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웨덴 · 스톡홀름 2] 하루밖에 없는 도시에서는 체크인을 기다리지 않는다
체크인을 기다리지 않는다.
도시를 걷기 시작했다.
배가 스톡홀름에 닿은 시각은 아침 여섯 시 십팔 분이었다. 호스텔 체크인은 보통 오후 두세 시부터다. 그 사이의 여덟 시간을 카페에서 죽일 수도 있었지만, 이 도시에 주어진 시간이 하루뿐이라는 걸 알고 있었다. 배낭을 멘 채로 그냥 걷기 시작했다.
아침 여섯 시 반의 도시에는 아무도 없다


항구에서 시내 방향으로 걷다 보니 공원이 나왔다. 물을 뺀 분수터 바닥에 삽 두 자루가 그대로 놓여 있었다. 어제 작업을 하다 만 채로 두고 간 모양이었다. 사람이 없으니까 이런 게 눈에 들어온다.
붉은 벽돌 교회가 몇 번이나 나왔다.

북유럽 도시들은 붉은 벽돌에 초록 첨탑이 기본 조합인 것 같았다. 구리 지붕이 산화해서 초록으로 변한 건데, 헬싱키에서도 프라하에서도 비슷한 걸 봤다. 나라마다 벽돌 색이 조금씩 달라서, 나중에는 벽돌만 보고도 여기가 어디쯤인지 감이 왔다.
대사관만 모여 있는 동네를 지나갔다

길가에 안내판이 하나 서 있길래 읽어봤다. 디플로마트스타덴(Diplomatstaden), 그러니까 '외교관 도시'라는 이름이 붙은 구역이었다. 20세기 초에 계획적으로 조성된 동네고, 지금도 여러 나라 대사관이 이 일대에 모여 있다.
담장 안쪽이 조용해서 그냥 부잣집 동네인 줄 알았는데, 각 건물 앞에 다른 나라 국기가 걸려 있는 걸 보고서야 알아챘다. 관광 코스에 올라 있는 곳은 아니지만, 항구에서 시내로 걸어 들어가면 자연스럽게 통과하게 되는 길목이다.
큰길로 나오자 도시가 슬슬 깨어났다.

바닷가를 따라 난 넓은 길로 나왔다. 전차선이 머리 위로 낮게 지나가고, 길 건너에는 요트가 줄지어 정박해 있었다. 조깅하는 사람들이 하나둘 나타나기 시작한 게 이 무렵이다.
표부터 끊고 걷기 시작했다

항구에서 나오자마자 한 일은 교통권을 끊는 것이었다. 대합실에 무인 발매기가 서 있었다.
화면을 눌러 표를 뽑고 지하철역까지 들어갔다. 여섯 시 반이라 개찰구에 사람이 없었다.
한 정거장쯤 가다 도로 내렸다. 창밖이 밝아서 그냥 걷기로 했다.
파란 문을 지나면 섬이다

길 끝에 파란 철제 아치문이 서 있었다. 금색 왕관 장식이 달려 있어서 뭔가 대단한 데로 들어가는 문처럼 보였는데, 실제로 그렇다. 이 문을 지나 다리를 건너면 유르고르덴(Djurgården) 섬이다. 원래 왕실 사냥터였던 곳이고, 지금은 박물관과 공원이 몰려 있는 섬 전체가 공원이다.
다리 앞 안내판에서 하루 동선을 정했다.

지도를 보니 박물관이 한둘이 아니었다. 다 들어가려면 하루로는 어림도 없고 입장료만 해도 감당이 안 됐다. 그래서 그 자리에서 정했다. 딱 한 곳만 돈을 내고 들어가고, 나머지는 걷는 걸로 채운다.
배낭을 멘 채로 걸으면 보이는 것들

배낭을 메고 걸으면 확실히 느리다. 대신 지나칠 것들을 지나치지 못한다. 화단 하나 앞에서도 멈추고, 동상 하나 앞에서도 멈춘다. 8월 말인데 꽃이 한창이었다. 북유럽의 여름이 짧다는 걸 생각하면 이게 거의 마지막 시기였다.
섬으로 들어가는 길목에 큰 박물관 건물이 서 있었다. 성처럼 생긴 붉은 벽돌 건물인데, 북유럽 박물관(Nordiska museet)이다. 겉모습만 봐도 안에 뭐가 잔뜩 있을 것 같았지만 여기는 그냥 지나쳤다. 오늘 돈을 낼 곳은 이미 정해져 있었다.
아침밥은 핀란드에서 산 사탕이었다

배에서 내린 뒤로 아무것도 안 먹었다는 걸 그제야 깨달았다. 배낭에서 나온 건 핀란드에서 산 사탕 봉지였다.
살미악은 끝까지 익숙해지지 않았다.

살미악은 염화암모늄을 넣은 검은 감초 사탕이다. 북유럽 사람들은 이걸 어릴 때부터 먹고 자라서 좋아하는데, 처음 먹는 사람은 대체로 뱉는다. 짜고, 쓰고, 약 같은 맛이 한 번에 온다. 핀란드에서 여러 번 도전했는데 끝내 맛있다는 생각은 안 들었다.
그래도 몇 봉지를 사서 배낭에 넣고 다녔다. 이게 이날 아침밥이 됐으니 나름 값은 했다.
지금 이 코스를 걸으려면
스톡홀름 항구(Värtahamnen)에서 유르고르덴 섬까지는 걸어서 한 시간 남짓이다. 대사관 거리와 바닷가 대로를 지나는 구간이라 길 자체가 볼 만하고, 중간에 앉을 벤치도 많다. 짐이 무겁다면 항구에서 시내로 가는 버스를 타고 중앙역 쪽에서 짐을 맡긴 뒤 걷는 방법도 있다.
유르고르덴 섬은 왕립 국립도시공원의 일부라 섬에 들어가는 것 자체는 무료다. 돈이 드는 건 섬 안에 있는 박물관들이다. 북유럽 박물관은 공식 페이지 기준으로 성인 입장료가 있고 18세 이하는 무료다. 요금과 운영 시간은 시즌마다 바뀌니 방문 전에 공식 페이지에 그날 시간이 올라온다.
체크인 전 두 시간
체크인 시간까지 카페에 앉아 있었다면 이날 아침의 두 시간은 통째로 사라졌다. 대신 배낭을 메고 걸었더니 대사관 거리와 빈 분수터와 파란 문이 남았다.
돈을 낼 곳을 딱 한 군데로 정한 것도 이날의 결정이었다. 그 한 군데가 어디였는지, 그리고 왜 그 선택이 이 여행에서 손꼽히게 잘한 선택이 됐는지가 다음 이야기다.
첫 항해에서 침몰한 배 한 척과, 아무도 책임지지 않은 재판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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