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핀란드 · 투르쿠 2] 성은 닫는 중이었는데 그 앞 풀밭에 갑옷 입은 기사가 있었다
문을 닫는 중이었다.
훨씬 볼 만했다.
새 휴대폰을 사고 나니 네 시가 넘어 있었다.
배는 여덟 시 십오 분이었다. 네 시간이 비었고 짐은 등에 있었다.
지도를 펴 보니 강이 도시를 가로지르고, 그 강을 따라 내려가면 성이 나온다고 돼 있었다.
그럼 그 선을 따라가면 된다.
강은 도시를 반으로 가른다
투르쿠 시내는 아우라 강을 끼고 양쪽으로 퍼져 있다.
다리가 여러 개 걸려 있어서 어느 쪽으로 건너도 크게 돌지 않는다. 짧은 거리를 건네주는 작은 배도 다닌다.

다리 아래로 내려가니 물가에 흙길이 나 있었다. 강 건너로 대성당 첨탑이 나무 사이에 끼어 보였다.
핀란드에서 제일 오래된 도시라고 들었는데, 걷다 보니 그 말이 실감이 안 났다. 건물이 대부분 낮고 새것이었다.

시내 쪽으로 붙으니 건물 벽 하나가 통째로 그림이었다.
분홍색 인물이 벽 절반을 채우고 있었다. 그 아래층에는 평범한 사무실 창문이 붙어 있어서 위아래가 따로 놀았다.

옛 배와 지금 배가 한 화면에
강을 따라 항구 쪽으로 계속 내려갔다.
아치 다리가 하나 걸려 있었고 그 아래로 물이 잔잔하게 흘렀다. 저녁 여섯 시가 다 됐는데도 해는 아직 높았다.

강폭이 넓어지자 배가 늘었다. 유람선과 식당배가 물가에 줄지어 매여 있었다.

그러다 돛대가 나타났다. 요트 마스트 사이로 훨씬 굵고 높은 게 서 있었다.

돛대가 셋인 목조 범선이었다. 지금은 박물관으로 쓰는 배다.

조금 더 가니 범선이 세 척으로 늘었고 그 뒤로 조선소 크레인이 서 있었다.
옛 배와 지금 배가 한 화면에 들어왔다. 이 도시는 아직도 배를 만든다.

강변 잔디에는 사람 키보다 큰 데이지 조형물이 서 있었다.
실물로 보면 그냥 큰 꽃인데 역광으로 찍으니 그림자까지 꽃잎 모양으로 깔렸다.

투르쿠 성, 또 문 닫는 중이었다
항구가 보이기 시작할 무렵 성이 나왔다.
흰 벽과 회색 돌이 섞인 큰 요새다. 스웨덴이 핀란드를 다스리던 시절에 관문으로 쓰던 성이다.

가까이서 보니 벽이 한 덩어리가 아니었다. 시대마다 덧붙인 부분의 돌 색과 창 모양이 서로 달랐다.

안내판을 보니 마감 시간이 코앞이었다.
안에 박제된 곰이 있다고 해서 그것과 사진을 찍어 볼 생각이었는데, 관리인이 이미 정리를 시작하고 있었다.
며칠 전 영묘에서도 똑같이 문 앞에서 돌아섰다. 핀란드에서 두 번 같은 실수를 했다.

성벽을 밖에서 한 바퀴
들어가지 못했으니 밖으로 돌았다.
안뜰 쪽으로 목조 회랑이 벽에 붙어 있었다. 위에서 아래를 내려다보며 지키던 자리다.

창문이 벽 두께 안쪽으로 깊게 박혀 있었다. 벽이 두꺼우니 창이 터널처럼 들어간다.
들어가서 봤으면 그냥 전시실이었을 텐데, 밖에서 도니까 벽 자체가 보였다.
못 들어간 게 아깝지 않았다고는 못 하겠지만 손해만은 아니었다.
성 앞 풀밭에 기사가 있었다
한 바퀴를 다 돌고 나오는데 풀밭에서 소리가 났다.
갑옷을 입고 말에 올라탄 사람이 서 있었다. 투구에 붉은 깃털이 꽂혀 있고 말에도 천을 둘렀다.

옆에는 붉은 옷을 입은 사람들과 장비가 흩어져 있었다. 드라마나 영화 촬영으로 보였다.
사진을 찍어도 되겠느냐고 물었더니 오히려 자세를 잡아 줬다.

그 반응을 본 다른 관광객들이 순식간에 몰려들어서 나는 자리를 비켜줬다.
문을 닫은 성보다 그 앞 풀밭이 볼 만했다. 표를 안 샀는데 구경은 더 했다.
투르쿠 성 관람 정보
투르쿠 성 공식 페이지 기준으로 여름철(6~8월)엔 화요일부터 일요일까지 오전 10시부터 오후 6시까지 연다.
월요일은 쉰다.
마지막 입장은 닫는 시각 30분 전이다. 나는 이걸 몰라서 문 앞에서 돌아섰다.
입장료는 성인 18유로, 7~15세 8유로다. 가족권(성인 1~2명 + 어린이 2~4명)이 44유로다.
성은 항구 바로 옆이다. 시내에서 강을 따라 걸으면 삼십 분쯤 걸리고, 버스로도 갈 수 있다.
배를 타는 날 성을 보려면 오전에 간다. 오후에 넣으면 나처럼 마감 시간에 걸린다.
계획 없이 걸은 하루
계획 없이 걸으니 하루가 이렇게 흘러갔다.
보려던 걸 못 보고, 대신 예정에 없던 걸 본다. 성 안의 박제 곰 대신 성 밖의 말 탄 사람을 봤다.
그 교환이 손해였는지는 지금도 모르겠다. 다만 박제 곰이었으면 이 이야기를 쓰지 않았다.
배를 기다리는 몇 시간을 어떻게 보내게 할지 이 나라는 계산을 해 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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