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르투갈 · 포르투 2] 대서양까지 걸어갔더니 바다가 캄캄했다

포르투 여행기 · 2편
밤새 걸어서 대서양에 닿았는데
바다가 하나도 안 보였다.
그래도 등대까지는
가봐야 했다.

앞 편에서 나는 포르투에 밤늦게 도착했고, 숙소를 예약해두지 않은 탓에 잘 데가 없었고, 그래서 배낭을 멘 채 도시를 걷기 시작했다. 동 루이스 1세 다리를 위아래로 두 번 건너고 나니 잘 생각이 완전히 사라졌다. 이 편은 그다음 이야기다.

강은 서쪽으로 흘렀다

가로등이 이어진 밤의 도우루 강변 산책로
여기서부터는 강만 따라가면 됐다.

강가에 서서 물이 흐르는 방향을 봤다. 서쪽이었다. 도우루강은 스페인 내륙에서 시작해 포르투갈을 가로질러 대서양으로 빠진다. 즉 이 강을 따라 계속 걸으면 바다가 나온다.

그게 얼마나 먼지는 생각하지 않았다. 어차피 잘 데가 없었다.

그리고 가고 싶었다. 이 나라에 오기 전부터 여기는 나한테 배가 나가는 나라였다. 어릴 때 하던 게임이 그랬고 교과서에 색칠하던 항로가 그랬다. 강을 따라 바다까지 걸어간다는 게 그날 밤에는 탐험처럼 느껴졌다.

마드리드를 떠날 때부터 방향은 서쪽이었다. 여행이 점점 대서양 쪽으로 가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그건 지도 위의 방향일 뿐이었다. 그날 밤에 그게 문자 그대로 실행됐다.

물론 배는 없고 나는 배낭을 멘 채 걷고 있었다. 그래도 방향은 같았다.

햄버거의 왕이라는 이름의 노점에서

밤에 불을 켠 노점 위 간판, 햄버거 그림과 REI DOS HAMBURGUERES 글자
햄버거의 왕. 간판에 불꽃까지 그려놨다.

한참 걷다가 불 켜진 노점을 만났다. 간판에 `REI DOS HAMBURGUERES`라고 적혀 있었다. 햄버거의 왕이라는 뜻이다.

새벽인데 사람이 줄을 서 있었다. 그것도 대여섯 명이. 형광등을 줄줄이 달아놓아서 그 앞만 대낮처럼 밝았고, 안에서는 두 사람이 계속 뭔가를 굽고 있었다. 이 시간에 이 자리에 사람이 모인다는 게 이 도시에서는 이상한 일이 아닌 모양이었다.

형광등을 밝힌 새벽 노점 앞에 손님 대여섯 명이 줄을 서 있다
새벽인데 이 앞만 대낮이었다. 줄까지 서 있었다.

그런데 안쪽 벽에 붙어 있는 건 케밥 포스터였다. 두 장이나 붙어 있었다. 햄버거의 왕이 미는 게 케밥이라는 게 이상하면서 좋았다. 이 시간에 여는 집은 파는 걸 다 판다는 쪽이 맞는 것 같았다.

포스터에 적힌 값은 4유로가 채 안 됐다. 유럽을 마흔 날 넘게 돌면서 그 값에 한 끼가 되는 걸 만난 적이 별로 없었다. 스페인에서는 이 돈으로 빵 하나에 물 한 병이었다.

노점 안쪽 벽에 붙은 케밥 포스터 두 장, 가격이 적혀 있다
햄버거의 왕이 벽에 붙여둔 건 케밥이었다. 3.90유로.

받은 건 호일에 싸여 있었다. 빵을 벌리니 고기가 잔뜩 들어 있었다. 밤새 걸어서 배가 고팠던 것도 있겠지만, 그 시점에 그건 상당히 훌륭한 음식이었다. 호일째 들고 걸으면서 먹었다. 손에 기름이 묻었는데 닦을 데가 없어서 그냥 걸었다.

