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르투갈 · 포르투 5] 줄만 서고 들어가지 않았다

포르투 여행기 · 5편
밖에 붙은 안내판이
안에 있는 걸 다 설명해줬다.
그걸 다 읽고 나서
줄에서 빠져나왔다.

상 벤투역에서 언덕을 조금 더 올라가면 서점이 하나 있다.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서점이라고 불리는 곳이다. 나는 그 앞까지 갔고, 들어가지는 않았다.

서점 앞에 줄이 있었다

렐루 서점 정면, 흰 회벽에 금색 고딕 글씨로 상호가 적혀 있다
건물부터 서점처럼 생기지 않았다. 창밖으로 누가 내려다보고 있었다.
렐루 서점
Livraria Lello
지금도 영업 중이고, 지금은 시간 지정 예약제로 운영한다. 성수기에는 당일권이 오전에 동난다
가격
유료 입장(책을 사면 입장료가 차감된다)
주소
R. das Carmelitas 144, 4050-161 Porto
1881년에 회사가 생겼고 지금의 신고딕 건물은 1906년에 지었다. 천장 스테인드글라스에 서점 좌우명 `Decus in Labore`가 들어 있다

건물부터가 서점처럼 생기지 않았다. 흰 회벽에 뾰족한 장식이 잔뜩 붙어 있고, 양옆에 사람 형상이 하나씩 그려져 있고, 가운데에 금색 고딕 글씨로 `LELLO & IRMÃO`라고 적혀 있다. 위층 창문이 열려 있고 누군가 거기 기대서 아래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줄은 건물을 지나 옆 골목까지 이어져 있었다. 차단봉을 세워두고 그 안쪽으로 사람들이 서 있었고, 줄 끝에서 직원 한 명이 안내판을 들고 서 있었다.

서점 벽에 붙은 안내판 옆으로 사람들이 차단봉을 따라 줄지어 서 있다
차단봉 안쪽으로 줄이 옆 골목까지 이어졌다.

안내판이 안을 대신 설명해줬다

노 모양의 검은 안내판에 서점의 내력이 포르투갈어와 영어로 적혀 있다
노 모양 안내판. 안에 뭐가 있는지 여기서 다 알아버렸다.

줄 옆 벽에 노처럼 생긴 검은 안내판이 붙어 있었다. 포르투 시에서 붙인 것으로, 포르투갈어와 영어가 위아래로 나눠 적혀 있었다. 스프레이 낙서가 그 위에 하나 얹혀 있었다.

읽어보니 이런 내용이었다. 1881년에 회사가 생겼고, 지금 건물은 1906년에 지었고, 설계는 하비에르 에스테베스라는 엔지니어가 했다. 그리고 안에서 봐야 할 것을 셋 짚어놓았다.

  • 나무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칠한 회벽
  • 위층으로 올라가는 계단 — 포르투 최초의 철근콘크리트 구조물 중 하나
  • 천장의 스테인드글라스 — 서점의 모노그램과 `Decus in Labore`라는 문구가 들어 있다

`Decus in Labore`. 노동에 영예가 있다는 뜻이다. 서점이 자기 좌우명을 천장 유리에 새겨놓았다는 얘기였다.

바깥에 붙은 안내판이 안에 있는 걸 하나씩 다 설명해주고 있었다. 그걸 다 읽고 나니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안에 뭐가 있는지 이미 알아버렸다.

문은 열려 있었다

열린 나무 문 안쪽으로 서점 내부가 보이고 문턱 앞에 끈이 매여 있다
문은 열려 있는데 문턱에 끈이 매여 있었다.

문 앞까지는 갔다. 나무 문 두 짝이 활짝 열려 있었고 위쪽에 뾰족한 아치 장식이 줄지어 붙어 있었다. 문턱 바로 앞에 파란 끈이 낮게 매여 있었다.

그 끈 너머로 사람들이 보였다. 다들 안쪽을 향해 카메라를 들고 있었다. 서 있는 자세가 서점에 들어온 사람의 자세가 아니었다.

유리 너머로 봤다

진열창 너머로 보이는 서점 내부, 나무 서가와 이층 난간과 사람들
유리 너머로 본 안쪽. 서가보다 사람이 먼저 보인다.

진열창에 얼굴을 대고 안을 봤다. 유리에 바깥 풍경이 겹쳐 보여서 사진이 흐릿하게 나왔지만, 나무 서가가 천장까지 올라가 있고 이층 난간에 사람들이 기대 있는 게 보였다. 안쪽 가운데에 그 유명한 계단이 있고, 그 앞에 사람이 빽빽했다.

