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웨덴 · 스톡홀름 6] 입장료를 더 내지 않고 반나절, 유르고르덴 섬을 걸어서 한 바퀴

스톡홀름 여행기 · 6편
입장료를 더 내지 않고
반나절을 채웠다.
섬 하나가 통째로
공원이었기 때문이다.

박물관에서 나오니 아직 정오가 되기 전이었다. 지갑은 이미 오늘 몫을 다 썼고, 시간은 반나절 넘게 남아 있었다. 그래서 남은 하루를 걷는 데 쓰기로 했다. 다행히 이 섬은 그게 가능한 곳이었다.

유르고르덴은 원래 왕실 사냥터였다가 지금은 섬 전체가 공원이다. 안에 있는 박물관들은 입장료를 받지만, 섬을 걷는 것 자체는 공짜다.

스칸센 앞에서 그냥 지나쳤다

스칸센 야외 박물관 정문과 매표소 앞을 지나는 사람들
스칸센 정문. 여기서 발길을 돌렸다.

섬 초입에 스칸센(Skansen) 정문이 있다. 스웨덴 각지의 옛 목조 건물을 통째로 옮겨와 재현한 야외 박물관인데,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야외 박물관으로 알려져 있다. 안에는 동물원도 있다.

유르고르덴
Djurgården
연중 개방
가격
섬을 걷는 것은 무료 (안에 있는 박물관은 각각 유료)
주소
스톡홀름 동쪽 섬 · 시내에서 트램 7번
원래 왕실 사냥터였고 지금은 섬 전체가 공원이다. 스칸센·바사 박물관·발데마르수데가 다 여기 있다. 조각상이 산책로마다 서 있고 촬영 제약이 없다

들어가고 싶었지만 오늘 지갑은 닫기로 한 뒤였다. 정문 앞까지만 가서 사진 한 장 찍고 돌아섰다. 아쉬움이 없었다면 거짓말이다. 대신 담장 바깥으로 이어지는 옛 목조 골목을 따라 걸었는데, 그 길만으로도 분위기는 충분히 났다.

다리 하나 건너면 작은 조선소 섬

베크홀멘 섬 안내판 앞에 선 여행자, 지도에 조선소가 그려져 있다
베크홀멘 안내판. 유르고르덴에서 다리 하나로 이어진다.

섬 남쪽으로 걷다 보니 짧은 다리가 하나 나왔다. 건너편은 베크홀멘(Beckholmen)이라는 더 작은 섬이었다. 관광 시설은 하나도 없고 아직도 배를 고치는 조선소가 돌아가는 섬이다.

물을 뺀 드라이독이 통째로 드러나 있었다.

물을 뺀 대형 드라이독과 크레인, 건너편에 시내가 보인다
물을 뺀 드라이독. 건너편에 시내가 보인다.

바로 몇 시간 전에 333년 만에 건져 올린 배를 보고 나온 참이었다. 그런데 걸어서 십 분 거리에 실제로 배를 물에서 꺼내 고치는 시설이 있었다. 크레인이 서 있고 자재가 쌓여 있고, 관광객은 나 말고 아무도 없었다.

박물관에서 본 인양 장면과 눈앞의 드라이독이 겹쳐 보였다. 계획한 동선이 아니었는데 이날 가장 잘 이어진 두 장면이었다.

여기에 돈을 넣으면 옛날식 범선을 다시 만들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잠깐 했다. 그때 기록에 그렇게 적어뒀다.

물가로 내려가니 나무들이 바닷물 쪽으로 기울어 서 있었다. 평지에서도 죄다 그 방향이었다. 나무가 바닷물을 먹고 있다고 적었다.

섬 전체가 야외 조각 전시장이다

활시위를 당기는 청동 조각상 옆에 선 여행자
길가에 그냥 서 있던 조각. 이런 게 계속 나온다.

걷다 보면 조각상이 계속 나온다. 잔디밭 한가운데에도 서 있고 물가 산책로 옆에도 서 있다. 정원 화단 사이에도 그냥 놓여 있다. 활시위를 당기는 청동 조각 앞에서 한참 서 있었다.

돈을 내고 들어가는 미술관에서는 사진 촬영이 막히는 경우가 많은데, 여기 있는 것들은 아무 제약이 없었다. 오히려 하늘과 나무를 배경으로 보니 조각이 더 살았다.

왕자가 살던 집의 정원은 열려 있었다

담쟁이 벽을 낀 정형 정원에 조각상이 서 있고 뒤로 붉은 풍차가 보인다
정형 정원. 뒤에 보이는 붉은 건물이 풍차다.

섬 끝자락에 발데마르수데(Waldemarsudde)가 있다. 화가이기도 했던 오이겐 왕자가 살던 집이고, 지금은 미술관으로 쓰인다. 건물 안은 입장료를 받는다.