호일을 벗긴 채 손에 들린 케밥, 빵 사이에 고기가 채워져 있다
호일을 벗기니 고기가 꽉 차 있었다. 걸으면서 다 먹었다.

표지판이 거리를 줄여줬다

산책로 표지판, 포르투 마르지날 코스 안내가 적혀 있다
강변 산책로 표지판. 여기서부터 남은 거리가 숫자로 나오기 시작했다.
포즈 두 도루
Foz do Douro
지금도 포르투 사람들이 저녁 산책을 나오는 자리다. 파도가 높은 날에는 방파제 출입이 통제된다
가격
무료
주소
Foz do Douro, 4150-Porto
도우루강이 대서양과 만나는 하구 지역. 방파제와 등대, 요새가 이어진다
마르지날 산책로
Percurso da Marginal
지금도 무료로 개방돼 있고 구간마다 거리 표지가 서 있다. 자전거 대여로 도는 사람이 더 많다
가격
무료
주소
Av. de Dom Carlos I ~ Foz do Douro, Porto
포르투시가 도우루 강변에 정비한 보행·자전거 코스. 히베이라에서 강 하구 포즈 두 도루까지 강을 따라 이어진다

강변 산책로에는 이름이 있었다. `Percurso da Marginal`. 시에서 만든 걷기 코스인데 표지판마다 남은 거리가 적혀 있었다.

그게 좋기도 하고 나쁘기도 했다. 숫자가 줄어드는 걸 보면 걷는 보람이 있는데, 동시에 아직 얼마나 남았는지도 정확히 알게 된다. 전체가 십사 킬로미터쯤 되는 코스였고 나는 중간쯤에서 시작한 셈이었다. 그러니까 가는 데 십 킬로미터, 돌아오는 데 팔 킬로미터. 그때는 그 계산을 안 했다.

중간에 철판을 오려 만든 새 모양 표지가 있었다. 갈매기와 물새들이 줄지어 날아가는 모양으로 잘려 있었다. 새를 보라고 만들어둔 자리였다. 물론 그 시간에 보이는 새는 없었다. 표지 앞에서 사진을 한 장 찍고 계속 걸었다.

철판을 오려 만든 새 모양 표지, 조류 관찰소라고 적혀 있다
조류 관찰소. 새는 없었고 나는 아직 케밥을 들고 있었다.

낮에 왔으면 이 코스가 완전히 다른 길이었을 것이다. 조깅하는 사람과 자전거가 지나다니고 강 건너가 보이는 산책로. 나는 그 길을 아무도 없는 시간에 혼자 지나갔다. 어느 쪽이 더 나았는지는 아직 모르겠다.

히베이라에서 하구까지는 걸어서 두 시간 안팎이다. 길이 평탄해서 거리에 비해 힘들지 않지만, 도시 쪽으로 돌아올 때는 언덕을 다시 올라야 한다. 나는 걸어서 돌아오다 후회했다. 편도만 걷고 트램이나 버스를 타는 게 낫다. 낮에는 1번 트램이 강변을 따라 하구까지 간다.

바다는 소리로 먼저 왔다

조명을 받은 금빛 조각상 뒤로 바다 건너 불빛이 늘어서 있다
조명을 받은 조각상 뒤로 물 건너 불빛이 늘어서 있었다.

강폭이 점점 넓어졌다. 어느 순간부터 물소리가 달라졌다. 강물은 흐르는 소리를 내는데 바다는 부딪히는 소리를 낸다.

강이 바다와 만나는 자리에 방파제와 하얀 건물이 조명을 받고 있었다. 오래된 요새를 개조한 건물이었다. 강 건너편으로는 불빛이 길게 늘어서 있었다. 그게 바다 건너인지 강 건너인지 구분이 안 될 만큼 강이 넓어져 있었다.

강이 바다와 만나는 자리, 방파제와 하얀 건물이 조명을 받고 있다
강이 바다로 넘어가는 자리. 요새를 고쳐 쓴 건물이 서 있다.

도착했는데 아무것도 안 보였다

방파제 바위 너머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검은 바다다
처음 본 대서양이 이랬다. 소리만 있고 아무것도 안 보였다.

