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라하 가는 고속도로가 막혔는데 사람들이 내려서 축구를 했다
벨베데레에서 나와 시내로 돌아왔다. 버스 시간까지 몇 시간이 남아 있었다.
케이크 하나를 시켰다


빈에 왔으니 커피와 케이크는 한 번 먹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게 이 도시에서 유명한 것이라고 들었기 때문이다.
가게 이름은 지금 기억나지 않는다. 다만 사진이 남아 있고, 케이크 위에 얹힌 동그란 초콜릿에 글자가 찍혀 있다. 확대해보면 호텔 이름이 읽힌다. 그러니까 나는 그 유명한 케이크의 원조 집에 앉아 있었던 셈이다.
접시에 초콜릿 케이크 한 조각과 휘핑크림이 산처럼 얹혀 나왔다. 자허토르테다. 커피는 우유를 얹은 것으로 시켰는데 멜랑쥐라고 부르는 것이었다.
케이크는 평범했다. 시트가 있고 살구잼이 발려 있고 겉에 초콜릿을 씌운 것인데, 동네 빵집에서 파는 초콜릿 케이크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유명하다고 들었으니 뭔가 다를 줄 알았는데 그렇지 않았다.
오히려 커피가 좋았다. 크림이 얹힌 게 부드러워서 이건 값을 한다 싶었다. 그날 두 개 중에 다시 시킬 것을 고르라면 케이크가 아니라 이쪽이었다.
그런데 그날 나는 사진을 여러 장 찍었다. 접시 위, 케이크 단면, 앉은 자리, 셀카까지.
먹으러 갔다기보다 남기러 갔던 것에 가깝다. 유명한 것을 유명한 방식으로 한 번은 해보는 것. 배낭여행 중에도 그런 게 하나쯤 필요했다.
값은 한 끼 밥보다 비쌌다. 그래도 후회하지는 않았다.
저녁에 버스를 탔다

프라하행은 국제버스였다. 유로라인이라는 회사 버스였고, 좌석이 넓고 커튼이 달려 있었다.
빈을 빠져나가면서 다뉴브를 건넜다. 사장교 하나가 창밖으로 지나갔다.
버스에 앉으면 마음이 좀 헐거워진다. 이제 도착할 때까지 할 일이 없다. 나는 창밖을 찍었다. 밀밭이 계속 이어졌고, 마을이 하나씩 지나갔고, 광장 한가운데 기둥이 서 있는 동네도 있었다.
가방에서 초코바를 꺼내 먹었다. 바나나 맛이었다.
그러다 버스가 멈췄다

한참 달리다가 속도가 줄더니 아예 섰다.
앞쪽에 차가 길게 늘어서 있었다. 사고가 난 모양이었다. 몇 분이면 풀리겠거니 했는데 풀리지 않았다.
사람들이 하나둘 버스에서 내리기 시작했다. 나도 내려서 앞쪽을 봤다. 고속도로가 끝까지 차로 막혀 있었다. 다른 버스들도 여러 대 서 있었다.
사람들이 축구를 하고 있었다
그런데 반대편 차선 쪽에서 소리가 났다.
보니까 다른 버스에서 내린 사람들이 공을 차고 있었다. 고속도로 위에서. 차선을 사이에 두고 이쪽저쪽으로 공을 주고받으면서 웃고 있었다.
한참 봤다.
그때 든 생각은 이랬다. 유럽 사람들은 진짜 여유가 있구나. 우리나라 사람들 같았으면 화를 내면서 언제 가느냐고 했을 텐데. 여기 사람들은 아예 놀 거리를 만들어버리는구나.
그게 그날 밤 내가 내린 결론이었고, 나는 그걸 꽤 오래 그대로 가지고 있었다.
지금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이 글을 쓰면서 그 장면을 다시 떠올렸다. 그리고 그때의 결론이 좀 이상하다는 걸 알았다.
어쩔 수 없었으니까 그런 것이다. 차가 안 움직이는데 화를 내봐야 앞차가 비켜주지 않는다. 그 상황에서 할 수 있는 게 서서 기다리는 것뿐이라면, 공을 차든 담배를 피우든 뭐라도 하게 된다.
우리나라 사람들도 그 상황이면 아마 똑같이 했을 것이다. 실제로 요즘은 뭘 해도 축구부터 하는 것 같기도 하다. 어디 모이면 공부터 찬다.
그러니까 그날 내가 본 건 유럽 사람들의 여유가 아니라, 막힌 도로 위에서 사람이 하는 행동이었다.
그때 나는 자꾸 그런 비교를 했다. 저 사람들은 이런데 우리는 저렇지, 하는 식으로. 2015년의 나에게는 유럽이 뭔가 더 나은 곳이었고, 그래서 보는 것마다 비교 대상이 됐다.
그 비교가 지금은 잘 성립하지 않는다. 그 사이 11년이 지났고, 한국도 많이 달라졌다. 여름밤 광장에서 영화를 틀고, 사람들이 바닥에 앉아 보고, 어디 모이면 공을 찬다. 그때 부러워했던 것들 대부분이 지금 여기에도 있다.
그런데 이 이야기를 쓰면서 그때의 감탄을 지우고 싶지는 않다. 그렇게 느꼈던 게 그때의 나였다. 부러워했으니까 잘 봤고, 잘 봤으니까 11년이 지나서도 이 장면이 남아 있다.
다시 출발했다

