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르투갈 · 포르투 3] 오후 세 시에야 짐을 풀었다

포르투 여행기 · 3편
잘 곳이 생기고 나서야
도시가 눈에 들어왔다.
오후 세 시,
드디어 배낭을 내려놨다.

앞의 두 편에서 나는 예약을 안 한 탓에 잘 데가 없어 밤새 걸었다. 다리를 두 번 건너고, 강을 따라 대서양까지 갔다가, 아무것도 안 보이는 바다를 보고 돌아왔다. 이 편은 그 밤이 끝나고 나서의 이야기다.

호스텔 공용 공간, 나무 바닥에 테이블과 의자가 놓여 있다
체크인하고 처음 앉은 자리. 시계는 벽에 그려진 것이었다.

밤이 끝나도 체크인은 세 시였다

해가 뜨기 직전 푸른빛이 도는 포르투 골목, 가로등이 아직 켜져 있다
가로등이 아직 켜져 있는데 하늘은 이미 파랬다.

해가 뜨기 시작할 무렵 도시로 돌아왔다. 골목이 아직 푸른빛이었고 가로등은 켜져 있었다. 밤새 걸었으니 이제 자면 되는데, 문제는 체크인 시간이 오후 세 시라는 것이었다.

그러니까 나는 아직도 아홉 시간쯤 배낭을 메고 있어야 했다.

노란 전철이 지나갔다

노란 포르투 메트로 차량이 승강장을 지나간다
포르투 메트로는 노랗다. 지붕 있는 자리에 앉아 이게 지나가는 걸 봤다.

포르투 메트로는 노란색이다. 지상 구간이 많아서 전철이라기보다 트램에 가깝게 보인다. 승강장에 서서 그게 지나가는 걸 봤다. 특별한 이유는 없었다. 앉을 데가 있고 지붕이 있는 자리라서 거기 있었다.

카페에서 축구를 봤다

동네 카페 벽에 걸린 작은 텔레비전에서 축구 경기가 나오고 있다
아침부터 축구가 나오고 있었다. 손님은 나 말고 거의 없었다.

동네 카페에 들어갔다. 벽에 작은 텔레비전이 걸려 있었고 축구 중계가 나오고 있었다. 아침부터 축구를 트는 게 이 나라에서는 자연스러운 일인 듯했다. 손님은 나 말고 거의 없었다.

밤새 걸은 몸에 카페인

크루아상과 에스프레소 한 잔이 카페 테이블에 놓여 있다
에스프레소 잔이 손가락만 했다. 이게 들어가니 정신이 잠깐 돌아왔다.

에스프레소와 크루아상을 시켰다. 포르투갈 에스프레소는 잔이 작고 진하다. 밤새 걸은 몸에 그게 들어가니 정신이 잠깐 돌아왔다.

봉지에서 꺼낸 건 에그타르트였다. 파스텔 드 나타. 이때는 이게 포르투갈에서 얼마나 큰 물건인지 몰랐고, 그냥 아침에 산 빵 중 하나였다. 원조를 만나는 건 리스본에 가서다.

분홍 봉지에서 꺼낸 에그타르트 하나를 손에 들고 있다
봉지에서 꺼낸 빵. 겉이 설탕물을 입힌 것처럼 반들거렸다.

바나나에는 스티커가 붙어 있었다. 유럽 어느 슈퍼에서나 보이는 브랜드였는데, 한국에서 보던 것과 같은 회사 것이라 잠깐 반가웠다. 밤을 새우면 이런 게 반갑다.

피프스 스티커가 붙은 바나나를 손에 들고 있다
한국에서 보던 것과 같은 스티커였다. 밤을 새우면 이런 게 반갑다.

샴푸를 사는 데 실패했다가

약국 진열대에서 꺼낸 샴푸 두 통을 손에 들고 있다
약국에서 산 샴푸. 통이 아니라 일회용 두 봉지였다.

며칠 전부터 샴푸가 떨어져 있었다. 약국에 들어가 진열대를 봤는데 포르투갈어라 뭐가 샴푸인지 알 수가 없었다. 손짓으로 물어봤더니 직원이 진열대에서 두 통을 꺼내 설명해줬다.

말은 거의 안 통했다. 그런데 통했다. 여행에서 이런 순간이 쌓이면 그 나라 전체에 대한 인상이 바뀐다.

고양이가 물고기를 들고 있었다

건물 벽 전체를 채운 벽화, 물고기를 든 고양이들이 층층이 쌓여 있다
건물 벽을 통째로 쓴 벽화. 골목을 돌다 그냥 마주쳤다.

건물 벽 하나가 통째로 벽화였다. 고양이인지 사람인지 애매한 것들이 층층이 쌓여 있고, 노란 물고기를 하나씩 들고 있었다. 배경은 파란색이었다.

포르투는 거리 벽화가 많다. 관리가 안 돼 벗겨진 것도 있고 이렇게 크게 그려진 것도 있다. 낙서와 작품의 경계가 흐릿한 도시였다.