그리고 대서양에 닿았다.

태어나서 처음 보는 대서양이었다. 그런데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새벽이었고 물안개가 껴 있었다. 방파제 바위 너머는 그냥 검은색이었다. 파도 소리는 크게 들리는데 파도는 안 보였다.

경고판 하나가 서 있었다. 포르투갈어와 영어로 파도가 넘어오는 구역이라고 적혀 있었다. 그러니까 이 어둠 어딘가에서 파도가 방파제 위로 올라온다는 뜻이었다.

파도 위험 구역이라고 포르투갈어와 영어로 적힌 경고판
파도가 넘어오는 구역이라고 적혀 있었다. 그 파도는 끝까지 안 보였다.

여기까지 걸어온 이유를 생각해봤다. 바다를 보러 온 건데 바다가 안 보인다. 그런데도 등대까지는 가봐야 할 것 같았다. 이유는 없었다. 여기까지 왔으니까.

해가 있을 때 가면 대서양이 실제로 보인다. 나처럼 새벽에 도착하면 소리만 듣고 온다. 파도가 방파제를 넘는 구간이 있어서 경고판이 서 있고, 바람이 센 날에는 실제로 위험하다.

돌아오는 길은 오르막이었다

야자수가 늘어선 새벽 대로 끝에 오벨리스크가 서 있다
돌아가는 길. 이 대로가 끝나지 않을 것 같았다.

등대를 찍고 돌아섰다. 그때부터가 진짜였다.

갈 때는 몰랐는데 강변 산책로는 아주 완만하게 내리막이었다. 강이 바다로 흐르니 당연한 일인데, 걸을 때는 그걸 느끼지 못했다. 돌아가는 길에서야 알았다.

갈 때는 목적지가 있어서 걸어졌는데 돌아오는 길에는 그게 없었다. 야자수가 늘어선 대로 끝에 오벨리스크가 서 있었고, 그 길이 끝없이 길게 느껴졌다. 가로등 아래로 붉은 꽃이 무리로 피어 있었다. 칸나였다. 그런 걸 알아볼 여유가 있었다는 게 지금 생각하면 신기하다.

가로등 아래 붉은 칸나가 무리 지어 피어 있다
가로등 아래 이 꽃만 색이 살아 있었다.

하늘이 밝아지기 시작했다. 그러니까 나는 그날 밤을 통째로 걸어서 보낸 것이다.

숙소에 짐을 푼 건 그로부터 한참 뒤, 오후 세 시였다. 그 이야기는 다음 편에 쓴다.

밤에 걸을 때

강변 산책로는 밤에도 가로등이 켜져 있고 사람이 아주 없지는 않다. 다만 하구 쪽으로 갈수록 인적이 줄고 구간에 따라 조명이 어둡다. 물병은 미리 챙기는 편이 낫다. 새벽에 여는 가게가 드물다.

8월인데도 강바람이 찼다. 바다에 가까워질수록 더 찼다. 여름옷만 입고 나가면 후회한다.

바다를 보러 갔는데 못 봤다

바다를 보러 갔는데 바다를 못 봤다. 그런데 그날 걸은 게 아깝지 않다. 거기까지 걸어갔다는 것만 남는 경우가 있다.

힘들었냐고 하면 그렇지가 않다. 이상하게도 그날 힘들다는 생각을 한 기억이 없다. 갈 때도 열심히 걸었고 돌아올 때도 그랬다.

그럴 만한 시기이기도 했다. 그 무렵에는 하루에 여덟 시간씩 걸었다. 아침에 나와서 저녁까지 걷는 게 그냥 그날의 일정이었고, 그러다 보니 열여덟 킬로미터가 특별히 긴 거리로 안 느껴졌다. 몸이 그 정도에 맞춰져 있었다.

포르투에서 낮에 본 것도 많은데, 지금도 이 도시를 생각하면 먼저 떠오르는 건 아무것도 안 보이던 그 검은 바다다.

그리고 그제야 눈에 들어온 도시.

포르투 · 8편 중 2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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