한참 뒤에 차가 움직였다. 다시 자리에 앉아 창밖을 봤다.
국경을 넘었다. 표지판 글자가 바뀌었고 숲이 많아졌다. 강을 끼고 도는 구간에서 사진을 몇 장 찍었다.
프라하에 도착했을 때는 이미 밤이었다. 거리에 불이 켜져 있었고 트램이 다녔다. 숙소를 찾아 들어가서 엘리베이터 안에서 사진을 한 장 찍었다.
빈에서 사흘, 그리고 국경 하나.
자허토르테, 자허냐 데멜이냐
이 케이크는 1832년에 열여섯 살 견습생이던 프란츠 자허가 만들었다. 그의 아들 에두아르트가 제과점 데멜에서 일하며 레시피를 다듬은 뒤 독립해 호텔 자허를 열면서, 어느 쪽이 원조냐를 두고 두 집이 오래 다퉜다. 법정까지 갔고 1965년에 정리됐다. 데멜은 자기 방식으로 만든 것을 '데멜의 자허토르테'라는 이름으로 팔 수 있게 됐다.
차이는 살구잼을 어디에 바르느냐다. 자허는 시트를 갈라 사이에도 잼을 넣고, 데멜은 초콜릿 겉면 바로 아래에 얇게 한 겹만 바른다. 값은 두 집 다 한 조각 10유로 안팎이고 자허 쪽이 조금 비싸다.
커피를 같이 시키는 게 낫다. 단맛이 강해서 그냥 먹으면 금방 물린다. 곁들여 나오는 휘핑크림도 그래서 있는 것이다. 멜랑쥐는 에스프레소에 우유와 우유 거품을 얹은 것으로, 이 케이크와 같이 먹으라고 만든 것처럼 맞는다.
줄을 각오해야 한다. 호텔 자허 카페는 성수기 낮에 대기가 길다. 자리에 앉지 않고 포장만 사 가는 창구가 따로 있으니 시간이 없으면 그쪽이 빠르다.
빈에서 프라하 가는 법
버스와 기차 둘 다 있다. 기차는 빈 중앙역에서 프라하 중앙역까지 직통으로 다니고, 네 시간 안팎 걸린다. 버스는 그보다 조금 더 걸리지만 값이 싸다. 미리 예약하면 버스가 훨씬 저렴하고, 임박해서 사면 차이가 줄어든다.
국경 검문은 없다. 두 나라 모두 솅겐 지역이라 버스가 그냥 지나간다. 다만 여권은 항상 가지고 있어야 한다.
통화가 바뀐다. 오스트리아는 유로를 쓰고 체코는 코루나를 쓴다. 국경에서 환전할 필요는 없고 프라하 도착 후 시내에서 하거나 카드를 쓰면 된다. 역 안 환전소는 환율이 나쁜 편이다.
야간 이동을 고를 때는 도착 시간을 확인하는 게 좋다. 밤 늦게 도착하면 숙소까지 가는 대중교통이 끊겨 있을 수 있다. 나는 밤에 도착했고 다행히 트램이 다녔다.
다녀와서
빈에서 사흘 동안 궁전 두 채, 박물관 두 곳, 미술관 두 곳, 성당 하나, 묘지 하나, 공원 두 곳을 갔다. 표를 여러 장 끊었고 그중 절반은 아직 갖고 있다.
그런데 이 도시를 떠올리면 먼저 나오는 건 표를 안 낸 것들이다. 밤의 광장, 묘지의 꽃, 강가에 앉아 있던 시간, 그리고 이 고속도로.
그리고 이 마지막 장면이 계속 남은 이유는 아마 그때 내가 뭔가를 결론지었기 때문일 것이다. 그 결론은 지금 보면 틀렸는데, 틀린 채로 남아 있어서 이렇게 다시 꺼내볼 수 있게 됐다.
다음 편은 프라하다. 도착한 밤과 민박집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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