진열창에는 알렉산더 맥퀸 사진집 같은 게 놓여 있었다. 책이 팔리는 서점이라기보다 책을 진열해둔 곳처럼 보였다.

그래서 안 들어갔다

먼저 밝혀두면, 여기가 해리포터로 유명한 서점이라는 건 알고 갔다. 그거 때문에 찾아간 것이기도 하다.

그리고 나는 해리포터를 좋아한다. 책도 영화도 다 봤다.

그런데 어딘가에 돈을 내고 들어갈 만큼은 아니었다.

그게 그날 판단의 전부다. 줄이 얼마나 걸릴지 가늠이 안 됐고, 전날 밤을 통째로 걸어서 새운 다음 날이었고, 오후 세 시에 겨우 짐을 풀고 나온 참이었다. 거기다 표까지 사야 했다.

좋아하는 것과 값을 치르는 건 다른 문제다. 좋아한다고 자동으로 표를 사게 되지는 않는다. 나는 문 앞에서 돌아섰지만 그렇다고 덜 좋아하는 건 아니다.

안내판을 읽고 나니 마음이 더 굳었다. 안에 들어가서 확인할 게 별로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칠한 회벽, 콘크리트 계단, 천장 유리. 사진으로 백 번은 본 것들이고, 방금 그 설명을 벽에서 읽었다.

줄에서 빠져나오면서 조금 아깝긴 했다. 그런데 그 아까움이 오래가지는 않았다. 그 자리에서 나와 언덕을 조금 걸으니 바로 다른 게 나왔다.

들어갈 생각이면 예약을 미리 끊는 게 낫다. 현장 대기줄과 예약 입장 줄이 따로 있고, 성수기에는 현장 줄이 훨씬 길다. 입장료는 책 구매액에서 차감되니 어차피 책 한 권 살 생각이면 손해는 아니다.

밖에서만 볼 거라면 정면 파사드와 벽의 안내판, 그리고 진열창 정도가 전부다. 그것도 충분히 볼거리이긴 하다.

서점 옆이 대학이었다

포르투 대학교 본부 건물 정면, 박공에 대학 이름이 새겨져 있고 현수막이 걸려 있다
서점에서 백 미터도 안 되는 자리. 여기는 아무도 안 멈춘다.

서점에서 몇 걸음 안 되는 곳에 큰 건물이 하나 있었다. 박공에 `UNIVERSIDADE DO PORTO`라고 새겨져 있었다. 포르투 대학교 본부였다.

정면에 현수막이 석 장 걸려 있었다. 왼쪽은 색색의 줄무늬였고, 가운데는 안경 쓴 남자의 흑백 사진에 이름이 적혀 있었고, 오른쪽은 학회 안내였다. 관광객용 안내가 하나도 없었다. 여기는 학교라는 뜻이었다.

렐루 서점 줄에 선 사람들 중에 이 건물을 보고 가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싶었다. 백 미터도 안 떨어져 있는데 한쪽은 줄을 서고 한쪽은 아무도 안 멈춘다.

옆으로 돌아가니 같은 건물의 다른 얼굴이 나왔다. 벽이 그을려 있고 창틀이 낡아 있었다. 정면은 손질돼 있었지만 옆면은 그냥 오래된 건물이었다.

대학 건물의 옆면, 벽이 그을려 있고 앞으로 넓은 도로가 지난다
같은 건물 옆면. 정면만 손질돼 있었다.

상가 지붕이 공원이었다

콘크리트 처마 아래 상점이 늘어선 통로, 지붕 위로 올리브나무가 심겨 있다
상가 처마 위로 나무가 심겨 있다. 지붕이 통째로 공원이다.
파세이우 두스 클레리구스
Passeio dos Clérigos
지금도 상가와 정원 둘 다 운영한다
가격
무료
주소
R. das Carmelitas 151, 4050-162 Porto
아래는 상가, 위는 올리브나무를 심은 옥상 정원이다. 정원 끝에서 클레리구스 탑이 정면으로 보인다

대학 쪽에서 탑 방향으로 걷다 보니 낮고 긴 콘크리트 구조물이 나왔다. 처마 아래로 상점이 줄지어 있고, 커피집이 파라솔을 펴놓고 손님을 받고 있었다.

