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헝가리 · 부다페스트 4] 마가렛섬 음악분수, 같은 분수를 네 번 찍었다

부다페스트 여행기 · 4편
한참 뒤에 열어보니
한 장소에서만 영상이 네 개였다.
시장도 동상도 아니고
섬에 있는 분수였다.
마가렛섬 음악분수 전경, 물줄기와 사람들
마가렛섬 음악분수 — 그날 계획에 없던 곳이다
마가렛섬 음악분수
Margitszigeti Zenélő Szökőkút / Margaret Island Music Fountain
지금도 여름철마다 같은 자리에서 튼다
가격
무료
주소
Margitsziget, 1138 Budapest, Hungary
마가렛섬 남쪽 입구 쪽에 있다. 음악에 맞춰 물줄기가 움직이는데 곡이 바뀔 때마다 패턴이 달라진다. 섬 자체가 차 없는 공원이라 걸어 들어가야 한다

그날 오후 계획은 중앙시장이었다. 시장에서 랑고스를 먹고 나온 게 계획의 끝이었고, 그 뒤는 정해둔 게 없었다.

그런데 한참 뒤에 사진 아카이브를 열어보니, 그날 남긴 영상이 한 장소에서만 네 개였다.

시장도 아니고 동상도 아니었다.

강 사이에 있는 섬의 분수였다.

마가렛 다리를 건너 섬으로

자유의 다리를 건너며 동행과 찍은 사진
자유의 다리 위 — 제주도에서 온 친구와

시장에서 나와 자유의 다리를 걸어서 건넜다. 전날 밤에 야경을 보러 건넌 그 다리다.

옆에 있는 건 전날 밤 숙소에서 알게 된 제주도 친구다.

호스텔 라운지에서 사람들이 다 같이 사진을 찍다가 친해졌고, 다음 날 낮에는 이렇게 같이 다니고 있었다.

배낭여행의 관계는 이렇게 하루 단위로 만들어진다.

이 친구와 다닌 하루를 한마디로 하면, 그때 가진 자유를 실컷 썼다.

어디를 가야 한다는 것도 없고 몇 시에 뭘 해야 한다는 것도 없었다.

그냥 다리에 앉아서 강을 보고, 걷다가 뭐가 나오면 들어갔다.

누군지 모르는 동상 앞에서 공을 찼다

푸스카시 동상 앞에서 공 차는 포즈
푸스카시 동상 앞 — 알고 간 게 아니라 재밌어 보여서 찍었다

걷다가 동상 앞에 멈췄다.

어른 하나와 아이들이 공을 차는 모양의 동상이었는데, 자세가 재밌어서 나도 똑같이 공 차는 포즈로 사진을 찍었다.

그때 나는 이게 누구 동상인지 몰랐다. 알고 찾아간 게 아니고, 지나가다 재밌어 보여서 찍은 것뿐이다.

나중에 알았는데 페렌츠 푸스카시(Ferenc Puskás)였다.

1950년대 헝가리 국가대표의 상징이자 레알 마드리드에서 뛴 축구 역사상 손꼽히는 공격수다.

헝가리 대표팀이 "매직 마자르"로 불리며 잉글랜드를 6대 3으로 이겼던 그 팀의 중심이 이 사람이다.

FIFA가 매년 주는 최고의 골 상 이름이 푸스카시 상인 것도 여기서 나왔다.

이런 걸 몰랐던 게 아쉽지는 않다.

오히려 이 순서가 맞았던 것 같다.

알고 갔으면 경건하게 사진 한 장 찍고 지나갔을 텐데, 모르고 갔으니 공 차는 포즈로 놀았다.

여행지에서 아는 게 많으면 태도가 조심스러워진다.

마가렛섬 음악분수를 네 번 찍었다

동상을 지나 걷다가 마가렛섬(Margitsziget)으로 들어갔다.

도나우강 가운데에 길게 누운 섬이고, 다리에서 이어져 걸어서 들어갈 수 있다.

부다도 페스트도 아닌 강 위의 공원이다.

여기서 음악분수를 만났다. 기대한 게 아니라 걷다가 마주쳤다.

*마가렛섬 음악분수 — 물줄기가 음악에 맞춰 올라간다*

*같은 분수, 다른 각도 — 이날 저녁 여섯 시쯤이다*

물줄기가 음악에 맞춰 올라갔다 내려갔다 하는 동안 계속 서 있었다.

