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르투갈 · 리스본 8] 1837년부터 같은 배합으로 굽는 에그타르트
백팔십 년째 굽고 있다.
벨렝까지 걸어갔다.
벨렝까지 걸어온 진짜 이유는 에그타르트였다. 기념비도 수도원도 사실은 가는 길에 있었던 것이다.
포르투갈에서는 이걸 나타라고 부른다. 그리고 원조로 통하는 집이 딱 하나 있는데, 그게 제로니무스 수도원 바로 옆에 있다. 며칠 전 아침에 호스텔에서 검색하다가 그 집 이름을 처음 알았다.

문턱에서 돌아섰다

수도원 문 안까지는 들어갔다. 문턱을 넘으니 어두운 현관이고 그 너머로 성당 안이 보였다. 안쪽 끝에 금색 제단이 있고 그 위로 돔이 얹혀 있었다.
앞에 진입금지 표지판이 서 있었다. 그 옆에 안내판이 하나 더 있었는데 조용히 해달라는 말이 포르투갈어와 영어로 적혀 있었다. 사람들이 오른쪽 통로로 줄지어 들어가고 있었다.
거기서 돌아섰다. 줄을 서면 들어갈 수 있었는데 서지 않았다.
문 하나에 조각이 다 몰려 있었다. 벽은 밋밋한데 문 둘레만 위아래로 조각이 빽빽하다. 아치가 겹겹이 안으로 들어가고 그 사이마다 사람이 서 있다.

옆집에 줄이 있었다

수도원에서 몇 분만 걸으면 파란 차양이 길게 달린 가게가 나온다. 차양마다 가게 이름이 흰 글씨로 박혀 있고 그 아래에 사람들이 줄을 서 있었다.
수도원에도 줄이 있었고 여기도 줄이 있었다. 그런데 여기 줄에는 섰다.
줄이 두 개라는 걸 나중에 알았다. 포장해 가는 줄과 앉아서 먹는 줄이 따로다. 앉아서 먹는 쪽은 안으로 들어가면 자리를 안내해준다.
1837년부터

자리에 앉으니 메뉴판이 나왔다. 맨 윗줄에 딱 한 줄이 굵게 박혀 있었다. `집의 특선 (1837년부터)`.
메뉴판 맨 위에 올라가는 게 그 집이 뭘 파는 집인지를 말해준다. 여기는 에그타르트를 파는 집이고 그건 백팔십 년째 그렇다.
이 집이 생긴 사연이 옆 건물과 얽혀 있다. 십구 세기 초에 포르투갈에서 수도원들이 문을 닫았다. 그때까지 수도원에서는 달걀 흰자를 많이 썼는데, 옷에 풀을 먹이는 데 썼다고도 하고 포도주를 맑게 거르는 데 썼다고도 한다. 그러고 남은 노른자를 처치하느라 단것을 만들었다. 포르투갈 과자에 유난히 노른자가 많이 들어가는 이유다.
수도원이 문을 닫자 그 배합이 밖으로 나왔다. 옆에서 사탕수수 정제소를 하던 사람이 그걸 받아 가게를 열었고, 그게 1837년이다.
지금도 그 배합을 아는 사람은 몇 명뿐이라고 한다. 가게 안쪽에 따로 방이 있고 거기서만 반죽을 만든다. 하루에 나가는 양이 수천 개인데 그걸 그 방에서 다 만든다.
그러니까 아까 문턱에서 돌아선 그 수도원과 지금 앉아 있는 이 가게가 같은 뿌리다. 안에는 못 들어갔는데 거기서 나온 건 먹었다.
안쪽 방은 벽이 전부 파란 타일이었다. 흰 바탕에 파란 무늬를 넣은 그 타일이 천장 가까이까지 올라와 있다.

