터 궁전과 미술관을 돌고 온 사람이 마지막에 이러고 있다.
이날 이 박물관에서만 사진을 백 장 넘게 찍었다.
*자연사박물관 공룡홀*
표값은 10유로였다. 나올 때 그 생각을 했다.
10유로가 하나도 안 아까웠다.
이 여행에서 표를 끊고 나서 이런 문장이 나온 곳은 많지 않다.
자연사박물관 실전 정보
마리아 테레지아 광장에 마주 선 두 건물 중 동상을 등지고 오른쪽이 자연사박물관이다.
지하철 역에서 바로 이어지고, 광장 자체가 눈에 띄어 헤맬 일은 없다.
성인 18유로이고 화요일에 쉰다.
목~월요일은 9시~18시, 수요일만 20시까지 연다.
저녁에 여유 있게 볼 생각이면 수요일을 노리면 된다.
요금과 휴관일은 공식 사이트에서 확인하는 게 정확하다.
반나절은 잡아야 한다. 광물·운석·선사·동물박제·공룡으로 구역이 나뉘고 층을 오가야 해서, 급히 돌면 한 시간 반, 제대로 보면 세 시간이 넘는다.
빌렌도르프의 비너스만 보러 가도 되나
된다. 그리고 그게 이 박물관에 가는 가장 흔한 이유다.
위치부터 말하면, 1층(유럽식 기준) 선사시대 구역, 11번 홀 옆에 딸린 작은 방에 있다.
별도 요금은 없고 일반 입장권으로 본다.
매표소에서 `Venus von Willendorf`라고 물어보면 안내도에 표시해준다.
높이는 11.1센티미터다. 손바닥에 올라간다.
이게 사진으로는 절대 전달이 안 되는 부분이고, 실물을 보러 가는 거의 유일한 이유이기도 하다.

교과서에 실린 사진은 대개 지면을 꽉 채워서 인쇄돼 있다.
만들어진 건 약 3만 년 전이고, 재료는 어란상 석회암(oolitic limestone)이다.
흥미로운 건 이 돌이 빌렌도르프 근처에서 나지 않는다는 점이다.
2022년 연구에서 원석의 출처가 수백 킬로미터 떨어진 북이탈리아 쪽으로 좁혀졌다.
조각이든 돌이든 누군가 들고 먼 길을 옮겨 왔다.
발견된 건 1908년 8월 7일, 오스트리아 빌렌도르프의 철도 공사 현장이었다.
보는 데 5분이면 충분하다. 유리 기둥 하나에 조각 하나가 놓여 있고 그게 전부다.
대신 사람이 계속 몰려서 앞자리를 잡는 데 시간이 걸린다.
오전 이른 시간이 낫다.
자연사와 미술사, 하나만 고른다면
광장을 사이에 두고 마주 선 두 건물은 겉모습이 거의 같다.
처음 오면 어느 쪽이 어느 쪽인지 모른다.
마리아 테레지아 동상을 등지고 오른쪽이 자연사박물관이다.
성격은 정반대다.
자연사는 실물이 많다.
광물·운석·화석·박제·공룡 골격.
설명을 안 읽어도 눈으로 보는 재미가 있어서 아이 동반이거나 체력이 남았을 때 좋다.
빌렌도르프의 비너스가 여기 있다.
미술사는 회화 중심이다.
브뤼헐 컬렉션이 세계 최대이고 벨라스케스·페르메이르가 있다.
그림을 보러 온 사람이면 이쪽이다.
대신 서서 오래 봐야 해서 체력 소모가 크다.
하루에 둘 다 넣지 않는 게 좋다. 나는 그날 오전에 궁전 하나와 미술관 하나를 이미 보고 온 상태였고, 결국 길 건너 미술사박물관은 정면만 보고 지나갔다.
표를 아껴도 체력이 안 따라오면 소용이 없다.
실물은 생각보다 작았다
유리 앞에서 손을 대보고, 각도를 맞춰 손바닥 위에 조각이 올라간 것처럼 찍어봤다.
반사가 들어가고 초점도 안 맞았는데 계속 찍었다.
그 방에서 든 건 감동보다 놀람에 가까웠다.
실물을 보러 간다는 건 새로 아는 일이라기보다 잘못 알고 있던 걸 고치는 일이었다.
그 뒤의 오후에는 아침부터 계속 걷다가 결국 무리가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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