한 번 찍고 멈췄다가, 다음 곡이 시작되면 또 찍었다. 그렇게 네 번을 찍었다.

두바이에서도 분수쇼를 봤다. 규모는 거기가 비교가 안 되게 크다.

그런데 두바이에서는 뒤에 서서 구경만 했고, 여기서는 물가에 앉아 발을 담그고 봤다.

물에 발을 담갔다

마가렛섬 분수 가까이에서
분수 바로 옆 — 여기서 물에 발을 담갔다

보기만 한 게 아니다. 물에 발을 담갔다.

7월의 유럽을 배낭 메고 걸어 다니면 발이 제일 먼저 망가진다.

로마에서 며칠을 걷고 온 상태였고, 그날도 시장부터 다리까지 계속 걸었다.

그러다 찬물에 발을 넣었다.

*물줄기를 가까이서*

*분수 주변에 사람들이 앉아 있던 저녁*

이게 왜 오래 남았는지, 증거가 하나 더 있다.

나중에 리옹에서 더위에 시달릴 때 이 분수가 생각났다.

여행이 길어지면 도시가 뒤섞이는데, 더위에 지칠 때마다 꺼내 쓰는 장면이 따로 생긴다.

부다페스트에서 그 자리를 차지한 건 야경이 아니고 이 분수였다.

스케이트보드를 샀다가 남에게 줬다

문구점에서 산 작은 스케이트보드
근처 문구점에서 산 작은 스케이트보드

이날 좀 엉뚱한 걸 하나 샀다. 근처 문구점에서 작은 스케이트보드를 샀다.

이유는 단순했다. 걷는 게 힘들었고, 이걸 타면 좀 편할 것 같았다. 사서 실제로 타고 다녔다.

그런데 내가 생각한 물건이 아니었다.

페니보드처럼 실제로 이동에 쓸 수 있는 보드를 기대했는데, 그냥 장난감에 가까운 크기였다. 배낭에 달고 다니기에도 애매했다.

그래서 다른 꼬맹이에게 줬다.

배낭여행에서 물건을 사는 기준이 이때 하나 정해진 것 같다.

배낭에 넣고 다닐 자신이 없었다.

애매하면 결국 버리거나 남에게 주게 되고, 그 사이에 며칠을 짊어지고 다닌다.

지금도 여행 갈 때 뭘 살까 망설이면 그 보드가 떠오른다.

벤치에 앉은 사람은 나다

BUDAPEST 글자 조형물 앞 벤치
BUDAPEST 조형물 — 벤치에 앉은 사람이 나다

공원에 커다랗게 `BUDAPEST` 글자를 세워둔 조형물이 있었다.

사진을 보면 그 앞 벤치에 사람이 앉아 있는데, 그게 나다.

BUDAPEST라고 크게 세워둔 조형물 앞이었다.

사진 찍는 사람들 사이 벤치에 앉아 다리를 쉬었다.

국회의사당에 해가 걸렸을 때

도나우강 너머 국회의사당의 일몰
강 너머 국회의사당 — 이 하루의 마지막 장면이었다

해가 기울 무렵 강변으로 나왔다. 강 건너에 국회의사당이 있었고, 그 위로 해가 넘어갔다.

이 순간이 이 하루의 정산이었다.

시장에서 랑고스를 먹고, 모르는 동상 앞에서 공을 차고, 섬에서 분수에 발을 담그고,

쓸모없는 보드를 사서 남에게 주고, 그 끝에 이 일몰을 봤다.

어느 항목도 계획에 없었다.

부다페스트가 좋아진 건 이 하루 때문이다

해가 진 뒤의 세체니 다리
해가 진 뒤의 세체니 다리

이 여행이 끝나고 도시 평가를 정리해뒀는데, 관광하기 좋았던 도시 1위가 부다페스트였다.

지금 그 순위를 다시 보면, 이유가 대성당이나 박물관이 아니었던 게 분명하다.

부다페스트에서 내가 제일 오래 카메라를 든 곳은 강 위 섬의 분수였고, 제일 오래 앉아 있던 곳은 강변이었다.

걷다가 앉을 자리가 계속 나오는 도시였다.

벤치, 분수 가장자리, 잔디밭, 강변 계단. 어디서든 다리를 쉬었다.

음악분수가 있는 섬

이튿날에는 근교 에스테르곰으로 당일치기를 갔다. 하루를 통째로 날린 날이다.

부다페스트 · 8편 중 4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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