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 스완지 10] 웨일스에서 숯이 담긴 채로 파는 그릴을 사 왔다
팔리고 있었다.
여기 파티였다.

부두에서 해가 지는 걸 보고 차에 탔다. 그 집에서 보내는 마지막 밤이었다.
다음 날 새벽 다섯 시 버스로 런던에 가야 했다.
돌아오는 길에 해가 넘어갔다

해안 도로를 따라 돌아오는데 창밖이 계속 좋았다.
나무 사이로 만처럼 들어온 모래 해변이 보였다. 낮에 지나갈 때는 못 봤던 곳이다.
들판에 소가 서 있었다. 해가 낮게 걸려서 소가 검은 실루엣으로만 보였다.

차 안에서 오늘 저녁은 바비큐를 하자는 얘기가 나왔다.
마트에 들렀다

집에 가기 전에 마트에 들렀다. 여덟 시가 넘은 시각인데 아직 열려 있었다.
진열대에 소스 병이 줄지어 있었다. 닭에 바르는 매운 소스가 한 칸을 다 차지하고 있고 가격이 2.48파운드였다.
포르투갈식 페리페리 소스를 파는 영국 체인이 있는데, 그 브랜드 소스가 마트에서 병으로 팔린다. 영국 집 냉장고에 하나쯤 들어 있는 물건이다.
후식으로 페이스트리도 한 팩 담았다. 사과와 커스터드를 넣고 반달로 접은 것이 두 개 들어 있었다.

그중 하나가 상자째로 파는 바비큐 그릴이었다.
알루미늄 쟁반 안에 숯이 이미 깔려 있고 그 위에 석쇠가 얹혀 있다. 겉 상자에 그대로 `INSTANT BARBECUE`라고 적혀 있었다.
불을 붙이면 그릴이 되고, 다 쓰면 통째로 버린다. 조립도 세척도 없다.
영국 마트에서는 여름이면 이게 계산대 근처에 쌓여 있다. 날이 조금만 좋으면 사람들이 이걸 사서 공원이나 뒷마당에 놓는다.
조리대에 장 본 것을 다 쏟아놓았다

집에 와서 봉지를 풀었다.
조리대 위에 재료가 쌓였다. 그런데 그 사이에 스프링 수첩이 한 권 세워져 있었다.
바비큐와 상관없는 것도 같이 놓여 있었다. 청포도 한 통, 얇게 썬 햄 한 팩, 오레오 한 상자, 그리고 빵.
수첩 첫 장에 볼펜 글씨가 있었다. 맨 위에 모네이 이름을 적고, 그 아래로 철자가 몇 개 틀린 짧은 부탁이 이어졌다.
샌드위치 좀 만들어줄 수 있겠니. 포도는 가는 길에 먹으라고, 비스킷도. 고마워.
아래에 서명이 있었다. 그 집 어머니 이름이었다.
앞 편에서 하루 종일 같이 다닌 그 할머니다. 나에게 행복이 뭐냐고 물었더니 루틴이라고 답했던 사람이다.
낮에 나를 데리고 다니고, 저녁에 자기 집으로 돌아가면서, 부엌에 이 쪽지를 놓고 갔다. 내가 다음 날 새벽에 떠난다는 걸 알고 있었다.
고기도 종류별로 다 있었다. 다진 소고기, 베이컨, 소시지, 닭. 그리고 파프리카와 방울토마토와 버터.

그런데 마당에서 구운 건 스튜어트와 나 둘이었다.
둘이 먹을 양이 전혀 아니었다. 그런데도 이만큼 샀다. 마지막 날이라 그런 것이었다.
패티를 직접 빚었다

패티는 사 오지 않고 만들었다.
프라이팬에 다진 소고기를 쏟고 잘게 썬 양파를 섞었다. 소금과 후추만 넣었다.
손으로 눌러가며 네 장을 만들었다. 가운데가 두껍고 가장자리가 얇은, 딱 봐도 집에서 만든 모양이었다.

가게에서 파는 패티보다 두 배는 두꺼웠다.
뒷마당에 그릴을 놓았다

마당으로 나갔다.
좁고 긴 마당이고 한쪽에 창고가 있었다. 잔디는 관리된 상태가 아니었고 공사 자재 같은 것도 쌓여 있었다.
그 한가운데에 알루미늄 쟁반을 그냥 내려놓았다. 받침도 다리도 없다.
겉 종이에 불을 붙이면 그게 숯으로 옮겨붙는다.
십오 분쯤 기다리니 숯이 하얗게 됐다. 아래쪽은 빨갛고 위에 재가 앉았다.

패티 네 장을 올렸다. 석쇠가 얇아서 무게 때문에 가운데가 조금 내려앉았다.
패티가 익는 데는 오래 안 걸렸다. 기름이 떨어질 때마다 불이 확 올라왔다.

그 자리에서 끼워 먹었다

접시를 들고 그릴 옆에 서서 먹었다. 식탁으로 옮기지 않았다. 둘이서 굽고 둘이서 먹었다.
번 사이에 패티를 넣고 케첩을 짰다. 야채도 소스도 더 안 넣었다.

패티가 두꺼워서 번이 다 안 덮였다. 한 입 베어 물면 고기만 씹혔다.

지금까지 여행하면서 먹은 것 중에 제일 단순한 저녁이었다. 고기와 빵과 케첩이 전부다.
그런데 영국에서 먹은 것 중에 이게 제일 맛있었다. 펍 감자칩도, 드라이브스루 햄버거도, 마트 즉석식품도 아니고, 남의 집 뒷마당에서 일회용 그릴에 구운 이것이었다.
영국 음식이 맛없다는 말을 오기 전부터 들었다. 그 말이 틀렸다기보다, 그 말이 가리키는 게 식당 음식이었던 것 같다. 남의 집 마당에서 그 집 사람이 구워주는 건 다른 얘기였다.
햄버거를 다 먹고 나서도 그릴이 계속 뜨거웠다. 남은 열로 소시지를 구웠다.

