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웨덴 · 스톡홀름 3] 첫 항해에서 침몰한 배, 333년 만에 건져 올렸더니 아무도 책임진 사람이 없었다

스톡홀름 여행기 · 3편
첫 항해에서 침몰한 배가
이 나라 최고의 전시물이다.
그날 스톡홀름에서
돈을 낸 곳은 여기 한 군데였다.

박물관을 웬만하면 지나치는 편이다. 여행이 두 달째로 들어서면 입장료가 부담되기도 하고, 비슷한 전시를 여러 번 보고 나면 감흥도 줄어든다. 유럽을 지나오며 미술관과 박물관을 꽤 많이 그냥 지나쳤다.

그런데 이 박물관은 소재가 달랐다. 침몰한 배였다.

그날 돈을 낸 곳은 여기 하나였다

바사 박물관 매표소와 입장료가 적힌 안내 화면
매표소. 이날 스톡홀름에서 지갑을 연 건 여기 한 번이었다.

유르고르덴 섬에는 박물관이 여럿 몰려 있다. 다 들어가면 하루로도 부족하고 입장료도 감당이 안 된다. 그래서 아침에 지도를 보면서 딱 한 군데만 들어가기로 정했고, 그 한 군데를 여기로 골랐다.

이 선택을 추천해준 사람은 독일에서 만난 폴란드 친구 토멕이다. 스페인과 포르투갈 코스를 짜줬던 것도 그 친구였는데, 스톡홀름에 간다니까 첫 장소로 여기를 찍어줬다.

바사 박물관
Vasamuseet · Vasa Museum
2026년 기준 개관 중
영업
9~5월 10:00 - 17:00 (수요일은 20:00까지) · 6~8월 08:30 - 18:00
가격
성인 5~9월 240크로나 · 10~4월 195크로나 · 19세 미만 무료
주소
Galärvarvsvägen 14, 유르고르덴, 스톡홀름
휴무
12월 24·25일
배를 먼저 세우고 그 위에 건물을 지었다. 유르고르덴에 박물관이 여럿인데 하나만 고른다면 여기다

배 한 척을 통째로 넣고 그 위에 건물을 지었다

박물관 실내에 통째로 서 있는 17세기 목조 전함 바사호의 선체
건물 안에 배가 통째로 서 있다. 사진으로는 크기가 잘 안 전해진다.

문을 열고 들어가면 배가 있다. 여기 서 있는 이 배가 그 실물이다. 400년 가까이 된 목조 전함이 건물 한가운데 통째로 서 있고, 관람 통로가 그 주위를 여러 층으로 감싸고 돌아간다.

순서가 반대였다. 물에서 건져 올린 배를 항구까지 천천히 끌고 와 세워둔 다음, 그 자리에 건물을 지어 덮었다.

왕이 재촉했고, 배는 2년 만에 나왔다

17세기 조선소를 재현한 대형 디오라마, 항구 배경에 목재와 배가 놓여 있다
배가 만들어지던 조선소를 통째로 재현해뒀다.

이야기는 왕에서 시작한다. 1611년에 즉위한 구스타프 2세 아돌프, 별칭이 '북방의 사자'다. 우리로 치면 광개토대왕쯤 되는 위치의 인물이다.

1625년, 왕은 힘을 과시할 새 전함을 주문했다. 왕조의 이름을 따 바사(Vasa)라는 이름이 붙었고, 당시 기준으로 가장 강한 스펙을 목표로 삼았다. 상인이 독일에서 기술자를 데려와 건조를 시작했는데, 왕이 워낙 재촉하는 바람에 2년 만에 뚝딱 만들어졌다.

설계자는 배가 완성되기 전에 죽었다.

조선소 디오라마 근접, 목수들이 층층이 나뉜 작업대에서 일하고 있다
디오라마 안에서 사람들이 각자 일을 하고 있다.

여기서부터가 이 이야기의 핵심이다. 왕은 요구사항을 계속 얹었다. 일정은 줄었고 설계를 책임진 사람은 중간에 사라졌다. 그 상태로 배는 완성됐다.

힘을 과시하려고 만든 배

배를 한 바퀴 돌면 조각이 얼마나 많은지 놀란다. 사자, 왕의 문장, 로마 황제, 성경 속 인물까지 오백 개쯤이 선체에 붙어 있다.

*상영관에서 튼 재현 영상*

지금은 전체가 나무색이지만 처음에는 붉은 바탕에 금색까지 올라가 있었다.

이 겉면 이야기는 분량이 따로 필요해서 뒤에 한 편으로 적었다.

여기서는 무게만 짚어둔다. 조각이 전부 무겁고 대포도 무거웠다. 그런데 배의 폭은 좁고 길쭉했다.

몇 걸음 못 가고 넘어갔다

수백 개의 작은 사람 모형이 격자에 빼곡히 붙어 있는 전시 패널
배에 타고 있던 사람들을 이렇게 표현해뒀다.

