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르투갈 · 포르투 3] 오후 세 시에야 짐을 풀었다
도시가 눈에 들어왔다.
드디어 배낭을 내려놨다.
앞의 두 편에서 나는 예약을 안 한 탓에 잘 데가 없어 밤새 걸었다. 다리를 두 번 건너고, 강을 따라 대서양까지 갔다가, 아무것도 안 보이는 바다를 보고 돌아왔다. 이 편은 그 밤이 끝나고 나서의 이야기다.

밤이 끝나도 체크인은 세 시였다

해가 뜨기 시작할 무렵 도시로 돌아왔다. 골목이 아직 푸른빛이었고 가로등은 켜져 있었다. 밤새 걸었으니 이제 자면 되는데, 문제는 체크인 시간이 오후 세 시라는 것이었다.
그러니까 나는 아직도 아홉 시간쯤 배낭을 메고 있어야 했다.
노란 전철이 지나갔다

포르투 메트로는 노란색이다. 지상 구간이 많아서 전철이라기보다 트램에 가깝게 보인다. 승강장에 서서 그게 지나가는 걸 봤다. 특별한 이유는 없었다. 앉을 데가 있고 지붕이 있는 자리라서 거기 있었다.
카페에서 축구를 봤다

동네 카페에 들어갔다. 벽에 작은 텔레비전이 걸려 있었고 축구 중계가 나오고 있었다. 아침부터 축구를 트는 게 이 나라에서는 자연스러운 일인 듯했다. 손님은 나 말고 거의 없었다.
밤새 걸은 몸에 카페인

에스프레소와 크루아상을 시켰다. 포르투갈 에스프레소는 잔이 작고 진하다. 밤새 걸은 몸에 그게 들어가니 정신이 잠깐 돌아왔다.
봉지에서 꺼낸 건 에그타르트였다. 파스텔 드 나타. 이때는 이게 포르투갈에서 얼마나 큰 물건인지 몰랐고, 그냥 아침에 산 빵 중 하나였다. 원조를 만나는 건 리스본에 가서다.

바나나에는 스티커가 붙어 있었다. 유럽 어느 슈퍼에서나 보이는 브랜드였는데, 한국에서 보던 것과 같은 회사 것이라 잠깐 반가웠다. 밤을 새우면 이런 게 반갑다.

샴푸를 사는 데 실패했다가

며칠 전부터 샴푸가 떨어져 있었다. 약국에 들어가 진열대를 봤는데 포르투갈어라 뭐가 샴푸인지 알 수가 없었다. 손짓으로 물어봤더니 직원이 진열대에서 두 통을 꺼내 설명해줬다.
말은 거의 안 통했다. 그런데 통했다. 여행에서 이런 순간이 쌓이면 그 나라 전체에 대한 인상이 바뀐다.
고양이가 물고기를 들고 있었다

건물 벽 하나가 통째로 벽화였다. 고양이인지 사람인지 애매한 것들이 층층이 쌓여 있고, 노란 물고기를 하나씩 들고 있었다. 배경은 파란색이었다.
포르투는 거리 벽화가 많다. 관리가 안 돼 벗겨진 것도 있고 이렇게 크게 그려진 것도 있다. 낙서와 작품의 경계가 흐릿한 도시였다.
포르투 구시가와 그 주변에는 대형 벽화가 흩어져 있다. 특정 구역에 모여 있기보다 걷다가 마주치는 쪽에 가깝다. 골목마다 다르니 목적지를 정하기보다 걸으면서 보는 편이 맞다.
쏘쿨호스텔

오후 세 시. 드디어 체크인했다.
짐을 내려놓자마자 방보다 공용 공간이 먼저 눈에 들어왔다. 나무 바닥에 테이블이 놓여 있고, 창가 서가에는 책과 소품이 섞여 있었다. 요리할 수 있는 주방이 있어서 저녁 무렵이면 사람이 모였다.
십육 유로에 아침이 나왔다. 짐 보관은 한 유로를 더 받았다. 밤새 걷고 들어온 사람한테는 과분한 조건이었다.
도심에서 걸어서 이십 분쯤 걸리는 언덕 위에 있다. 걸어 올라가야 하는 위치라 배낭이 무거우면 메트로를 타는 편이 낫다. 조식이 포함이고 공용 주방이 있어서 장을 봐다 해 먹는 사람이 많았다.
포르투 호스텔은 전반적으로 값이 싸고 시설이 좋은 편이다. 다만 성수기에는 금방 차니 미리 잡는 게 안전하다. 나처럼 예약 없이 갔다가 자리가 없으면 밤이 아주 길어진다.
벽에 한국어가 적혀 있었다

공용 공간 벽이 낙서판이었다. 묵고 간 사람들이 각자 나라 말로 뭔가 적어두는 벽이었다. 붉은 글씨로 프랑스어가 있고, 그 옆에 파란 글씨로 한국어가 있었다.
`지훈 왔다감! 2015.8.11 좋다!`
날짜가 내가 체크인한 바로 그날이다. 그러니까 이건 십중팔구 내가 쓴 것이다. 그런데 이름이 다르다. 내 이름은 지훈이 아니다.
글씨를 아무리 봐도 답이 안 나온다. 같은 날 묵은 다른 한국 사람이 썼을 수도 있고, 내가 급하게 쓰다가 획을 흘렸을 수도 있다. 남은 게 사진 한 장뿐이면 이런 건 영영 모르는 채로 남는다.
표 한 장을 못 사서

오후에 지하철을 타려는데 발권기 앞에서 막혔다. 화면이 포르투갈어였고 요금 구역이 어떻게 나뉘는지 알 수가 없었다. 뒤에 서 있던 아주머니가 보다 못해 직접 눌러줬다.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승강장으로 내려가는데 그게 꽤 길었다. 밤을 새운 상태로 그 계단을 내려가면서, 이 도시에서 하루 더 있어도 되겠다는 생각을 처음 했다.
포르투 메트로는 안단테(Andante) 카드를 쓴다. 카드값을 따로 내고 거기에 구역별 요금을 충전하는 방식이다. 구역이 Z2, Z3처럼 나뉘어 있어서 목적지가 몇 구역인지 먼저 확인해야 한다.
발권기는 영어를 지원한다. 다만 화면 첫 단계에서 언어를 바꿔야 하는데 그 버튼이 눈에 잘 안 띈다. 헤매고 있으면 대개 누가 도와준다.
배낭을 내려놓고서야 도시가 보였다
예약을 안 해서 밤새 걸었다. 그런데 도시가 눈에 들어온 건 배낭을 내려놓은 다음이었다.
머물 자리가 있다는 것과 없다는 것의 차이가 그렇게 크다. 밤새 걸을 때 본 것들은 강렬했지만, 앉아서 에스프레소를 마시며 본 거리가 더 오래 기억에 남는다.
그날 하루를 세 가지로 줄이면 이렇게 된다. 밤샘을 달래준 카페, 친절했던 이 도시 사람들, 그리고 침대.
명소가 하나도 없다. 다리도 성당도 안 들어가 있고 카페와 사람과 침대만 들어가 있다. 밤을 새운 다음 날에 남는 게 그런 것들이었다.
사진을 못 찍게 하는 기차역 이야기부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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