특이한 건 지붕이었다. 콘크리트 지붕 위에 흙을 얹고 올리브나무를 심어놨다. 아래층이 상가고 옥상이 공원이다. 아래에서 보면 나무 밑동만 보이고, 위로 올라가면 상가가 있다는 걸 알 수가 없다.

렐루 서점 바로 맞은편이다. 줄을 서는 동안 일행이 쉴 곳을 찾는다면 여기가 가장 가깝다. 잔디에 앉아도 되고 커피집도 있다.

탑은 돈을 안 내도 다 보였다

잔디와 올리브나무 사이로 난 길 끝에 클레리구스 탑이 서 있다
흐린 날이라 탑이 하늘에 그대로 묻혔다.
클레리구스 탑
Torre dos Clérigos
지금도 올라갈 수 있고, 야간 개장을 하는 날도 있다
가격
탑 입장 유료, 광장에서 보는 것은 무료
주소
R. de São Filipe de Nery, 4050-546 Porto
18세기 중반에 완공된 바로크 종탑. 계단 240개를 올라가면 도시와 강이 한눈에 들어온다

그 지붕 위로 올라가니 잔디밭이 있었고, 길 끝에 클레리구스 탑이 서 있었다. 앉을 데가 많았고 사람들이 잔디에 그냥 앉아 있었다.

흐린 날이라 탑이 회색 하늘에 그대로 묻혔다. 구름이 두껍게 깔려서 탑 꼭대기와 하늘의 경계가 흐릿했다. 맑은 날 사진에서 본 것과는 인상이 완전히 달랐는데, 오히려 이쪽이 도시에 어울린다는 생각이 들었다.

옥상 정원 길에서 탑을 등지고 찍은 셀카
잔디에 앉은 사람이 많았다. 여기까지는 공짜다.

240계단도 안 올라갔다

탑 바로 아래에서 올려다본 모습, 돌 장식이 층층이 이어진다
탑 바로 아래. 240계단은 결국 안 올라갔다.

탑 바로 밑까지 가서 카메라를 세로로 눕히고 올려다봤다. 돌 장식이 층층이 겹쳐 올라가는 게 보였다. 이 각도가 제일 좋았다.

탑에는 계단이 240개쯤 있고 올라가면 도시가 다 보인다고 한다. 그것도 안 올라갔다. 하루에 두 번 줄을 안 서기로 한 셈인데, 대신 전날 밤에 강까지 걸어 내려갔다가 대서양까지 갔다 왔다. 이 도시에서 본 전망은 대부분 표를 끊는 대신 걸어 올라가서 얻었다.

탑 자체는 어디서든 보인다. 포르투에서 방향을 잃으면 이 탑을 찾으면 된다. 올라가지 않을 거면 클레리구스 광장이나 바로 옆 옥상 정원에서 보는 게 제일 낫다.

내려가는 길은 전부 내리막이었다

트램 선로가 깔린 내리막 골목, 양옆으로 상점이 이어진다
선로는 깔려 있는데 트램은 안 지나갔다.

탑에서 강 쪽으로 내려가는 길은 전부 내리막이었다. 좁은 골목에 트램 선로가 깔려 있고 그 위로 전선이 지나갔다. 선로가 있는데 트램은 안 지나갔다.

어느 길에나 선로가 깔려 있었다. 웨딩드레스 가게와 빵집이 나란히 있는 평범한 상가 거리에도 바닥에 두 줄이 나 있었다. 이 도시는 언덕에 트램을 깔아놓고 그 위에 상가를 얹은 것처럼 생겼다.

상점이 늘어선 거리, 바닥에 트램 선로가 두 줄 나 있다
웨딩드레스 가게 앞 바닥에도 두 줄이 나 있다.

안 들어가고 나온 곳

여기는 안 들어가고 나왔는데 미련이 없다. 안내판 때문이었다.

보통은 안에 뭐가 있는지 모르니까 들어간다. 그런데 여기는 밖에 다 적어놨다. 칠한 회벽이 있고, 철근콘크리트 계단이 있고, 천장에 좌우명이 새겨진 유리가 있다고. 그 문장을 다 읽고 나서 유리창 너머로 실제 그것들을 봤다. 안에 들어가서 할 일은 같은 걸 조금 더 가까이서 보는 것뿐이었다.

가까이서 보는 게 다른 일이라는 것도 안다. 다만 그날은 아니었다. 밤을 새운 다음 날이었고 남은 시간이 하루하고 반나절이었다.

그다음은 안보다 밖이 더 화려했던 성당들 이야기였다.

포르투 · 8편 중 5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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