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르투갈 · 포르투 8] 경기가 없는 날 축구장에 갔더니 문이 열려 있었다
더 자세히 보인다.
9유로짜리 차를 타고 떠났다.
동네를 한나절 걷고 나서 캄파냐역 쪽으로 갔다. 저녁에 리스본행 카풀이 잡혀 있었고, 그 전에 갈 데가 하나 남아 있었다.

큰 역은 도심에 없었다

포르투에서 유명한 역은 상 벤투역이다. 벽이 타일 그림으로 덮인 그 역. 그런데 장거리 열차는 거기서 안 탄다. 상 벤투는 근교 노선만 다니는 작은 역이고, 리스본이나 국경 너머로 가는 열차는 캄파냐역에서 탄다.
캄파냐역은 도심에서 동쪽으로 떨어져 있다. 건물은 나지막한 석조 건물이고 가운데 박공에 시계가 하나 달려 있다. 상 벤투와 비교하면 아무 장식이 없다.
승강장으로 나가보니 선로가 여러 갈래였다. 지붕이 길게 이어지고 그 아래로 사람이 드문드문 있었다. 관광객은 없고 짐을 든 사람들만 있었다. 일하는 역이었다.

경기장이 역 옆에 있었다

역에서 걸어서 십 분쯤 되는 데에 에스타디우 두 드라강이 있다. FC 포르투의 홈구장이다.
축구를 열심히 챙겨 보는 편은 아닌데도 여기는 가봐야겠다 싶었다. FC 포르투는 축구를 잘 모르는 사람도 이름은 아는 구단이다. 유럽 대회에서 우승한 팀이고, 여기서 감독을 하다가 세계적으로 유명해진 사람도 있다. 그 정도 이름값이면 경기가 없어도 한 번 볼 만하다고 생각했다.
시간도 맞았다. 기차역이 바로 옆이었고 리스본으로 가는 카풀까지 몇 시간이 비어 있었다.
가까이 가니 콘크리트 덩어리가 하늘을 가렸다. 외벽이 곡선으로 휘어 있고 그 위에 휴대폰 광고 배너가 길게 걸려 있었다. 광고 모델은 없고 제품 사진만 있었다.
게이트는 전부 닫혀 있었다

경기장을 한 바퀴 돌았다. 출입구가 번호별로 나뉘어 있고 그 위에 파란 큐브 모양 번호판이 하나씩 달려 있었다. 열세 번 게이트 앞에 섰는데, 셔터가 다 내려가 있었다.
그 옆에 큰 포스터가 하나 세워져 있었다. 선수 한 명이 소리를 지르고 있고 등 뒤로 용의 날개가 펼쳐진 그림이었다. 경기가 있는 날이면 저 앞에 사람이 수천 명 지나갔을 텐데, 그날은 나 혼자 서서 그 그림을 보고 있었다.
정면에는 경기장 이름이 큰 글자로 붙어 있었다. `ESTÁDIO DO DRAGÃO`. 용의 경기장이라는 뜻이다.
벽에 용이 있었다

외벽 한쪽에 용 문양이 크게 박혀 있었다. 구단 문장에 들어가는 그 용이다. 아무 설명도 없이 회색 콘크리트에 검은 선으로만 그려져 있었는데, 그게 더 좋았다.
트로피를 천장에 매달아놨다

경기장 안에 구단 박물관이 있었다. 들어가니 로비 천장이 통째로 파랗게 칠해져 있었고, 거기에 트로피가 빽빽하게 매달려 있었다.
진열장에 넣어놓은 게 아니라 천장에 거꾸로 붙여놨다. 은컵, 금컵, 페넌트, 깃발, 리본. 가운데에는 자수를 놓은 커다란 원형 장식이 하나 늘어져 있었다. 사람들이 다 고개를 젖히고 그걸 올려다보고 있었다.
전날 상 벤투역 대합실에서 사람들이 벽을 올려다보던 자세와 똑같았다. 이 도시는 볼 것을 위에 두는 습관이 있는 것 같았다.
다음 방에는 유니폼이 걸려 있었다. 파란색과 흰색 세로줄무늬가 시대별로 조금씩 달랐다. 벽에 `EQUIPAR OS HERÓIS`라고 큰 글씨가 붙어 있었다. 영웅에게 옷을 입힌다는 뜻이다.

1893년부터 이겨왔다고 적혀 있었다

한쪽 벽에는 트로피 실루엣이 줄지어 그려져 있었다. 리그 우승컵, 컵대회 우승컵, 유럽 대회 우승컵이 크기와 모양별로 늘어서 있었고, 그 위에 이렇게 적혀 있었다.
`FC PORTO — A VENCER DESDE 1893`. 1893년부터 이겨왔다.
축구를 아주 열심히 보는 편은 아니다. 그래도 이 문장 앞에서는 좀 웃었다. 겸손할 생각이 없는 문장이었다.
통로 끝에 잔디가 있었다

관중석으로 올라가는 통로 끝에서 안이 보였다. 콘크리트 벽 두 짝 사이로 딱 그만큼만 열려 있었는데, 그 틈으로 잔디가 보였다.
잔디에 스프링클러가 돌고 있었다. 물줄기가 짧게 뿌려지고 지나가고, 다시 뿌려지고. 사이드라인 쪽에 사람이 열 명쯤 서서 뭔가를 하고 있었다. 광고판에는 그날 아침 동네 공원 천막에서 본 것과 같은 맥주 브랜드가 붙어 있었다.
관중석은 완전히 비어 있었다. 파란 좌석이 층층이 올라가면서 흰 줄로 무늬를 만들었고, 전광판은 꺼져 있었다. 오만 명이 앉는 자리라는데 그 자리 전체가 비어 있으니 좌석 하나하나가 다 보였다.

