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엔나 12] 벨베데레 「키스」, 사진은 못 찍는다
보러 갔다.
그림이 아니었다.
비엔나에서의 마지막 날이었다. 저녁에 프라하행 버스를 타야 했고, 그전까지 시간이 있었다. 벨베데레는 「키스」가 있는 곳이다. 이 도시에서 제일 유명한 그림이고, 미술에 관심이 없어도 한 번은 본 적 있는 금색 그림.
그걸 보러 갔고, 실제로 그 방에 들어갔다.
궁전이 두 채였다

벨베데레는 궁전 하나가 아니라 두 채다. 언덕 아래에 하나, 위에 하나. 아래를 하궁, 위를 상궁이라고 부른다. 아래쪽부터 들어갔다. 낮게 퍼진 건물이었고 앞에 화단이 정리돼 있었다. 거기서 위를 올려다보면 언덕 끝에 상궁이 걸려 있다.
두 채 사이가 전부 정원이었다

두 건물 사이는 통째로 정원이다. 계단식으로 층이 나뉘어 있고 가운데 긴 연못이 있다. 좌우 대칭으로 나무를 다듬어놨다. 여기서 사진을 많이 찍었다. 연못에 상궁이 비치는 자리, 계단 중간에서 아래를 내려다본 자리, 위에서 비엔나 시내가 보이는 자리.

이날 사진에는 유독 웃는 얼굴이 많다. 날씨가 좋았고 이 도시에서의 마지막 날이었다.
정원을 걷다가 한국말이 들렸다. 몇 사람이 지나가면서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한 달 넘게 못 듣던 소리였다. 전날 한인문화회관에서 한글 메뉴판을 보고 온 참이라 이틀 연속이었다.
안으로 들어갔다

상궁 안에 회화가 걸려 있다.
들어가자마자 큰 그림이 하나 있었다. 붉은 망토를 두른 사람이 앞발을 든 말 위에 앉아 손을 들고 있는 그림. 알프스를 넘는 나폴레옹이다. 이것도 교과서에서 본 적이 있어서 앞에서 사진을 찍었다.
방을 지나면서 그림이 계속 나왔다. 천장까지 그림이 그려진 방도 있었다.
소녀 그림 세 점
이날 내가 가까이서 찍은 그림은 세 점이다. 셋 다 소녀가 그려진 그림이었다.

하나는 책을 읽고 있는 소녀다. 고개를 숙이고 책을 든 채로 옆모습만 보이고, 어깨가 드러나 있고 배경은 어둡다. 1850년 그림이고 프란츠 아이블이라는 사람이 그렸다.

하나는 장미를 따는 소녀다. 팔을 위로 뻗어 꽃가지를 잡고 있고 다른 팔에는 장미가 가득 담긴 바구니를 안고 있다. 붓자국이 거칠어서 가까이 보면 형태가 풀어진다. 안톤 로마코가 1880년대에 그렸다.

