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 리옹 3] 일요일엔 도시가 문을 닫고 있었다
일요일이었다.
안으로 들어간 곳은 하나도 없었지만.
그게 무슨 뜻인지는 여덟 시 반에 시내로 나가서야 알았다.
유럽의 일요일은 도시가 쉬는 날이다. 상점이 닫고 사람이 줄고, 남는 건 건물과 광장뿐이다.
그래서 그날 나는 리옹의 유명한 곳을 거의 다 봤다. 안으로 들어간 곳은 하나도 없었지만.
아침 여덟 시 반, 아무도 없는 강변
손강을 따라 걷는 걸로 시작했다.
강 건너 언덕 위에 흰 성당이 하나 보였다. 그게 이 도시의 상징인 푸르비에르 대성당이라는 건 나중에 알았다.
물빛이 청록색이었다. 다리 위로 크레인이 서 있고, 강가에 정박한 배들은 아직 조용했다.

조금 더 걸으니 유리로 된 반원 지붕을 얹은 건물이 나왔다. 오페라 극장이다.
아래쪽은 19세기 석조 건물 그대로인데 위에만 유리 반통을 얹어놨다.
리모델링 때 층수를 늘리려고 그렇게 했다고 한다. 안 어울릴 법한 조합인데 묘하게 자연스러웠다.

극장 앞 광장에도 사람이 거의 없었다.

바로 옆이 시청이다. 붉은 파사드에 조각이 잔뜩 붙은 17세기 건물인데, 정면에 국기가 걸려 있었다.

시청 앞이 떼호 광장이다. 리옹에서 제일 큰 광장 중 하나이고, 한쪽 끝에 커다란 분수가 있다.

말 네 마리가 물살을 헤치고 나오는 형상인데, 자유의 여신상을 만든 조각가가 만든 것이다.
원래 보르도에 팔려던 걸 값이 안 맞아 리옹이 사갔다고 한다.
광장 바닥이 넓어서 그런지, 분수 앞에 서면 소리가 유난히 크게 들렸다.

벽에 그려진 책들
떼호에서 골목으로 접어들다 이상한 건물을 만났다. 5층짜리 건물 옆면에 책이 잔뜩 그려져 있었다.
창문도 발코니도 없이 통째로 책장이다.
가까이 가서 보면 책등마다 제목이 적혀 있다. 전부 리옹 출신 작가들의 책이라고 한다.

리옹에는 이런 벽화가 도시 곳곳에 있다.
벽 하나를 통째로 그림으로 채우는 전통이 있다. 사람 사는 건물 옆면이 갑자기 이렇게 변한다.
조금 더 가니 생 니지에 성당이 나왔다.
첨탑 두 개가 높이가 다르게 서 있는 고딕 성당인데, 일요일 아침인데도 문은 닫혀 있었다.

골목에서 한글 간판을 봤다
성당 뒤 골목을 걷다가 걸음을 멈췄다. 간판에 한자와 알파벳, 그리고 한글이 나란히 적혀 있었다.
江南 GANGNAM 강남.
한식당이었다. 문은 닫혀 있었고 안은 어두웠다.
그때는 강남스타일이 나온 지 3년쯤 됐을 때라,
유럽 도시에서 저 이름을 단 가게를 보는 게 아주 이상한 일은 아니었다.
그래도 리옹 구시가 골목에서 한글을 마주치니 잠깐 멈춰 서게 됐다.

들어가 보지는 않았다. 닫혀 있기도 했고, 그때 내 예산으로는 어차피 못 먹었다.
벨쿠르 광장은 규모가 달랐다.
유럽에서 손꼽히게 넓은 보행자 광장이라는데, 실제로 서 보면 건너편 끝이 멀다.
바닥이 붉은 흙빛이고 가운데가 완전히 비어 있어서 더 넓어 보인다.

가장자리를 따라 나무가 줄지어 심어져 있고, 그 그늘에 사람들이 앉아 있었다.

광장 한가운데에 루이 14세 기마상이 서 있다.
그리고 광장 서쪽 끝에 서면 언덕 위 푸르비에르 대성당이 정면으로 보인다.

축구장 세 개만 한 광장
어린왕자와 조종사
벨쿠르 광장 한쪽 구석에 흰 석상이 하나 있다.
받침대 위에 남자가 앉아 있고, 그 어깨쯤에 작은 아이가 서 있다. 생텍쥐페리와 어린왕자다.

생텍쥐페리가 리옹 태생이다.
이 도시 공항 이름도 그의 이름을 땄다.
조종사 복장을 한 그가 하늘을 올려다보고 있고, 어린왕자는 그 옆에 서서 같은 쪽을 본다.
석상이 생각보다 높이 있어서 올려다봐야 했다. 나뭇잎이 반쯤 가려서 각도를 잡기가 어려웠다.

여기까지가 오전 열 시 전이었다.
한 시간 반 만에 이 도시의 대표적인 광장과 성당을 거의 다 지나온 셈인데, 어디에도 들어가지 못했다.
저녁에 다시 나갔다
낮에는 숙소에서 쉬었다. 전날 열한 시간을 이동한 데다 밖은 더웠다.
늦은 오후에 키슈 한 조각을 데워 먹고 다시 나섰다.
레몬 타르트도 한 조각 있었다.
프랑스에 있는 동안 디저트는 실패한 적이 거의 없었다.
아무 빵집이나 들어가도 기본 이상은 했고, 특히 레몬 타르트류는 신맛이 분명해서 물리지 않았다.
관광 앱을 열어 지도를 봤는데 빨간 핀이 화면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핀은 잔뜩인데 그날 문을 연 곳은 몇 군데 없었다.


