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 스완지 8] 웨일스 저수지, 스완지 수돗물이 여기서 온다

스완지 여행기 · 8편
안내판에 관광 정보가
한 줄도 없었다.
대신 이 물이 어느 집
수도로 가는지가 적혀 있었다.
체크무늬 식탁보 앞에서 나이 든 두 사람이 아이스크림 콘을 들고 있다
두 분이 오래오래 행복하고 건강하길 바래요.

칠십 대 두 분과 하루를 다닌 날이었다. 앞 편에서 해변에 가고 아파트에서 밥을 먹고 아이스크림을 두 번 먹었다.

그런데 그날은 아직 안 끝나 있었다.

아이스크림을 다 먹고 차에 탔다

아이스크림 가게에서 나온 게 세 시 반쯤이다.

집으로 돌아가는 줄 알았는데 차가 다른 쪽으로 꺾었다.

한 군데 더 들를 데가 있다고 했다.

차는 십 분도 안 가서 섰다. 스완지 북쪽, 언덕과 목장 사이로 들어가는 길이었다.

차가 선 곳은 주차장이라기보다 잔디밭이었다. 나무 피크닉 테이블이 몇 개 놓여 있고 그 너머가 통째로 물이었다.

잔디밭에 나무 피크닉 테이블이 놓여 있고 그 너머로 물이 펼쳐져 있다
펠린드레, 로우어리 저수지. 물가에 피크닉 테이블이 놓여 있다.

가족 단위 사람들이 앉아 있었다. 관광버스도 없고 매표소도 없었다.

안내판에 관광 정보가 없었다

파란 나무틀에 끼운 안내판에 저수지 지도와 물의 순환 그림이 그려져 있다
Cronfeydd Dwr Lliw. 지도에 위쪽이 Lliw Uchaf, 아래쪽이 Lliw Isaf.
리우 저수지
Lliw Reservoirs / Cronfeydd Dŵr Lliw
지금도 웨일즈 천연자원청이 관리하는 개방 산책 구역이다
가격
무료 (주차 무료)
주소
Felindre, Swansea SA5 7NG
1867년과 1894년에 완성된 상하 두 개의 저수지. 스완지와 포트탤벗에 공급하는 수돗물의 수원이고 물가를 도는 산책로와 피크닉 구역이 있다

입구에 안내판이 하나 서 있었다. 파란 나무틀에 끼운 것인데 페인트가 벗겨져 있었다.

여기서 뭘 볼 수 있는지, 어디가 사진 찍기 좋은지 같은 건 적혀 있지 않았다.

대신 저수지 두 개의 지도와 숫자가 있었다.

아래쪽 둑은 1867년에, 위쪽 둑은 1894년에 완성됐다고 적혀 있었다. 아래쪽은 1979년에 다시 지었고 높이 32미터, 길이 202미터다. 저수량은 12억 리터가 조금 넘는다.

안내판은 두 면이었다. 다른 면에는 이 골짜기의 역사와 여기 사는 동식물이 적혀 있었다.

안내판 다른 면에 역사와 동식물 항목이 두 언어로 적혀 있다
1860년 의회법으로 스완지 코퍼레이션이 저수지를 짓게 됐다. 1862년 착공, 1879년 보수, 1979년에야 누수를 잡았다.

그리고 오른쪽 절반이 통째로 물의 순환 설명이었다. 해가 물을 끌어올리고 구름이 되고 비가 내리는 그림이다.

초등학교 과학 시간에 보던 그림이 왜 여기 있나 싶었는데, 마지막 문단을 읽고 알았다.

이 물이 스완지와 포트탤벗의 가정으로 간다고 적혀 있었다. 골짜기 아래 정수장을 거쳐서 간다고.

그러니까 이 판은 수돗물이 어디서 오는지를 설명하고 있었다.

130년 전에는 이 골짜기에 내린 비가 그냥 강으로 흘러 바다로 갔다. 지금은 둑을 쌓아 붙잡아둔다. 안내판은 그 차이를 설명하고 있었다.

