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에서 한식을 찾다가 한국 사람들이 살려낸 건물에 들어갔다
한식이 먹고 싶었다.
한 달 넘게 여행 중이었다. 부다페스트에서는 삼겹살을 사려다 못 구해서 베이컨을 사 왔고, 그걸 호스텔 주방에서 고추장에 구워 먹었다. 그게 그때 할 수 있는 최선이었다.
빈에서는 검색을 해봤다. 그러다 도나우파크 안에 한인문화회관이 있고, 거기 식당이 있다는 걸 알았다.
공원을 가로질러 걸었다


지하철에서 내려 공원으로 들어갔다. 도나우파크는 넓다. 시내에서 강 건너편에 있고, 안에 호수가 몇 개 있고, 그 사이로 산책로가 얽혀 있다.
목적지는 정해져 있었지만 서두르지 않았다. 노란 꽃이 무더기로 핀 자리에서 사진을 찍었고, 조금 더 가니 수로에 오리 가족이 지나가고 있었다. 어미 뒤로 새끼 여러 마리가 줄지어 헤엄쳤다. 그걸 한참 봤다.
중국 정원을 지났다

가는 길에 붉은 문이 나왔다. 안으로 들어가니 연못이 있고 그 너머에 기와지붕이 얹힌 건물이 서 있었다. 처마 밑에 홍등이 달려 있었고 현판에 한자가 적혀 있었다.
중국 정원이었고, 그 안에 중식당이 있었다. 사람들이 물가 테라스에 앉아 밥을 먹고 있었다.
여기서 먹어도 됐다. 눈앞에 있었고 자리도 있었다. 그런데 지나쳤다. 그날 내가 먹고 싶었던 건 중국 음식이 아니라 한국 음식이었다.
이 공원에는 나라별로 정원과 건물이 몇 개 들어와 있다. 그중 하나가 한국 것이었다.
메뉴판을 받아 들고

건물에 도착했다. 호숫가에 낮게 앉은 흰 건물이었다. 지붕이 얇고 유리창이 넓었다.
앞 게시판에 한글 안내가 붙어 있었고, 그 옆에 태권도 강습 포스터가 있었다. 전날 밤 숙소 근처에서 본 그 간판이 떠올랐다.
식당 이름은 아리랑이었다. 자리에 앉으니 흰 세움 메뉴판을 줬다. 한글과 영문이 나란히 적혀 있었다.
한글 메뉴판을 받아 든 게 얼마 만인지 세어보지 않았다.
밥이 나왔다

흑미가 섞인 밥, 국, 반찬 세 가지. 그리고 접시 위에 당근으로 만든 장식이 얹혀 있었다.
특별히 대단한 상은 아니었다. 한국에서였다면 아무 백반집에서나 나올 구성이다.
그런데 그날은 아니었다. 한 달 넘게 빵과 감자와 소시지를 먹었고, 전날은 오이 하나로 오후를 버티다 맥도날드에 들어갔다. 그러다 국이 나왔다.
사진을 두 장 찍었다. 각도만 다른 두 장이다. 먹기 전에 두 번 찍었다는 뜻이다.
밥을 먹고 아래층으로 내려갔다

여기가 그냥 식당이 아니라는 걸 그때 알았다.
건물 안쪽 벽에 커다란 안내판이 여러 장 붙어 있었다. 태극기와 오스트리아 국기가 나란히 걸려 있고, 그 옆으로 한글이 빼곡한 판이 늘어서 있었다.
읽어보니 이 건물의 내력이었다.
연도별로 적혀 있었다. 2007년에 건립 논의가 시작됐고, 2008년에 설립위원회가 열렸고, 2010년에 빈 시청이 부지를 제공했고, 50년 임차 계약을 맺었고, 2011년에 기공식을 했고, 2012년에 문을 열었다.
그리고 맨 아래에 모금 총액이 적혀 있었다. 176만 유로가 넘었다.
옆 판 두 장은 통째로 이름이었다. 후원한 사람들의 이름이 글자 크기를 줄여가며 빼곡하게 들어차 있었다.
이 건물은 원래 다른 것이었다
나중에 찾아보고 알게 된 게 있다.
이 건물은 1964년 빈에서 열린 국제원예박람회를 위해 지어진 호숫가 레스토랑이었다. 인공 호수를 파고 그 물가에 세운 건물이다.
박람회가 끝나고 오래 비어 있었다. 관리되지 않은 채 방치됐고 철거 이야기가 나왔다. 전후 건축물로 보존 가치를 인정받은 건물이었는데도 그랬다.
그때 빈에 사는 한국 사람들이 나섰다. 협회를 만들고 돈을 모았다. 오스트리아 연방기념물청이 복원을 도왔다. 그렇게 살아난 건물이 2012년에 한인문화회관으로 문을 열었다. 한국과 오스트리아가 수교한 지 120년 되는 해에 맞춰서였다.
그러니까 내가 그날 밥을 먹은 자리는, 오스트리아가 버릴 뻔한 건물을 한국 사람들이 돈을 모아 되살린 곳이었다.
거기 책이 있었다