두 개와 에스프레소
두 개를 시키고 에스프레소를 곁들였다. 여기서는 그게 기본이다. 나타 하나에 커피 한 잔.
접시에 나온 걸 보니 겉이 진하게 그을려 있었다. 표면이 매끈한 게 아니라 군데군데 검게 탄 자국이 있다. 처음엔 태운 줄 알았는데 그게 제대로 구워진 것이다. 아주 높은 온도에서 짧게 구워야 껍질이 겹겹이 부풀고 위쪽만 저렇게 그을린다.
손에 들면 아직 따뜻했다. 갓 구워 나온 걸 내주는 집이라 그렇다.
테이블에 은색 통이 두 개 놓여 있었다. 하나는 계핏가루고 하나는 슈거파우더다. 원하는 만큼 직접 뿌려 먹으라는 것이다. 포르투갈 사람들은 계피를 꽤 많이 뿌린다.

한 입 베어 물었다. 겉껍질이 여러 겹으로 부서지면서 안에서 노란 크림이 나왔다. 크림이 굳어 있지 않고 아직 흐르는 상태였다.
이게 다른 데와 제일 다른 점이었다. 내가 알던 에그타르트는 속이 푸딩처럼 탄탄하게 굳어 있는 것이었는데 여기 건 그렇지 않다. 숟가락으로 뜨면 흘러내릴 것 같은 상태로 껍질 안에 담겨 있다.

단맛이 세지 않았다. 단맛은 계핏가루와 슈거파우더가 알아서 맡고, 타르트 자체는 계란 맛이 앞에 나온다. 그래서 두 개를 먹어도 물리지 않는다.
그 자리에서 순위가 바뀌었다
에그타르트라면 좀 먹어봤다고 생각했다. 이 여행 앞쪽에 홍콩과 마카오를 지나왔는데 거기가 에그타르트로 유명한 데다. 홍콩에서도 먹었고 마카오에서도 먹었고, 마카오 쪽이 더 낫다고 정해두고 있었다.
그 순위가 그 자리에서 바뀌었다. 홍콩보다 마카오였고, 마카오보다 여기였다.
사실 셋이 같은 음식도 아니다. 마카오 것은 포르투갈에서 건너간 게 영국식 커스터드와 섞이면서 달라진 것이고, 홍콩 것은 거기서 또 한 번 바뀐 것이다. 그러니까 벨렝에서 먹은 게 셋 중에 제일 앞에 있는 물건이다. 원형을 나중에 먹은 셈이다.
두 개로는 모자랐다. 다 먹고 나서 포장으로 더 살까 잠깐 고민했는데, 그날 저녁까지 걸어야 해서 참았다.
줄이 두 개다. 포장만 할 거면 바깥쪽 줄에 서면 되고 앉아서 먹으려면 안으로 들어가 자리를 안내받는다. 앉는 쪽이 줄이 길어 보여도 안이 넓어서 생각보다 빨리 들어간다.
계핏가루와 슈거파우더는 테이블에 놓여 있어 직접 뿌린다. 갓 구워 나온 게 확실히 달라서 나는 두 개를 시켰다.
수도원과 붙어 있어서 같이 보게 된다. 수도원 줄이 길면 여기부터 오는 것도 방법이다.
돌아오는 길도 걸었다

올 때 두 시간 반을 걸었으니 갈 때는 뭘 타도 됐다. 그런데 또 걸었다.
도로를 따라 동쪽으로 가니 멀리 다리가 다시 나왔다. 아침에는 목표였던 게 이제는 이정표다.
강변 대신 안쪽 언덕길로 붙었다. 언덕을 오르니 꽃이 담 위로 넘어와 있었다. 분홍 협죽도가 담장을 덮고 그 너머로 동네가 내려다보였다.

