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헝가리 · 부다페스트 7] 삼겹살을 못 찾아 베이컨을 구웠다, 호스텔 주방의 마지막 아침
베이컨을 구웠다.
절반은 내가 사 온 게 아니었다.

부다페스트를 떠나는 날 아침에 고기를 구웠다.
원래 목표는 삼겹살이었다.
그런데 삼겹살을 사는 데는 실패했고,
대신 베이컨을 샀다. 그리고 이날 상에 올라간 것 중 절반은 내가 사 온 게 아니었다.
부다페스트 마트에는 삼겹살이 없다

떠나는 날 아침에 근처 마트로 갔다.
삼겹살을 구워 먹겠다는 계획이었는데 진열대 앞에서 막혔다.
당시 기록에 이렇게 적혀 있다.
정육 코너에서 부위를 고를 때 말이 제일 막힌다.
채소나 과일은 보면 알고, 가공식품은 그림이 있다.
그런데 고기는 덩어리만 보고 부위를 판정해야 하고, 헝가리어 팻말은 읽을 수가 없었다.
그래서 포장에 부위가 적힌 베이컨으로 갔다
그래서 포장에 부위가 적힌 베이컨으로 갔다.
394g에 374 Ft, 당시 환율로 1,200원쯤이었다.
삼겹살과 같은 부위를 염지한 것이니 결과적으로 목표에서 크게 벗어나지도 않았다.
이날 알게 된 게 하나 있다.
유럽 마트에서 이 부위는 싸다. 한국에서 삼겹살은 부위 프리미엄이 붙는데 여기서는 그냥 지방 많은 돼지고기다.
밖에서 한 끼 사 먹는 값으로 고기를 사면 여러 명이 먹는다.
호스텔을 고를 때 주방이 있는지 보는 이유가 이거다.
고추장은 내 것이 아니었다

여기가 이 편의 핵심이다.
사진에 한국 제품인 쇠고기 볶음고추장 튜브가 찍혀 있다.
이건 내가 한국에서 챙겨 온 게 아니다.
먼저 이 호스텔에 묵던 다른 한국인이 남기고 간 것이었다.
햇반도 같이 남아 있었다.
배낭여행자들의 주방에는 이런 물림이 있다.
짐을 줄여야 하는 사람이 다음 사람을 위해 남기고, 그걸 다음 사람이 쓴다.
특히 한식 양념은 무게 대비 부피가 크고 다 못 쓰고 떠나는 경우가 많아서,
한국인이 많이 지나가는 호스텔에는 고추장이나 라면 스프가 굴러다니는 일이 흔했다.
그러니까 이날 상은 현지에서 산 고기 + 남이 남긴 양념의 조합이었다.
내 돈으로 산 건 고기와 콜라뿐이다.
냄비를 태웠다

조리 과정에서 사고가 하나 났다.
숙소 주방에 프라이팬이 없었다. 그래서 냄비에 볶았다.
공용 주방은 있는 걸로 해결하는 곳이라 도구를 고를 수 없다.
거기에 볶음고추장을 넣어 같이 볶았다.
고추장을 부어 볶으면 어떻게 되는지는 해본 사람은 안다.
바닥이 탄다. 설탕과 장이 들어간 양념은 금방 눌어붙고, 바닥이 좁고 깊은 냄비에서는 더 그렇다.
결국 냄비를 태웠다.
그래서 나중에 박박 씻었다.
공용 주방에서 태운 냄비를 그냥 두고 나오는 건 다음 사람에게 하는 일이 아니다.
남이 남긴 고추장으로 요리하고 태운 냄비를 씻어놓는 것까지가 한 세트였던 셈이다.
벽에 걸린 세계지도

이 호스텔 벽에는 큰 세계지도가 걸려 있었다.
여행자들이 자기 나라나 도시에 색색 깃발 핀을 꽂고, 깃발에 이름이나 별명을 써뒀다.
사진을 확대해서 보면 한국과 일본 사이에 핀이 빽빽하게 꽂혀 있다.
대만 쪽에는 누군가 `TAIWAN Welcome Everyone!`이라고 적어뒀고,
동해 쪽에는 한글 손글씨와 날짜가 남아 있다.
이 지도가 호스텔이 하는 일을 그림 하나로 설명한다.
여기 있는 사람들은 서로 모르지만 같은 벽에 흔적을 남긴다. 며칠 전 밤에 이 지도를 배경으로 사람들과 단체 사진을 찍었는데, 그때 만난 사람 중 한 명과는 지금도 연락한다.
이날 저녁에 만난 호스텔 친구 셋도 재밌었다. 다들 좋았고, 그게 부다페스트에서 마지막 기억이 됐다.
22유로로 빈까지

오후에 짐을 싸고 버스를 탔다. 다음 도시는 빈이었다.
버스 측면에 `WIEN - BUDAPEST`와 함께 `NUR 22 EURO`가 적혀 있다.
독일어로 "22유로뿐"이라고 적혀 있었다.
이날 티켓은 오후 다섯 시 출발, 도착지는 빈 에르트베르크(Wien Erdberg) 버스터미널이었다.
기차 대신 버스를 고른 이유는 단순하다.
부다페스트에서 빈, 그다음 프라하까지 이어 갈 계획이었고 이 구간은 버스가 훨씬 쌌다.
동유럽·중유럽을 붙여 도는 일정에서 도시 간 이동은 거의 버스였다.
두세 시간 거리에 20유로 안쪽이면 기차와 비교할 이유가 없었다.
부다페스트에서 빈, 버스 차창

버스에 앉아서 창밖을 계속 찍었다.
성당 첨탑이 선 작은 마을, 로터리, 붉은 지붕 집들, 그리고 아무것도 없는 평원.
흔들린 창밖 풍경에 유리 반사까지 들어간 사진들이다.
세 시간 동안 창밖만 보고 있었다는 뜻이기도 하다.
부다페스트 편의 마지막 장면은 국경으로 달리는 창밖이 맞다고 생각한다.
여행에서 도시는 도착으로 시작하고 이동으로 끝난다.
초콜릿 하나로 버틴 두 시간

가는 동안 먹은 건 마트에서 산 체리 리큐어 초콜릿이었다.
`Cherry Queen`이라고 적힌 헝가리 제품이고, 안에 체리와 술이 들어 있다.
헝가리를 떠나는 버스에서 헝가리 초콜릿을 먹은 건 의도한 게 아니겠지만,
결과적으로 이 구간의 마지막 맛이 그거였다.
부다페스트를 떠나며
부다페스트에서 나흘을 보냈다.
남이 밀어준 온천에 따라갔고 시장에서 같은 빵을 두 번 먹었다. 언덕에 앉아 책도 읽었다.
이 목록에 대성당 내부 관람이나 박물관은 없다.
그런데 이 여행 전체에서 관광하기 좋았던 도시 1위로 내가 적은 곳이 부다페스트다.
왜 그런지는 지금 보면 대충 알겠다.
물가가 싸서 마음이 급하지 않았고, 그러다 보니 사람이 자주 붙었다.
급하지 않은 여행자한테는 사람이 잘 붙는다는 걸 이 도시에서 배웠다.
떠나기 전에 이 도시에서 쓴 돈을 영수증으로 다시 세어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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