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 뮌헨 8] 사과가 떨어져 있는데 아무도 안 줍는 정원

뮌헨 여행기 · 8편
25분 동안
사진을 36장 찍었다.
관광지가 아니었고
여기가 뭔지도 몰랐다.

공원을 빠져나와 주택가 쪽으로 걸었다. 그리고 길이 갈라지는 데서 안쪽으로 들어갔다.

처음 본 건 꽃이었다

흰 수국이 크게 핀 정원 구획
수국이 크게 피어 있었다

들어가자마자 흰 수국이 아주 크게 피어 있었다. 사람 상체만큼 되는 덩어리가 몇 개 뭉쳐 있었다.

여기가 뭔지 몰랐다. 남의 집 마당인가 싶었는데 길이 계속 이어져 있었다.

오두막이 하나씩 있었다

작은 목조 오두막과 잔디, 빨래줄이 있는 정원
오두막마다 빨래줄이 있다

들어가 보니 구획마다 작은 목조 오두막이 하나씩 있었다.

집이라기엔 너무 작고 창고라기엔 너무 예뻤다.

지붕에 기와를 얹은 것도 있고 벽에 화분을 걸어놓은 것도 있었다.

오두막 옆에 빨래줄이 걸려 있는 구획도 있었다. 그런데 사람이 사는 집은 아닌 것 같았다.

잔디가 깎여 있었다

잔디와 화단이 정리된 정원과 그 안쪽의 오두막
안쪽에 오두막이 하나씩

구획마다 잔디가 깎여 있고 화단이 정리돼 있었다.

이게 제일 놀라웠던 부분이다. 한두 집이 잘 관리한 게 아니라 눈에 보이는 모든 구획이 비슷한 수준으로 정리돼 있었다.

어떤 집은 잔디, 어떤 집은 채소, 어떤 집은 꽃 중심이었지만 손을 놓은 곳이 없었다.

길이 통해 있었다

양쪽으로 정원이 이어진 좁은 자갈길
자갈길 양쪽이 전부 정원이다
클라인가르텐 (모자흐 일대)
Kleingarten / Schrebergarten
독일 전역에 지금도 같은 제도로 운영된다
가격
걸어서 지나가는 건 무료
주소
Moosach, München, Germany
도시 사람들이 협회를 통해 작은 땅을 빌려 가꾸는 텃밭 단지다. 구획마다 오두막이 하나씩 있고 과일나무가 심겨 있다. 길은 열려 있지만 개별 구획 안은 사유지다

양쪽으로 정원이 이어진 좁은 자갈길이 계속 나왔다. 문이 따로 없어서 그냥 걸어 들어갈 수 있었다.

*시민텃밭 클라인가르텐 산책*

*걸으면서 찍었다. 양쪽이 계속 이렇게 이어진다*

내가 들어가도 되는 건지 확신이 없었다. 그런데 길이 공공 통로처럼 나 있고 막는 표시도 없어서 계속 걸었다.

아치가 걸려 있었다

덩굴이 덮인 아치를 지나가는 정원 통로
덩굴 아치를 지나간다

통로 중간에 덩굴을 올린 아치가 걸려 있었다. 그 아래를 지나면 다른 구역이 나오는 식으로 구획이 나뉘어 있었다.

채소를 심은 구획도 있었다

채소밭과 물통, 나무가 있는 정원 구획
채소밭과 물통

꽃만 있는 게 아니었다.

채소를 줄 맞춰 심고 물통을 놓아둔 구획도 있었다.

토마토 지지대와 콩 지지대가 서 있었다.

이 사람들은 여기서 실제로 먹을 것을 기른다.

밭을 막 갈아놓은 구획

막 갈아놓은 밭고랑이 줄지어 있다
막 갈아놓은 밭고랑

한 구획은 막 갈아놓은 밭고랑만 있었다. 아무것도 심지 않은 상태로 흙이 반듯하게 줄지어 있었다.

이걸 보고 여기 사람들이 진지하게 농사를 짓는다는 걸 알았다.

갈아놓은 고랑 간격이 일정하고 흙 높이가 맞아 있었다.

인형이 잔뜩 놓인 정원

화단에 작은 장식 인형과 조형물이 잔뜩 놓여 있다
인형을 잔뜩 세워뒀다

반대로 아주 개인적인 구획도 있었다.

화단에 작은 인형과 조형물이 잔뜩 놓여 있었다. 난쟁이 인형, 동물 인형, 색칠한 돌 같은 것들이 꽃 사이에 빽빽하게 배치돼 있었다.

이 구획 주인은 여기를 자기 방처럼 쓰고 있었다.

쇠붙이로 만든 것들

녹슨 철제 구조물에 화분을 걸어둔 정원
화분을 철제에 걸어뒀다

녹슨 철제 틀에 화분을 걸어둔 구획도 있었다. 뭔가를 재활용해 만든 것 같았다.

길에 이름이 붙어 있었다

정원 길에 붙은 작은 표지판
길마다 표지판이 있다

걷다가 표지판을 봤다. 정원 사이 길에 이름이 붙어 있었다.

구획과 통로가 설계되어 관리되는 단지라는 걸 이 표지 하나로 알았다.

단지 안에 식당이 있었다

정원 단지 안에 걸린 식당 간판
정원 단지 안에 식당도 있다

그리고 단지 안쪽에 식당 간판이 걸려 있었다. 정원 단지 안에 있는 그리스 음식점이었고 야외 좌석이 딸려 있었다.

들어가지는 않았다. 그때는 이게 뭔지 몰라서 그냥 지나쳤다.

나중에 알아보니 이 식당은 한 가족이 30년 가까이 운영하고 있는 곳이었다.

