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 카디프 1] 마트에서 컵라면을 여섯 개 샀다

카디프 여행기 · 1편
영수증에 컵라면이
여섯 줄 찍혀 있다.
그게 그날 내가 할 수 있는
답례였다.
마트 계산대 위에 컵라면 여러 개와 소스 병이 올려져 있다
신라면 컵 여섯 개. 옆은 소스 병과 상추.

앞 편에서 나는 처음 본 사람 집에서 잤다. 이 편은 그다음 날 아침이다.

아침이 차려져 있었다

접시에 계란프라이 두 개와 토스트가 담겨 있고 옆에 차 한 잔이 놓여 있다
스튜어트가 해준 아침. 계란프라이 둘, 토스트, 차 한 잔.

내려가니 접시가 준비돼 있었다. 계란프라이 두 개, 토스트, 그리고 차 한 잔.

노른자가 반쯤 익은 계란프라이와 토스트를 가까이서 찍은 사진
노른자가 반쯤 익었다. 접시에 breakfast, lunch, dinner가 돌아가며 적혀 있다.

노른자가 반만 익어 있었다. 토스트로 찍어 먹으라고 그렇게 부친 것이다.

치즈를 올린 빵 조각이 접시에 놓여 있다
치즈를 올려 구운 빵. 이것도 같이 나왔다.

빵 위에 치즈를 얹어 구운 것도 있었다. 치즈가 녹아서 가장자리가 갈색으로 굳어 있었다.

오븐 안 선반에 그릇 두 개가 들어가 있다
그릇을 오븐에 넣어 데워뒀다.

그릇을 오븐에 넣어 데우고 있었다. 접시를 미리 덥혀두는 건 여기서 처음 봤다. 음식이 식는 걸 늦추려고 그렇게 한다.

차는 우유를 넣어 진하게 나왔다. 이 나라에서 차를 시키면 대개 이렇게 나온다.

거실에 그림이 걸려 있었다

선반 위에 시골 풍경화와 개를 그린 그림과 도자기 인형들이 놓여 있다
들판 그림 옆에 강아지 그림. 사이에 말과 사슴 도자기가 있었다.

밥을 먹고 거실을 봤다. 선반 위에 그림이 여러 점 세워져 있었다.

들판과 나무를 그린 시골 풍경화가 걸려 있고 그 옆에 개 그림이 있었다. 사이사이에 말 모양 도자기와 인형이 놓여 있었다. 벽에 걸린 게 아니라 선반에 기대 세워둔 것이라 액자가 겹쳐 있었다.

미술관에 걸릴 그림은 아니다. 그런데 이런 게 놓인 방이 어떤 방인지는 알 수 있다. 오래 산 사람이 하나씩 늘려온 물건들이다.

청소를 하고 나갔다

무늬가 있는 카펫 위로 무선 청소기를 밀고 있다
모네이가 이것저것 해달라고 해서 고마웠다. 카펫 청소 뚝딱 뚝딱.

나가기 전에 청소를 했다. 카펫 위로 무선 청소기를 밀었다.

영국 집은 바닥이 거의 다 카펫이다. 신발을 신고 들어가는 집도 있고 벗는 집도 있는데, 어느 쪽이든 카펫이 깔려 있으니 청소기를 자주 돌린다.

내가 얹혀 자는 집이었다. 청소기 정도는 미는 게 맞다고 생각했다.

아침 햇빛이 든 주방, 조리대와 세탁기가 보인다
아침 햇빛이 든 주방. 세탁기가 조리대 옆에 있다.

주방은 좁고 길었다. 조리대 아래에 세탁기가 들어가 있다. 영국 집은 세탁기를 주방에 둔다. 이것도 그날 알았다.

마트에 갔다

차 안에서 본 주택가 거리, 양옆으로 벽돌집이 이어진다
차창으로 본 동네. 벽돌집이 줄줄이 붙어 있다.

카디프에 가기 전에 마트에 들렀다. 차를 타고 나가는데 창밖으로 똑같이 생긴 집들이 이어졌다.