소시지는 접시에 담아 나눠 먹었다. 껍질이 터질 때까지 구우니 겉이 딱딱해졌다.

마지막에 닭이 나왔다. 은박을 깔고 그 위에 붉은 양념을 바른 닭다리를 올렸다.

마트에서 산 그 매운 소스를 발라 구운 것이다. 그릴이 식어가고 있어서 이건 부엌 불에서 마저 익혔다.
새벽 다섯 시에 부엌에 불이 켜져 있었다

밤에 짐을 다 싸고 잠깐 누웠다.
일어나니 아래층 부엌에 불이 켜져 있었다. 잠옷 차림으로 뭔가 만들고 있었다.
조리대 위에 바게트 두 개가 놓여 있었다. 반으로 갈라서 햄을 넣은 것이었다.
옆에 과일 젤리 한 봉지가 있었다. 버스에서 먹으라고 같이 챙겨준 것이다.
전날 밤 조리대에 놓여 있던 그 쪽지대로였다. 샌드위치, 포도, 비스킷. 적힌 순서 그대로 봉지에 들어갔다.
다 싸서 비닐봉지에 넣어줬다. 은박으로 싼 꾸러미와 과자 상자가 안에 들어 있었다.

며칠 동안 재워주고 태워주고 먹여준 사람들이었다. 마지막 날 새벽에 도시락까지 쌌다.
문을 열고 나왔다

현관 복도에 불이 켜져 있었다. 계단 옆에 짐이 세워져 있었다.
밖은 아직 파랬다. 검다기보다 짙은 파랑에 가까운 시간이다.

가로등이 아직 켜져 있었다. 양쪽으로 벽돌집이 이어지고 길가에 차가 빽빽하게 주차돼 있었다.

차로 정류장까지 데려다줬다. 새벽 다섯 시에 자기 차를 몰고 나온 것이다.
전날 밤에 나에게 저녁을 구워준 사람이 그 새벽에 운전대를 잡고 있었다.
버스가 왔다. 짐을 싣고 손을 흔들었다. 스완지에서 보낸 사흘이 그렇게 끝났다.
일회용 바비큐
영국 마트에서 여름에 파는 물건이다. 알루미늄 쟁반에 숯과 착화지가 들어 있고 석쇠가 얹혀 있다.
가격은 저렴한 편이고 라이터만 있으면 된다. 불이 붙는 데 십에서 이십 분 걸리고 한 시간 남짓 쓴다.
공원에서 쓸 때는 잔디를 태우기 때문에 금지된 곳이 많다. 지금은 산불 위험 때문에 판매를 중단한 대형 마트도 있다.
다 쓰고 나면 완전히 식힌 뒤에 버려야 한다. 뜨거운 채로 쓰레기통에 넣으면 사고가 난다.
스완지에서 런던 가는 버스
스완지에서 런던까지는 장거리 버스가 다닌다. 기차보다 싸고 시간은 더 걸린다.
새벽 첫차와 심야 편이 있어서 숙박비를 아끼려는 배낭여행자가 많이 쓴다.
빅토리아 코치 스테이션이 종점이라 런던 도심에 바로 내린다.
미리 예약하면 훨씬 싸다. 대신 출발 시각을 잘 확인해야 한다. 저녁으로 잡은 줄 알았는데 새벽이었던 게 이때다.
축구 경기 하나 때문에 온 도시
이 도시에 온 이유는 축구 경기 하나였다.
표를 미리 사놓고 갔는데 도착했을 때 경기는 이미 끝나 있었다. 숙소 예약도 그 전날 취소됐다.
계획대로 된 게 하나도 없었다. 그런데 그 실패 때문에 버스에서 사람을 만났고, 그 사람 집에서 사흘을 잤고, 그 어머니와 하루를 다녔고, 마지막 밤에 뒷마당에서 햄버거를 구웠다.
여행에서 제일 좋았던 구간을 꼽으라면 대체로 계획이 무너진 자리다. 계획대로 굴러가면 계획만큼만 나온다.
그 뒤로 연락한 적이 없다
여기까지가 스완지 3박 4일이다.
그리고 솔직히 적자면, 그 뒤로 이 사람들과 연락한 적이 없다.
헤어질 때는 다시 만나자고 했다. 그때는 진심이었고 지금도 그 마음은 남아 있다. 그런데 지구 반대편이었다.
여행에서 만난 사람과의 관계는 대개 이렇게 끝난다. 그 며칠 동안은 가족처럼 지내고, 버스가 출발하면 그걸로 끝이다. 연락처를 주고받아도 쓸 일이 없다.
그게 아쉽지 않다고 하면 거짓말이다. 사흘 동안 재워주고 태워주고 먹여준 사람들인데 지금 어떻게 사는지 모른다.
다만 이 글을 쓰면서 그때 사진을 전부 다시 봤다. 한참 지나서 이름과 얼굴을 하나씩 맞췄고, 그날 무슨 일이 있었는지 순서대로 적었다. 연락은 못 했어도 잊지는 않았다는 게 이 정도는 된다.
스튜어트와 그 어머니, 버스 이용권을 건네줬던 사람까지. 다들 어디에서든 건강하고 행복하게 지내고 있으면 좋겠다. 그 사흘은 정말 감사드려요.
새벽에 받은 도시락은 그날 오후 런던의 어느 공원에서 먹었다. 그건 다음 편이다.
그 도시에 아홉 시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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