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다페스트 중앙시장 랑고스, 유명한 건 알고 갔는데 유명한 방식으로 안 먹었다

사워크림과 올리브 오이가 얹힌 짠맛 랑고스
내 첫 랑고스 — 사워크림에 올리브, 오이, 양파, 토마토까지 다 올렸다

부다페스트에 가기 전부터 랑고스(lángos)는 알고 있었다. 숙소 근처 음식이라고 블로그에 많이 올라와 있었고, 그중 가장 유명한 건 누텔라를 바른 랑고스였다.

그런데 정작 내가 처음 먹은 랑고스에는 누텔라가 없었다. 사워크림에 올리브와 오이와 양파를 얹은, 완전히 짠 음식이었다.

관광이 아니라 생활로 시작한 하루

아침의 아레나 플라자 쇼핑몰 외관
아침의 아레나 플라자 — 관광객이 굳이 올 이유는 없는 큰 몰이다

부다페스트 이틀째는 관광으로 시작하지 않았다. 숙소가 켈레티역 근처였고, 아침에 나가서 간 곳이 아레나 플라자라는 쇼핑몰이었다.

관광객이 굳이 갈 이유가 없는 곳이다. 그런데 배낭여행 중반이 되면 이런 데가 필요해진다. 세일하는 물건 값을 보면서 이 도시 물가가 어느 정도인지 감을 잡고, 필요한 걸 사고, 에어컨 아래에서 좀 쉰다. 대성당 열 곳을 보는 것보다 이 한 시간이 남는 날도 있다.

몰에서 간단히 먹고 나왔다. 그리고 오후에 중앙시장으로 갔다.

중앙시장은 관광지이면서 시장이다

중앙시장 2층에서 내려다본 통로
중앙시장 2층에서 내려다본 통로 — 아래는 식료품, 위는 먹거리와 기념품이다

중앙시장(Nagy Vásárcsarnok)은 1897년에 지어진 벽돌 건물이다. 안에 들어가면 층이 갈린다. 1층은 파프리카와 살라미와 절임 병이 쌓인 식료품 시장이고, 2층은 먹거리 노점과 기념품 가게다. 랑고스는 2층에 있다.

내가 여기 온 건 대단한 조사의 결과가 아니다. 블로그에 많이 올라와 있었기 때문이다. 그때의 정보 조달은 대체로 그랬다. 스마트폰으로 지도를 열어 별점을 정렬하는 게 아니라, 떠나기 전에 읽은 남의 후기 몇 개가 그 도시의 목록이 됐다. 그래서 목록이 짧고, 대신 목록에 있는 건 확실히 갔다.

유명한 걸 알고 갔는데 다르게 먹었다

랑고스가 뭔지 먼저 말하면 이렇다. 반죽을 납작하게 펴서 기름에 튀긴 빵이다. 피자 도우를 튀겼다고 생각하면 가깝고, 그 위에 뭘 올리느냐로 완전히 다른 음식이 된다.

내가 알고 간 건 누텔라를 바른 단맛 쪽이었다. 그런데 진열대 앞에 서니 짠 쪽 토핑이 훨씬 많았고, 처음이라 욕심이 났다. 사워크림을 바탕에 깔고 올리브, 오이, 양파, 토마토를 얹어 달라고 했다. 그냥 이것저것 다 올린 조합이었다. 유명한 쪽은 따로 있었는데 진열대 앞에서 잊었다.

맛을 한 줄로 정리하면, 이건 특별한 요리가 아니다. 시장에서 파는 음식이다. 튀긴 빵의 기름진 맛에 사워크림의 신맛이 얹히고 채소가 아삭한, 정확히 그 정도다. 미슐랭 이야기를 할 음식이 아니고, 그래서 좋았다. 여행에서 먹는 것 중 절반 이상은 이런 종류여야 한다고 생각한다.

누텔라 랑고스는 결국 이틀 뒤에 먹었다. 같은 시장에 다시 와서 이번엔 누텔라에 딸기와 바나나를 올렸다. 같은 음식을 한 번은 짜게, 한 번은 달게 먹은 셈이다. 순서가 거꾸로였지만 결과적으로는 이게 나았다. 유명한 버전을 먼저 먹었으면 짠 쪽은 아예 안 먹어봤을 것이다.

가격표를 찍어둔 덕에 남은 숫자

중앙시장 진열대의 가격표, Sausage in Langos 1690 Ft
진열대 가격표 — 오래 지나도 이 사진에는 숫자가 남아 있다

그날 진열대 사진을 한 장 찍어둔 게 지금 제일 쓸모 있다. 가격표가 그대로 읽힌다.

메뉴당시 가격
Sausage in Lángos (소시지 랑고스)1,690 Ft
Stuffed Cabbage (양배추말이)1,900 Ft
Vegetarian Eggplant (가지)1,390 Ft
Jacket Potato (구운 감자)1,390 Ft

여행기에서 물가 이야기는 대체로 못 믿을 만하다. "저렴했다"는 기억은 남지만 숫자는 안 남고, 나중에 쓸 때 대충 채우게 된다. 그런데 가격표를 한 장 찍어두면 숫자가 그대로 남는다. 이 습관 하나가 11년 뒤에 이렇게 쓰인다.

당시 부다페스트에서 내가 쓴 돈은 숙박이 1박 1만 4천 원 정도였다. 직전 도시 로마가 3만 원대였으니 절반 이하다. 물가는 별도 편에서 영수증째로 정리했으니 여기서는 여기까지만 적는다.

지금 가격을 알고 싶다면 시장 안 노점은 대개 현금 위주이고 가격이 자주 바뀐다는 것만 감안하면 된다. 그때 숫자를 그대로 예산에 쓰면 안 된다.

시장에서 나와 다리를 건넜다

낮에 걸어서 건넌 자유의 다리
자유의 다리 — 전날 밤에 건넌 그 다리를 낮에 다시 건넜다

중앙시장 바로 앞이 자유의 다리(Szabadság híd)다. 초록색 철제 다리인데, 전날 밤에 야경을 보러 건넌 게 이 다리였다.

같은 다리를 낮에 다시 건너니 다른 물건 같았다. 밤에는 조명이 골조를 살려서 실루엣이 근사했는데, 낮에는 그냥 페인트칠한 철교였다. 강물 색도 달랐다.

이게 도시에 며칠 머무는 이유라고 생각한다. 하루만 있으면 그 도시의 한 얼굴만 보고 간다. 이틀째부터 같은 장소를 다른 시각에 다시 지나가게 되고, 그때 비교가 생긴다. 부다페스트가 좋았던 건 명소가 많아서가 아니라 같은 곳을 두 번 지나갈 만큼 머물렀기 때문이었던 것 같다.

다음 편은 이날 오후다. 다리를 건너 걷다가 강 사이에 있는 섬에 들어갔는데, 거기서 예상 못 한 분수쇼를 만났다.

시리즈 이어 읽기

댓글

이 블로그의 인기 게시물

90일간의 세계여행 - 배낭 메고 23개국

홍콩 여행 첫날, 피크트램 타고 빅토리아피크 야경까지

삼겹살을 못 찾아 베이컨을 구웠다, 부다페스트 호스텔 주방의 마지막 아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