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 뮌헨 4] 비가 오는데 우산을 사지 않았다

뮌헨 여행기 · 4편
사람들은 우산을 쓰고 있었고
나는 후드를 썼다.
바람막이 후드를 쓰고 초원 앞에 서 있는 모습
비 오는데 우산이 없다
우산 하나 값이
그날 저녁값이었다.

점심을 먹고 나서 하늘이 흐려졌다.

야외 수영장을 지났다

울타리 안쪽에 물이 채워진 야외 수영장
비 오는 날의 수영장

대학가를 빠져나오는 길에 야외 수영장이 있었다.

울타리 안쪽에 하늘색 물이 채워져 있고 주변에 나무가 둘러싸고 있었다.

흐린 날인데도 물 색이 선명했다.

이런 시설이 주거지 사이에 그냥 있다는 게 눈에 들어왔다. 동네 사람들이 쓰는 수영장이다.

지하도 벽이 온통 그림이었다

양쪽 벽면에 그래피티가 그려진 지하 통로
양쪽 벽이 전부 그림이다

큰길을 건너려고 지하도로 들어갔는데 양쪽 벽이 통째로 그림이었다. 벽화라고 부를 규모로,

통로 끝까지 색이 이어져 있었다.

전날 밤 자전거로 가득했던 지하도와는 성격이 달랐다. 이쪽은 지우지 않고 남겨둔, 아니면 아예 허락한 벽이었다.

공원으로 들어갔다

잔디와 나무가 이어진 공원 길, 멀리 우산을 쓴 사람들
다들 우산을 쓰고 있었다

지하도를 나오니 바로 공원이었다. 그리고 이 공원의 규모를 처음에는 몰랐다.

들어가서 한참을 걸었는데 계속 공원이었다.

잔디밭이 나오고 숲이 나오고 다시 잔디밭이 나왔다.

도심 공원이라기보다 도시 안에 숲을 통째로 남겨둔 형태였다.

이때 비가 오기 시작했다. 세게 쏟아지는 게 아니라 후두둑 떨어지는 정도였다.

호수가 나왔다

호수 위의 오리와 멀리 떠 있는 페달보트
오리랑 페달보트

걷다 보니 호수가 나왔다.

넓고 잔잔했고 물빛이 하늘색을 그대로 받아서 회색이었다.

오리가 떠다니고 저 멀리 페달보트 하나가 떠 있었다.

비가 오는데도 보트를 타고 있는 사람이 있었다.

물가에 오리가 모여 있었다

물가 자갈밭에 오리들이 모여 있다
물가에 모여 있다

물가 자갈밭에 오리가 여러 마리 모여 있었다.

사람이 지나가도 안 도망갔다.

이 공원에서 오리는 사람을 무서워하지 않게 된 지 오래된 것 같았다.

잔디밭이 넓었다

흐린 하늘 아래 넓은 잔디밭과 나무 한 그루
나무 한 그루만 서 있다

호수를 지나면 다시 잔디밭이었다.

아주 넓은 초원 가운데 큰 나무 한 그루가 서 있고 그 뒤로 숲 경계가 보였다.

하늘이 완전히 회색이었다.

날이 좋았으면 여기 사람이 가득했겠다.

이 공원은 원래 사람들이 잔디에 누워서 시간을 보내는 곳으로 유명한 곳이다.

그날은 비 때문에 비어 있었고, 덕분에 나는 이 초원을 거의 혼자 봤다.

사람들은 우산을 쓰고 있었다

공원 길을 우산을 쓰고 걸어오는 사람들
비가 계속 왔다

길에서 마주치는 사람들은 다 우산을 쓰고 있었다.

우산을 쓰고 산책하는 사람, 우산을 쓰고 조깅하는 사람도 있었다.

나는 후드를 썼다

나는 우산이 없었다.

살 수는 있었다. 편의점이나 슈퍼에서 파니까. 그런데 안 샀다.

이 여행에서 나는 하루 예산을 정해놓고 다녔고, 우산 한 개 값이 그날 저녁 한 끼 값과 비슷했다.

며칠 뒤 나라를 옮기면 짐이 되는 물건이기도 했다.

그래서 계산이 이렇게 나왔다.

저녁을 굶고 우산을 살까, 젖으면서 걸을까.

젖으면서 걷기로 했다.

다행히 바람막이 하나가 있었다.

이 옷을 여행 내내 입고 다녔다. 비를 꽤 잘 막았다.

후드를 뒤집어쓰고 앞을 여미면 옷 안까지는 잘 안 젖었다.

젖는 건 얼굴과 손과 신발이었다.