안내판 옆에 한국어 책들이 꽂혀 있었다. 그중 한 권을 꺼내 펼쳤다.
『한국인』이라는 제목이었다. 손에 들고 사진을 찍었고, 펼친 본문도 두 장 찍었다. 지금 그 사진을 확대해서 읽어보면, 이 건물이 어떻게 여기까지 왔는지가 적혀 있다.
그날의 나는 밥을 먹고 배가 부른 상태로 그 책을 서서 읽고 있었다. 아마 몇 페이지 못 읽었을 것이다.
기분이 좋았다
그때 무슨 대단한 생각을 한 건 아니다. 그냥 빈에서 한국을 볼 수 있다는 게 좋았다.
지금과 달랐다. 2015년의 한국은 지금처럼 어디서나 알려진 나라가 아니었다. 여행하면서 어디서 왔냐는 질문을 받으면 몇 번씩 설명해야 하는 때였다. 그래서 이렇게 한국 이름이 붙은 건물이 유럽 한복판 공원에 서 있는 게, 그것도 여기 사는 사람들이 직접 만든 거라는 게 더 크게 느껴졌다.
건물 앞에서 짧은 영상도 하나 찍었다. 태극기가 걸린 벽을 담은 13초짜리다.
태극기와 오스트리아 국기가 나란히 걸린 벽 — 그날 찍은 13초
도나우파크와 한인문화회관 가는 법
도나우파크는 빈 22구, 도나우강 건너편에 있다. 지하철 U1을 타고 Kaisermühlen-VIC 또는 Alte Donau 역에서 내리면 걸어서 들어갈 수 있다. 유엔 빈 사무소와 도나우타워가 같은 구역에 있어 묶어 돌기 좋다.
공원 자체는 무료이고 넓다. 안에 호수와 놀이터, 중국 정원 등이 흩어져 있어 목적지까지 곧장 가도 15분은 걷는다. 여름에는 그늘이 이어지는 산책로가 많다.
한인문화회관은 공원 안 호숫가에 있다. 문화 행사와 전시가 열리고 건물 안에 한식당이 있다. 운영 시간과 행사 일정은 공식 사이트에서 확인하는 게 정확하다. 상시 영업이 아닐 수 있으니 가기 전에 보는 편이 좋다.
한식이 목적이라면 시내에도 한식당이 여럿 있다. 다만 이곳은 밥만 먹고 나오기에는 아까운 곳이다. 안내판과 자료실을 함께 보면 이 건물이 어떻게 여기 있게 됐는지를 알 수 있다.
다녀와서
이 여행에서 먹은 밥 중에 제일 기억에 남는 게 이날 상이다. 맛 때문은 아닐 것이다.
부다페스트에서 삼겹살 대신 베이컨을 구워 먹은 게 나흘 전이었다. 그때는 흉내를 낸 것이었고, 여기서는 진짜였다. 그 사이 나는 국경을 하나 넘었다.
그리고 이 건물은 나 같은 사람이 우연히 들르라고 지어진 게 아니었다. 여기 사는 사람들이 자기들 자리를 만들려고 십수 년 동안 모은 결과였고, 나는 거기에 하루 들어갔다 나온 손님이었다.
여행하다 보면 이런 자리를 만난다. 내가 발견한 것 같지만 실은 누군가 오래 만들어둔 것.
다음 편은 그날 오후의 나머지다. 밥을 먹고 나와서 강 쪽으로 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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