하나는 어머니와 두 아이가 나란히 앉은 그림이다. 흰 천을 두른 여자가 가운데 있고 양옆에 아이가 하나씩 있다. 색이 강하고 얼굴이 창백하다. 에곤 실레가 그렸다.
지금 와서 보면 이 세 점이 묶이는 게 우연은 아닌 것 같다. 셋 다 여자가 뭔가에 몰두해 있는 그림이다. 책을 읽거나, 꽃을 따거나, 아이를 안고 있거나. 카메라를 의식하지 않는 사람들이다. 그날 나는 그런 걸 알고 고른 게 아니었다. 그냥 발이 멈춘 데서 찍었는데, 셋을 나란히 놓으니 내가 어떤 그림 앞에서 멈추는 사람인지가 보인다.
세 번째 그림에 대해서는 한마디 덧붙여야겠다. 실레는 이 그림을 그리고 얼마 안 있어 죽었다. 1918년 스페인 독감이었고, 스물여덟이었다. 그해에 클림트도 죽었다. 이 궁전에 걸린 오스트리아 근대 회화의 두 축이 같은 해에 사라졌다.
그런데 그건 안 찍었다
이 궁전에서 제일 유명한 그림은 따로 있다. 금색으로 뒤덮인 그림, 두 사람이 껴안고 있는 그 그림이다. 그 방에 갔다. 벽이 통째로 검게 칠해져 있고 그림 하나만 걸려 있었다. 방 안이 사람으로 차 있었다. 내가 그날 찍은 건 그림이 아니라 그 방이었다. 사람들이 그림 앞에 반원을 그리고 서 있는 광경. 그림은 사람들 머리 너머로 작게 들어가 있다.
가까이 가서 찍지 않았다.
지금 생각하면 그럴 만했다. 가까이 갈 수가 없었다. 앞줄에 사람이 겹겹이 있었고, 그 앞에서 오래 서 있을 자리가 없었다. 그리고 그 방은 사진을 찍는 자리가 아니기도 했다. 그래서 내 사진첩에서 벨베데레는 소녀 그림 세 점으로 남았다. 제일 유명한 그림은 사람들 뒤통수와 함께 한 장 있을 뿐이다.
오래 본 것과 유명한 것은 다르다
이틀 전에도 비슷한 일이 있었다. 제체시온 지하에서 벽화 앞에 앉아 오래 있었는데 사진이 한 장도 없다. 여기서는 유명한 그림을 사람들 너머로만 봤고, 대신 작은 소녀 그림들 앞에 섰다. 여행 사진첩은 실제로 본 것과 잘 안 맞는다. 오래 본 것일수록 사진이 없고, 지나가며 본 것일수록 여러 장 남는다. 붙잡힌 순간에는 카메라를 들 생각이 안 나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 어긋남 자체가 기록이기도 하다. 내가 어디서 카메라를 내려놨는지가 사진의 빈자리로 남아 있다.
벨베데레 실전 정보
상궁과 하궁이 따로 있고 표도 따로다. 여기서 제일 많이 헷갈린다.
| 값 | 무엇이 있나 | 여는 시간 | |
|---|---|---|---|
| 상궁(Oberes) | 23유로 | 클림트·실레·근대 회화 상설 | 9:00~19:00 |
| 하궁(Unteres) | 20유로 | 기획전 위주 | 10:00~18:00 |
| 2-in-1 | 32유로 | 상궁+하궁 | |
| 3-in-1 | 34유로 | 위 + 벨베데레21(현대미술) |
「키스」를 보러 가는 거면 상궁 한 장이면 된다. 클림트도 실레도 코코슈카도 전부 상궁에 있다. 하궁은 기획전이라 시기마다 내용이 달라서, 미리 뭘 하는지 보고 결정하는 게 맞다. 요금과 전시 일정은 공식 사이트에서 확인할 수 있다.
정원은 무료다. 두 궁전 사이 계단식 정원은 표 없이 걸을 수 있고, 위쪽에서 내려다보는 비엔나 시내 전망이 이 도시에서 손꼽힌다. 시간이나 예산이 빠듯하면 정원만 걸어도 값을 한다. 실제로 이날 내 사진 중 제일 잘 나온 것들이 이 무료 구역에서 찍혔다.
「키스」 앞에서 사진을 찍을 수 있나
그 방은 촬영이 제한된다. 관람객이 계속 흐르게 하려는 조치이고, 그림 앞에 사람이 겹겹이 서 있어서 실제로도 카메라를 들 자리가 없다.
나머지 전시실은 플래시와 삼각대 없이 찍을 수 있다. 이 글에 실린 그림 사진들이 그렇게 찍은 것이다. 기획전은 작품마다 별도 규정이 붙는 경우가 있으니 입구 안내를 보는 편이 낫다.
한 가지 덧붙이면, 그림 자체의 저작권은 이미 소멸했다. 클림트는 1918년, 실레도 1918년, 아이블은 1880년, 로마코는 1889년에 죽었다. 사후 70년이 훨씬 지나 퍼블릭 도메인이다. 촬영이 막히는 건 저작권이 아니라 관람 질서 때문이다.
언제 가는 게 나은가
오전이다. 상궁은 9시에 열고, 「키스」가 걸린 방은 오후로 갈수록 사람이 찬다. 문 여는 시간에 맞춰 들어가면 그 방이 비어 있는 몇십 분이 있다.
여름에는 저녁도 방법이다. 상궁이 여름에는 19시까지 열어서, 늦은 오후에 정원을 걷고 해 지기 전에 들어가는 동선이 된다.
정원 → 상궁 순서를 권한다. 하궁 쪽에서 걸어 올라가면서 정원을 보고, 언덕 위 상궁으로 들어가는 흐름이 자연스럽다. 반대로 하면 그림을 보고 나온 다음 내리막을 걷게 되는데, 이미 지친 상태라 정원이 눈에 안 들어온다.
지하철보다 트램이다. 상궁 앞까지 트램 D번이 선다(Schloss Belvedere 정류장). 지하철로 가면 역에서 언덕을 걸어 올라가야 한다.
다녀와서
이 편에 실린 그림 사진은 셋 다 백 년이 훨씬 넘은 작품이라 지금은 누구나 쓸 수 있는 그림이 됐다. 그린 사람들은 오래전에 죽었고, 그림은 남아서 벽에 걸려 있다.
비엔나에서 내가 제일 오래 본 것들은 대개 사진이 없다. 지하의 벽화, 사람들 너머의 금색 그림, 그리고 이틀 전 밤의 광장.
궁전을 나오니 낮이 한창이었다. 이제 도시를 떠나면 됐다.
제일 오래 본 것들은 대개 사진이 없습니다. 지하의 벽화, 사람들 너머의 금색 그림. 그 빈자리가 오히려 기록 같기도 해요.
다음 편은 그 마지막 몇 시간입니다. 케이크를 하나 먹고 버스를 탔는데, 그 버스가 고속도로에서 멈췄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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