포르투 구시가와 그 주변에는 대형 벽화가 흩어져 있다. 특정 구역에 모여 있기보다 걷다가 마주치는 쪽에 가깝다. 골목마다 다르니 목적지를 정하기보다 걸으면서 보는 편이 맞다.

쏘쿨호스텔

호스텔 안내 카드, 건물 창밖으로 사람들이 내다보는 일러스트가 그려져 있다
호스텔 안내 카드. 창밖으로 내다보며 'So cool!!'이라고 말한다.
쏘쿨호스텔
So Cool Hostel Porto
지금도 같은 이름으로 영업 중인지는 확인하지 못했다. 방문 전 공식 채널로 확인해야 한다
가격
도미토리 16유로대(조식 포함), 짐 보관 1유로 (내가 묵을 때 기준)
주소
Rua da Alegria 783, 4000-046 Porto
도심 동쪽 알레그리아 거리에 있는 호스텔. 공용 주방과 넓은 라운지가 있다

오후 세 시. 드디어 체크인했다.

짐을 내려놓자마자 방보다 공용 공간이 먼저 눈에 들어왔다. 나무 바닥에 테이블이 놓여 있고, 창가 서가에는 책과 소품이 섞여 있었다. 요리할 수 있는 주방이 있어서 저녁 무렵이면 사람이 모였다.

십육 유로에 아침이 나왔다. 짐 보관은 한 유로를 더 받았다. 밤새 걷고 들어온 사람한테는 과분한 조건이었다.

도심에서 걸어서 이십 분쯤 걸리는 언덕 위에 있다. 걸어 올라가야 하는 위치라 배낭이 무거우면 메트로를 타는 편이 낫다. 조식이 포함이고 공용 주방이 있어서 장을 봐다 해 먹는 사람이 많았다.

포르투 호스텔은 전반적으로 값이 싸고 시설이 좋은 편이다. 다만 성수기에는 금방 차니 미리 잡는 게 안전하다. 나처럼 예약 없이 갔다가 자리가 없으면 밤이 아주 길어진다.

벽에 한국어가 적혀 있었다

호스텔 벽에 여러 나라 말로 적힌 낙서, 파란 글씨의 한국어와 붉은 프랑스어가 섞여 있다
누가 한국어로 이름과 날짜를 적어놨다. 이게 내 글씨인지 아닌지 아직 모른다.

공용 공간 벽이 낙서판이었다. 묵고 간 사람들이 각자 나라 말로 뭔가 적어두는 벽이었다. 붉은 글씨로 프랑스어가 있고, 그 옆에 파란 글씨로 한국어가 있었다.

`지훈 왔다감! 2015.8.11 좋다!`

날짜가 내가 체크인한 바로 그날이다. 그러니까 이건 십중팔구 내가 쓴 것이다. 그런데 이름이 다르다. 내 이름은 지훈이 아니다.

글씨를 아무리 봐도 답이 안 나온다. 같은 날 묵은 다른 한국 사람이 썼을 수도 있고, 내가 급하게 쓰다가 획을 흘렸을 수도 있다. 남은 게 사진 한 장뿐이면 이런 건 영영 모르는 채로 남는다.

표 한 장을 못 사서

포르투 지하철 승강장으로 내려가는 긴 에스컬레이터
승강장이 내려다보이는 자리. 배낭 멘 사람이 나만은 아니었다.

오후에 지하철을 타려는데 발권기 앞에서 막혔다. 화면이 포르투갈어였고 요금 구역이 어떻게 나뉘는지 알 수가 없었다. 뒤에 서 있던 아주머니가 보다 못해 직접 눌러줬다.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승강장으로 내려가는데 그게 꽤 길었다. 밤을 새운 상태로 그 계단을 내려가면서, 이 도시에서 하루 더 있어도 되겠다는 생각을 처음 했다.

포르투 메트로는 안단테(Andante) 카드를 쓴다. 카드값을 따로 내고 거기에 구역별 요금을 충전하는 방식이다. 구역이 Z2, Z3처럼 나뉘어 있어서 목적지가 몇 구역인지 먼저 확인해야 한다.

발권기는 영어를 지원한다. 다만 화면 첫 단계에서 언어를 바꿔야 하는데 그 버튼이 눈에 잘 안 띈다. 헤매고 있으면 대개 누가 도와준다.

배낭을 내려놓고서야 도시가 보였다

예약을 안 해서 밤새 걸었다. 그런데 도시가 눈에 들어온 건 배낭을 내려놓은 다음이었다.

머물 자리가 있다는 것과 없다는 것의 차이가 그렇게 크다. 밤새 걸을 때 본 것들은 강렬했지만, 앉아서 에스프레소를 마시며 본 거리가 더 오래 기억에 남는다.

그날 하루를 세 가지로 줄이면 이렇게 된다. 밤샘을 달래준 카페, 친절했던 이 도시 사람들, 그리고 침대.

명소가 하나도 없다. 다리도 성당도 안 들어가 있고 카페와 사람과 침대만 들어가 있다. 밤을 새운 다음 날에 남는 게 그런 것들이었다.

사진을 못 찍게 하는 기차역 이야기부터.

포르투 · 8편 중 3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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