저수지가 아니라 댐이 먼저 보였다

초원 아래로 긴 돌 둑이 이어지고 앞에 목책이 서 있다
초원 아래로 긴 돌 둑. 앞에 목책이 서 있다.

물가로 내려가기 전에 둑이 먼저 눈에 들어왔다.

초원이 완만하게 내려가다가 갑자기 잘린 것처럼 긴 돌 벽이 나온다. 앞에 나무 울타리가 서 있고 그 뒤가 낭떠러지다.

가까이서 보면 얼마나 큰지 잘 안 느껴진다. 풀이 다 덮고 있어서 그냥 언덕 같다.

둑 위로 길이 나 있어서 그 위를 걸었다.

둑 위로 포장된 길이 곧게 뻗어 있고 양쪽이 잔디밭이다
둑 위 길. 왼쪽이 물, 오른쪽이 초지다.

한쪽은 물이고 반대쪽은 골짜기다. 폭이 좁아서 걷는 동안 양쪽이 다 보인다.

물이 거울이었다

흐린 하늘 아래 저수지가 넓게 펼쳐져 있다
보기에는 작은데 굉장히 넓다.

바람이 없어서 물이 하나도 안 움직였다.

잔잔한 물 위에 건너편 나무들이 그대로 비쳐 있다
건너편 나무가 그대로 비쳤다.

건너편 나무들이 그대로 뒤집혀 비쳤다. 어디가 물이고 어디가 뭍인지 경계가 흐렸다.

구름까지 다 비쳤다. 위에 있는 구름과 아래에 있는 구름이 같은 모양이었다.

물 위에 구름과 언덕이 통째로 뒤집혀 비쳐 있다
구름과 언덕이 통째로 뒤집혀 있다.

하늘은 계속 무거웠다. 8월인데 두꺼운 회색 구름이 낮게 깔려 있었고, 잠깐씩 그 사이로 해가 났다.

저수지 위로 두꺼운 구름이 낮게 깔려 있다
구름이 이뻐서 찍었다.

웨일즈 날씨가 이렇다. 하루에 네 번쯤 바뀐다.

물가를 따라 길이 있었다

나무 난간이 있는 산책로가 물가를 따라 이어진다
나무 난간을 따라 물가로 이어진다.

저수지를 빙 두르는 산책로가 있었다.

물가 쪽으로 나무 난간이 세워져 있고 바닥은 자갈길이다. 유모차를 미는 사람도 있었다.

길은 중간중간 좁아졌다. 풀이 양쪽에서 자라 들어와서 한 사람씩 지나가야 하는 구간이 나온다.

풀이 우거진 사이로 좁은 흙길이 나 있다
풀 사이로 길이 좁아졌다.

나무가 우거진 구간에서는 물이 나뭇가지 사이로만 보였다.

나무 그늘 아래 산책로 옆으로 물이 보인다
나무 그늘 아래로 계속 물이 보였다.

한 바퀴가 얼마나 되는지는 안 물어봤다. 어차피 다 돌 시간은 없었다.

십오 분 동안 서른다섯 장을 찍었다

노란 들꽃 무리 옆에서 저수지를 배경으로 찍은 셀카
들꽃 옆에서 한 장.

나중에 사진을 정리하다가 시각을 봤다.

물가에 도착한 게 세 시 삼십오 분이고, 차로 돌아온 게 세 시 사십구 분이었다. 십오 분이 채 안 된다.

그 사이에 찍은 사진이 서른다섯 장이었다.

같은 물을 각도만 바꿔가며 계속 찍었다. 덤불 사이로 한 장, 난간 너머로 한 장, 뒤로 물러나서 한 장.

덤불 사이로 물을 배경 삼아 찍은 셀카
덤불을 헤치고 물가까지 갔다.

두 분은 그러지 않았다. 사진기를 꺼내는 걸 한 번도 못 봤다.

앞 편에서 할머니에게 뭐가 행복하냐고 물었더니 루틴이라고 했다. 그 대답을 들은 게 그날 오전이었다.