경기가 있는 날 왔으면 이걸 못 봤을 것이다. 사람이 차 있으면 좌석은 안 보이고 사람만 보인다. 잔디에 물을 주는 것도 못 봤을 테고, 통로에 서서 한참 들여다볼 수도 없었을 것이다.
경기장은 경기가 없을 때 더 자세히 보인다. 대신 경기가 없다.
경기를 볼 게 아니라면 오히려 경기 없는 날이 낫다. 투어와 박물관이 정상 운영되고 사람이 적다. 경기장 외부는 그냥 걸어 다닐 수 있고 돈을 안 받는다.
지하철 D선 드라강역이 종점이라 도심에서 한 번에 온다. 캄파냐 기차역에서 걸어오면 십 분 정도다.
경기장 옆은 쇼핑몰이었다

경기장 바로 옆에 큰 쇼핑몰이 붙어 있었다. 카풀 시간까지 두 시간쯤 남아서 거기 들어갔다.
안은 어느 나라 쇼핑몰과도 다르지 않았다. 넓은 통로에 자라와 마시모두띠가 있고, 가운데 분수가 있고, 아이들 놀이시설에 커다란 문어 조형물이 있었다. 배낭을 멘 채 에어컨 밑에 앉아 있었다.
여행 중에 쇼핑몰에 들어가는 건 대개 살 게 있어서가 아니다. 앉을 데가 있고 화장실이 있고 시간이 가서다.
9유로짜리 차를 탔다

리스본까지는 카풀로 갔다. 값이 9유로였다.
포르투에서 리스본은 300킬로미터가 넘는다. 기차로 세 시간, 값은 그 몇 배다. 9유로면 그날 점심으로 산 빵값보다 조금 더 나가는 정도였다.
마드리드에서 포르투로 넘어올 때 탄 카풀은 좋지 않았다. 차 안에서 담배를 폈고, 사이드미러가 스쳐서 갓길에 세우고 테이프를 감았고, 휴게소마다 오래 섰다. 그래서 이번에도 각오를 하고 탔다.
그런데 이 차는 조용했다. 운전자는 빨간 셔츠를 입은 사람이었고, 앞좌석에 승객이 한 명 더 있었다. 백미러에 노란 잎사귀 모양 방향제가 달려 있었다. 말수가 적었고 속도가 일정했다.
해가 지는 걸 차 안에서 봤다

포르투갈은 남북으로 길다. 고속도로를 따라 내려가는 동안 창밖이 계속 유칼립투스 숲이었다. 나무가 곧고 키가 크고 잎이 위쪽에만 달려 있어서 숲이 성글게 보였다.
한참 가다 보니 해가 지기 시작했다. 구름이 낮게 깔려 있어서 그 아래로 주황색 띠가 길게 생겼다. 차 안에서 창에 카메라를 대고 몇 장 찍었는데 대부분 흔들렸다.
어두워진 뒤에 휴대폰을 켜서 지도를 봤다. 화면에 리스본이 떠 있었고 그 아래에 강 건너 도시 이름들이 보였다. 아직 한참 남아 있었다.

운전자는 내가 묵을 숙소 근처까지 데려다줬다. 내려주기로 한 지점이 아니었는데 그냥 그렇게 해줬다. 9유로에 그런 것까지 받은 셈이다.
포르투에서 리스본 가는 법
선택지가 셋이다. 기차는 가장 빠르고 가장 비싸다. 알파 펜둘라르가 세 시간 안쪽이고, 완행에 해당하는 인터시다드는 조금 더 걸리는 대신 싸다. 버스는 중간 값에 네 시간 안팎이다. 카풀은 가장 싸고 시간은 운전자에 따라 다르다.
카풀을 쓸 거라면 만나는 지점과 도착 지점을 먼저 확인하는 게 낫다. 도심에서 만나 도심에서 내려주는 경우도 있고, 고속도로 진입로 근처에서 만나 외곽에 내려주는 경우도 있다. 값이 싼 대신 이 부분이 매번 다르다.
계획하고 간 건 하나도 없었다
포르투에서 사흘을 보냈는데, 정작 계획하고 간 건 하나도 없었다. 첫날 밤은 잘 데가 없어서 걸었고, 둘째 날은 줄을 안 서기로 하면서 동선이 정해졌고, 셋째 날은 볼 게 없어서 동네를 걸었다.
마지막에 축구장에 간 것도 그날 시간이 남아서였다. 그런데 경기가 없는 축구장이 이 도시에서 본 것 중에 기억에 오래 남는 쪽이었다. 물을 뿌리는 빈 잔디, 셔터 내린 게이트, 천장에 매달린 트로피.
이 도시를 떠나면서 든 생각은 문장이랄 것도 없이 짧았다. What a nice Porto. 영어와 한국어가 섞인 이상한 말인데 그때 내 머릿속이 저랬다.
여행 두 달째에 유럽에 무뎌져 있었다. 광장이나 성당을 봐도 별 감흥이 없었고, 어디를 가도 어디선가 본 것 같았다. 그게 포르투에서 풀렸다. 여행이 다시 좋아졌다.
풀린 계기가 대단한 게 아니었다. 잘 데가 없어서 밤새 걸었고, 새벽 노점에서 케밥을 먹었고, 카페 아주머니가 친절했고, 관광지가 하나도 없는 동네를 하루 걸었다. 그러고 나니 여행이 다시 좋아졌다.
차가 남쪽으로 내려가는 동안 창밖이 계속 어두워졌다. 다음 도시는 리스본이었다.
다음 편부터 리스본이다. 밤에 도착한 도시 이야기로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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