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웨덴 · 스톡홀름 10] 두 달 걸으니 말 붙이는 법을 잊었는데, 고등학생이 먼저 손을 내밀었다

스톡홀름 여행기 · 10편
두 달을 걸으니 먼저
말을 붙이지 않게 됐다.
그날 호스텔에서는
상대가 먼저 손을 내밀었다.

앞 편에서 저녁을 먹고 광장 야경을 보고 숙소로 돌아왔다.

그 시점에 컨디션이 바닥이었다. 여행이 두 달째로 접어든 무렵이다.

그때 나는 고향병에 빠져 있었다

이 감정을 그때 기록에는 고향병이라고 적어뒀다.

몸이 아픈 것은 아니었다. 다만 새로운 도시가 더 이상 새롭지 않았다.

두 달 동안 짐을 스무 번쯤 풀고 쌌다. 도미토리에 들어가면 인사만 하고 침대에 눕는 일이 반복됐다.

여행 초반에는 방에 누가 있으면 먼저 말을 걸었다. 그게 어느 시점부터 줄어들었다.

고등학생이 악수를 먼저 청했다

호스텔 방에서 함께 찍은 사진, 상대 얼굴은 가려져 있다
먼저 손을 내민 쪽은 그 아이였다.

방에 들어가니 나보다 어린 남자애가 있었다. 캐나다에서 왔다고 했다.

이름은 가나한이었다. 앉아 있다가 나를 보고 일어나서 손을 내밀었다.

먼저 악수를 청해온 쪽은 그 아이였다. 나는 받는 쪽이었다.

이 순서가 그날 좀 걸렸다. 여행을 시작한 첫 달에는 내가 그렇게 했다.

물 이야기를 하러 온 아이들이었다

천막 아래 세워둔 고등학생 연구 포스터, 발표자 이름은 가려져 있다
각자 만든 것을 앞에 세워두고 설명한다.

가나한은 왜 스톡홀름에 왔는지 설명했다. 물과 관련된 기술을 발표하는 자리가 있다고 했다.

따라가 봤다. 회의장 벽면에 연구 포스터가 줄지어 붙어 있었다.

고등학생들이 각자 만든 것을 앞에 세워두고 설명하는 방식이었다. 물 부족과 정수 같은 주제였다.

포스터를 훑어보다가 한국 학교 이름을 봤다. 민족사관고등학교가 참가하고 있었다.

스톡홀름에서는 매년 8월 말에 물을 주제로 큰 회의가 열린다. 이 학생 발표는 그 안에 들어 있는 행사였다.

여행 두 달째에 남의 나라 고등학생들 연구 발표를 보고 있는 상황이 좀 웃겼다. 그런데 그 웃김이 필요했다.

스웨덴 친구는 미드보다 재미있었다

호스텔 부엌 식탁에 앉은 사람과 함께 찍은 사진
질문을 계속 던지던 사람이다.

그다음에 도착한 사람은 스웨덴 사람이었다. 이름은 마커스였다.

이 사람이 특이했다. 뭔가를 계속 물어봤고, 대답을 하면 거기서 또 다른 걸 물었다.

같이 밥을 먹는 동안 계속 웃었다. 그때 기록에 어지간한 미국 드라마보다 재미있었다고 적어뒀다.

고향 생각을 할 틈이 없었다. 질문에 답하다 보니 저녁이 지나갔다.

그녀의 가방에는 이름이 있었다

자기 배낭보다 큰 가방을 멘 여행자와 함께 찍은 사진
등에 멘 저 가방 이름이 데드 바디다.

싱가포르에서 온 친구도 있었다. 안젤라였고 다섯 달째 여행 중이라고 했다.

가방이 두 개였는데 하나가 내 배낭의 두 배쯤 됐다. 등에 메면 몸이 가려질 정도였다.

그 가방에 이름을 붙여뒀다고 했다. 데드 바디(Dead body)라고 불렀다.

시체를 업고 다닌다는 농담이었다. 다섯 달을 그 무게로 다녔으니 그런 이름이 나올 만했다.

재미가 붙어서 나도 하나 만들었다. 저녁마다 꺼내 입던 검은 바람막이를 마이 섀도(My shadow)라고 불렀다.

아침 식탁에서 다시 만났다

빵과 삶은 달걀, 커피가 놓인 호스텔 조식 식탁
값에 포함된 조식이라 접시가 단순했다.

다음 날 아침 호스텔 부엌으로 내려가니 사람들이 앉아 있었다.

빵과 삶은 달걀, 커피가 놓여 있었다. 값에 포함된 조식이라 접시가 단순했다.

전날 밤에 처음 본 사람들과 같은 상에서 아침을 먹고 있었다. 두 달 만에 처음이었다.

그리고 십만 원짜리 표를 샀다

그 자리에서 폰으로 항공권을 뒤졌다. 다음에 갈 나라를 아직 정하지 않은 상태였다.

원래 생각한 곳은 노르웨이나 폴란드였다. 그런데 값을 보니 둘 다 부담이었다.

그때 십만 원대 이스탄불 편이 눈에 들어왔다. 예상에 없던 나라였다.

그 자리에서 결제했다. 그날 밤 비행기였다.

전날의 나였다면 그 결정을 안 했을 것 같다. 컨디션이 바닥일 때는 다음 도시를 늘리는 선택이 안 나온다.

재워주고 먹여준 사람들

이 여행에서 받은 도움은 대부분 밥과 잠자리였다.

그런데 이날 받은 것은 몇 마디 대화뿐이었다.

여행 두 달째의 나는 먼저 손을 내밀지 않는 사람이 돼 있었다. 그 상태가 스스로는 잘 안 보인다.

캐나다에서 온 고등학생이 손을 내밀었을 때 그게 보였다. 첫 달의 나와 지금의 나를 나란히 놓게 됐다.

그 뒤 여정에서는 도미토리에 들어가면 먼저 인사하는 쪽으로 다시 돌아갔다.

왕궁 앞을 걷다가 같은 왕을 세 번 만났다.

스톡홀름 · 12편 중 10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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