여기가 그 루틴 안에 들어 있는 장소였다. 두 분에게 이 저수지는 몇 번이나 와본 곳이고, 나에게는 십오 분짜리 처음이었다.

물이 줄어든 자국이 있었다

물이 빠진 자리에 드러난 진흙 바닥과 그 너머의 수면
물이 빠진 자리에 진흙이 드러났다.

물가 한쪽에 진흙이 넓게 드러나 있었다.

물이 빠진 자리에 선이 남아 있었다. 원래 여기까지 물이 찼다는 표시다.

여름이라 그런 건지 그해가 특별히 덜 온 건지는 모르겠다. 다만 저수지는 이렇게 눈에 보이는 방식으로 남은 양을 알려준다.

얕은 쪽은 바닥이 다 보였다. 자갈과 모래가 깔려 있고 그 위로 사진 찍는 내 그림자가 비쳤다.

얕은 물 바닥의 자갈 위로 사진 찍는 사람의 그림자가 비친다
자갈 바닥에 내 그림자가 비쳤다.

수돗물이 나오는 곳을 이렇게 직접 들여다본 적은 없었다. 한국에서도 상수원은 어딘가에 있을 텐데 가본 적이 없다.

여기서는 그게 동네 산책 코스였다.

돌아와서 셋이 사진을 찍었다

소파에 나이 든 두 사람과 함께 셋이 앉아 사진을 찍고 있다
금새 정이 들어버린 우리 셋.

차로 돌아왔을 때 해가 아직 높았다.

두 분의 아파트로 돌아갔다. 앞 편에서 호랑이 그림이 걸려 있던 그 집이다.

소파에 앉았다. 할머니가 한쪽 끝, 할아버지가 반대쪽 끝, 내가 가운데였다.

셋이 나오게 카메라를 들고 여러 장 찍었다. 내가 장난스러운 포즈를 잡으면 두 분은 그냥 웃었다.

그 하루가 이렇게 끝났다. 아침에 시리얼을 먹고 나서 해변, 마을, 아파트, 아이스크림, 저수지를 거쳐 소파로 돌아왔다.

리우 저수지

스완지 시내에서 차로 이십 분쯤 걸린다. 버스로도 갈 수 있지만 배차가 뜸해서 차가 편하다.

입장료도 주차비도 없다. 화장실과 카페가 있고 낚시는 허가가 따로 필요하다.

산책로는 포장 구간과 흙길 구간이 섞여 있다. 비가 온 다음 날은 흙길이 질다.

웨일즈어 안내판 읽는 법

이 저수지 안내판은 왼쪽이 웨일즈어, 오른쪽이 영어다. 웨일즈의 공공 안내판은 대부분 이 구조다.

`Cronfeydd Dŵr`가 저수지, `Y gylchred ddŵr`가 물의 순환이다. `Dŵr`이 물이고, 지붕 모양 부호가 붙은 `ŵ`는 길게 소리 낸다.

웨일즈어는 영어와 계통이 다르다. 철자만 보고 발음을 짐작하기 어렵고 자음이 몰려 나온다.

읽을 수는 없어도 같은 내용이 두 번 적혀 있다는 건 알 수 있다. 오른쪽만 읽으면 된다.

도시가 안 보여주는 쪽

여행을 다니면 그 도시가 보여주고 싶어 하는 것만 보게 된다. 성, 광장, 전망대, 오래된 다리.

그날 두 분이 마지막으로 데려간 곳은 그중 어디에도 안 들어간다. 안내판에 물의 순환이 그려져 있는 저수지였다.

관광객이 갈 이유가 없는 곳이다. 그런데 그 동네 사람들에게는 물을 담아두는 곳이자 주말에 걷는 곳이었다.

한 도시를 안다는 게 뭔지 생각하면, 명소를 몇 개 봤느냐보다 이런 데를 한 번 가봤느냐 쪽에 가까운 것 같다.

나는 거기서 십오 분 동안 서른다섯 장을 찍었고, 두 분은 한 장도 안 찍었다. 그 차이가 그 하루를 요약한다.

아이스크림만 파는 가게에 갔다.

스완지 · 10편 중 8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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