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스트리아 · 비엔나 9] 한인문화회관, 한식당인 줄 알고 들어갔다

비엔나 여행기 · 9편
한식이 먹고 싶어서
지하철을 타고 공원까지 갔다.
밥을 먹고 나서
이 건물이 어떻게 여기 섰는지 알게 됐다.

한식이 먹고 싶었다.

한 달 넘게 여행 중이었다.

부다페스트에서는 삼겹살을 사려다 못 구해서 베이컨을 사 왔고, 그걸 호스텔 주방에서 고추장에 구워 먹었다.

그게 그때 할 수 있는 최선이었다.

비엔나에서는 검색을 해봤다.

그러다 도나우파크 안에 한인문화회관이 있고, 거기 식당이 있다는 걸 알았다.

공원을 가로질러 걸었다

수로를 건너던 오리 가족
수로를 따라 오리 가족이 지나갔다. 여기까지는 그냥 공원이었다

공원 자체는 특별할 게 없었다. 잔디와 산책로와 자전거 타는 사람들.

그런데 이런 데가 시내에서 지하철 몇 정거장이라는 게 이 도시의 특징이다.

관광지 사이사이에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넓은 곳이 끼어 있다.

도나우파크의 노란 꽃밭
노란 꽃밭 앞에서 한 장. 이날 오후 계획은 이 공원까지였다

지하철에서 내려 공원으로 들어갔다. 도나우파크는 넓다.

시내에서 강 건너편이다. 안에 호수가 몇 개 있고 그 사이로 산책로가 얽혀 있다.

목적지는 정해져 있었지만 서두르지 않았다.

노란 꽃이 무더기로 핀 자리에서 사진을 찍었고, 조금 더 가니 수로에 오리 가족이 지나가고 있었다.

어미 뒤로 새끼 여러 마리가 줄지어 헤엄쳤다. 그걸 한참 봤다.

공원 초입에서 탑이 하나 보였다. 도나우투름인데, 이날은 올려다보기만 했다.

도나우파크 잔디 너머로 보이는 도나우투름
이날은 올려다보기만 했다

붉은 꽃만 심어 놓은 화단도 있었다. 노란 밭과 붙어 있어서 경계에서 색이 갈렸다.

붉은 꽃이 심긴 화단 앞에서
노란 밭과 붉은 밭이 붙어 있다

공원 가운데로 물길이 길게 나 있었다. 인공 수로인데 갈대를 심어서 자연처럼 보이게 해 놨다.

도나우파크를 가로지르는 인공 수로
인공인데 갈대를 심어 놨다

중국 정원을 지났다

같은 공원 안 중국 정원. 현판에 사천반점이라 적혀 있다
같은 공원 안에 중국 정원이 있다. 현판에 사천반점이라 적혀 있었다

가는 길에 붉은 문이 나왔다.

안으로 들어가니 연못이 있고 그 너머에 기와지붕이 얹힌 건물이 서 있었다.

처마 밑에 홍등이 달려 있었고 현판에 한자가 적혀 있었다.

중국 정원이었고, 그 안에 중식당이 있었다. 사람들이 물가 테라스에 앉아 밥을 먹고 있었다.

여기서 먹어도 됐다. 눈앞에 있었고 자리도 있었다. 그런데 지나쳤다.

그날은 한국 음식이 먹고 싶었다. 중국집은 이미 두 번 갔던 참이었다.

이 공원에는 나라별로 정원과 건물이 몇 개 들어와 있다. 그중 하나가 한국 것이었다.

문 안쪽으로 붉은 기둥의 정자가 보였다. 연못을 끼고 앉아 있는데 주변 유럽식 공원과 완전히 따로 놀았다.

중국 정원의 문 너머로 보이는 붉은 정자
문 하나를 지나면 분위기가 바뀐다
연못을 끼고 앉은 중국 정원의 정자
연못 가장자리에 정자가 서 있다

조금 더 가니 분수가 있는 연못이 나왔다. 여기는 다시 유럽식이었다.

