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 리옹 13] 절반을 지나고 나서야 남은 절반의 계획이 섰다
남은 절반이 정해졌다.
수첩에 "미친"이라고 적었다.
리옹에서의 마지막 날이었다.
아침에 빵집에 갔다가 신문 가판대에서 걸음을 멈췄다.

지역 신문 스포츠면에 지난 며칠 동안 트랙 옆에서 본 그 대회가 실려 있었다. 사진 속 사람들이 내가 지나쳤을 법한 얼굴들이었다.
여드레가 이날로 끝났다. 그리고 이날 저녁에야 남은 절반을 어떻게 갈지가 정해졌다.
마지막 점심
떠나기 전 냉장고를 비워야 했다.

떠나기 전날이라 있는 걸 다 꺼냈다.


폐막식
오후에 경기장으로 갔다. 이번이 마지막이었다.


며칠 동안 텅 비어 있던 관중석이 이날은 꽉 찼다.

트랙 안쪽 잔디에 참가자들이 나라별로 모여 섰다.

폐막식이라기엔 무대가 소박했다.


직접 챙겨 온 국기라 크기가 다 달랐다.


잔디밭이 국기로 덮이니 나라 경계가 사라졌다.


*관중석에서 잔디 쪽을 훑었다.*

이날은 펜스 밖에도 사람이 붙어 있었다.


그리고 국기 행진이 시작됐다.


*행진은 한참 이어졌다.*
올림픽 개회식 같은 장면인데 규모만 작다. 그리고 걷는 사람들 절반 이상이 예순을 넘었다.
태극기는 있었다
경기장 건물 벽에 참가국 국기가 죽 붙어 있었다.

그중에 태극기가 있었다.
그런데 대회 내내 한국 선수는 한 명도 못 봤다. 며칠 동안 트랙 옆에 서 있었고 사람들과 계속 얘기했는데도 그랬다.
2년 뒤 같은 대회가 대구에서 열렸다. 다만 그건 실내 대회였고, 이건 실외였다. 종목 구성도 성격도 꽤 다르다.
이유를 하나 더 짐작하자면 돈이다. 참가비만 400만원이 넘는다. 여기에 항공과 열흘 넘는 숙박이 붙는다. 국가대표로 뽑혀 가는 게 아니라 전부 개인 부담이다.
그걸 내고 오는 사람이 팔천 명이었다.

*밖에서도 계속 사진을 찍고 있었다.*


그리고 계산기를 두드렸다
숙소로 돌아오는 길이었다.


이 도시에서 여드레를 머무는 동안 처음으로 앞뒤를 정리해 봤다. 그전까지는 다음 도시만 보고 움직였다.
지금까지 열세 나라를 지났고, 쓴 돈은 대략 오백만 원이었다.
계산하고 나서 수첩에 "미친"이라고 적어놨다. 예상보다 많이 쓴 건지 적게 쓴 건지도 그때는 판단이 안 섰다. 그냥 숫자가 실감이 안 났다.
그리고 남은 경로를 정했다.
리옹에서 스페인으로 내려가 포르투갈까지 가고, 거기서 영국으로 건너간 다음, 북유럽 어딘가를 거쳐 핀란드로, 그다음 동유럽 네 나라와 모스크바를 지나 집으로.
이 경로가 이날 저녁에 정해졌다.
이날 정해진 것 두 가지
하나. 영국에서 축구를 보기로 했다. 구석 자리 표를 37.5유로에 잡았고, 포르투갈 파로에서 브리스톨로 가는 비행기를 91유로에 예약했다.
문제는 당일치기라는 것이었다. 비행기가 늦거나 버스 하나만 놓쳐도 경기를 못 본다. 예약을 마치고 나서도 한참 불안했다.
둘. 핀란드에 갈 곳이 생겼다. 트랙에서 만난 마리아가 집에 묵으라고 했고, 날짜를 셈해 보니 8월 중순 이후면 될 것 같았다. 이삼 박만 신세 지기로 마음먹었다.
숙소비 며칠 치가 통째로 빠지는 셈이었다. 그때 여행에서 그건 큰 숫자였다.

냉장고를 비우는 게 마지막 일과였다.

향신료 같은 건 아무리 해도 다 못 쓴다.


마흔이 넘어도
경기장에서 돌아오는 길에 계속 같은 생각을 했다.
트랙에서 본 사람들은 예순, 일흔, 여든이었다. 부상자도 계속 나왔다. 높이뛰기를 하다 머리를 다친 사람 얘기를 들었고, 도약하다 다리가 부러져 본국으로 돌아간 사람도 있었다. 지병이 있거나 심장이 안 좋은 채로 나온 사람도 흔했다.
그런데도 자기 돈을 내고 지구 반대편까지 온다.
나이를 먹어도 마음은 같은 것 같았다. 걸으면서 그 생각을 했다.
내가 마흔이 넘어도 여전히 게임을 즐길 수 있을까.
다음 날 아침에 리옹을 떠났다. 스페인까지는 카풀을 잡았고, 모르는 사람 차를 얻어 타고 국경을 넘는 여정이 시작된다. 다음 편에 적는다.
*관중석에서 내려다본 트랙*
*관중석이 국기로 덮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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