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 스완지 6] 웨일스 펍 세 곳을 돌고 세 번째에서 위스키가 나왔다
끝나지 않았다.
위스키가 나왔다.

해가 다 넘어가고 나서 차에 탔다.
집으로 가는 줄 알았다. 아니었다.
두 번째 집은 클럽하우스였다
다음에 선 곳은 펍이라기보다 클럽하우스였다.
건물 벽에 럭비 중계를 한다는 안내가 붙어 있었다. 여기서 경기를 틀어준다는 뜻이다.
벽에 화면이 걸려 있고 그 옆에 나무 시계가 있었다. 뻐꾸기시계다. 그리고 그 옆에 방패 모양 표장이 걸려 있었는데, 이 근처 조정 클럽 것이었다.

동네 스포츠 클럽이 운영하는 바다. 회원들이 경기 끝나고 모이는 자리에 외부인도 들어와 마신다.
그 옆 벽에 액자가 두 개 걸려 있었다. 하나는 오토바이 사진이고 하나는 단체 사진인데, 그 사이에 작은 웨일즈 깃발이 꽂혀 있었다.

웨일즈 위스키가 나왔다

여기서 뭔가가 나왔다. 긴 잔에 갈색 음료가 담겨 나왔고 빨대가 꽂혀 있었다.
색을 보고 콜라 같은 건 줄 알았다.
한 모금 마시고 얼굴이 굳었다. 독했다.

웨일즈에서 만든 위스키라고 했다. 무슨 브랜드였는지는 기억에 없다. 잔을 받아 들고 이름을 물어볼 정신이 아니었다.
이 나라에서 위스키는 스코틀랜드 것이 기본인데, 웨일즈에도 자기네 증류소가 있다. 백 년 넘게 끊겼다가 이천 년대에 다시 시작한 곳이다. 그때 웨일즈산 위스키라고 하면 사실상 그 한 곳을 가리켰다.
다들 재밌어했다. 술이 세지 않다는 얘기를 그 자리에서 몸으로 증명한 셈이다.

그 자리에도 스튜어트와 그의 아버지가 같이 있었다. 첫 번째 바에서부터 셋이 계속 붙어 다닌 것이다. 두 사람 다 술을 좋아했고, 맥주를 이미 몇 잔 마신 뒤에 위스키였다.
가는 데마다 아는 사람이 있었다

여기서도 아는 사람이 계속 나왔다.
옆 테이블 노부부와 사진을 찍었다. 소개를 받고 악수를 한 다음 카메라를 들었다.
사십 년을 한 동네에서 산 사람과 다니면 이렇게 된다. 가는 집마다 인사할 사람이 있고, 그때마다 나는 소개되는 사람이었다.
여행하면서 현지인과 대화할 기회가 없다는 말을 자주 듣는다. 그날 알았는데, 문제는 상대를 찾는 게 아니라 소개해줄 사람이 있느냐였다.
밤거리가 주황색이었다

건물을 나오니 밖이 완전히 어두웠다.
가로등이 주황색이라 거리 전체가 그 색이었다. 오래된 이층 주택이 그 빛을 받고 서 있었다.
영국 가로등이 오랫동안 주황빛이었다. 나트륨 등이라 색이 그렇게 나온다. 지금은 흰빛으로 많이 바뀌었는데, 그때 밤거리는 아직 이 색이었다.
이 색 때문에 사진이 전부 누렇게 나왔다. 그런데 그게 그날 밤 분위기와 맞았다.
세 번째 집

그리고 한 군데를 더 갔다.
여기는 앞의 두 곳과 분위기가 달랐다. 벽이 노랗고 조명이 밝았다. 커피 메뉴가 칠판에 분필로 적혀 있었다.
커피 값이 60펜스에서 90펜스 사이였다. 에스프레소, 카푸치노, 라테, 필터 커피. 술집인데 커피를 이 값에 판다.
여기도 탭이 줄지어 있었다. 하이네켄, 암스텔, 칼링, 쿠어스. 앞의 두 곳이 에일 위주였다면 여기는 라거가 많았다.

옆자리 사람과 또 사진을 찍었다. 이름은 못 알아들었고 엄지만 같이 들었다.

이 집에서도 셋이 한 장을 찍었다. 그날 찍은 3인 사진이 몇 장인지 세다가 포기했다.

마지막 집 간판에 이름이 적혀 있었다. `THE MARDY INN`.

돌아오는 길에 중국집에 들렀다

집으로 가는 길에 차가 또 섰다.
붉은 간판을 단 중국 음식 포장 전문점이었다. 앉을 자리가 없고 받아서 나오는 집이다.
영국에 이런 집이 이렇게 많다는 걸 그날 알았다. 인도 커리집과 함께 이 나라 야식의 두 축이다. 펍에서 마시고 나오는 길에 여기 들르는 게 순서인 모양이었다.
플라스틱 용기째 들고 왔다. 뚜껑을 열자 볶은 국수 위에 붉은 테두리 돼지고기가 얹혀 있었다.

접시에 덜어 먹었다. 국수 위에 얹힌 건 새우로 만든 과자다. 이 나라 중국집에서는 이게 기본으로 딸려 나온다.

스튜어트가 매운 걸 좋아해서 따로 챙겨둔 핫소스를 꺼냈다. 나한테도 넣어보라고 권했다. 그 정도는 기본이라고 대답했다.
그날 아침에 파로 공항 대합실에서 눈을 떴다. 그리고 밤에는 처음 본 사람 집 주방에서 차우멘을 먹고 있었다.
팔월인데 난방을 켰다

거실에 벽난로가 있었다. 장작을 때는 게 아니라 가스로 불꽃만 올리는 방식인데, 이 나라 집에는 이게 흔하다.
팔월인데 불을 켜놨다. 낮에 서늘하다고 좋아했던 그 날씨가 밤에는 난방을 켤 정도였다.
방으로 올라갔다. 선반에 인형이 줄지어 놓여 있는 방이었다.

그날 밤 잘 자리가 생겼다.

영국에서 밤에 마실 때
펍은 대체로 열한 시쯤 문을 닫는다. 클럽이 아니면 새벽까지 하는 집이 드물다. 그래서 저녁이 일찍 시작한다.
한 집에서 오래 앉아 있기보다 여러 집을 옮겨 다니는 게 흔하다. 그날처럼 세 곳을 도는 게 특별한 일이 아니다.
각자 한 라운드씩 사는 관습이 있다. 내 차례가 오면 그 자리 사람 전체 몫을 산다. 못 마시겠으면 처음부터 말해두는 게 낫다.
포장 중국집과 커리집은 밤늦게까지 한다. 문 닫는 시간이 펍보다 늦어서 마시고 나오는 길에 들른다.
세 번째 바에서 끝난 하루
그날 하루가 이렇게 끝났다.
새벽에 공항 의자에서 일어나 비행기를 타고, 버스를 갈아타고, 기차를 타고, 경기를 놓치고, 표를 잃어버리고, 선수 아홉 명과 사진을 찍고, 남의 차를 타고, 바 세 곳을 돌고, 남의 집에서 잤다.
계획한 건 하나도 안 됐다. 계획에 없던 건 전부 됐다.
여행이 길어지면 계획이 정확해진다. 예약을 미리 하고 동선을 짜고 시간을 계산한다. 그렇게 하면 계획한 만큼은 나온다. 계획한 것보다 더 나오지는 않는다.
그날은 계획이 통째로 무너진 날이었다. 그래서 그 자리가 다른 걸로 채워졌다.
차를 타고 카디프에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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