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웨덴 · 스톡홀름 8] 굳이 갈 필요는 없는데, 보이면 또 걸어 들어갔다
없는 곳들이었다.
또 걸어 들어갔다.
앞 편까지 이 섬에서 박물관과 저택 두 채를 봤다.
그 사이사이에 목적지가 없는 구간이 계속 있었다. 이 편은 그 구간이다.
이정표가 카페를 가리키고 있었다

섬 안쪽 갈림길에 표지판이 서 있었다. 화살표 세 개가 각기 다른 방향을 가리켰다.
하나는 지명이고 하나는 탑 이름이었는데, 가운데 것에는 커피잔 그림이 붙어 있었다. 크루트후세트(Kruthuset)라고 적혀 있었다.
화약고라는 뜻의 이름이 카페가 돼 있었다. 그쪽으로 갔다.
가는 길에 개를 목줄에 매어달라는 안내판이 하나 더 있었다. 안내판이 상냥하게 생겼다.
운하를 따라 계속 걸었다

섬 가운데를 가로지르는 물길이 있다. 폭이 좁아서 수로에 가까운 크기다.
건너편에 나무가 줄을 맞춰 서 있었다. 사람이 심어둔 간격이었다.
물가를 따라 걷는데 반대편 잔디에 사람들이 앉아 있었다. 대도시 한복판인데 풍경이 시골 같았다.
그때 기록에도 그렇게 적어뒀다. 어쩌다 보니 대도시 주변을 농촌처럼 찍고 있다고.
물가에 정자와 카페가 있었다

길이 끝나는 자리에 흰 팔각 정자가 서 있었다. 지붕이 둥글고 창이 촘촘한 목조 건물이었다.
옆으로 야외 테이블이 깔려 있고 사람들이 앉아 있었다. 정자 자체가 매점이었다.
조금 더 걸으니 노란 목조 건물에 문을 열었다는 팻말이 걸려 있었다. 물가 쪽으로 의자를 내놓은 카페였다.

여기서도 커피를 마시지 않았다. 그날 지갑을 닫아둔 상태였고, 그냥 앉아 있는 사람들을 보다가 지나갔다.
섬을 나오니 사람이 많아졌다

다리를 건너 시내로 들어가자 분위기가 바뀌었다. 오전 내내 조용하다가 갑자기 사람 사이를 걷게 됐다.
경사진 좁은 길이 나왔고 아래쪽에 터널이 뚫려 있었다. 양쪽 건물이 벽돌이라 길이 더 좁아 보였다.
이 근처에서 회의와 세미나가 많이 열린다고 했다. 그날 저녁에 실제로 그중 하나를 보게 된다.
붉은 벽돌 건물에 태극 문양이 있었다

시내를 걷다가 벽돌 건물 하나를 지나쳤다. 문 위에 둥근 표식이 붙어 있었다.
가까이서 보니 태극이었다. 둘레에 무궁화가 돌아가고 아래에 한글로 대한민국이라고 적혀 있었다.
한국 대사관이었다.
이 도시에 온 지 하루가 넘었고 그동안 한국말을 한 번도 쓰지 않았다. 그 문양을 문 위에서 보니 기분이 좀 이상했다.
문 앞에 화분이 놓여 있고 계단이 몇 개 있었다. 들어갈 일은 없어서 서서 보다가 걸었다.
극장 앞에 금색이 붙어 있었다

조금 더 가니 큰 석조 건물이 나왔다. 정면에 붉은 깃발이 걸려 있고 기둥마다 금색 장식이 올라가 있었다.
가로등 기둥까지 금으로 감싸놨다. 입구 위쪽에는 금박을 입힌 인물상이 서 있었다.
왕립 극장이다. 스웨덴 국립 무대에 해당하는 곳이고 백 년 넘게 같은 자리에 있다.
공연을 볼 계획은 없었다. 건물 앞에서 위를 한참 올려다보다 갔다.
전시장 간판이 붉었다

또 걷다가 유리 건물 입구에서 붉은 간판을 봤다. 디지털 레볼루션이라고 크게 적혀 있었다.
안을 들여다보니 파란 조명이 달린 설치물이 서 있고 화면이 여러 개 붙어 있었다.
들어가지는 않았다. 그날 이런 식으로 문 앞까지만 가고 만 곳이 여럿이었다.
일본 관련 전시를 한다는 곳도 그중 하나였다. 찾아갔는데 문이 닫혀 있어서 기웃거리다 돌아섰다.
걸으면서 들은 노래
이날 걸으면서 노래를 하나 들었다. 스웨덴 세탁소라는 밴드의 곡이었다.
한국 밴드이고 나라 이름과는 상관이 없다. 그해 초에 드라마에서 그 음악을 듣고 좋아하게 됐다.
여덟 달쯤 지나서 진짜 스웨덴을 걸으면서 그 노래를 틀었다. 이름이 겹친다는 이유 하나였다.
이 편에 적은 곳들은 안내서에 없다. 이정표에 있던 카페, 물가 정자, 문 닫힌 전시장, 대사관 문패.
목적지를 정해놓고 다니면 이런 것들이 안 걸린다. 그날은 다음 일정이 없어서 눈에 들어오는 대로 방향을 틀었다.
여행기를 다시 정리하면서 보니 그날 사진의 절반이 이런 것들이다.
독일에서 스치듯 만났던 친구를 이 도시에서 다시 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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