안에는 들어가지 않았다.

나무에 둘러싸인 흰색 저택 건물
저택 건물. 바깥에서만 봤다.

대신 정원을 걸었다. 담쟁이가 덮인 벽을 끼고 정형 화단이 이어지고, 그 사이사이에 조각상이 서 있었다. 바다가 바로 옆이라 트인 느낌도 좋았다. 이 정원을 걷는 데는 돈이 들지 않았다.

정원 끝에 풍차가 서 있다

바위 위에 올라앉은 붉은 목조 풍차
바위 위 붉은 풍차. 이 섬에서 제일 인상적인 건물이었다.

정원 뒤편 바위 위에 붉은 목조 풍차가 올라앉아 있었다. 저택보다 이쪽이 훨씬 눈에 들어왔다. 스웨덴 하면 떠오르는 그 붉은색(팔루 레드)이 나무 벽 전체에 칠해져 있고, 그 위에 검은 날개가 붙어 있다.

이 섬에서 사진을 제일 많이 찍은 게 여기였다. 박물관 안에서는 조명 때문에 사진이 잘 안 나왔는데, 여기는 하늘이 배경이라 아무렇게나 찍어도 나왔다.

배낭을 내려놓고 앉은 자리

바닷가 나무 데크 위에 배낭을 내려놓고 쉬는 자리
배낭을 내려놓고 앉았다. 이때가 이날의 반환점이었다.

배에서 내린 게 아침 여섯 시였고, 그때부터 계속 배낭을 메고 있었다. 물가에 나무 데크가 깔린 자리가 나오길래 거기서 짐을 내려놓고 한참 앉아 있었다.

앉아 있으면 몸무게가 줄어드는 기분이 든다. 배낭여행에서 제일 확실한 사치가 이거다. 건너편으로 시내 건물들이 보이고, 물 위로 유람선이 지나갔다.

섬을 한 바퀴 돌아 수로 쪽으로 나왔다.

양쪽에 꽃이 핀 좁은 수로와 난간
섬 안쪽 수로. 양옆으로 꽃이 심겨 있었다.

섬을 빠져나오며 본 탑

하늘로 솟은 콘크리트 방송탑
멀리 보이던 콘크리트 탑. 근처까지 걸어갔다.

섬 북쪽으로 나오니 콘크리트 탑이 하나 서 있었다. 카크네스 탑(Kaknästornet)이라는 방송탑인데, 스톡홀름에서 제일 높은 축에 든다. 전망대가 있다길래 잠깐 흔들렸지만, 오늘은 안 된다고 스스로 정리했다.

그러고 보니 이날 스톡홀름에서 유일하게 돈을 낸 곳은 박물관 하나였고, 나머지는 전부 걸어서 본 것들이었다.

이 코스를 걸으려면

유르고르덴 섬은 왕립 국립도시공원에 속해 있어 섬 자체는 무료다. 시내에서 트램이나 페리로 들어갈 수 있고, 시내 중심에서 걸어도 30~40분이면 닿는다.

돈이 드는 곳과 안 드는 곳을 나눠보면 이렇다.

  • 유료스칸센 야외 박물관, 바사 박물관, 발데마르수데 미술관 내부, ABBA 박물관, 놀이공원 그뢰나 룬드
  • 무료 — 섬 전체의 산책로, 야외 조각상, 발데마르수데 정원과 풍차 주변, 베크홀멘 섬, 바닷가 데크와 수로 구간

시간이 하루뿐이라면 유료 한 곳 + 걷기 조합이 가성비가 좋다. 반나절을 걸어도 섬 전체를 다 보기는 어려울 만큼 넓다. 여름에는 밤 아홉 시까지 밝으니 저녁 시간까지 계산에 넣어도 된다.

유르고르덴 섬을 걸어서

여행이 길어질수록 값이 안 붙는 자리를 먼저 찾게 된다. 초반에는 유명한 데는 다 들어가야 본전이라고 생각했는데 두 달을 넘기고 나서는 반대가 됐다. 하루에 한 군데만 제대로 보고 나머지는 걷는 쪽이 기억에도 더 남았다.

이날이 딱 그랬다. 박물관 하나와, 조선소 섬과, 붉은 풍차와, 배낭을 내려놓고 앉았던 데크. 순서를 다시 짜라고 해도 똑같이 할 것 같다.

해가 남아 있어서 시내 쪽으로 걸어 들어갔다. 그리고 그날 저녁에, 이 도시에서 제일 기억에 남는 일이 생겼다.

왕자의 집 말고 은행가가 살던 집인데, 그 집도 지금은 미술관이다.

스톡홀름 · 12편 중 6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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