분수가 솟는 도나우파크의 연못
여기는 다시 유럽식이다

메뉴판을 받아 들고

아리랑 메뉴판
한글과 영문이 나란히 적힌 세움 메뉴판. 한 달 넘게 못 본 글자였다

건물에 도착했다. 호숫가에 낮게 앉은 흰 건물이었다. 지붕이 얇고 유리창이 넓었다.

앞 게시판에 한글 안내가 붙어 있었고, 그 옆에 태권도 강습 포스터가 있었다.

전날 밤 숙소 근처에서 본 그 간판이 떠올랐다.

식당 이름은 아리랑이었다.

자리에 앉으니 흰 세움 메뉴판을 줬다.

한글과 영문이 나란히 적혀 있었다.

한글 메뉴판을 받아 든 게 얼마 만인지 세어보지 않았다.

건물 앞에 한글 간판이 걸려 있었다. 그걸 보고 한식당인 줄 알았다.

한글 간판이 걸린 한인문화회관 입구
이 간판을 보고 한식당인 줄 알았다
사진이 실린 한국 음식 메뉴판
메뉴판에 사진이 실려 있었다

밥이 나왔다

그날의 상
흑미밥, 국, 반찬 세 가지. 유럽에서 국이 나오는 상은 이날이 처음이었다

흑미가 섞인 밥, 국, 반찬 세 가지. 그리고 접시 위에 당근으로 만든 장식이 얹혀 있었다.

특별히 대단한 상은 아니었다. 한국에서였다면 아무 백반집에서나 나올 구성이다.

그런데 그날은 아니었다.

한 달 넘게 빵과 감자와 소시지를 먹었고, 전날은 오이 하나로 오후를 버티다 맥도날드에 들어갔다.

그러다 국이 나왔다.

밥상을 앞에 두고 먹기 전에 두 번을 찍었다.

잡곡밥과 국, 김치와 감자가 담긴 밥상
잡곡밥에 국, 김치, 감자가 같이 나왔다

밥을 먹고 아래층으로 내려갔다

설립 연혁과 후원자 명단. 태극기와 오스트리아 국기가 나란히 걸려 있다
이 건물을 세운 사람들의 이름이 줄줄이 적혀 있다. 태극기와 오스트리아 국기가 나란히 걸려 있었다

밥집인 줄만 알고 들어왔는데, 벽을 보고 나서 생각이 바뀌었다.

건물 안쪽 벽에 커다란 안내판이 여러 장 붙어 있었다.

태극기와 오스트리아 국기가 나란히 걸려 있고, 그 옆으로 한글이 빼곡한 판이 늘어서 있었다.

읽어보니 이 건물의 내력이었다.

연도별로 적혀 있었다.

2007년에 건립 논의가 시작됐고, 2008년에 설립위원회가 열렸고, 2010년에 비엔나 시청이 부지를 제공했고,

50년 임차 계약을 맺고 2011년에 기공식, 2012년에 개관했다.

그리고 맨 아래에 모금 총액이 적혀 있었다. 176만 유로가 넘었다.

옆 판 두 장은 통째로 이름이었다. 후원한 사람들의 이름이 글자 크기를 줄여가며 빼곡하게 들어차 있었다.

이 건물은 원래 다른 것이었다

나중에 찾아보고 알게 된 게 있다.

이 건물은 1964년 비엔나에서 열린 국제원예박람회를 위해 지어진 호숫가 레스토랑이었다.

인공 호수를 파고 그 물가에 세운 건물이다.

박람회가 끝나고 오래 비어 있었다.

관리되지 않은 채 방치됐고 철거 이야기가 나왔다.

전후 건축물로 보존 가치를 인정받은 건물이었는데도 그랬다.

한인문화회관에서 받은 한식 한 상
여기서 한 끼를 먹었다

그때 비엔나에 사는 한국 사람들이 나섰다.