낮은 대형마트 건물 외벽에 초록색 간판이 붙어 있다
ASDA. 시내가 아니라 외곽 동네 지점이다.

초록색 간판이 붙은 낮은 건물이었다. 아스다다. 영국 대형마트 체인 중 하나이고 값이 싼 쪽에 속한다.

진열대가 낮았다

마트 정육 코너 진열대에 포장된 고기가 층층이 놓여 있다
still fresh – reduced price 띠가 붙은 감액 코너.

들어가서 제일 먼저 눈에 띈 건 진열대 높이였다. 한국 마트보다 낮다. 그래서 매장 전체가 한눈에 들어온다.

정육 코너에 포장된 고기가 층층이 쌓여 있었다. 봉지째 오븐에 넣으면 되는 통닭이 있었다. 봉지를 안 뜯고 그대로 굽는 방식이다.

마트 진열대에 즉석식품과 컵 제품이 줄지어 놓여 있다
컵 제품 칸. 2개 £2, 하나는 £1.

데워 먹는 것들이 한 통로를 다 차지했다. 컵에 든 것, 상자에 든 것, 봉지에 든 것. 전자레인지에 몇 분 돌리면 되는 게 이만큼 있다.

이 나라 마트에서 즉석식품 칸이 큰 이유가 있다. 외식이 비싸다. 펍에서 밥을 먹으면 마트에서 사 먹는 것의 몇 배가 든다. 그러니 집에서 데워 먹는 쪽으로 시장이 커진다.

컵라면을 여섯 개 담았다

카트에 컵라면을 담았다. 한두 개가 아니라 여섯 개였다.

손에 든 마트 영수증에 컵라면 항목이 여러 줄 찍혀 있고 아래에 합계가 있다
CUP NOODLE이 여섯 줄. 지점은 고르세이논, 스완지.
아스다 고르세이논점
ASDA Gorseinon Superstore
지금도 영업한다. 영국 마트 물가는 그때보다 많이 올랐다
가격
방문 당시 컵라면 개당 0.69파운드 · 총 8.44파운드어치를 샀다
주소
Gorseinon, Swansea SA4 4BZ
영국 대형마트 체인 중 값이 싼 축. 진열대가 낮아 매장 전체가 한눈에 들어온다

영수증에 그날 산 게 그대로 남아 있다.

`CUP NOODLE`이 여섯 줄이다. 개당 0.69파운드. 그 아래로 소스와 고추, 상추, 감액 베이컨, 적양파가 찍혀 있다. 적양파는 0.085킬로그램을 킬로그램당 0.75파운드로 계산해 0.06파운드였다.

합계 8.44파운드. 카드로 계산했다.

영수증 위쪽에 지점 이름이 찍혀 있다. 고르세이논, 스완지. 시내에서 벗어난 외곽 동네다.

컵라면을 여섯 개나 산 이유는 하나다. 나 혼자 먹을 게 아니었다.

며칠 동안 남의 집에서 자고 남의 차를 타고 남이 차려준 밥을 먹었다. 돈을 내겠다고 하면 안 받는 사람들이었다. 그러면 할 수 있는 게 뭔가 사 오는 것뿐이다.

그리고 내가 아는 것 중에 이 사람들이 모르는 게 그거였다.

끓여서 나눠 먹었다

냄비에서 잘게 썬 재료가 든 국물이 끓고 있다
냄비에 재료를 잘게 썰어 끓였다.

컵에 물을 붓지 않고 냄비에 끓였다. 그게 더 맛있다는 걸 아는 사람은 그렇게 한다.

고추를 산 것도 그래서다. 여기서 파는 컵라면은 맵지 않다. 한국 사람 기준으로는 국물이 밍밍하다.

주방에서 컵라면 두 개를 양손에 들고 웃고 있다
모네이가 신라면 컵을 양손에 들었다.

컵을 양손에 들고 웃었다. 신기해하는 얼굴이었다.

여행하면서 얻어먹은 게 많다. 그런데 내가 뭘 해준 기억은 많지 않다. 언어가 안 되고 돈이 없고 요리를 잘하는 것도 아니어서, 대개 받기만 하고 지나갔다.