벽에 사다리가 그려져 있었다

건물 옆면에 벽화가 하나 있었다. 아래쪽은 짙은 남색에 별이 흩뿌려져 있고 위쪽은 흰 구름이다. 그 사이에 사다리가 하나 세워져 있고 오른쪽에 달이 떠 있다.
사다리가 달까지 닿지는 않는다. 중간에서 끊긴다.
다리 밑에 마트가 있었다

언덕을 내려오니 다리 교각이 바로 앞에 있었다. 아침에 밑을 지나간 그 교각이다.
그 아래에 마트가 있었다. 파란 간판에 노란 글씨가 박힌 그 마트다. 유럽 어디를 가나 있는 체인이고 여행자에게는 물가를 재는 자가 된다.
들어갔다. 저녁거리를 사려던 것이었다.
여기도 나타가 있었다

빵 진열장 앞에서 멈췄다. 유리 안에 나타가 놓여 있었다. 은박 틀째 흩어져 있고 표면에 그을린 자국까지 아까 그 집 것과 똑같이 생겼다.
세 시간 전에 원조를 먹고 왔는데 동네 마트 진열장에 같은 게 있는 것이다. 그것도 제일 아래 칸, 사람 눈높이보다 낮은 자리에.
이게 이 나라를 알려주는 장면이었다. 포르투갈에서 나타는 특산품이 아니라 그냥 빵이다. 관광객이 줄 서서 먹기 전에 동네 사람이 아침마다 커피랑 하나씩 집어 먹는다.
한국으로 치면 편의점 삼각김밥 자리에 있는 셈이다. 그걸 알고 나니 아까 줄 서서 먹은 게 시시해지는 게 아니라, 이 나라 사람들이 이걸 얼마나 오래 먹어왔는지가 보였다.
맛은 물론 달랐다. 껍질이 덜 부서지고 크림이 더 굳어 있다. 원조를 먹고 바로 먹으면 차이가 분명하다. 그래도 이게 나쁘다는 게 아니라, 어디서 사도 기본은 한다는 뜻이었다.
봉투에 포르투갈 빵을 담았다

나타 옆 칸에 다른 것들이 있었다. 이 나라 빵집에 늘 있는 것들이다.
`폴랴두`라고 부르는 파이가 두 종류 있었다. 겹겹이 부푼 페이스트리 안에 소시지를 통째로 넣은 것과 고기를 다져 넣은 것. 나타가 단것 쪽 기본이라면 이건 짠것 쪽 기본이다. 아침에 커피랑 먹기도 하고 점심을 이걸로 때우기도 한다.
한쪽에는 둥근 빵에 크림을 채운 게 있었다. `볼라 드 베를링`, 그러니까 베를린 공이라는 이름이다. 독일식 도넛이 건너와서 포르투갈 여름 해변 간식이 됐다. 해변에서 아이스박스를 메고 이걸 팔러 다니는 사람이 있을 정도다.
봉투에 이것저것 담았다. 나타 몇 개와 파이 몇 개를 넣으니 저녁이 됐다.
빵 하나로 저녁을 때우는 게 궁색해 보일 수 있는데, 이 나라에서는 그게 이상한 식사가 아니다. 빵집이 곧 카페고 카페가 곧 식당이라 사람들이 아침저녁으로 여기서 해결한다.
포르투갈 빵집은 카페를 겸한다. 서서 마시는 바가 있고 그 앞에 유리 진열장이 놓인다.
주문은 진열장을 손가락으로 가리키면 된다. 이름을 몰라도 되고, 커피는 `um café`라고 하면 에스프레소가 나온다. 우유를 넣고 싶으면 `galão`이다.
나타는 어디서 사도 기본은 한다. 원조집을 못 가더라도 아무 빵집에서 하나 먹어보는 걸 권한다. 갓 구워 나오는 시간에 맞으면 그게 제일 맛있다.
저녁에는 공원에 앉아 있었다

돌아오는 길에 공원이 하나 있었다. 큰 나무가 우거져 있고 가운데에 연못이 있다. 연못가에 오리와 거위가 모여 있고 그 사이에 비둘기가 섞여 있었다.
벤치에 앉아서 봉투를 열었다. 종일 걸은 다리에는 이런 자리가 필요하다.
공원 건너편에 흰 돔이 있는 성당이 있었다. 돔 하나에 탑 두 개가 붙어 있고 그 앞으로 트램이 지나갔다.

언덕 위 전망대에서 도시가 다시 한번 내려다보였다. 노란 건물과 파란 건물이 섞여 있고 그 위로 붉은 지붕이 이어졌다. 이 도시는 어느 언덕에 올라도 이런 게 보인다.

