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 리옹 6] 언덕 위 성당 벽에 한국어가 붙어 있었다
내 글자를 봤다.
하필이면 기도문이었다.
로마 극장을 보고 나서 같은 언덕을 더 올라갔다.

리옹은 두 강 사이의 평지와 서쪽 언덕으로 나뉜다. 언덕 이름이 푸르비에르고, 로마 시대 도시가 여기 있었다.

올라오면 도시가 다 보인다


이 언덕이 리옹에서 제일 높다. 도시 전체가 발밑에 깔리고, 날이 맑으면 멀리 알프스까지 보인다고 한다. 그날은 거기까지는 안 보였다.

흰 성당
언덕 꼭대기에 흰 건물이 서 있다.

푸르비에르 대성당이다. 리옹 어디서든 보이고, 밤에는 조명이 들어와서 더 잘 보인다.


19세기에 지었다. 오래된 성당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파리 에펠탑과 비슷한 시기의 건물이다.
내력이 특이하다. 1870년 프로이센과의 전쟁 때 리옹 사람들이 도시가 점령을 면하면 성당을 짓겠다고 서원했다. 실제로 리옹은 전화를 비껴갔고, 2년 뒤 공사가 시작됐다.
그러니까 이 건물은 설계도보다 약속이 먼저 있었던 성당이다. 언덕 꼭대기를 고른 것도 그래서다. 도시 어디서나 보여야 약속을 지킨 표시가 된다.
바로 옆 로마 극장과의 거리도 재미있다. 걸어서 5분 안쪽이다. 2천 년 된 극장과 150년 된 성당이 같은 언덕 위에 있다. 리옹이라는 도시가 시간을 층으로 쌓아 올린 방식이 이 언덕 하나에 다 들어 있다.

들어가는 데 돈을 받지 않는다.
안이 더 놀라웠다


밖은 흰 돌인데 안은 완전히 다르다. 벽과 천장이 전부 모자이크와 금박으로 덮여 있다.


이런 성당을 유럽에서 여러 개 봤는데, 여기는 유독 색이 세다. 금색과 파란색이 정면으로 부딪친다.


그러다 벽에서 한글을 봤다
성당 한쪽 벽에 액자가 줄지어 붙어 있었다. 나라 국기가 하나씩 붙은 액자였다.

성모송을 각국 언어로 적어 붙여둔 것이었다. 그중 하나가 한국어였다.
주님께서 함께 계시니
여인 중에 복되시며
태중의 아들 예수님 또한 복되시나이다
나는 천주교 신자가 아니다. 이 기도문을 외우지도 못한다. 그런데 그 앞에서 한참 서 있었다.
두 달 만에 처음 보는 한글이었다. 간판도 아니고 메뉴판도 아니고, 프랑스 언덕 위 성당 벽에 액자로 걸린 기도문이었다.
여행이 길어지면 이런 게 이상하게 작동한다. 평소라면 지나쳤을 글자가 발을 붙잡는다. 내용이 뭔지는 그다음 문제다. 아는 글자라는 사실 하나로 충분하다.
이 액자들이 왜 붙어 있는지는 나중에 짐작이 갔다. 이 성당은 리옹 사람들이 지은 건물인 동시에 순례지다. 전 세계에서 사람이 오고, 그중 상당수가 프랑스어를 못 한다. 각국 언어로 같은 기도문을 붙여두면 누구든 자기 글자를 찾을 수 있다.
한국어가 그 목록에 들어 있다는 게 이 사진의 내용이다. 유럽 성당 벽에 한글이 걸릴 만큼 한국에서 오는 사람이 있다는 뜻이고, 그때 이미 그랬다는 뜻이다.
내려와서 광장까지
언덕을 내려와 강 건너 큰 광장으로 갔다.

벨쿠르 광장이다. 유럽에서 손꼽히게 넓은 보행자 광장이고, 실제로 서 보면 축구장 몇 개를 붙여놓은 것 같다.

한여름 정오라 광장 한복판은 아예 비어 있었다.

광장을 한 바퀴 돌기만 해도 십 분이 걸렸다.

그리고 광장 한쪽 구석에 이게 있었다.


생텍쥐페리 기념비다. 어린 왕자를 쓴 사람이 리옹에서 태어났다. 조각은 작가와 어린 왕자가 나란히 앉아 있는 모습이다.
이 도시에 며칠 있으면서 그걸 몰랐다. 광장을 몇 번 지나갔는데도 이 기둥을 그날 처음 봤다.
생텍쥐페리는 1900년 리옹에서 태어났고, 조종사로 일하다 1944년 정찰 비행 중 지중해에서 실종됐다. 시신도 비행기도 오래 찾지 못했다. 리옹 공항 이름이 지금 생텍쥐페리다.
기둥 위에 어른과 아이가 나란히 앉아 있는 구도는 그래서 읽힌다. 작가와 그가 만든 인물이 같은 높이에 있다.
여행에서 뭘 보고 뭘 놓치는지는 대체로 우연이다. 이날은 성당에서 한글을 봤고 광장에서 어린 왕자를 봤다. 둘 다 찾아간 게 아니라 걷다가 마주친 것이다.

*천장을 올려다봤다*
푸르비에르 언덕 다니는 법
올라가는 법 — 지하철 D선 비외 리옹(Vieux Lyon) 역에서 푸니쿨라를 탄다. 교통권 한 장으로 탈 수 있고 3분이면 꼭대기다. 걸어 올라가는 길도 있는데 경사가 상당하다. 올라갈 때 푸니쿨라, 내려올 때 도보가 정답이다.
돈이 안 든다 — 대성당 본당, 지하 크립트, 전망 광장 전부 무료다. 유료는 부속 박물관과 탑 전망대뿐이다.
보는 순서 — 로마 극장(무료) → 대성당 → 전망 광장 → 걸어서 하산 → 구시가(비외 리옹). 반나절 코스다.
언어 액자 — 본당 안쪽 벽에 각국 언어 성모송이 붙어 있다. 한국어도 있다. 위치가 안내돼 있지는 않으니 벽을 따라 걸으면서 찾아야 한다.
벨쿠르 광장 — 언덕에서 내려와 강 하나만 건너면 된다. 광장 남서쪽 모퉁이에 생텍쥐페리 기념비가 있다. 아무 안내가 없어서 모르고 지나가기 쉽다.
이날 밤에 길을 잃었다. 그리고 처음 보는 사람들 차를 얻어 탔다. 다음 편에 적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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