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위스 · 취리히 4] 7만 원으로 2박 3일, 그리고 서둘러 떠났다

공항으로 갔다.
그게 이 도시에서 낼 수 있는 값이었다.
세계에서 물가가 제일 비싸다는 도시에 배낭 하나로 들어왔다.
나가는 날까지 도시 안에서 쓴 돈은 7만 원이었다.
저녁에 도시로 돌아왔다

근교를 반나절 걷고 도시로 돌아왔다. 해가 아직 남아 있었다.
숙소는 이미 나온 뒤였다. 이날 밤은 방을 잡지 않기로 했으니까.
밤을 보낼 곳은 공항이었다

취리히 공항으로 갔다.
유리 천장 아래로 대합실이 넓게 뚫려 있고, 안내판에 체크인 카운터와 주차장, 기차 방향이 화살표로 갈려 있었다.

안쪽에는 식당가와 출발 전광판이 있었다. 늦은 시간에도 사람이 계속 지나다녔다.
숙박비를 하나 더 아끼는 방법이 이거였다. 잘 곳을 사지 않고 앉을 곳을 찾는 것.
커피 한 잔으로 자리를 샀다

스타벅스에 들어가 아이스커피를 시키고 노트북을 폈다. 그날 찍은 사진을 정리하고 다음 도시 이동편을 찾아봤다.

물가가 비싼 나라에서 카페 한 잔 값은 자릿값이다. 몇 시간을 앉아 있을 수 있으니까.
컵에 적힌 이름을 모으고 다녔다

스타벅스에서는 컵에 이름을 적어 준다.
내가 "지호"라고 말하면 나라마다 다르게 알아듣는다.
"지 오"처럼 띄어 적히기도 하고 아예 다른 철자가 되기도 한다.
그게 재밌어서 컵에 이름이 적힐 때마다 사진을 찍고 다녔다. 이 여행 내내 그랬고 여기서도 찍었다.
내 이름이 나라마다 어떻게 들리는지 보는 건 돈이 안 든다.
주황색 의자에서 밤을 넘겼다

카페가 문을 닫은 뒤에는 대합실 의자로 옮겼다. 주황색 플라스틱 좌석이었고 배낭을 멘 채로 앉았다.
이 사진이 취리히에서 찍은 마지막 컷이다. 다음 사진은 이미 다른 나라에서 찍혔다.
7만 원의 내역

2박 3일 동안 쓴 돈을 정리하면 이렇다.
| 항목 | 금액 | 내용 |
|---|---|---|
| 숙박 | 약 5만 원 | 유스호스텔 1박 + 공항에서 1박(0원) |
| 식사 | 약 2만 원 | 호스텔 조식, 편의점 김밥, 커피, 배낭 속 초콜릿 |
| 관광 | 0원 | 호숫가·잔디밭·대학 캠퍼스·근교 트레일 |
| 합계 | 약 7만 원 |
여기에 교통비는 따로다.
뮌헨에서 들어올 때 19유로, 다음 도시로 나갈 때 60유로 정도. 합치면 10만 원가량이 별도로 들었다.
도시 안에서 쓴 돈만 7만 원이고, 가능했던 이유는 단순하다.
숙박을 반으로 줄이고 입장료 있는 곳을 후보에서 뺐다.
아끼는 데 거창한 이유가 있었던 건 아니다. 그날 밤 적어둔 걸 보면 "절약해서 돌아가 플스테이션을 사고 싶다"고 되어 있다.
물가가 제일 비싼 도시에서 안 쓰고 버틴 동기가 그거였다.
어디서 돈이 나가나
식비가 가장 위험하다. 편의점 김밥 한 통이 6.50프랑, 대학 학생식당의 외부인 요금이 12.70프랑이었다.
한 끼를 사 먹을 때마다 하루 예산이 흔들린다.
요금표를 비교하는 것보다 조식 포함 숙소를 고르는 편이 효과가 크다.
교통은 걷기로 상당 부분 대체된다. 중앙역에서 호수까지 20분, 호수에서 구시가까지 다시 20분 정도다.
하루 종일 도보로 다닐 계획이면 1일권을 안 끊어도 된다.
필요하면 ZVV 1일권이 1존 기준 성인 9.20프랑 선이고,
박물관까지 돌 계획이라면 취리히 카드 쪽을 저울질해볼 만하다.
요금은 바뀌므로 ZVV 공식 안내에서 확인하는 게 정확하다.
무료 지대가 넓다. 호숫가 산책로와 잔디밭, 선착장, 대학 캠퍼스와 그 앞 전망, 린덴호프 언덕, 근교 트레일이 전부 무료다.
이 도시는 돈 쓸 곳도 많지만 안 쓰고도 하루가 채워진다.
화폐는 스위스 프랑(CHF)이다. 유로존이 아니어서 유로로 결제하면 환율에서 손해를 본다.
카드는 대부분 통하고, 소액 현금은 조금 있으면 편하다.
지금 물가로 환산하면
당시 김밥 한 통 6.50프랑은 그때 환율(1프랑 약 1,200원)로 7,800원쯤이었다.
같은 시기 한국 편의점 삼각김밥이 700원선이었으니 열 배가 넘는다.
지금은 환율이 올라 1프랑이 1,900원에 가깝다.
같은 6.50프랑이면 1만 2천 원이 넘는다.
한국 삼각김밥은 평균 1,500원대다.
물론 스위스 현지 가격도 그동안 올랐을 테니 저 6.50이 지금 얼마인지는 현지 시세를 따로 봐야 한다.
다만 격차의 방향은 그대로다.
잘 보고 빨리 나왔다
취리히는 예뻤다. 호수가 특히 그랬고, 물이 바닥까지 보이는 걸 도시 한복판에서 봤다.
그런데 배낭여행자가 오래 머물기에는 어려웠다.
하루를 무료로 채울 수는 있어도 한 끼를 사 먹을 때마다 계산이 흔들린다.
그래서 서둘러 다음 도시로 넘어갔다. 이 도시에서 내가 한 건 잘 보고 빨리 나오는 거였다.
다음 편부터는 프랑스다. 론강이 보이는 숙소에 여드레를 눌러앉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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