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헝가리 · 부다페스트 4] 마가렛섬 음악분수, 같은 분수를 네 번 찍었다
한 장소에서만 영상이 네 개였다.
섬에 있는 분수였다.

그날 오후 계획은 중앙시장이었다. 시장에서 랑고스를 먹고 나온 게 계획의 끝이었고, 그 뒤는 정해둔 게 없었다.
그런데 한참 뒤에 사진 아카이브를 열어보니, 그날 남긴 영상이 한 장소에서만 네 개였다.
시장도 아니고 동상도 아니었다.
강 사이에 있는 섬의 분수였다.
마가렛 다리를 건너 섬으로

시장에서 나와 자유의 다리를 걸어서 건넜다. 전날 밤에 야경을 보러 건넌 그 다리다.
옆에 있는 건 전날 밤 숙소에서 알게 된 제주도 친구다.
호스텔 라운지에서 사람들이 다 같이 사진을 찍다가 친해졌고, 다음 날 낮에는 이렇게 같이 다니고 있었다.
배낭여행의 관계는 이렇게 하루 단위로 만들어진다.
이 친구와 다닌 하루를 한마디로 하면, 그때 가진 자유를 실컷 썼다.
어디를 가야 한다는 것도 없고 몇 시에 뭘 해야 한다는 것도 없었다.
그냥 다리에 앉아서 강을 보고, 걷다가 뭐가 나오면 들어갔다.
누군지 모르는 동상 앞에서 공을 찼다

걷다가 동상 앞에 멈췄다.
어른 하나와 아이들이 공을 차는 모양의 동상이었는데, 자세가 재밌어서 나도 똑같이 공 차는 포즈로 사진을 찍었다.
그때 나는 이게 누구 동상인지 몰랐다. 알고 찾아간 게 아니고, 지나가다 재밌어 보여서 찍은 것뿐이다.
나중에 알았는데 페렌츠 푸스카시(Ferenc Puskás)였다.
1950년대 헝가리 국가대표의 상징이자 레알 마드리드에서 뛴 축구 역사상 손꼽히는 공격수다.
헝가리 대표팀이 "매직 마자르"로 불리며 잉글랜드를 6대 3으로 이겼던 그 팀의 중심이 이 사람이다.
FIFA가 매년 주는 최고의 골 상 이름이 푸스카시 상인 것도 여기서 나왔다.
이런 걸 몰랐던 게 아쉽지는 않다.
오히려 이 순서가 맞았던 것 같다.
알고 갔으면 경건하게 사진 한 장 찍고 지나갔을 텐데, 모르고 갔으니 공 차는 포즈로 놀았다.
여행지에서 아는 게 많으면 태도가 조심스러워진다.
마가렛섬 음악분수를 네 번 찍었다
동상을 지나 걷다가 마가렛섬(Margitsziget)으로 들어갔다.
도나우강 가운데에 길게 누운 섬이고, 다리에서 이어져 걸어서 들어갈 수 있다.
부다도 페스트도 아닌 강 위의 공원이다.
여기서 음악분수를 만났다. 기대한 게 아니라 걷다가 마주쳤다.
*마가렛섬 음악분수 — 물줄기가 음악에 맞춰 올라간다*
*같은 분수, 다른 각도 — 이날 저녁 여섯 시쯤이다*
물줄기가 음악에 맞춰 올라갔다 내려갔다 하는 동안 계속 서 있었다.
한 번 찍고 멈췄다가, 다음 곡이 시작되면 또 찍었다. 그렇게 네 번을 찍었다.
두바이에서도 분수쇼를 봤다. 규모는 거기가 비교가 안 되게 크다.
그런데 두바이에서는 뒤에 서서 구경만 했고, 여기서는 물가에 앉아 발을 담그고 봤다.
물에 발을 담갔다

보기만 한 게 아니다. 물에 발을 담갔다.
7월의 유럽을 배낭 메고 걸어 다니면 발이 제일 먼저 망가진다.
로마에서 며칠을 걷고 온 상태였고, 그날도 시장부터 다리까지 계속 걸었다.
그러다 찬물에 발을 넣었다.
*물줄기를 가까이서*
*분수 주변에 사람들이 앉아 있던 저녁*
이게 왜 오래 남았는지, 증거가 하나 더 있다.
나중에 리옹에서 더위에 시달릴 때 이 분수가 생각났다.
여행이 길어지면 도시가 뒤섞이는데, 더위에 지칠 때마다 꺼내 쓰는 장면이 따로 생긴다.
부다페스트에서 그 자리를 차지한 건 야경이 아니고 이 분수였다.
스케이트보드를 샀다가 남에게 줬다

이날 좀 엉뚱한 걸 하나 샀다. 근처 문구점에서 작은 스케이트보드를 샀다.
이유는 단순했다. 걷는 게 힘들었고, 이걸 타면 좀 편할 것 같았다. 사서 실제로 타고 다녔다.
그런데 내가 생각한 물건이 아니었다.
페니보드처럼 실제로 이동에 쓸 수 있는 보드를 기대했는데, 그냥 장난감에 가까운 크기였다. 배낭에 달고 다니기에도 애매했다.
그래서 다른 꼬맹이에게 줬다.
배낭여행에서 물건을 사는 기준이 이때 하나 정해진 것 같다.
배낭에 넣고 다닐 자신이 없었다.
애매하면 결국 버리거나 남에게 주게 되고, 그 사이에 며칠을 짊어지고 다닌다.
지금도 여행 갈 때 뭘 살까 망설이면 그 보드가 떠오른다.
벤치에 앉은 사람은 나다

공원에 커다랗게 `BUDAPEST` 글자를 세워둔 조형물이 있었다.
사진을 보면 그 앞 벤치에 사람이 앉아 있는데, 그게 나다.
BUDAPEST라고 크게 세워둔 조형물 앞이었다.
사진 찍는 사람들 사이 벤치에 앉아 다리를 쉬었다.
국회의사당에 해가 걸렸을 때

해가 기울 무렵 강변으로 나왔다. 강 건너에 국회의사당이 있었고, 그 위로 해가 넘어갔다.
이 순간이 이 하루의 정산이었다.
시장에서 랑고스를 먹고, 모르는 동상 앞에서 공을 차고, 섬에서 분수에 발을 담그고,
쓸모없는 보드를 사서 남에게 주고, 그 끝에 이 일몰을 봤다.
어느 항목도 계획에 없었다.
부다페스트가 좋아진 건 이 하루 때문이다

이 여행이 끝나고 도시 평가를 정리해뒀는데, 관광하기 좋았던 도시 1위가 부다페스트였다.
지금 그 순위를 다시 보면, 이유가 대성당이나 박물관이 아니었던 게 분명하다.
부다페스트에서 내가 제일 오래 카메라를 든 곳은 강 위 섬의 분수였고, 제일 오래 앉아 있던 곳은 강변이었다.
걷다가 앉을 자리가 계속 나오는 도시였다.
벤치, 분수 가장자리, 잔디밭, 강변 계단. 어디서든 다리를 쉬었다.
이튿날에는 근교 에스테르곰으로 당일치기를 갔다. 하루를 통째로 날린 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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