하루를 더 눌러앉았다

원래는 그날 밤에 파로로 넘어갈 생각이었다. 그런데 숙소를 알아보다가 조건이 더 나은 호스텔에 자리가 난 걸 보고 마음을 바꿨다. 짐을 싸서 그쪽으로 옮겼다. 리스본에서 잔 숙소가 결국 두 곳이 됐다.
새 숙소에 도착하니 스텝이 잔을 하나 내밀었다. 웰컴 드링크였다. 작은 유리잔에 짙은 붉은 술이 담겨 있었다.
진지냐다. 리스본에 오면 한 번은 마시게 되는 술이고, 신 체리를 술에 담가 설탕과 계피를 넣어 만든다. 잔이 아주 작다. 소주잔보다 조금 큰 정도인데 도수는 이십 도쯤 된다.
한 모금 마시니 체리 맛이 먼저 오고 뒤에 알코올이 따라왔다. 단맛이 상당히 세서 술이라기보다 시럽에 가깝게 느껴지는데, 삼키고 나면 목이 뜨끈해진다.
이 도시에서 진지냐는 앉아서 마시는 술이 아니다. 호시우 광장 옆 골목에 백 년 넘은 가게가 있는데 거기는 아예 서서 마시게 되어 있다. 한 잔 받아서 문 앞에서 마시고 잔을 돌려주고 간다. 잔 바닥에 담갔던 체리를 넣어주는 집도 있고, 초콜릿으로 만든 잔에 담아줘서 마시고 잔까지 먹는 집도 있다.
종일 걸은 날 저녁에 마시기에는 적당한 것이었다.
그리고 그대로 뻗었다. 그날 걸은 거리를 생각하면 당연한 결말이다. 벨렝까지 걸어갔다 걸어 돌아왔다. 중간에 언덕을 두어 개 넘었고 마지막에 도수 있는 술을 한 잔 받아 마셨다.
에그타르트 하나 먹으러 나갔다가 도시 하나를 하루 더 얻었다.
주문할 때 체리를 넣을지 뺄지를 묻는다. `com`이면 넣고 `sem`이면 뺀다. 술에 절여진 체리라 씹으면 알코올이 그대로 나온다. 처음이면 넣어서 마셔보는 게 낫다.
초콜릿 잔에 담아주는 집이 관광지 쪽에 있다. 마시고 잔까지 씹어 먹는 방식인데 재미로 한 번은 해볼 만하다.
식후주에 가까워서 저녁 먹고 한 잔 하는 게 자연스럽다. 잔이 작다고 여러 잔 마시면 도수가 뒤늦게 올라온다.
에그타르트 하나에 왕복 다섯 시간
에그타르트 하나 먹으러 왕복 다섯 시간을 걸었다. 그렇게 적어놓으면 미련해 보이는데 그날은 그게 당연했다.
그리고 그럴 만했다. 갓 구워 나와서 아직 따뜻하고, 껍질이 겹겹이 부서지고, 안이 흐르는 상태로 담겨 있는 걸 그 자리에서 먹는 것. 사진으로는 안 되는 종류의 음식이다.
같은 날 마트에서 같은 걸 봤다. 원조를 먹고 온 날에 그걸 본 게 순서가 좋았다. 반대였다면 원조가 유난스러운 것처럼 느껴졌을 텐데, 그날은 반대로 보였다. 이 나라 사람들이 이걸 얼마나 오래 먹어왔길래 아무 마트에나 다 있는 걸까 싶었다.
수도원에서 나온 배합이 백팔십 년을 건너와서, 한쪽에서는 줄 서서 먹는 물건이 되고 다른 쪽에서는 동네 빵이 됐다. 그 두 개를 하루에 다 본 셈이다.
그리고 그날 밤에 계획을 바꿔서 하루를 더 묵었다. 파로로 가는 건 하루 미뤄졌다.
리스본에서의 마지막 아침과, 기차역에서 만난 두 사람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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