사과가 떨어져 있었다

이 단지를 걸으면서 계속 눈에 들어온 게 있다.

나무 아래 열매가 떨어져 있는데 아무도 치우지 않았다.

사과가 그냥 잔디에 놓여 있었다.

밟혀서 뭉개진 것도 있고 멀쩡한 것도 있었다.

그런데 그게 지저분해 보이지 않았다.

한국에서 이런 걸 봤다면 누가 주워 갔거나 관리인이 치웠을 텐데. 여기는 그게 그냥 그 자리에 있었다.

남의 구획 물건에 손을 대지 않는 게 기본이고, 떨어진 열매까지 그 구획 주인의 것이라는 감각이 있는 것 같았다.

그 광경이 평화롭게 느껴졌다. 이날 하루 종일 걸었는데 감정적으로 제일 편했던 구간이 여기다.

쿠텐탁

이 근처를 걷다가 한 소년이 나에게 인사를 했다.

"구텐 탁!"

수줍음도 없이 먼저 인사하고 지나갔다.

나는 아마 어색하게 답했겠다.

누구인지도 모르고 대화가 이어진 것도 아니다.

그날 밤 수첩에 이렇게 적었다. "쿠텐탁! 마을을 황홀하게 걷고 있는 나에게 한 소년이 수줍음도 없이 인사를 했다."

정원으로 가득 찬 마을을 걸으면서, 나는 그때 독일이 진짜 살기 좋은 나라인가 보다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 생각을 하고 있는 사람에게 인사가 왔으니 인상이 더 세게 남았다.

나중에 알아본 것 — 클라인가르텐이 뭔가

나중에 이 사진을 정리하다가 이게 뭔지 찾아봤다.

클라인가르텐(Kleingarten), 또는 슈레버가르텐(Schrebergarten)이라고 부른다. 도시에 사는 사람들이 협회를 통해 작은 땅을 임대해 가꾸는 제도다.

  • 이름은 19세기 중반 라이프치히의 한 의사 이름에서 왔다. 그가 아이들의 야외 활동과 건강을 강조했고,

그 취지를 이어받은 정원 운동에 사후에 그의 이름이 붙었다.

  • 두 차례의 큰 전쟁 시기에 식량을 직접 기르기 위해 크게 늘어났다.

지금은 취미와 휴식 목적이지만 출발은 생존이었다.

  • 구획 하나는 평균 370제곱미터 정도이고,

도구를 두고 밥을 먹을 수 있는 오두막이 포함된다.

  • 오두막에서 사는 것은 법으로 금지다.
구획마다 오두막과 잔디가 있는 정원 전경
구획 하나가 이만하다

별장이라기보다 텃밭에 가깝다.

  • 협회 규칙이 촘촘하다. 심을 수 있는 식물,

오두막과 울타리 사이 거리,

정숙 시간까지 정해져 있다.

  • 임대료는 제곱미터당 1년에 몇십 센트 수준이고 관리비를 합쳐 연간 수십만 원대다.
  • 그런데 대도시는 대기 기간이 몇 년에서 수십 년이다. 베를린은 대기자가 만 명을 넘는다.

그러니까 내가 그날 아무렇지 않게 걸어 들어간 그 길은,

그 도시 사람들이 몇 년을 기다려서 받은 땅 사이의 통로였다.

떨어진 사과를 아무도 안 줍는 이유도 여기서 설명이 된다.

이 땅은 내 것이 아니고 옆 구획도 내 것이 아니다.

임대이고 규칙이 촘촘하다.

그 규칙을 다들 알고 있다.

독일 클라인가르텐 실전 정보

관광지가 아니지만 통로는 대개 열려 있다. 단지 사이 길은 공공 통로로 나 있는 경우가 많아 걸어서 지나갈 수 있다.

다만 개별 구획 안으로 들어가면 사유지 침입이다.

길에서 보는 것까지가 선이다.

단지 안 식당은 일반 손님을 받는다. 규모가 큰 단지에는 협회 운영 식당이나 임대 식당이 있고 외부인도 갈 수 있다.

야외 좌석이 딸려 있어서 정원 분위기 그대로 밥을 먹을 수 있다.

사진은 조심해야 한다. 개인 구획과 오두막이 그대로 찍히니 사람이 있을 때는 정면으로 안 찍는다.

이 글에 실은 사진도 사람이 안 나온 컷만 골랐다.

도시 지도에서 찾는 법. 지도에서 규칙적인 작은 사각형이 격자로 잔뜩 몰려 있는 구역이 대개 이 단지다.

독일 도시라면 어디에나 있고, 뮌헨은 북서쪽 모자흐 일대와 서쪽 철도 주변에 크게 몰려 있다.

여행자가 얻을 것. 관광지에서는 그 도시의 정책과 생활 규칙이 안 보인다.

이 단지를 20분 걸으면 그 도시가 시민에게 땅을 어떻게 나눠주는지,

그 규칙을 사람들이 어떻게 지키는지가 보인다.

입장료도 없다.

11년 걸려 쓰는 3화

그날 본 것 중에 제일 설명하고 싶었던 게 이 텃밭이었다. 그걸 이제야 쓴다.

시청 회의장이나 BMW 박물관은 그 자체로 이야기가 되는데,

이 정원은 "왜 이게 인상적이었는지"를 설명해야 전달이 된다.

지금 그 설명을 붙일 수 있게 됐다.

아무도 사과를 줍지 않는 정원이 평화로워 보였던 건, 거기 규칙이 있고 사람들이 그 규칙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사과가 떨어져 있던 동네

다음 편에서는 궁전으로 간다. 흐린 하늘에 클래식 음악이 들렸다.

뮌헨 · 13편 중 8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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