길이 젖어 있었다

비에 젖어 반사되는 숲길 도로
길이 반사됐다

숲으로 들어가는 도로가 비에 젖어 반짝였다. 나무가 양쪽에서 덮고 있어서 이쪽은 비가 덜 들이쳤다.

여기서 그만두고 돌아갈 생각은 안 했다.

이유가 딱 하나 있는데, 하루에 갈 데를 정해놓고 나왔기 때문이다. 이 공원을 지나면 다음 목적지가 있었고,

오늘 못 가면 다음 날로 밀리고 다음 날은 이미 계획이 있었다.

뮌헨에 이틀만 있었으니까.

비가 오면 하루를 접을 수 있는 건 시간이 여유로운 여행이다. 이틀짜리 도시에서는 비도 그냥 조건이 된다.

개천에 다리가 놓여 있었다

개천 위에 놓인 좁은 나무 다리
개천 위 좁은 다리
영국정원
Englischer Garten
개방 중
영업
24시간 개방
가격
무료
주소
80538 München, Germany (남쪽 입구는 Prinzregentenstraße 쪽)
도심 북쪽에서 길게 뻗은 공원으로 한 바퀴 도는 건 사실상 불가능하다. 남쪽 입구에서 호수까지처럼 구역을 정해 잡는 게 현실적이다

공원 안쪽에 개천이 흐르고 그 위에 좁은 다리가 놓여 있었다. 물이 꽤 빨랐다.

물소리가 계속 났다

후드를 쓴 채 개천 앞에서 찍은 사진
결국 끝까지 우산은 안 샀다

이 공원을 걷는 동안 물소리가 계속 났다.

이 물길은 공원을 관통해서 흐르는데, 어디서는 넓게 퍼지고 어디서는 좁아져서 소리가 커졌다.

비 오는 날 이 소리를 들으면서 걷는 게 나쁘지 않았다.

사실 이날 사진을 다시 보면 대부분 회색이고 흐리다.

그런데 기억은 그렇게 남지 않았다.

비 오는 큰 공원을 몇 시간 걸었다는 사실 자체가 좋은 기억으로 남아 있다.

나와서 슈퍼에 들어갔다

공원을 빠져나와 주택가를 지나 큰길로 나왔다. 그리고 슈퍼에 들어가 물과 음료 코너를 봤다.

이게 그때 내 습관이었다.

도시마다 슈퍼에 들어가서 가격표를 봤다.

그게 그 나라 물가를 제일 빨리 아는 방법이었다.

규모를 미리 알고 가야 한다. 영국정원(Englischer Garten)은 도심 북쪽에서 시작해 북쪽으로 아주 길게 뻗은 공원이다.

도시 공원 중 세계에서 손꼽히는 크기라 "한 바퀴 돌기"는 사실상 불가능하다.

남쪽 입구에서 호수까지, 또는 특정 구역만 목표로 잡는 게 현실적이다.

공원 남쪽 입구 쪽 물길에는 파도가 인공적으로 생기는 지점이 있다. 서퍼들이 줄을 서서 차례로 탄다.

도심 강에서 서핑하는 광경이라 보러 가는 사람이 많다.

위치가 남쪽 끝이라 호수 쪽으로 먼저 들어가면 놓친다.

나체 일광욕 구역이 있다. 이 공원 일부 잔디 구역은 나체 일광욕이 허용된다.

표지가 따로 크게 붙어 있지 않다. 날 좋은 날 잔디밭을 지나다 놀랄 수 있다.

비 오는 날은 해당 없다.

비 오는 날이 오히려 낫기도 하다. 이 공원의 잔디밭은 날이 좋으면 사람으로 꽉 찬다.

넓은 초원과 호수를 한적하게 보고 싶으면 흐린 날이 유리하다.

대신 신발이 젖으니 방수되는 신발이 있으면 좋다.

우산보다 후드 있는 겉옷. 유럽 여행에서 우산은 짐이 되고 잃어버리기 쉽다.

후드 달린 방수 바람막이 하나면 웬만한 여름비는 막힌다.

나는 우산을 안 사고 몇 시간을 걸었는데 옷 안까지는 젖지 않았다.

뮌헨 영국정원 실전 정보

비 오는 날 영국정원을 걸었다

비를 피하는 대신 계획을 지켰다. 신발이 젖었고 사진이 다 회색이 됐다.

그런데 한참 지나서 이날을 떠올리면 비보다 오래 걸은 공원이 먼저 생각난다.

사진은 회색인데 기억은 그렇지 않다는 게 좀 이상하고, 아마 그게 직접 걸어본 것의 차이인 것 같다.

비 맞으며 걸은 정원

다음 편에서는 이 도시에서 가장 유명한 곳에 간다. 차를 보러 갔다.

뮌헨 · 13편 중 4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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