협회를 만들고 돈을 모았다.

오스트리아 연방기념물청이 복원을 도왔다.

그렇게 살아난 건물이 2012년에 한인문화회관으로 문을 열었다.

한국과 오스트리아가 수교한 지 120년 되는 해에 맞춰서였다.

그러니까 내가 그날 밥을 먹은 자리는, 오스트리아가 버릴 뻔한 건물을 한국 사람들이 돈을 모아 되살린 곳이었다.

벽에 명판이 여럿 붙어 있었다.

태극기와 오스트리아 국기가 나란히 박혀 있고 그 아래 독일어와 한국어가 같이 적혀 있었다.

태극기와 오스트리아 국기가 나란히 붙은 벽면 명판
두 나라 국기가 나란히 붙어 있었다

거기 책이 있었다

그 자리에서 펴 본 책
그 자리에서 펴 본 책. 이 건물이 어떻게 살아남았는지가 여기 적혀 있었다
도나우파크
Donaupark
개방 중
영업
24시간 개방
가격
무료
주소
Arbeiterstrandbadstraße, 1220 Wien, Austria
지하철 U1 Kaisermühlen-VIC 또는 Alte Donau역. 유엔 비엔나 사무소·도나우타워가 같은 구역이라 묶어 돌기 좋다. 안에 호수·놀이터·중국 정원이 흩어져 있어 목적지까지 15분은 걷는다

안내판 옆에 한국어 책들이 꽂혀 있었다. 그중 한 권을 꺼내 펼쳤다.

『한국인』이라는 제목이었다.

손에 들고 사진을 찍었고, 펼친 본문도 두 장 찍었다.

지금 그 사진을 확대해서 읽어보면, 이 건물이 어떻게 여기까지 왔는지가 적혀 있다.

밥을 먹고 배가 부른 채로 그 책을 서서 읽었다.

몇 페이지 못 읽었다.

기분이 좋았다

그때 무슨 대단한 생각을 한 건 아니다. 그냥 비엔나에서 한국을 볼 수 있다는 게 좋았다.

지금과 달랐다. 그때의 한국은 지금처럼 어디서나 알려진 나라가 아니었다.

여행하면서 어디서 왔냐는 질문을 받으면 몇 번씩 설명해야 하는 때였다.

그래서 이렇게 한국 이름이 붙은 건물이 유럽 한복판 공원에 서 있는 게,

그것도 여기 사는 사람들이 직접 만든 거라는 게 더 크게 느껴졌다.

건물 앞에서 짧은 영상도 하나 찍었다. 태극기가 걸린 벽을 담은 13초짜리다.

*한인문화회관 태극기*

태극기와 오스트리아 국기가 나란히 걸린 벽 — 그날 찍은 13초

도나우파크와 한인문화회관 가는 법

도나우파크는 비엔나 22구, 도나우강 건너편에 있다.

지하철 U1 Kaisermühlen-VIC 또는 Alte Donau 역에서 내려 걸어 들어간다.

유엔 비엔나 사무소와 도나우타워가 같은 구역이라 묶어 돈다.

공원 자체는 무료이고 넓다. 안에 호수와 놀이터, 중국 정원 등이 흩어져 있어 목적지까지 곧장 가도 15분은 걷는다.

여름에는 그늘이 이어지는 산책로가 많다.

한인문화회관은 공원 안 호숫가에 있다.

문화 행사와 전시가 열리고 건물 안에 한식당이 있다.

운영 시간과 행사 일정은 공식 사이트에서 확인하는 게 정확하다.

상시 영업이 아닐 수 있다. 나도 문 닫힌 날을 한 번 겪었다.

한식이 목적이라면 시내에도 한식당이 여럿 있다.

다만 이곳은 밥만 먹고 나오기에는 아까운 곳이다.

안내판과 자료실을 함께 보면 이 건물이 어떻게 여기 서게 됐는지가 나온다.