그날은 8.44파운드어치를 사서 냄비에 끓였다. 그게 전부인데 그날 아침에는 그게 제일 나은 방법이었다.

차에서 젤리를 먹었다

마트 자체 상표가 붙은 젤리 봉지를 손에 들고 있다
여기 보이는 젤리의 90%를 내가 다 먹었다. 너무 맛있어.

마트에서 젤리도 하나 샀다. 봉지에 마트 자체 상표가 붙어 있었다.

와인 검이라고 부르는 젤리다. 이름에 와인이 들어가는데 술은 안 들어간다. 백 년 전에 나온 영국 과자이고 이 나라 사람들이 차 안에서 이걸 꺼내 먹는다.

차 안에서 포장된 사탕 한 개를 손에 들고 있다
차 안에서 사탕 냠냠.

손바닥에 색깔별로 몇 개가 남았다. 초록, 노랑, 검정, 빨강. 색마다 맛이 다르다고 하는데 솔직히 구분이 잘 안 갔다.

카디프까지 한 시간쯤 걸리는 길이었다. 차 안에서 봉지를 돌려가며 먹었다.

정확히는 돌려가며 먹은 게 아니다. 한 봉지의 대부분을 내가 먹었다. 앞자리 두 사람은 한두 개씩 집었고 나머지는 뒷자리에서 사라졌다.

젤리가 특별히 맛있어서였는지, 그 며칠이 그래서였는지는 지금도 모르겠다.

가는 길에 마트가 또 있었다

거리에 면한 소형 마트 매장 정면
MORRISONS M local. 현금 인출이 무료라고 붙어 있다.

가는 길에 다른 체인의 소형 매장이 있었다. 대형마트가 동네용으로 작게 낸 점포다.

영국은 마트 체인이 여럿이고 각자 대형점과 소형점을 따로 낸다. 큰 데는 차를 타고 가고 작은 데는 걸어가서 그날 먹을 것만 산다.

붉은 벽돌과 흰 창틀로 지은 이층 주택
붉은 벽돌에 흰 창틀. 이 동네 집이 대개 이랬다.

집들이 다 비슷하게 생겼다. 붉은 벽돌에 흰 창틀, 이층, 앞에 작은 정원. 한 줄로 붙어 있는 집도 많다.

이런 집이 몇 킬로미터씩 이어진다. 그 안에 어제 나를 재워준 집도 있었다.

아스다

배낭여행이면 마트가 식비를 결정한다. 영국은 외식이 특히 비싸서 마트에서 사서 해결하는 쪽이 차이가 크게 난다.

체인마다 성격이 다르다. 아스다·리들·알디가 싼 편이고, 웨이트로즈·막스앤스펜서가 비싼 편이다. 테스코·세인즈베리는 중간이고 매장이 제일 많다.

`Reduced` 스티커가 붙은 코너를 보는 게 요령이다. 그날 못 팔 신선식품을 저녁 무렵에 크게 깎아 붙인다.

제일 비싼 게 상추 2.07파운드

그날 산 것 중에 제일 비싼 게 상추 2.07파운드였고 제일 많이 산 게 컵라면이었다.

장바구니는 그 사람이 뭘 하려는지를 말해준다. 여행자가 마트에서 라면을 여섯 개 사면 그건 자기가 먹으려는 게 아니다.

얻어먹기만 하는 게 편할 때도 있다. 고맙다고 하고 넘어가면 되니까. 그런데 그렇게만 하고 지나가면 그 관계가 한쪽으로만 흐른다.

8.44파운드는 그 흐름을 잠깐 뒤집어보려고 쓴 돈이다. 액수로 치면 그 집에서 받은 것의 십분의 일도 안 된다. 그래도 그날 아침에 내가 낼 수 있는 건 그게 전부였다.

첫날 버스 창밖으로 스쳤던 그 성 앞까지 걸어갔다가, 입장료를 보고 돌아섰다.

카디프 · 4편 중 1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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