볼 건 이렇게 많은데 대부분 일요일에 닫는다는 게 그날의 문제였다.
강변으로 걸어 나갔다. 저녁 일곱 시가 넘었는데 해가 아직 나무 위에 걸려 있었다.

이 도시는 여름 해가 아주 길다. 아홉 시가 넘어도 하늘이 완전히 어두워지지 않는다.
텅 빈 쇼핑센터
파르디외 쪽으로 방향을 잡았다. 전날 도착해서 지나쳤던 그 연필 모양 빌딩이 있는 동네다.
거리에서 보면 건물 사이로 그 원통이 불쑥 솟아 있다. 해질 무렵이라 원통 표면이 주황색으로 물들어 있었다.

역 앞은 그래도 사람이 오갔다. 기차를 타러 온 사람들이다.

광장에 앉아 있는 사람들이 있었다. 상점이 닫혀도 광장은 닫히지 않는다.


연필 옆에 유리로 된 타워가 하나 더 있다.
이쪽이 지금은 더 높다.
오래된 원통과 새 유리 건물이 나란히 선 게 이 동네 스카이라인이다.

가는 길에 콘크리트로 된 원형 건물을 지났다.
리옹 오디토리움이라는 콘서트홀인데, 바깥에 야외 계단이 둥글게 둘러져 있었다.
여기도 물론 닫혀 있었다.

쇼핑센터 안으로 들어갔다. 유럽에서 규모가 큰 축에 드는 몰이라는데, 안에 사람이 거의 없었다.
상점 대부분이 셔터를 내렸다. 서브웨이 한 곳과 카페 몇 개만 불을 켜고 있었다.

애플스토어도 열려 있긴 했다. 진열대에 기기들이 그대로 놓여 있는데 손님이 나 하나였다.

여기서 잠깐 인터넷을 썼다. 숙소 와이파이가 느려서 사진 몇 장 올리는 것도 오래 걸렸는데, 여기는 빨랐다.
이름도 못 물어본 두 사람
몰을 돌다가 두 사람과 마주쳤다. 어쩌다 말을 걸게 됐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데, 사진을 같이 찍었다.
한 명이 엄지를 치켜들고 웃고 있고, 나는 그 옆에서 같이 웃고 있다.

이 여행에서 이런 사진이 꽤 많다.
이름을 물어본 사람도 있고 안 물어본 사람도 있는데, 대부분은 이렇게 몇 분 웃고 헤어졌다.
지금 보면 누구인지 모르겠는 얼굴들이 사진에는 남아 있다.
몰을 나오면서 시립도서관 건물을 지났다. 유리 벽면에 전시 포스터가 붙어 있었다.

아홉 시의 노을
다시 강변으로 돌아왔다.
돌아오는 길에 자전거를 한 대 뽑았다.
숙소 안내문에서 본 그 공유자전거인데, 대여소가 몰 앞에도 있었다.
시험 삼아 타본 건데 강변 자전거길이 차도와 완전히 분리돼 있어서 그대로 한참을 달렸다.
해가 지고 있었다. 강 건너 실루엣으로 돔 하나가 솟아 있었는데, 옛 시립병원 건물이다.
수백 년 동안 병원이었다가 지금은 호텔과 상점으로 바뀌었다.

물에 하늘이 그대로 비쳤다. 강폭이 넓어서 반사되는 면적도 넓다.

*손강 저녁 노을, 강변 산책*
여기 앉아 한참을 봤다. 그날 하루 종일 어디에도 들어가지 못했는데, 이 시간이 제일 좋았다.
돌아보면 일요일에 도착한 게 나쁘지 않았다.
문이 다 닫혀 있으니 걷는 것 말고 할 게 없었고, 그래서 이 도시의 배치가 머리에 남았다.
어디에 뭐가 있는지 알고 나니 다음 날부터 훨씬 수월했다.
리옹 일요일에 여는 곳
프랑스는 일요일 영업을 법으로 제한한다.
원칙적으로 상점은 일요일에 문을 닫아야 하고, 예외가 인정되는 업종과 관광지구만 연다.
리옹에서 일요일에 확실히 열리는 것들은 이렇다.
광장과 공원 — 벨쿠르, 떼호, 테트 도르 공원은 언제나 열려 있다.
이날 내가 걸은 코스가 사실상 그것이다.
성당 — 미사 시간에는 열린다. 푸르비에르 대성당과 생장 대성당은 관광객 입장도 대체로 가능하다.
푸르비에르 언덕과 로마 유적 — 야외라 상관없다. 고대극장은 개방돼 있다.
일부 쇼핑센터 — 파르디외 같은 대형 몰은 관광지구 예외로 열리는 곳이 있지만, 개별 매장은 각자 판단이라 절반 이상이 닫혀 있을 수 있다.
내가 간 날이 딱 그랬다.
빵집과 식당 — 빵집은 오전에 여는 곳이 많다.
다만 오후 늦게 가면 대부분 문을 닫는다. 나도 한 번 늦게 갔다가 헛걸음했다.
정리하면 일요일에는 야외 일정으로 짜고 실내는 월요일 이후로 미루는 것이 맞다.
나는 그걸 모르고 나갔다가 우연히 야외만 걷게 됐는데, 결과적으로는 도시 지리를 익히는 날이 됐다.
이튿날은 자전거를 빌렸다. 도시가 갑자기 좁아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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