1628년, 바사호는 첫 항해를 시작했다. 그리고 항구를 몇 걸음 벗어나지도 못한 채 돌풍을 맞고 기울어져 그대로 가라앉았다. 배 안에 있던 50명가량이 목숨을 잃었다. 대부분은 아래층에서 노를 젓던 사람들이었다.

배가 가라앉은 자리는 항구에서 눈에 보이는 거리였다.

스톡홀름 항구 지형과 침몰 지점을 표시한 입체 지도 모형
가라앉은 자리를 표시한 지도. 항구를 벗어나지도 못했다.

수많은 사람이 첫 출항을 보러 나와 있었다고 한다. 왕이 몇 년을 재촉해 만든 배가 구경꾼들이 보는 앞에서 몇 분 만에 가라앉았다.

그래서 누가 책임졌나

유리 진열대 위에 놓인 바사호의 청동 대포
건져 올린 대포. 재판의 쟁점이 이것들이었다.

곧바로 책임을 묻는 재판이 열렸다. 그런데 배를 건져 올릴 방법이 없으니 물증이 없었다.

  • 선장은 대포를 묶어두지 않아 한쪽으로 쏠린 탓이라고 했다. 나중에 인양해보니 대포는 잘 묶여 있었다. 오히려 출항할 때 포문을 열어둬서 그쪽으로 물이 들어왔다.
  • 제독은 안전성 테스트에서 위험 신호를 확인하고도 조치하지 않았다. 그러면서 왕의 부재를 탓했다.
  • 설계자는 완성 전에 죽었다. 게다가 같은 방식으로 만든 이전 배들은 멀쩡히 운항 중이었으니 설계를 문제 삼기도 어려웠다.
  • 은 요구사항을 잔뜩 얹은 당사자였지만, 왕이었다.

결론은 이랬다. "배는 잘 만들어졌으나 균형이 잡히지 않았다." 아무에게도 책임을 묻지 못한 채 사건이 닫혔다.

나는 이 대목에서 그날 메모에 이렇게 적었다. 기획자, 운영자, 대표님 모두 책임. 지금 다시 봐도 고칠 데가 없는 문장이다.

삼백삼십삼 년 뒤에 건져 올렸다

배는 1956년에 발견되고 1961년에 인양됐다. 침몰한 해부터 세면 삼백삼십삼 년이다.

인양 장면은 텔레비전으로 생중계됐다. 배가 수면 위로 올라오던 날 스웨덴 사람들이 다들 조용히 그걸 지켜봤다고 한다.

건져 올린 다음이 더 오래 걸렸다. 배를 마르지 않게 하는 데 이십육 년이 더 들어갔고, 그 이야기는 다음 편에 적는다.

지금 가는 사람을 위한 정보

상영 시간과 자막 언어가 빼곡히 적힌 박물관 영상 안내 화면
상영 시간표. 자막 언어가 이렇게 많다.

바사 박물관은 공식 페이지 기준으로 유르고르덴 섬에 있고, 연중 문을 연다. 여름 성수기와 비수기의 운영 시간이 다르고, 그날 시간은 공식 페이지에 올라온다. 입장료는 성인 기준으로 정해져 있고 18세 이하는 무료다.

영상을 먼저 보는 걸 추천한다. 배의 역사 전체를 압축한 짧은 영상을 상영하는데, 자막 언어가 스무 개 가까이 되고 한국어도 들어 있다. 전시를 다 보고 나서 영상을 보는 것보다, 영상으로 큰 줄기를 잡고 전시를 도는 편이 훨씬 잘 붙는다.

가이드 투어도 언어별로 시간이 정해져 있다. 나는 영어 투어를 따라다녔고, 이 글에 적은 이야기 대부분을 그 투어에서 들었다. 안내판만 읽어서는 재판 이야기까지 닿기 어렵다.

섬 안에 다른 박물관들도 몰려 있으니, 여러 곳을 볼 계획이라면 통합권을 확인해볼 만하다. 하루만 있는 여행자라면 여기 하나로도 충분하다.

333년 만에 건져 올린 배

이 여행에서 들어간 박물관 중 여기가 제일 좋았다. 유물이 화려한 편은 아니었다. 이야기가 처음부터 끝까지 붙어 있어서였다. 재촉하는 발주자, 사라진 설계자, 위험 신호를 알고도 넘어간 관리자, 그리고 아무도 책임지지 않은 결론. 그 뒤에 삼백삼십삼 년의 침묵이 붙는다.

스웨덴이 이걸 감추지 않고 박물관으로 만들어 세워둔 것도 인상적이었다. 실패한 배를 자기 나라 대표 전시물로 삼는 나라는 흔치 않다.

박물관을 나오니 아직 정오도 되지 않았다. 남은 시간은 걷는 데 쓰기로 했다.

물에서 꺼내는 일보다 마르지 않게 하는 일이 오래 걸렸다.

스톡홀름 · 12편 중 3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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