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광이 끝난 오후에 도나우 강가로 걸어 나갔다

한인문화회관에서 나온 게 오후 2시 반쯤이었다. 그날 계획은 거기까지였다.

탑이 하나 서 있었다

도나우타워. 올라가지는 않았다

공원을 나오는 길에 탑이 보였다. 도나우타워였다.

이틀 전 밤에 숙소에서 나와 걷다가 멀리 불빛으로 봤던 그 탑이다. 그때는 저게 뭔지 몰랐는데, 낮에 가까이서 보니 회색 콘크리트 기둥에 원반이 얹힌 모양이었다.

전망대가 있고 올라가려면 표를 끊어야 했다.

올라가지 않았다. 이건 이 여행에서 반복된 선택이다. 쿠알라룸푸르에서 전망대에 한 번 올라가 본 뒤로 나는 돈 내고 올라가는 걸 그만뒀다. 위에서 보면 도시가 지도처럼 보이는데, 지도는 손에 들고 있었다.

탑 앞에서 사진만 한 장 찍고 지나갔다.

유리 건물들이 모여 있었다

유엔 사무소가 있는 구역

공원 옆에 유리로 된 고층 건물들이 모여 있었다. 유엔 빈 사무소가 있는 구역이다. 유엔 본부가 뉴욕에만 있는 게 아니라는 걸 여기서 알았다.

주말이 아니었는데도 사람이 별로 없었다. 건물은 크고 거리는 비어 있었다. 관광지가 아니라 일하는 구역이라 그런 것 같았다.

그 뒤로 검은 고층 건물 하나가 비스듬히 서 있었다. 꼭대기가 잘린 것처럼 생겼다.

강가에 사람이 앉아 있었다

강가에 앉아 있던 사람

강 쪽으로 더 걸었다.

도나우강은 시내를 지나면서 여러 갈래로 나뉘고, 그 사이에 길고 좁은 섬이 있다. 강가에 콘크리트 계단이 물까지 내려가는 구조로 되어 있어서 사람들이 거기 앉아 있었다.

한 사람이 눈에 들어왔다. 계단에 앉아 맨발을 물 가까이 내리고, 긴 나뭇가지 하나를 물에 대고 있었다. 뒤에는 아이가 앉아 있었다. 낚싯대는 아니었다. 그냥 막대기였다.

사진을 찍었다. 그리고 눈이 마주쳐서 인사를 했다.

이 여행에서 이런 게 자주 있었다. 사진을 찍다가 눈이 마주치면 인사를 하게 된다. 말이 안 통해도 그건 된다.

사람들이 강에서 놀고 있었다

도나우인젤의 부교

조금 더 가니 부교가 놓여 있고 사람들이 물에 들어가 있었다. 수영복을 입고 누워 있는 사람도 있고 헤엄치는 사람도 있었다.

도심에서 지하철로 몇 정거장 거리인데 사람들이 강에서 수영을 하고 있었다. 별도의 시설도 아니고 그냥 강이었다.

나는 들어가지 않았다. 갈아입을 것도 없었고 수건도 없었다.

물가에 앉아서 한참 있었다. 그날 처음으로 아무것도 안 한 시간이었다.

여행에는 이런 시간이 필요하다

이날 오전에 나는 구시가를 반나절 걸었고 뭘 봤는지 헷갈린다고 썼다. 오후에는 한 군데를 갔고 그건 전부 기억난다.

그리고 이 시간, 그러니까 계획이 끝나고 남은 오후는 또 다르게 기억된다. 본 것이 아니라 앉아 있었던 것으로 남는다.

배낭여행을 하면 하루를 꽉 채우려는 압박이 있다. 여기까지 왔는데, 다시 올 일이 없는데 하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 계속 움직인다.

그런데 지금 이 여행을 돌아보면 제일 좋았던 시간에는 대개 목적지가 없다. 강가에 앉아 있었거나, 공원을 걸었거나, 숙소 로비에서 이야기를 했거나.

도나우타워·도나우인젤 실전 정보

도나우타워는 지하철 U1 카이저뮐렌-VIC 역에서 걸어서 갈 수 있다. 높이 250미터가 넘고 전망대와 회전 레스토랑이 있다. 요금과 운영 시간은 공식 사이트에서 확인할 수 있다.

올라갈지 말지는 갈라진다. 빈은 구시가 자체가 낮게 깔려 있어서 이 탑에서 보면 도시가 꽤 멀다. 시내 전경을 가까이 보고 싶다면 슈테판 대성당 탑이나 벨베데레 정원 쪽이 낫다. 여기는 강과 신도시 구역, 그리고 공원이 한눈에 들어오는 전망이다.

도나우인젤은 강 가운데 길게 뻗은 섬이다. 21킬로미터가 넘고 자전거길·산책로·수영 구역이 이어진다. 여름이면 빈 사람들이 수영하러 오는 곳이다. 입장료가 없고 탈의 시설이 있는 구간도 있다.

여름에 여기 갈 거라면 수건 하나를 챙기는 걸 권한다. 나는 안 챙겨서 물에 못 들어갔다.

다녀와서

빈에서 보낸 사흘 중 이 오후가 제일 조용했다.

관광지를 하나도 안 갔다. 탑에는 올라가지 않았고 유엔 건물은 밖에서만 봤고 강에는 들어가지 않았다. 한 것이라고는 걷고 앉아 있었던 것뿐이다.

그런데 이 편을 쓰려고 사진을 넘겨보다 알았다. 이날 오후 사진이 제일 잘 나왔다. 급하게 찍은 게 없어서 그런 것 같다.

다음 편은 그날 밤이다. 저녁을 사서 어제 갔던 광장으로 다시 갔는데, 스크린에 걸린 게 어제와 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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