비엔나에서 한식이 급할 때

장기 여행에서 한식이 필요해지는 시점은 사람마다 다른데, 대개 한 달쯤이다.

그전에는 현지 음식이 재미있고 그 뒤로는 밥과 국이 생각난다.

비엔나에서 찾는 방법은 세 갈래다.

한인문화회관 안 식당 — 내가 간 곳이다.

도나우파크 안이라 관광 동선에서는 벗어나 있다. 지하철 U1로 바로 닿는다.

한글 메뉴판이 있고, 여기는 밥집이면서 동시에 한인 커뮤니티의 거점이라 분위기가 다르다.

시내 한식당 — 슈테판플라츠·마리아힐퍼 슈트라세 주변에 몇 곳 있다. 값은 관광지 가격이다.

아시아 마트에서 사다 해 먹기 — 게스트하우스에 주방이 있으면 이게 제일 싸다.

라면·고추장·즉석밥을 파는 아시아 식료품점이 시내에 여러 곳 있다.

나는 부다페스트에서 이 방법을 썼다.

베이컨을 사다 고추장에 볶아 먹었다. 삼겹살 대신이었다.

한식을 찾는 줄 알았는데 사실 찾던 건 밥이었다.

그날 밤 동네 가게에서 슈니첼을 포장했더니 밑에 흰 쌀밥이 깔려 나왔고, 그것만으로 충분했다.

유럽에서 밥이 그리운 거라면 터키·중동·아시아 계열 테이크아웃 가게가 의외로 답이 된다.

유럽의 한인문화회관은 어떤 곳인가

여행자에게는 낯선 시설이라 짚어두면, 한인회가 운영하는 커뮤니티 공간이다.

유럽 주요 도시에 비슷한 것이 있고 성격은 도시마다 다르다.

대개 이런 것들이 한 건물에 들어 있다.

  • 한글학교 — 주말에 교민 아이들에게 한국어를 가르친다
  • 행사장·연회장 — 명절 행사, 결혼식,

총회

  • 식당 — 교민 대상이지만 누구나 갈 수 있다
  • 태권도장 — 이 건물 게시판에도 태권도 강습 포스터가 붙어 있었다

여행자가 가도 되나 — 된다.

식당은 열려 있고 건물 안도 대개 자유롭게 다닌다.

다만 여기는 관람하러 오는 곳이라기보다 사람들이 실제로 쓰는 공간이다.

행사가 있는 날에는 조용히 다니는 게 맞다.

한 가지 알아둘 것 — 이런 건물은 대개 교민들이 돈을 모아 지었다.

비엔나의 이 건물도 그랬다.

안내판에 후원자 이름이 줄줄이 적혀 있는 이유가 그거다.

밥 한 끼 먹으러 들어갔다가 그 명단을 읽으면 생각이 좀 달라진다.

밥 먹으러 갔다가 건물 내력을 읽었다

이 여행에서 먹은 밥 중에 이날 상이 제일 기억에 남는다. 맛 때문은 아니다.

부다페스트에서 삼겹살 대신 베이컨을 구워 먹은 게 나흘 전이었다.

그때는 흉내를 낸 것이었고, 여기서는 진짜였다.

그 사이 나는 국경을 하나 넘었다.

그리고 이 건물은 나 같은 사람이 우연히 들르라고 지어진 게 아니었다.

여기 사는 사람들이 자기들 자리를 만들려고 십수 년 동안 모은 결과였고,

여행 중 그 자리에서 찍은 장면
그때 찍어둔 한 장

나는 거기에 하루 들어갔다 나온 손님이었다.

여행하다 보면 이런 자리를 만난다. 내가 발견한 것 같지만 실은 누군가 오래 만들어둔 것.

밥 한 끼 먹으러 들어갔다가 건물 내력을 읽고 나왔다.

밥을 먹고 나와서는 강 쪽으로 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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